알파 A 창조론 과 오메가Ω 창조론/오메가(종말론적) 창조론 연구

“어린 양의 생명책”

heojohn 2021. 1. 4. 20:28

생명책은 히브리어 סֵּפֶר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다. ‘סֵּפֶר싸파르로 발음하면 계산하다, 세다는 뜻의 동사, 또는 왕의 계산을 담당하는 서기관 등의 명사로 쓰는 경우이다. 그리고 쎄페르로 발음하면 기록된 것또는 이라는 명사로 쓰는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창세기 15:5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들이 뭇별처럼 번성하는 복을 주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데 쓰셨고, 서기관 등의 명사로는 역사서에서 많이 썼다. 후자의 의미로는 다윗이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69:28) 등에서 살아 있는또는 생명체들을 의미하는 하이욤’(חַיִּים)을 붙여서 생명책’(סֵּפֶר חַיִּים, 세페르 하이욤)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스어로 쓴 신약성경에는 바울이 빌립보서 4:3에서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τα ονοματα εν βιβλω ζωης)고 말하면서 쓰고 있다.

 

요한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고 증언함으로써 창세 이후 살았던 사람들의 생명책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어린 양의”(του αρνιου) 것이 되었다고 선포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창세 이래 인간들의 행위를 기록한 하나님의 책들은 모두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요한에 의하면 그 짐승에게 경배한 자들은 결국 죽었다가 둘째 부활에 살아나서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20:12) 흰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책은 어떻게 기록되는 것일까?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생명책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어린 양의 생명책은 그렇게 기록된다고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 과학기술의 토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땅의 인간들보다 뒤떨어지는 방법으로 생명책을 기록하신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이 다음 세대 컴퓨터로 개발 중인 양자 컴퓨터를 능가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를 이미 만들어 사용하신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전 우주에 빛보다 빠른 온라인 정보통신망을 설치하여 땅에서 살았던 자들의 데이터를 생명책파일에 실시간으로 모두 기록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살았던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아니라면, 마지막 심판의 날 둘째 부활에 찬여해서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행위데이터가 하나님의 컴퓨터에 빠짐없이 기록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

 

둘째 부활의 심판대 앞에 서는 자의 생명책데이터는 그곳에 설치되는 모니터에 사실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을 보게 되면, 어떤 누구도 어린 양의 생명책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애곡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리스도를 찌른 자도 둘째 부활의 심판에 참여해서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1:7), 그때 그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책심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뽑혀서 새로 창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에서 영생을 누리는 자들과 불못에 던져져서 둘째 사망하는 자들이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고, 처음 하늘과 땅도 불태워진다. 그리스도는 그의 대적들을 모두 불못에 더져 버리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과 둘째 부활에서 어린 양의 생명책심판을 통과한 자들을 그의 혼인 잔치에 초청하신다. 그때 그리스도는 새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왕으로 등극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그때부터 그곳에서 영생의 복을 누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을 하늘로 불러서 주신 계시에 의하면, 영생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에 달렸다. 그렇다면 자기 행위의 기록을 바꾸는 자기 행위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