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의 세계 이해

heojohn 2020. 3. 16. 13:43

하이젠베르크는 1965년 『부분과 전체』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생활 이야기와 함께 닐스 보어 등 동료 과학자들과 실재에 관련한

주제들을 논의했던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와 폴 디랙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증기
선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토의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하이젠베르
크는 “우리의 사고능력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하면
서, 그 근거가 “자연을 이 모든 형태로 조성한,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우리의 정신 구조, 즉 사고 능력의 구조 또한 만들었다”고 했던 그의
동료 로베르토의 말에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서 그의 스승이었
던 닐스 보어의 “올바른 주장의 반대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나 심오
한 진리의 반대는 다시금 심오한 진리일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
며 폴(디렉)과의 사이에 모순을 가볍게 넘겼다고 고백한다. 사실 이 부
분은 코펜하겐 해석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주장했던 하이젠베르크와
상보성 원리를 주장했던 보어가 그들에게 비판적이었던 아인슈타인
과 슈뢰딩거의 견해에 대한 태도를 진술하는 것이다. 불확정성을 주
장하는 코펜하겐 해석이 진리라면, 이를 반대하는 아인슈타인의 ‘숨
은 변수’도 진리일 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윈의 이론에 대해서 ‘우연한 돌연변이와 선택
과정을 통한 자연도태’는 지구상의 다양한 유기체의 형태를 설명하
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생물학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
도 “인간의 눈처럼 복잡한 기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한 변화만
으로 생겨난다고 하는 건 여전히 믿기가 힘들”다고 고백한다. 하이
젠베르크는 폰 노이만을 인용하여 “거의 모든 것이 우연을 통해 생겨
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결국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을 허무맹랑한 오랜 세월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지적했
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자연과학에서는 의식에도 자리를 마련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현실에 속하니까요.”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의 스승 닐스 보어는 “물론 물리학, 화학에서는 ‘의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요. 양자역학이 그와 비슷한 것을 설명할 수 있
을지도 알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래서 양자
론의 기본이 되는 물리학과 화학 외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법칙을 기
술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보어는 이런 경
우에는 다른 부분의 법칙끼리 갈등을 빚는다면, 틀림없이 상보성이
진정으로 들어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대화에서 사람들
이 의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도 갈
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친구들과 인과율 문제를 토론했다. 한 친구가 칸
트의 인과율이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것으로 주장하고, 양자이론은 원
인을 찾지 못하고 원인이 없다고 추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
판에 대해 긴 토론을 했으나, 과학의 발전이 “새로운 사실들을 알고
이해해나가는 것”과 “‘이해’라는 말을 늘 새롭게 배워나가는 것”을 통
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토론은 양자이론이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불확정성 원리로 가려놓은 딜레마
를 보여준다. 하이젠베르크가 스콜라 철학- 주로 종교적 질문과 관
련된 형이상학에 대하여 실증주의자들의 비판을 문제로 삼자, 보어
는 “자연과학도 기본적으로는 형이상학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은가
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어는 그 이유를 자연과학이 언어에
명백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갑자기 보어는 노자의 도(道)를 인용하면서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언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식초를 맛 본 노자
가 다른 사람처럼 쓰거나 신 맛이라고 하지 않고, ‘신선한 맛’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노자와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보어는 『도덕
경』에 심취했으나 이해하지는 못했다. 보어는 가문의 문장 가운데에
중국 도교의 음양도를 넣기까지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52년 그의 연구 파트너 볼프강 파울리, 그리고
보어와 함께 실증주의. 형이상학, 종교를 논의하는 3인 대화를 가졌
다. 파울리가 실증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 J. Wittgenstein,
1889-1951)의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
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는 말을 인용했다. 보어는 ‘내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존재하는 심연을 그냥 도외시해서는 안 된
다’고 말했다. 파울리는 보어의 말에 “심연이 있을까? 진리가 있을
까? 그리고 이런 심연은 삶과 죽음의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졌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파울리의 말에 관련하
여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의식’을 향해 질문을 독백했다. “세계의 질
서정연한 구조 뒤에서 자신의 ‘의도’로 세계를 만들어낸 ‘의식’을 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까?”341 그는 이 질문이 인간과 세계의 중심 질서
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결국에는 언제
나 중심질서가 관철”된다. 그리고 그는 가치의 의미를 ‘중심질서의 뜻
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말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중심
질서가 관철’되는 ‘하나’의 세계를 말하면서, 그것과 관계되는 한 존재
의 ‘중심질서’를 ‘영혼’이라고 했다

