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양자물리학 알기(1): 초기 이론들

heojohn 2020. 3. 14. 22:44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되었던 과학적 유신론은 양자물리학의 발전
으로 과학적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물리학을 이
해하는 바탕 위에서 우주와 창조의 신, 그리고 그의 창조사건을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양자물리학의 발전 과정
에서 나타났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과 닐스 보어(Niles
Bohr, 1885-1962)의 실재(實在) 논쟁은 신의 존재를 탐구하는데 길잡이
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과학적 유신론은 엉터리
귀납법이나 왜곡된 이론 또는 변증법적 비약이 아닌 진정한 과학적 방
법으로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의
이해를 토대로 한다면 신학과 철학과 과학은 창조자 유일신(唯一神)에
대한 통섭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과학적 무신
론 자체는 이미 과학적 유신론에 의해 붕괴된 것이다.

1. 양자물리학 초기 이론들 (1900-1925)

1900년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철 용광로의 온도관리와

관련하여 흑체복사를 깊이 연구하던 중에 복사 에너지의 양(量)이 불연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모든 에너지의 양적 변화는

연속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던 기존의 고전물리학과는 모순된다. 플랑크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에너지 양자(量子: quantum) 가설’을 발표
했다. 플랑크가 처음 쓴 양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에너지는 ‘한 개,
두 개로 셀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에 의하여 열복사 에너지는
양자의 다발(quanta, 복수형) 형태로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
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은 플랑크에서 출발했다고 여겨진다.


이로부터 5년 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일정한 일함수(work
function)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빛이 금속 표면의 원자에 충돌하면 전
자를 방출시킨다는 ‘광양자 가설’을 제안했다. 이때 그는 광양자(light
quantum)라는 이름을 제안하여 ‘빛이 양자의 다발’이라고 설명했다.
‘광양자 가설’은 ‘광전효과’를 설명한 것이었다. 이 해에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는 등, 유명한 논문을 5개나 발표했다. 그 중에는

에너지와 물질이 서로 전환될 수 있는 관계라는 유명한 E=mc² 방정식,

즉 ‘질량 에너지 등가의 원리’도 들어 있다. 결국 에너지와 물질은 물과

얼음처럼 존재의 상태만 다를 뿐이라는 사실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양자물리학은 이렇게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에너지와 빛,

그리고 전자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양자적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1911년에 러더퍼드는 알파입자를 금 박막에 충돌시키는 실험으로
원자 내부에 양전하를 가진 물질이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
는 이것이 원자의 중심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원자핵이 양전하
를 띠고 있으므로 양성자(proton)라고 명명했다. 원자핵 주위를 전자
가 회전하고 있는 러더퍼드 원자모델은 태양계 모델이라고도 불렸
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델은 음극선 실험(1897)으로 전자를 발견했던
그의 스승 J.J. 톰슨의 건포도 원자 모델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러
더퍼드는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여 발견된 방사선에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1913년 닐스 보어는 처음에는 톰슨과 러더퍼드 밑에서 연구했
다. 그는 원자 안에 다수의 전자가 각각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인
다는 원자모델을 제안하고, 러더퍼드 원자모델을 수정했다. 보어는
262 그는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방사선은

나중에 원 자의 붕괴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알파 붕괴는 헬륨 원자핵

(2개의 양성자와 2개의 중성자)이 방출되는 것이고, 베티 붕괴는

양전자의 방출 현상이며, 감마 붕괴는 파장이 x-선 보다 강력한

고에너지를 방출하며 전하가 없다.

원자의 가장 바깥 궤도에서 움직이는 전자가 그 원자의 화학적 특성
을 결정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보어에 의하면 원자의 내부가 질서
정연하게 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하면 위
의 궤도로, 방출하면 아래의 궤도로 순간적으로 도약하면서 궤도 사
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렇게 전자가 상하 두 방향으로 궤
도 이전(transition)하는 현상은 전자 도약이라고 하며원자를 진동하
게 한다. 보어의 주장은 이듬해에 프랑크-헤르츠 실험(Franck-Hertz
experiment)으로 확인되었다.

