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유사 창조론의 비판적 이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타협’했는가?

heojohn 2020. 4. 23. 00:53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대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렇다면 근본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의 문자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에는 그 책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면, 재앙을 더하거나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했다(22:18-19). 요한은 그의 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1:1). 그런데 처음에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리스어 요한계시록에는 하데스’(ᾍδης)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초기 영어성경에서는 ‘the hell’(KJV)로 번역했지만, 최근에는 ‘Hades’(ASV)로 번역했다. 한글성경은 초기에 나온 KJV를 따라서 음부로 번역했다(1:18).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범죄한 신이나 인간의 사후 거주지인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최고신의 이름이므로, 그대로 음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사망과 음부(‘하데스’)의 열쇠를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것으로 서술했다(1:18). 구약성경의 히브리 세계관에서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의 열쇠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의 기준에서 보면,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데스의 열쇠를 가진 것처럼 서술한 것은 그리스 신화와 타협했다고 비난하기에 딱 알맞은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홍수지질학의 원조 안식교인 프라이스에게서 자기들과 다른 관점의 창조론을 타협주의라고 비난하는 버릇까지 배웠고, 지금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요한이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설명한 것은 타협이론이지 성경에 없는 문자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억지 비난을 하기 위해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 말할 것인가?

 

요한의 서술은 죽은 자만을 다스리는 하데스보다 산 자의 죽음과 죽은 자의 세계까지 모두 모두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더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한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관을 전파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베드로 역시 하데스가 다스리는 타르타로스’(ταρταρωσας)를 언급했다. 베드로에 의하면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타르타로스에 가둬두고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벧후2:4). ‘타르타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타르타로스를 영어성경(KJV, ASV)‘hell’, 한글성경은 지옥으로 번역했다. ‘하데스와 같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르타로스라는 말은 성경의 세계관과 전혀 맞지 않늗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그리스 신화와 타협한 것인가? 베드로의 서술은 당시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관을 선교할 목적으로 그리스 신화를 배워서 쓴 것이다. 그와 같이 기독교 세계관을 선교하기 위하여 다른 세계관을 연구하는 것은 선교에도 필요한 것이고, 그만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요한과 베드로에게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과학적 무신론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인 과학을 아는 것이 기초이다. 기독교인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진화론이나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선교에 필요한 행위이지 과학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해석하려는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제 그만 종식되어야 한다. 더구나 번역성경을 읽으면서 문자적 해석에 집착하는 근본주의는 허망한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말한 재앙을 더하거나, 거룩한 성에 참예함에 제하는 심판을 피하는 방법은 있다. 통할지는 모르지만 원의(原意)를 알지 못하게 번역한 성경 때문에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추론과 상상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성경도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뇌인지과학센터장인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anur S. Ramachandran) 교수는 샌드라 블레이크스리(Sandra Blakeslee)와 공동으로 인간의 다양한 언어기능을 연구했다. 그들은 연구를 정리하여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 Phantoms in the Brain(1999)을 출판했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좌하두정소엽은 대뇌의 좌하에 있다. 인간의 좌하두정소엽은 유인원의 것과 비교해서 대개 6-7배의 크기로 발달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좌하두정소엽 부분이 덜 발달되었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뇌는 그 정도에 비례해서 언어기능이 떨어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문자나 언어를 그대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여 비유적이거나 다의적인 암호나 시적 문장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진화주의 뇌과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좌하두정소엽 부분이 덜 진화되었다는 측면에서 보기도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좌하두정소엽 병증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성경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해석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성경 안에 제한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서 자신의 결함을 깨닫고, 진실로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근본주의자들이 회개하는 데 필요한 질문 몇 가지를 던져놓는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던 아담이 원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솔로몬이 쓴 잠언서와 전도서와 다수의 시편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율법과 구약성경 지식에 통달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근본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부 들어 있다면, 근본주의자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의 기원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에서 진화론을 뒤집어 세우고,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과학적 유신론을 왜 먼저 발견하지 못하고 타협이론이라고 비난하는가? 그동안 기독교는 하나님을 성경의 문자에 제한함으로써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천도 제멋대로 했다. 그런 틈을 이용해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이 땅을 지배하게 되었고, 모든 생물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을 선포하면서 요구했던 회개는 하나님을 성경의 글자 안에 제한해 놓고, 하나님의 원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도 제대로 하지 않는 현대 근본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누구보다 근본주의자들인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가장 먼저 회개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