 

하이젠베르크가 이런 말들을 계속하자 파울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자네는 인격적인 신을 믿어?”라고 묻는다. 하이젠베르크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를 제안했던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신비 체험을

인용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불’ 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파스칼의 텍스트를 소개
하면서,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파스칼의 내기: 신의 존재에 

대해서 내기를 하는 경우, 신이 존 재하지 않는다면, 유신론자가 잃는 손해는 작고 

무신론자가 이겨서 얻는 이익도 작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면, 무신론자는 모든 것을 잃고 

유신론자 는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파스칼은 인간은 무조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에 

내기를 거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 의 하나님을 절대자로 믿었다. 

 

하이젠베르크는 1958년 이후에는 동료들과 통일장 이론과 플라
톤 철학을 논의하곤 했다. 어느 날 이들은 우주의 초기 조건을 논의
하고 있었다. 한스-페터 뒤르(Hans- Peter Dürr, 1929-2014)가 초기 조
건을 ‘장 방정식으로 설명하면서 “세계 또는 우주, 즉 소립자가 생성
되는 토대가 자연법칙보다는 대칭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
를 프리드리히(Karl Friedrich)는 그 이유를 “우연이, 더 정확히 말해, 설
명이 되지 않는 일회적인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기존 물리
학에서도 초기 조건은 자연법칙을 통해 확정되지 않으므로 모든 우
주의 “초기 조건들은 우연적”이라고 설명한다. 하이젠베르크는 “태
초에 내려졌던 결정들”은 소립자에 “한 번에 영원히 대칭성을 확정했
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추후 우주의 전개에 대해서는 우연이
개입”하고, “점점 더 복잡한 전개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작용은 반복
될 수 있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런 우연 역시 어떻게든 중
심질서와 연관될 거야.”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이젠베르크는 그 뒤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가끔씩 모여서
‘육체와 영혼 토론회’를 가졌다. ‘우연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주제
로 했던 콜로키움에서 생물종의 탄생과 인간 도구의 탄생이 비슷하다
는 주장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기술 발전과 다윈의 이론이 모순되므
로 이를 반대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왜냐하면 기술 발전에는 ‘의도’가
개입되지만, 다윈의 이론에는 ‘의도’가 없고, ‘우연’만 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서술과 그의 대화를 보면, 양자이론이 사용하는
언어의 해석뿐만 아니라, 의식이 포함되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거
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중심질서’와 슈뢰딩거의 ‘두 가지
역설’이 만나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내가 인식하는 감각이 물질세계에는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신과 물질이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계보를 이었던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의식이 도달한 곳은 물질과 정신이 나누어지고 합쳐지는 경계선이다.

 

그곳은 우연과 필연의 갈림길이며, 관념론과 유물론이 대치하는 전선(戰線)이다.
또한 저마다의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공연장이며, 각 종교와 과학
의 접점이 될 곳이며, 과학적 무신론과 과학적 유신론이 통일의 무대
를 세울 곳이다. 그들은 물질로만 이루어진 사물의 부분적 세계가 정
신을 포함하는 전체적 세계로 합류되는 곳에 도달했었다. 그곳은 과
학의 세계 끝에 있는 보어의 ‘진실이 존재하는 심연’이다. 그들은 그
곳에 도달했지만, 뛰어들지는 않았다. 호킹의 수학교수 펜 로즈에 의
하면 그곳은 물리적 계산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비계산 규칙에 따
라 행동’하는, 의식의 세계이다. 슈뢰딩거는 그곳에서 ‘감각의 신
비’에 막혀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 세계보다
큰 전체 세계에서 여백에 가려져 있는 ‘숨은 변수’의 진실을 버렸다.
‘부분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전체 세계’는 닫힌 곳이
다. 하이젠베르크조차 전체 세계의 문을 활짝 열지 못했다. ‘전체 세
계’는 그곳에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과학적 유신론
자들에게만 개방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