 

1914년에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15년에
아인슈타인은 고전물리학의 마지막 이론인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함
으로써 우주론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졌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뉴턴
의 절대적 시공간 우주를 상대적 시공간 우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1917년에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1905년부터 시작한 광양자 문제를 더욱 가다듬어 원자들 사이의 에
너지 교환은 원자의 에너지 준위에 변화를 가져오며 전자도약과 연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빛은 다른 물체에 흡수되기도 하
고 방출되기도 하며, 다른 입자와 충돌하면 에너지와 운동량을 전달
하고 산란된다. 빛의 파동적 성질은 파장, 진폭, 진동수, 편광으로 나
타나며, 또한 회절과 간섭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원자에
서 광양자의 방출은 자발적 방출과 유도 방출뿐만이 아니라, 자극방
출 또한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63 광양자라는 이름은 이후 광
자(photon)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뮌헨대학교 교수인 아놀트 조머펠트(Arnold J. W. Sommerfeld, 1868
1951)는 수소 선 스펙트럼의 미세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조머펠트는 오비탈 양자수와 자기 양자수를 발표하면서 보어의 원
자모형에 나타난 원형 전자궤도가 사실은 타원형이라고 주장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되면서 조머펠트는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 1900-1958)를 제자로 맞이했다. 1919년에는 일식에 의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증명되었다. 1920년에 조머펠트가 스
핀 양자수를 제안함으로써 전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양자수(量子數:
quantum numbers) 이론이 완성되었다. 또한 이 해에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reg, 1901-1976)가 조머펠트의 제자가 되어 파울리를 만
났고, 보어는 베를린에서 아인슈타인을 방문하여 처음 만났다. 이어
서 아인슈타인이 코펜하겐에 가서 보어를 만났다. 보어는 1923년 양
자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모든 현
상을 다시 그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응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를 발표했다. 보어는 이어 전자의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상
보성의 원리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어의 초기 이론
과 주장은 뒤에 수정을 거치면서 의미가 바뀌게 된다.


1924년에 슈테른(Otto Stern, 1888-1969)과 게를라흐(Walter Gerlach,
1899-1979)는 은(silver)원자 빔을 사용해서 은 원자의 자기 모멘트와 스
핀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265 이 실험은 전
자 하나의 스핀과 각운동량(角運動量: angular momentum)을 측정할 수 있
는 방법이 되었다. 이 해에 보어는 크라머스Hendrik A. Kramers)와
슬레이터(John C. Slater)의 협력을 얻어 자신의 가상 진동자 개념을 바
탕으로 해서 아인슈타인의 광자의 유도 방출 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아인슈타인을 반박한 덕분에 유명해
져서 ‘BKS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보어는 원자의 복사와 그 안에서 일
어나는 전자의 도약이 에너지의 유출입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
하면서,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제안한 광양자 이론이 빛 현상에 대해
만족스런 해결로 간주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양자이론에 대한 논쟁은 처음에 이렇게 하여 시작
되었다. 그러나 이 논쟁은 간단히 끝났다. 1925년에 아서 콤프턴(Arthur
Holly Compton, 1892-1962)이 ‘X-선 산란효과’를 발견함으로써 보어
의 이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BKS 이론의 오류 원인은
광자(또는 전자)의 방출 파장은 입사파장과 같다는 톰슨의 산란(Thomson
scattering)이론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는 약간 차이가 난다).

결국 원자는 자발적이든지 유도되었든지 관계없이, 일정량 이상
의 에너지를 흡수(absorb)하면 안에 있던 들뜬 상태(excited state)의 전
자는 높은 궤도로 올라가고, 에너지를 방출(release)하게 되면 전자는
낮은 궤도로 내려가서 안정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완
전히 입증되었고, 이 현상은 통 털어서 ‘양자도약’이라고 불리게 된
다. 콤프턴의 실험은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빛과 전자의 입자-파동
의 이중성을 확인시켜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 1892-1987)는 그 사이에 입자-파동 이중
성이 빛과 전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에서 나타나는 현
상이라는 이론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모든 물질의 입자-파
동 이중성은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것이었다.
드 브로이의 박사학위 논문은 논란 끝에 아인슈타인의 동의로 겨우
통과되었다.


또한 1925년에 파울리는 입자는 같은 위치에 겹쳐서 존재할 수 없다
는 ‘배타원리’(排他 原理, exclusion principle)를 발표했다.267 같은 해에 울
렌벡George Eugene Uhlenbeck, 1900-1988)은 아직 밝혀지지 않
았던 ‘배타원리’의 이유를 연구했다. 그는 여기서 반대방향으로 자전
(自轉)하는 전자와 그에 따른 각운동량을 생각했다. 그의 아이디어를
들은 고우트스미트(Samuel Abraham Goudsmit, 1902-1978)는 곧 실험에
착수하여 전자의 자전에 따른 각운동량을 시계 방향 또는 반 시계 방
향으로 각 1/2라고 하면 모든 것이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에 의하여 원자 내부의 자기에 의한 전자스핀 개념이 처음 제안되었
다.268 또한 하이젠베르크는 파동의 행렬방정식(1925)을 발표했다. 모
든 물질이 파동과 입자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이론은 초기 양자
물리학계에 난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