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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논쟁에 대한 신학적, 과학적 고찰

heojohn 2020. 3. 30. 08:30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타난 진화론 비판을 중심으로

 

 

I. 서론

II. <종의 기원>

III. <종의 기원>에 의해 촉발된 과학과 신학의 논쟁

1. 옥스포드 논쟁

2. 자연발생설과 파스퇴르에 의한 실험

3. 진화론의 문제점

(1) “진화의 용어

(2) 본능과 암수의 생식기능

IV. 결론

 

Debates on the Origin of Life in Theology and Science

-Critique on Darwinism

 

 

From a theological perspective, Darwin's theory of evolution is the doctrine of the idols which opposes to Christianity most heavily. Darwin's evolutionism is only a theory explained in the way of inductive reasoning from his records of observation. But he skewed at the data, and his theory is very subjective. He built his hypothesis based on the limited observation records and ignored the contrary evidences. In other words, he tries to explain several phenomena in one theory. He applies the theory of evolution to any case. That is, the evolutionism is an omni-potent theory which can explain every mutation occurring at random in the nature without purpose or direction. Evolutionary theory can not be called empiricist science which has a strict system and rules. The vitality of Darwin's theory of evolution has been maintained by his friends' enthusiastic supports to defend him, theologians' ignorance and deliberate aversion, the oppression to its critics in the scientific community and social changes. Darwin's theory of evolution has been changed by too many "mutations" and "natural selection." The original theory is completely gone away now, and there remains only the fossilized theory. Of course, from the standpoint of modern theology, what we need to resist is modern evolutionism. However, if one does not know the historical "original type", he or she never know the identity of the modern evolutionism as "varieties", which has undergone "natural selection" and "mutation." Therefore, this paper is my first attempt to verify and then analyze the "original type" of the evolution theory.

 

I. 서론

 

필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 및 이를 주제로 하여 역사적으로 과학과 신학이 벌여온 논쟁을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대립되는 양측의 주장을 놓고 서로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분명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그와 인간, 그리고 우주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이 이와 반대되는 견해를 주장하는 일부 과학이론에 대해서는 그 시비를 검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신학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죄악에 빠진 만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과학자도 구원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의 오류를 그대로 방치하는 신학이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신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신학의 입장에서 과학을 이해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를 외면하여 지나쳐버리고 만다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신학은 결코 이룰 수 없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최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할 것이다. 현대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업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고 있다. 과학의 끝이 어디가 될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나타난 문제는 과학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신학이 과학으로부터 멸시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근대 과학의 초기 단계는 성경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던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므로 과학은 신학의 테두리에서 자라나서 독립해나간 학문의 한 분야이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일부 과학은 신학을 왜곡된 논리로 정죄하고, 큰 소리로 심판하는 형편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신학은 오불관언(吾不關焉)하고 있으나, 현대에 이르러 신학의 실상은 과학의 파고(波高)에 밀려 난파선에 타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는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이 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고대에서는 신학이 과학을 함께 배웠으나, 언제부터인가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학에서 독립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립하는 적이 되었다.

 

그러나 과학은 고도의 과학문명 시대를 만들어낸 업적을 바탕으로 현대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과학은 가시적인 자연현상만을 다루는 것이다. 과학은 공통적으로 지각되고 경험될 수 있는 것만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공식적 이론을 만드는 것이 과학이 할 일이다. 신학에서 독립한 과학이 자연을 바탕으로 연구하면서 점차 자연주의 철학 또는 무신론에 오염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신학이 과학을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과학에서의 진화론이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그동안 과학을 외면한 신학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신학자의 게으름의 핑계일 것이며, 무지를 덮는 교언(巧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신학은 과학의 괴물인 진화론과 맞서 그 정체를 밝히거나, 아니면 밟혀죽거나, 양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과학이 인간들을 미혹하여 신학의 대상인 하나님을 대적케 하는 횡포가 극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특히 젊은이들을 무신론으로 유혹하는 현상이 너무 만연하여 미래에는 교회가 유지될 수 없으리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과학이 신학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신학자가 과학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과정에서는 커다란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쪽에서는 다음 시대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신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논쟁을 촉발한 계기를 만든 것이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그러나 과학과 신학의 논쟁은 중세기 말에 코페르니쿠스(Nichola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성경해석에서 천동설을 믿고 있던 신학계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장이었다. 그런데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발명한 망원경을 스스로 더욱 개량해서 태양과 다른 별들을 더욱 상세히 관찰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과학적 진리임을 확인했다. 갈릴레이는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지동설 지지 입장을 발표했으나, 로마교황청에 소환되어 화형을 선고할지도 모를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는 위압적인 종교재판을 받고나서 그의 주장을 철회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당시 교황은 우르바노 8(Pope Urbanus VIII, 1568-1644, 재위 1568-1644)였는데, 그와 갈릴레이는 고향에서 친구로 지내던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재판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갈릴레이는 그의 생전에 다시는 공개적으로 지동설을 지지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신학이 힘으로 과학이 증명하는 진리를 깔아뭉갠 대표적 사례였다. 여기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조차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판했다고 한다. 신학의 이런 잘못은 여호수아 10:13절의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 구절은 아모리 사람들과 전쟁을 하던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까지 태양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신학의 잘못은 굳이 이 구절 때문이 아니라, 당시까지 정설로 알고 있던 천동설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신학의 무지와 폭압이 이제는 거꾸로 과학이 신학을 경멸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과학지식의 발전에 신학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현대에서 과학과 신학의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 의하여 시작된 진화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가 동식물 관찰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생물은 하나님이 각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진리를 의심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다윈의 주장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었던 당시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호응을 불러왔다. 이른바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열렬한 추종자들에 의해 점점 덧입혀지고 굳어져서 사실처럼 바꿀 수 없는 진리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진화론은 이제 과학계의 진리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는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과학의 방법적 교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그가 관찰 경험을 잘못 해석한 가설에 기반하여 성립되었고, 왜곡된 논리로 반론을 봉쇄하는 구조로 전개되어 있다는 주장은 과학계의 일각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계의 변할 수 없는 정설이 되어버린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 논문은 이제 과학계의 교리가 되어버린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시비를 신학적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이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 분야에는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문외한인 신학자의 입장에 있으므로 이들과 이것들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전문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제한된 지면으로 간략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지론은 과학에서의 진리는 신학에서도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신학이 먼저 과학을 선교의 대상으로서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그러한 입장에서 진행하는 필자의 첫 번째 시도이다.

