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양자물리학 알기(2): 양자이론과 코펜하겐 해석

heojohn 2020. 3. 14. 23:15

2. 양자이론의 발전(1926-1950)

1926년에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는 드 브로이의 이론에

자극을 받아 연구한 파동이론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의 파동방정식은

코펜하겐 보어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하게 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방정식과

경쟁하는 이론이 되었다. 슈뢰딩거의 주장은 입자처럼 보이는 전자는 실제로는
파동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고, 하이젠베르크는 그 반대였다. 이제 물
질의 실체는 젊은 양자물리학자들의 방정식들에 의하여 확률적인 파
동함수로 표현되어야 했다. 이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1926년에 막스 보른
(Max Born, 1882–1970)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썼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곧
이어 그의 동료에게 “한 손에는 파동을, 다른 손에는 양자를! 둘 다 모
두가 존재한다는 것은 바위처럼 확실합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역설적인 명제는 아인슈타인이 ‘숨은 변수’를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
다. ‘숨은 변수’는 아인슈타인이 남은 생애를 모두 바치고도 찾지 못
하고 숙제로 남았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숙제는 대통일이론으로 불
리는 것이나, 아직도 이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


<참조> 초기 양자물리학의 발전사 개요


1900 프랑크, 양자이론 제안
1905 아인슈타인, 광양자 가설 제안
1913 보어, 전자도약 모형 제안
1914-1918 세계 제1차대전
1925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요르단 행렬역학 탄생
1926 슈뢰딩거, 파동역학 제안
1927 하이젠베르크, 보어 불확정성원리 발표 코펜하겐해석 발표-코모회의 아인슈타인, 코펜하겐 해석 반대, 제5차 솔베이 회의 아인슈타인, "숨은변수"이론 주장
1928 폴 디랙 방정식 양전자(+)존재 예견
1930 제6차 솔베의 회의 아인슈타인과 보어 '빛 상자 사고실험' 논쟁
1932 칼 앤더슨, 양전자(+)발견, 채드윅 중성자 발견,
1935 아인슈타인, "EPR역설" 발표
1938 오토 한, 핵분열 발견
1948 파인만의 도형 발표(특히 입자의 쌍생성과 쌍소멸) 카시미르 효과 발견
1947 반도체 트란지스터 발명
1939(-1945) 세계 제2차 대전
한스 베테, 수소핵융합 발견

한편 하이젠베르크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두 가지를 동시에 정
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마침내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의 과학적 방법론에서 해답을 찾았다. ‘관
측되지 않는 것은 빼버리고 관측한 대로 기술하자.’ 이것이 그에게 유
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 원인을 “측정 행위의 과정에
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교란(攪亂, disturbance)” 때문이라고 파악했
다. 그는 그것을 불확정 관계로 보았다. 사실 하이젠베르크에게 파
동-입자의 이중성이 불확정 관계라고 알려준 사람은 그의 스승 보어
였다. 그런 보어조차 처음에는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사고실험에서 가상의 도구인
감마선 현미경의 오류를 지적했다. 보어에 의하면 파동과 입자는 동
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상호배타적이면서도 동시에 상호보완적이
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하이젠베르크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그를 구해준
사람은 파울리였다. 파울리는 위치와 운동량을 각각 따로 볼 수는 있
지만 동시에 볼 수는 없다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하여 1927년에 발표
된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theory)는 양자이론을 특징짓는 이론이
되었다. 보어도 수정된 이론에 동의했다. 이제 그들이 합의한 결론은
관찰이나 측정의 영역을 넘어서는 실재에 대해서 확률 이상의 추론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차라리 불확정성이라
는 말보다는 비결정성(indeterminate)이나, 또는 불가지성(unknowable)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이제 입자의 위치는 확
률적 분포로만 추측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측정기구의 불완
전성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입자-파동의 이중성 때문이
라고도 할 수 있다. 파동함수를 연구한 막스 보른은 파동은 결국 입
자가 어떤 장소에서 발견될 확률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이론
에 의하여 원자모델에서 전자의 회전궤도가 사라지면서 전자는 원자
내부에서 어느 곳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확률적 존재가 되었다. 슈뢰
딩거는 보른의 해석에 반대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었
다. 양자물리학에는 이제 확률에 대한 해석이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
었다. 폴 디랙(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1984)은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방정식들에 대한 변환이론(transformation theory)을 개발하
여 두 방정식은 결국 같은 해(解)를 얻는 것을 입증했다.

