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유사 창조론의 비판적 이해

『진화론과 창세기의 하모니』...과연 가능한 것인가? -알파 창조론적 관점에서(1)

heojohn 2020. 5. 9. 23:11

Chapter 1: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갈등에 대하여

 

1. 갈등의 역사적 배경

 

1859 영국 런던에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이 출판되자 당시 영국 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기독교 창조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기독교와 진화론자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촉발되었다. 1860년 당시 영국 기독교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던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 주교가 그의 관할구인 옥스포드에서 다윈의 불도그토마스 헉슬리(Thomas Huxely, 1825-1895) 사이에 유명한 옥스포드 논쟁을벌였다. 진화론에 대한 윌버포스의 반론은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면, 당신의 어느 쪽 조상이 원숭이냐?’고 묻는 정도였다. 이후 헉슬리의 반격에 잘 대응하지 못한 윌버포스는 논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윌버포스 주교의 말을 보면 다윈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윈은 그의 책에서 4가지 난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중간 종과 화석 중간 형태 본능 종간교배의 불임 현상이다. 현재에도 4가지 난점들은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다. 윌버포스는 그 부분을 반론했어야 했다. 다윈을 대신해서 논쟁에 나왔던 헉슬리는 상대의 무지 때문에 승리를 거저 얻었고, 영국 기독교는 이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침묵했다.

 

영국에서 기선을 잡은 다윈의 진화론은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에 의하여 곧 미국 교회로 건너갔다. 그레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해했다. 그레이는 자연선택을 하나님의 창조 방법으로 인정했다. 하나님이 진화론적인 방법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의 관점은 오늘날 유신진화론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청교도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강력한 반진화론 운동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선봉에 나선 것이 1863년 엘렌 G.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15)가 설립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는 열광적 종말론자들이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2. 창조과학의 등장

 

화이트의 창세기 설교에 감동한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George McGready Price, 1870-1963)는 진화론을 반격하기 위하여 신지질학(1923)을 썼고, 그것은 안식교회의 반진화론 교재가 되었다. 신지질학의 내용은 젊은 지구론과 전 지구의 지질층을 만들어낸 유일한 대격변이 노아 홍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지질학홍수지질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홍수 지질학은 주류 과학계의 거센 반격을 받았다. 논쟁이 계속되는 사이에 미국 남침례교를 배경으로 하는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와 존 휘트컴(John C. Whitcomb, 1924-2020)신지질학을 거의 그대로 재편집한 창세기 홍수(1961)를 출판했다. 모리스는 그의 책이 대성공을 거두자, 창세기 홍수를 연구하는 창조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지부로 설립된 것이 한국창조과학회다. 창세기 홍수를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자들이 개신교의 반진화론 운동에 앞장섰으나, 진화론 과학자들의 반격을 받아 사이비 과학자로 몰리게 되었다.

 

과학계에서 창조과학을 반격하는 주된 이슈는 BC. 4004년에 우주(지구)가 창조되었다는 젊은 우주론과 BC. 2304년경에 발생한 노아 홍수가 전지구의 지질을 형성했다는 홍수지질학적 단일격변설이다. 이에 반해 과학계는 진화론이 잘 확립된 과학적 설명이라고 선언했다.

 

3. 진화론은 과연 잘 확립된과학인가?

 

(1)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과학이 연구하는 방법이 정당하고 그 연구 결론이 사실이라면, 과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진화론이 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해 잘 확립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의를 제기할 부분이 많다. 먼저 현대진화종합설 그룹을 이끌었던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데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와 옥스퍼드 논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 1887-1975)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브잔스키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을 썼고, ‘생물학은 진화론의 빛 아래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생물학 지침을 제시했다. 그의 지침은 현재 대부분의 생물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줄리언 헉슬리는 진화, 현대적 종합(1942)을 출판했고, 1945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설립되면서 초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해서 세계의 교육과 과학, 그리고 문화를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물들게 했다.

 

과학적 연구 방법에 끼친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생물학에서는 이론적 갭(gap)에 대해서 엄밀한 사실 검증이 없어도 우연한 자연선택으로 진화되었다는 개념으로 설명하면, 통과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에서 발견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엄밀한 근거 없이 너도 나도 추론의 방법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에 과학은 창조론의 사실적 반증이나 추론은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런 과학적 방법으로 생산한 과학적 데이터가 진화론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과학계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적으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게 된 것이다. 진화론이 과학이라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적어도 물질에서 생명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한 이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진화론자들이 종의 진화를 추적하는데 이용하는 유전자 시계도 유전자 분석 프로그램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계되었거나, 입력된 데이터가 진화론적인 것이라면, 분석 결과를 출력한 데이터도 진화론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화론에 편향된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생산한 데이터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많을지라도, 그것들에 토대를 둔 진화론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나 사실로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 주관적 선입관의 함정에 대하여

 

주관적 선입관의 함정을 배제하는 일은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주관적 선입관은 누구나 가진 것이다. 누구나 선입관을 가지고 사물을 이해한다. 문제는 사실이 아닌 선입관이다. 과학은 물질적 실험 또는 자연현상으로 관찰되지 아니한 것은 사실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사실로 검증되지 아니한 주장이나 학설은 다만 연구와 실험을 위한 이론이나 가설로 취급한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은 진정한 과학적 방법에 의해 사실 검증을 필요로 하는 경쟁이론일 뿐이다. 그래서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은 아직 사이비 과학수준이다.Chapter 1: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갈등에 대하여

 

1. 갈등의 역사적 배경

 

