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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창 막는 박테리아의 방패

heojohn 2020. 10. 20. 21:17

[강석기의 과학카페]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0.10.13. 14:00 댓글 0

 

박테리아 세포 표면에 박테리오파지가 부착해 있는 전자현미경 이미지다. 박테리아는 단단한 세포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파지가 통째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구멍을 뚫어 게놈만 투입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이틀마다 지구에 사는 박테리아의 절반이 박테리오파지에 의해 죽는다.
- 빈센트 피세티

“자, 여기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의 말

지난주 강원도 화천의 한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나흘만에 인근 농장에서도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해 가을 상륙해 농장 14곳에 퍼졌지만 다행히 수습됐는데 1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의 공격에 뚫린 것이다. 연초부터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와중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까지 말썽이니 설상가상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그런데 사람과 가축만 바이러스에 당하는 건 아니다. 박테리아(세균)나 아키아(고세균) 같은 단세포 원핵동물 역시 지난 수십 억 년 동안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에 언급한 미국 록펠러대의 박테리오파지학자 피세티의 언급에 따르면 박테리아의 반감기는 이틀이다. 다만 그 사이 박테리아가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에 수가 줄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이하 파지)는 박테리아나 아키아에만 감염하는 바이러스다.

박테리아 가운데 사람에 감염해 병을 일으키는 종류가 꽤 되지만 바이러스의 공격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동병상련의 존재들이다. 사실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 모두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테리아 면역계 응용한 기술로 올해 노벨상 받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절단 효소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많이 알려진 크리스퍼-카스9(Cas9‧왼쪽)은 이중가닥 DNA를 절단하는 반면, 크리스퍼-카스13(Cas13)은 단일가닥 RNA를 절단하는 등 종류에 따라 교정하고자 하는 표적이 다르다.

물론 세포 생물들이 바이러스의 침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만 봐도 선천면역계와 적응면역계라는 복잡한 방어체계를 지니고 있어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대부분 잘 막아내고 있다. 가끔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박테리아 역시 비록 단세포 생물이지만 나름대로 방어체계를 진화시켰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반감기가 이틀에 불과하지만 영양이 풍부할 때는 30분 만에 세포분열로 증식하는 박테리아의 시간 척도에서 볼 때 그래도 꽤 버티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박테리아 역시 사람의 선천면역계와 후천면역계에 해당하는 방어체계를 지니고 있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캐스9 기술이 바로 박테리아의 후천면역인 크리스퍼 시스템의 하나를 유전자 편집 수단으로 응용한 것이다. 박테리아가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기억하고 있다가 같은 바이러스에 다시 감염됐을 때 빠르게 게놈의 해당 부위를 절단하는 방어체계다.

 

한편 1978년 노벨생리의학상 업적인 제한효소는 박테리아의 선천면역계다. 제한효소는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 절단하는 효소로 게놈에 이 서열을 지닌 바이러스를 무찌를 수 있다. 제한효소 역시 유전자 재조합 수단으로 응용돼 바이오 시대의 문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바이러스(파지)도 박테리아의 대응에 맞서 제한효소나 크리스퍼를 무력화하는 수단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이런 수단들을 갖춘 파지도 공략하지 못하는 박테리아들이 많다. 아마도 이들 박테리아는 제한효소나 크리스퍼가 아닌 다른 방어체계를 진화시켰을 것이다. 박테리아는 하루에도 수십 세대가 생겨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난 2018년 이스라엘 바이스만과학연구소 소렉 박사팀은 박테리아와 아키아 4만5000여 종의 게놈을 분석해 새로운 파지 방어체계 9가지를 밝혀냈다. 이들은 찾아낸 후보 유전자 카세트를 이런 방어체계가 없는 박테리아에 넣어 평소 취약한 파지에 저항성을 보이는지 확인했다. 사이언스 제공

 

물론 파지 역시 이런 방어체계에 맞춰 진화한 종류가 존재할 것이다. 지난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파지와 박테리아는 각각 창과 방패를 개발하며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붉은 여왕을 따라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주변 풍경이 똑같은 자리에 있다는 대목에서 영감을 얻은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진화 법칙의 전형적인 예다.

이런 논리에 기반해 이스라엘 바이스만과학연구소 로템 소렉 박사팀은 박테리아가 파지에 맞서는 또 다른 방어체계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들은 게놈이 해독된 박테리아와 아키아 4만5000여 종을 분석해 제한효소와 크리스퍼 관련 유전자들 주변에서 새로운 방어체계 유전자 후보를 뒤졌다. 방어체계 유전자들은 게놈에서 서로 몰려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생물정보학 기법을 동원해 9가지나 되는 새로운 방어체계 후보를 찾아냈다. 그리고 각각의 방어체계를 이를 지니지 않는 박테리아에 넣어 평소 치명적인 파지에 대해 저항성이 생기는 걸 확인했다. 이 결과는 201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는데, 당시에는 개별 방어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 이스라엘 바이스만과학연구소 소렉 박사팀은 박테리아의 씨가스(cGAS) 단백질이 파지에 감염됐을 때 활성화돼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방어체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이처 제공

 

사람과 공유하는 방어체계 존재

학술지 ‘네이처’ 9월 2일자 온라인판에는 2018년 찾아낸 9가지 방어체계 가운데 하나인 토에리스의 작동 메커니즘을 명쾌히 규명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당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이 방어체계에 고대 이집트 신화의 수호여신 토에리스(Thoeris)의 이름을 붙였다.

