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생명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물질』: 슈뢰딩거의 세계 이해

heojohn 2020. 3. 16. 13:22

양자이론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 능력은

하나의 실재를 관 측하면서도 제각기 달리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슈뢰딩거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파동 방정식을 발견하여 양자이론의 기둥뿌리를 세웠
다.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코펜하겐 해석에 반론을 제기했
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는 물리학에 한계를 느끼고 생물
학 쪽으로 연구 방향을 돌렸다. 1944년에 출판된 『생명이란 무엇인
가』는 그런 노력의 1차적 결과물이었고, 1958년 출간된 『정신과 물질』
은 2차적 결과물이었다. 이후에 자필 수기를 덧붙여 이것들은 하나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양자이론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던 슈뢰딩거는 대
부분의 양자물리학자들처럼 죽을 때까지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이 문제로 고뇌했다.

 

1.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는 생명과 정신의 문제를 물질과의 연관 속에서 해결하
는 연구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먼저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염색체 섬유)은 비주기적 결정(apeoriodic
crystal)’307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세포가 물리학에서 다루는 주기적
결정(peoriodic crystal)과는 비교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리학자인 슈뢰딩거는 먼저 생명체가 물리법칙이나 화학법칙에 의
존하며, 끊임없는 원자들의 열운동에 의하여 교란당하고 무력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생명체란 물질이 거의 영속
성을 가지고 유전적 특성을 재생산하는 ‘4차원적인 표현형’이라는 사실
을 발견하게 되었다. 슈뢰딩거에게는 이러한 표현형의 전체 패턴이 기
적이다. 그러나 그런 기적에서 태어난 우리가 그런 기적을 거의 완전히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 큰 기적이다(아인슈타인도 이와
비슷한 뜻의 말을 했다). 말하자면 그에게 유전자의 표현형인 생명체는 작
은 기적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의 정신은 더 큰 기적이다. 슈뢰딩
거는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인간의 이해 능력 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
하면서 실재를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를 고백한다.


슈뢰딩거는 작은 분자인 유전자 안의 암호문에 고도로 복잡하고
세분화된 생명체의 발생 계획과 그 계획을 실현하는 모종의 수단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슈뢰딩거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델브뤼
크(Max Delbrück, 1906-1981)의 분자모델과 하이틀러(W. Heitler)와 런던
(F. London)의 ‘원자가결합(valence bond theory)이론’을 인용하고 있지
만, 양자 이론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드
브리스(Hugo Marie de Vries, 1848-1935)가 관찰했던 ‘돌연변이’는 ‘양자
도약’으로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윈의 이론에서 미세한 점
진적 변이를 오류라고 보고 이것을 돌연변이로 바꾸면 수정된다고 주
장했다. 돌연변이는 불연속성을 가지므로 중간 형태가 없다는 사
실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슈뢰딩거는 진화의 에너지가 ‘양자
도약’에 있다고 서술함으로써 양자물리학적 진화론의 단초를 제공
하고 있다.


슈뢰딩거는 생명체가 최대 엔트로피 상태, 즉 죽음을 향해 나아가
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물질은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
가 원리)에 의하여 절대온도 0도에서 엔트로피는 0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체는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대사를 통해 엔트로피의 증가
를 지연시키는 질서를 가졌다고 본다. 자연이 질서를 산출하는 메커
니즘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산출하는 ‘통계적인 메커니즘’이다. 그러
나 생명체는 질서에서 질서를 산출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메커니즘’
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슈뢰딩거는 열역학 제2법칙과는 반대로 오
히려 고도의 질서를 산출하는 생명체의 새로운 물리 법칙을 ‘비(非)물
리학 법칙적인, 아니 심지어 초(超)물리학적인 법칙’이라고 말하고 있
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바꾸어 그것을 양자 이론의 원리라고 믿는다
고 했다.311 결국 그는 복잡한 다세포 생명체의 특징을 시계에 비유하
여 설명한다. 그의 결론에 의하면 ‘다세포 생명체에 특이하게 배치된
톱니바퀴는 인간의 거친 솜씨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의 양자역학에
따라서 지금까지 성취된 것 중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작’이다.312
이 말에서 보면 슈뢰딩거는 유신론자처럼 보인다.