 

3.코펜하게 해석과 아인슈타인의 충돌

 

1927년 9월에 이탈리아 코모에서 열린 국제물리학회 총회에서 보
어는 하이젠베르크가 발표한 ‘불확정성원리’에 대하여 그의 의견을
발표했다. 보어의 주장에 의하면 전자는 관찰자에 따라서 입자로 보
이기도 하고 파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어의 말은 관찰한 대로 기술
한다는 뜻으로 들렸지만, 뒤집어보면 관찰이 불가능한 것은 실재하
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하이젠
베르크와 보어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실재의 개념- 관찰자
가 있거나 없거나 실재는 실재한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
다. 그러나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서 보어
의 의견에 대놓고 반대하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해석은 코
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코펜
하겐 해석의 주요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파동함수 ψ(그리스어, psi)는 계의 상태(the state of the system)를 기 술한다.

파동함수는 관측되기 전에 그 계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
을 포함한다. 그 이상의 ‘숨은 변수’(hidden parameters)는 없다. 파동함
수는 다른 계로부터 고립되는 동안에 매끄럽게 진화한다(evolves).
(2) 계의 상태는 배타원리의 적용을 받는다. 어떤 속성도 동시에 같
은 계에서 함께(jointly) 기술할 수 없다. 배타성은 하이젠베르크의 불
확정성 원리에 의하여 양적으로(quantitatively) 표현된다. 예를 들어 어
느 순간 한 입자가 어떤 분명한 위치를 가졌다면, 그 순간 그 입자의
운동량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3) 계는 관측하는 동안에 실험기구와 반드시 상호작용한다(must
interact). 계의 파동은 기구가 측정할 때, ‘기록한 대로의 관측 가능한
고유상태’(eigenstate of the observable that is registered)로 붕괴하거나, 또
는 비가역적으로 감소된다고 말해진다.
(4) 측정 기구에 의하여 제공된 결과는 반드시 고전적이고 일반적
인 언어로 기술되어야 한다. 이것은 특별히 보어에 의하여 강조되었
고, 하이젠베르크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5) 파동함수의 기술(記述)은 가능성(probabilistic)이다. 이것은 막스
보른의 원리라고부른다.
(6) 파동함수는 하나의 필요한, 그리고 기본적인 파동-입자 이중
성을 표현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언어로 실험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하나의 실험은 닐스 보어의 상보성의 원리에 따라 입자 같은(particle
like) 속성을 보일 수도 있고 또는 파동 같은(wave-like) 속성을 보일 수
도 있다.
(7) 원자와 아원자적 현상(process)의 내부 작용(inner workings)은 필
요한, 그리고 필수적인 직접적 관찰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
들을 관찰하는 행동이 그것들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8) 양자수(quantum numbers)가 많다면, 그것은 고전적으로 기술된
속성(properties)에 가깝게 대응하는 속성을 나타낸다.


고전물리학에서 실재의 원인과 결과는 물리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는 결정론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서 물질은 모두 파
동함수에 의하여 표현되는 확률적 존재일 뿐이다. 또한 불확정성 원
리에 따르면, 계의 상태는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적으로 측정되지 않
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인과성조차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
다면 계의 상태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사물을 어떻게 실재하는 것
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우리 눈에 보인다고 그것을 실재라고 확정할
수 있는가? 이렇게 되면 불확정성 원리는 우주만물의 실재에 대한 철
학적 질문으로 옮겨간다. 우주만물이 어떻게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
을까? 인간의 존재도 그와 다르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을 전해 들은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포함하는 양자이론은 물리학자가 아직 알지 못하는

‘숨은 변수’를 간과한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비판했다. 결정론적

고전물리학의 입장에서는 우연이나 확률과 같은 불확정성이 포함된 주장은

인간의 무지의 오류 때문이라고 본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물리학의 세
계에서는 입자의 이중성과 인간의 측정 행위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
하여 고전물리학의 결정론과 같은 결과를 결코 얻을 수 없다고 주장
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존재는 인과율(因果律)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로 예측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
성의 하나일 뿐이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그리고 측정기구의 불완
전성에서 파생하는 불확정성 원리는 이제 양자이론에서 빠질 수 없
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모든 자
연현상이 자연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고전물리학적 결정론(決定論)
을 파괴한다. 보어는 고전물리학적 상식에 벗어나는 이런 이론을 세
상이 납득할 수 있게 해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보어에게
는 양자이론이 불완전하다고 비판하는 아인슈타인을 이해시키는 일
이 커다란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