놀랍게도 토에리스는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의 선천면역계인 씨가스-스팅(cGAS-STING) 경로의 원조인 것으로 밝혀졌다. 씨가스-스팅 경로는 불과 10여 년 전 발견돼 최근에야 메커니즘이 규명된 시스템으로 지금까지는 동물에서 진화한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이미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이게 진핵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넘어온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선천면역계의 하나인 씨가스-스팅 경로 역시 아직 독자들에게 소개된 적이 없는 것 같아 먼저 잠깐 언급한다. 사람은 진핵세포로 이뤄져 있고 따라서 게놈(DNA)은 핵 안에 들어있다. 따라서 세포질에 DNA가 존재한다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때 세포질의 DNA 존재를 감지한 씨가스(cGAS) 단백질이 구아노신삼인산(GTP)와 아데노신삼인산(ATP)로 고리형 디뉴클레오티드(CDN)인 cGAMP라는 분자를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cGAMP가 세포 소기관인 소포체로 이동해 막에 박혀 있는 스팅(STING) 단백질에 달라붙으면 스팅 단백질이 일렬로 배열해 신호를 보내고 그 결과 인터페론 같은 항바이러스 유전자가 발현하면서 염증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이 메커니즘이 밝혀진 게 불과 5년 전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 사이 박테리아에도 동물의 cGAS에 해당하는 단백질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된 바이스만과학연구소 소렉 박사팀의 논문에 따르면 박테리아의 씨가스 역시 파지가 침투했을 때 고리형 디뉴클레오티드(CDN)인 cGAMP를 만드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 파지에 감염된 박테리아의 인지질분해효소가 활성화돼 세포막이 부실해져 결국 터지며 죽게 된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내부의 파지가 더이상 퍼지지 않게 하는 자살 전략인 셈이다.

 

박테리아 방어체계 40여 가지나 되는 듯

최근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은 동물의 씨가스-스팅(cGAS-STING) 경로(위)와 기능이 같은 경로가 박테리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아래). 분자 진화 분석 결과 박테리아의 씨가스-스팅이 원조인 것으로 드러났다. 네이처 제공

 

미국 하버드의대 미생물학과 필립 크랜주흐 교수팀은 박테리아의 씨가스 시스템 가운데 일부가 2018년 발견된 박테리아의 토에리스와 연결돼 동물의 씨가스-스팅 경로와 같은 방어체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이번에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X선 결정학으로 토에리스의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한 결과 일부분이 동물의 스팅 단백질과 꽤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1차 구조)만 봤을 때는 차이가 커 같은 종류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다만 박테리아의 스팅 단백질에는 사람의 스팅 단백질에는 없는 TIR 영역이 포함돼 있다. 추가 실험 결과 박테리아의 씨가스-스팅 경로에서 TIR 영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러스가 침투해 씨가스가 고리형 디뉴클레오티드(CDN)를 만들면 이게 스팅 단백질에 달라붙어 스팅 단백질이 일렬로 배열한다. 여기까지는 사람의 씨가스-스팅 경로와 같다.

 

배열된 스팅 단백질은 사람에서는 인터페론을 활성화해 염증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반면 박테리아에서는 TIR 영역이 활성화돼 NAD+라는 생체분자를 분해한다. NAD+는 박테리아 대사에 꼭 필요한 분자이기 때문에 이게 분해돼 고갈되면 박테리아의 성장이 멈추고 결국 죽는다. 그 결과 감염한 파지는 더이상 증식하지 못한다.

이번 연구결과는 박테리아에서 새로운 방어체계를 찾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와 동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둔 집단 사이에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공통의 전략이 존재하고 그 원조는 박테리아라는 사실을 밝혔다는데 의미가 크다.

한편 ‘사이언스’ 8월 28일자에는 미국 MIT 브로드연구소의 펭 장 교수팀이 유전자은행에 등록된 모든 박테리아와 아키아 게놈을 뒤져 새로운 바이러스 방어체계 29가지를 찾아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앞으로 각각의 방어체계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또 어떤 놀라운 사실이 드러날지 기대된다. 이렇게 밝혀진 새로운 박테리아 방어체계를 응용한 기술이 나와 다시 한번 노벨상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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