그는 이 책의 뒤에 “결정론과 자유의지”라는 후기를 써서 첨부했
다. 여기서 그는 살아 있는 존재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적 사건
들은 ‘최소한 통계 결정론적’이므로 엄격하게는 결정론적이 아닐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자유의지는 ‘모든 의식 있는 정신인 내’가 ‘자
연법칙에 따라서 원자들의 운동을 통제하는 당사자’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그는 ‘내가 전능한 신이다’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는 불경스러운 짓이지만,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가 수용한 인도 신비사상에는 ‘아트만이 브라만’(내가 신이다)이라는 개
념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암시한다. 슈뢰딩거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인도사상을 

포함한 동양의 종교와 철학사상이 모두 무신론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 가진 의식에 대하여 ‘결코 복수로 경험되지 않고 단
수로만 경험’되는 것이라고 한다. 의식은 ‘몸이라는 제한된 구역에 있
는 물질의 물리적 상태에 의존하며 그것과 직접 연결’된다. 슈뢰딩
거는 우리 각자가 가진 경험과 기억의 전체적 단위를 ‘나’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나’는 기억과 경험의 개별 자료들의 집합을 위하여 밑바
탕이 되는 캔버스에 불과하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물질적인 ‘나’에 대
한 관점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1894-1963)가 『영원의
철학』에서 설명한 것을 채택했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철학자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이 책에서의 서술만을 보면 슈뢰딩거는 유신론
과 무신론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어쨌든 당시 슈뢰딩거의 주장과 고백에 자극을 받은 물리학자들은
생물학을 연구했고, 생물학자들은 물리학과 화학적 방법론으로 생명
현상의 핵심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매진했다. 그리하여 1953년 크릭
과 왓슨에 의해 유전자 구조가 발견되었다. 이후 발전한 생물학은 게
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물의 유전정보를 알아냈을 뿐만 아니
라, 인공적으로 조작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를 바탕
으로 현대 생명과학은 유전자의 결함으로 인한 질병 등을 고치고 복
제 생명체를 만들어내기조차 한다.

2. 『정신과 물질』

 

생명체를 기적으로, 그런 기적을 이해하는 정신을 더 큰 기적으로
진술했던 슈뢰딩거가 14년이 지나 1958년에 출판한 『정신과 물질』에
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즉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먼저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
하지만, ‘세계는 우리의 감각과 지각과 기억으로 구성’317된다고 말한
다. 이어서 그는 스피노자(Benedict de Sponoza, 1632-1677)의 철학에서
“모든 개별 사물 혹은 존재는 무한한 실체, 즉 신의 양태”라는 명제를
인용한다. 그리고 신은 자신의 속성 각각으로, 예컨대 연장(延長)의
속성과 사유의 속성으로, 자신을 표출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연장
(延長)은 신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물리적 현존이며, 사유는 (살아있
는 인간이나 동물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무
엇인가? 슈뢰딩거는 시대와 민족을 막론하고 윤리적 규범의 기반은
자기부정(자기극복)이라고 설명한다.

 

슈뢰딩거는 다윈의 이론을 따라 종의 진화 방향에서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은

동물은 멸종할 것이므로 개체들의 행동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슈뢰딩거는 『진화론: 현대적 종합』을 쓴 줄리언 헉슬리의 이론을 인용하여 생물학적
진화론을 전망한다. 줄리언 헉슬리는 이 책에서 당시의 유전학적 지식과 결합하여 

그의 할아버 지 ‘다윈의 불독’ 토머스 헉슬리가 주장한 돌연변이설을 새로 설명했다. 

줄리언의 시대에 드 브리스가 돌연변이설을 새로 주장하면서 멘델의 유전법칙이 

다시 평가되었다그의 전망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기관이 기계화(mechanization)와

바보화(stupidization)로 퇴보할 것이 우려된다.


슈뢰딩거의 과학적 방법의 두 가지 보편적 원리는 자연의 ‘이해 가
능성 원리’와 ‘객관화 원리’이다. 슈뢰딩거는 자연에 엄격한 인과적
연결이 없다고 주장하는 ‘불확정성 원리’가 그의 ‘이해 가능성 원리’를
‘한 걸음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객관화 원리’는 ‘실재 세계 가설’이
라고도 불리며, 인식의 주체가 실재 세계에서 물러남으로써 실재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각과 지각과 기억으로 세
계를 구성하는 실재인 것처럼 타인들도 세계를 구성하는 실재이다.
그렇다면 세계 안에 있는 내가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슈뢰딩거는 그의 과학적 방법으로 두 가지 역설을 발견했다. 첫째
는 내가 인식하는 감각이 물질세계에는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신
과 물질이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슈뢰딩
거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역설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자
들의 견해를 탐색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다.