1859 영국 런던에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이 출판되자 당시 영국 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기독교 창조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기독교와 진화론자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촉발되었다. 1860년 당시 영국 기독교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던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 주교가 그의 관할구인 옥스포드에서 다윈의 불도그토마스 헉슬리(Thomas Huxely, 1825-1895) 사이에 유명한 옥스포드 논쟁을벌였다. 진화론에 대한 윌버포스의 반론은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면, 당신의 어느 쪽 조상이 원숭이냐?’고 묻는 정도였다. 이후 헉슬리의 반격에 잘 대응하지 못한 윌버포스는 논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윌버포스 주교의 말을 보면 다윈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윈은 그의 책에서 4가지 난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중간 종과 화석 중간 형태 본능 종간교배의 불임 현상이다. 현재에도 4가지 난점들은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다. 윌버포스는 그 부분을 반론했어야 했다. 다윈을 대신해서 논쟁에 나왔던 헉슬리는 상대의 무지 때문에 승리를 거저 얻었고, 영국 기독교는 이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침묵했다.

 

영국에서 기선을 잡은 다윈의 진화론은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에 의하여 곧 미국 교회로 건너갔다. 그레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해했다. 그레이는 자연선택을 하나님의 창조 방법으로 인정했다. 하나님이 진화론적인 방법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의 관점은 오늘날 유신진화론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청교도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강력한 반진화론 운동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선봉에 나선 것이 1863년 엘렌 G.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15)가 설립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는 열광적 종말론자들이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2. 창조과학의 등장

 

화이트의 창세기 설교에 감동한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George McGready Price, 1870-1963)는 진화론을 반격하기 위하여 신지질학(1923)을 썼고, 그것은 안식교회의 반진화론 교재가 되었다. 신지질학의 내용은 젊은 지구론과 전 지구의 지질층을 만들어낸 유일한 대격변이 노아 홍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지질학홍수지질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홍수 지질학은 주류 과학계의 거센 반격을 받았다. 논쟁이 계속되는 사이에 미국 남침례교를 배경으로 하는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와 존 휘트컴(John C. Whitcomb, 1924-2020)신지질학을 거의 그대로 재편집한 창세기 홍수(1961)를 출판했다. 모리스는 그의 책이 대성공을 거두자, 창세기 홍수를 연구하는 창조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지부로 설립된 것이 한국창조과학회다. 창세기 홍수를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자들이 개신교의 반진화론 운동에 앞장섰으나, 진화론 과학자들의 반격을 받아 사이비 과학자로 몰리게 되었다.

 

과학계에서 창조과학을 반격하는 주된 이슈는 BC. 4004년에 우주(지구)가 창조되었다는 젊은 우주론과 BC. 2304년경에 발생한 노아 홍수가 전지구의 지질을 형성했다는 홍수지질학적 단일격변설이다. 이에 반해 과학계는 진화론이 잘 확립된 과학적 설명이라고 선언했다.

 

3. 진화론은 과연 잘 확립된과학인가?

 

(1)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과학이 연구하는 방법이 정당하고 그 연구 결론이 사실이라면, 과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진화론이 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해 잘 확립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의를 제기할 부분이 많다. 먼저 현대진화종합설 그룹을 이끌었던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데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와 옥스퍼드 논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 1887-1975)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브잔스키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을 썼고, ‘생물학은 진화론의 빛 아래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생물학 지침을 제시했다. 그의 지침은 현재 대부분의 생물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줄리언 헉슬리는 진화, 현대적 종합(1942)을 출판했고, 1945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설립되면서 초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해서 세계의 교육과 과학, 그리고 문화를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물들게 했다.

 

과학적 연구 방법에 끼친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생물학에서는 이론적 갭(gap)에 대해서 엄밀한 사실 검증이 없어도 우연한 자연선택으로 진화되었다는 개념으로 설명하면, 통과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에서 발견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엄밀한 근거 없이 너도 나도 추론의 방법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에 과학은 창조론의 사실적 반증이나 추론은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런 과학적 방법으로 생산한 과학적 데이터가 진화론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과학계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적으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게 된 것이다. 진화론이 과학이라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적어도 물질에서 생명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한 이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진화론자들이 종의 진화를 추적하는데 이용하는 유전자 시계도 유전자 분석 프로그램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계되었거나, 입력된 데이터가 진화론적인 것이라면, 분석 결과를 출력한 데이터도 진화론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화론에 편향된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생산한 데이터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많을지라도, 그것들에 토대를 둔 진화론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나 사실로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 주관적 선입관의 함정에 대하여

 

주관적 선입관의 함정을 배제하는 일은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주관적 선입관은 누구나 가진 것이다. 누구나 선입관을 가지고 사물을 이해한다. 문제는 사실이 아닌 선입관이다. 과학은 물질적 실험 또는 자연현상으로 관찰되지 아니한 것은 사실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사실로 검증되지 아니한 주장이나 학설은 다만 연구와 실험을 위한 이론이나 가설로 취급한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은 진정한 과학적 방법에 의해 사실 검증을 필요로 하는 경쟁이론일 뿐이다. 그래서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은 아직 사이비 과학수준이다.

 

*이 글에 대해서 토론할 문제를 제시합니다.

 

1. 진화론과 창조론은 어느 쪽도 아직 과학적 방법으로 잘 확립된 것이 아니므로 과학이 아니고 이론 수준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나가기 위해서 진화론은 검증되지 아니한 추론을 사실처럼 주장하지 말아야 하며, 창조론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근거로 창세기를 인용해서는 안 된다.

 

2. 역사적으로 양 진영의 경쟁에서 도전자는 진화론자이다. 진화론자들이 도전에서 승리하는 길은 생명을 인공적으로 발현시키는 실험에 완전하게 성공하는 것이다. 반면에 방어전에 임 하는 창조론자들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서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추론 부분을 공격해야 승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