찰스 셰링턴: 정신과 물질세계는 서로 독립적이라는 결론을 내
렸다.
칼 융: 모든 지식과 과학은 영혼에 뿌리를 두고 있고, ‘영혼은 모든
우주적인 기적가운데 가장 큰 기적이며, 세계가 객관적으로 있기 위
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에딩턴: 최근에 물리학이 다루는 것은 세계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
닫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정신은 우리의 공간적인 세계 속에
유령보다 더 유령처럼 떠돌고있으며,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325
칸트: ‘사물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슈뢰딩거에 의하면 주관과 객관의 장벽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
았다. 그러므로 슈뢰딩거는 철학에서 그 구별을 버리고 객관화할
수 없는 것들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
리를 수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슈뢰딩거에게 문제는 각자 지
각하는 세계는 다수가 있는 반면에, 실제 세계는 하나처럼 보이는 것
이다. 이런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인도의 우파니샤드 사상을 인
용하여 정신의 다수성은 오직 현상일 뿐이며, 실재하는 정신은 오직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슈뢰딩거는 셰링턴을 인용하여 생명체
의 모든 세포는 각각 생명단위이지만 하나의 통일적인 생명을 이루고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의 세계상 속에는 오로지 인과적 연결만 존재
한다. 마치 물질과 에너지가 알갱이 구조를 가지고 있듯이 세포도 그
렇게 보인다. 그러나 신경계는 뇌 세포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
다. 다수의 정신들로 형성된 세계상 속에 ‘하나의 정신’이 설 자리
가 없다는 것은 과학이 발견한 이율배반이다. 슈뢰딩거 역시 ‘공간과
시간 속 어디에서도 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슈뢰딩거는 이런 이유
로 ‘신은 정신이다’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슈뢰딩거는 플라톤, 칸트, 쇼펜하우어,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인
용하여 자신을 변호한다. 플라톤은 최초로 무(無)시간적인 존재를 생
각했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실재는 모두 그것으로부
터 나온 그림자로 보았다. 그의 형상론은 파르메니데스의 영원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불변하는 하나(One)를 이데아(Idea)로 승화시킨 것
이다. 칸트는 우리의 지각은 시간과 공간에 의존하고 있지만, 우리
가 파악할 수 없는 하나(정신 혹은 세계)가 ‘공간과 시간과 관계가 없는
다른 형태들’로 나타나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
다. 객관적인 세계는 가설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신과 세계를 구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칸트 철학에서 공간-시간적인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읽어낸 사람은 쇼펜하우어였다. 경
험은 생명과 분리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몸의 소멸 후에는 아
무 것도 존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아무런 역
할을 하지 못하는 질서가 가능하다는 종교적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 잘못된 ‘종교적 의미의 믿음’을 무너뜨린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
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간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는 ‘먼
저와 나중’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반을 둔다. 두 번째는 원
인의 효과가 빛보다 빨리 전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
에 갇혀있다.

 

슈뢰딩거는 불츠만(Ludwig E. Boltzman, 1844-1906)이 열역학 제2법
칙에서 질서 있는 상태가 비가역적 시간의 방향에 의해 자발적으로
무질서 상태로 변해가는 경향성을 밝혀냈지만, 아주 작은 규모에서
는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역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
기에서 현 단계의 ‘물리학 이론은 시간에 의한 정신의 파괴 불가능성
을 강력하게 시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이 말에 의하면 슈뢰딩거는 개인의 정신의 불멸성을 믿는 것으로 해
석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설명은 하지 않고 ‘감각의 신비’로 넘어간
다. 슈뢰딩거에 의하면 지식의 획득은 전적으로 직접적인 감각 지각
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획득한 지식이 감각 지각과 외부
세계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색과 빛 파동, 소
리 파동을 예로 들어 과학자가 그 과정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색 감각이나 소리 감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완전한 측정 장치로도 감각을 대체할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관찰자의 감각은 정보를 지각할 수 있으나 자신의 감각은 읽어내지
못한다. 감각에 의한 관찰과 그로부터 나온 이론적인 상(像)이 감각을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관찰자의 정보로 획득된다. 이것이 슈뢰딩거
에게는 ‘감각의 신비’로 남는다. 결국 슈뢰딩거에게는 두 가지 역설이 발견되었다.

첫째는 그가 인식하는 감각이 물질세계에는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신과 물질이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염색체가 유전에서 결정적
인 역할을 하는 요소’라는 사실이 발견되고, 교육과 같은 후천적 요
소들을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을 비판했다. 그는 두 가지 사례를 들었
다. 첫째는 1828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현대 문명을 전혀 모르고 자
란 3-4세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16세 정도의 어린이가 발견되었
으나, 정규 교육을 받고 정상적 수준에 도달한 사실이다. 둘째는 당
시 오스트리아의 테즈메이니아 섬에서 석기시대 문명으로 살던 어린
이들이 영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상류층의 수준에까지 도달한 사실
이다. 이런 사례는 인간이 유인원 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슈뢰딩거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열렬한 다윈주의자가 되었
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때 진화론의 기반이 목적론이 아니
라 인과론이며, 물질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위반하는 다른 특
수한 법칙이나 현상이 발생하는 일은 없음을 알았다고 한다. 여기에
서 슈뢰딩거의 물리학자로서의 한계가 엿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신
의 양자이론’으로 ‘두 가지 역설’을 발견하고 ‘정신의 파괴 불가능성’을
믿는다고 주장했던 슈뢰딩거는 이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