 

사실 진화론이 이토록 과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까지 대세를 확보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신학자의 외면 또는 무관심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신학자가 과학이론서들을 모두 다 읽고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신학자는 신학적 관점에서 신학에 반대되는 과학이론에 대해서만 사실을 검증하고 비판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의 과학지식은 발전하는 과학적 정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원론적 수준으로도 족하다고 본다. 이 논문의 방향과 수준도 그렇다. 그렇다고 잘못이 있어도 방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의 기회를 통해서 보완하기로 하겠다. 그래서 과학에 오류가 있다면 과학에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고, 신학에 오류를 발견하다면 신학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논문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중심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론의 진위성 및 그로 인한 논쟁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1. 개관

 

1809년에 태어난 다윈은 1825년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웠다. 그는 이것이 성격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전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재학 시절에 박물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졸업하자 사사했던 교수의 추천을 받아 마침 영국 해군의 측량선 비글호에서 박물학자로서 승선하는 기회를 잡았다. 1831년부터 약 5년 동안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탐사하는 긴 항해 중에 그는 각 지역의 동식물이나 지질 등을 널리 조사하여 진화론을 수립하는 데 기초가 되는 방대한 자료를 모았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관찰, 즉 환경이 다른 섬에서 생활하는 같은 계통의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변이에 대한 관찰은,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론을 세우게 하는 기초 자료가 되었다. 1839년 그는 여행 중의 관찰기록을 이용하여 <비글호 항해기> (Journal of the Voyage of the Beagle)를 출판하고 여기에서 그의 진화론의 초안을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이후 다윈은 진화와 자연선택에 관한 그의 관찰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논문으로 작성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친구들과 그의 진화론에 관한 토론을 계속했다. 그런데 말레이 제도에 있던 영국 박물학자 월리스(Alfred R. Wallace, 1823-1913)185871일 런던의 린네학회에서 변종이 원종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져가는 경향에 관하여: 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ly from the Original Type”라는 논문을 발표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윈과 같은 견해의 논문이었다. 다윈은 자신이 30년 가까이 계속 연구해온 업적을 월리스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라이엘 경(Charles Lyell, 1797-1875)이나 후커(Josep Dalton Hooker, 1817-1911)박사 등 친구 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린네 학회에서 종이 변종을 형성하는 경향에 관하여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변종과 종의 영속화에 관하여”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라는 짧은 논문을 월리스와 함께 발표하게 되었다. 다윈은 다음 해인 1859년에 런던에서종의 기원이라는 이름의 책을 서둘러 출판하였다. 이 책은 그의 진화론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다. 그의 진화론은 생존경쟁에 의한 자연선택설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서 생물의 어떤 종()의 개체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에, 그 생물의 거주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자연선택을 받아서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도태되어버린다는 이론이다. 발매 당일에 매진될 정도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종의 기원>의 초판은 후에 6판까지 출판되었다.

 

2. <종의 기원>에 대한 논평

 

우리에게 진화론의 고전으로 잘 알려진 <종의 기원>이라는 책명은 원래 1859년에 발간했던 초판에서는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라는 긴 이름이었는데, 1862년의 6판부터 이것을 줄여서 쓴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초판 표제가 의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의 보존에 관하여설명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 논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의 판본은 다윈이 1858년 린네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지 100년 후인 1958년에 신판으로 발간된 소위 멘터 판(Mentor Edition)의 역본이다. 이 멘터 판에는 열렬한 진화론자이며, 다윈의 나이 어린 친구였던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의 손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 “범세계적인 고전이며, “위대한 책이라고 찬양하는 서문이 실려 있다. 다윈의 진화론을 담고 있는 <종의 기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소주제별로 나누어 논평할 수 있다.

 

서론부

 

다윈은 이 책의 서론부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 “역사적 개관서론이다. 역사적 개관에는 이 책 초판 간행 이전의 종의 기원에 관한 학설 발달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역사적 개관은 부제가 암시하고 있듯이 종의 기원에 관련한 당시까지의 학술적 발전상황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그는 라마르크(Lamarck, chevalier de, 1744-1829)의 변이의 방법론에 대해, “그는 어느 정도는 물리적 생활 환경의 직접 작용에, 또 어느 정도는 이미 존재하는 형태간의 교배에, 그리고 대부분은 사용(使用)과 불사용(不使用), 즉 습관의 결과에 귀착시켰다고 소개한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원칙은 1813년에 웰스(W. C. Wells)박사가 왕립 학회(Royal Society)에 최초로 보고했다고 썼다.

 

그는 서론에서 대요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요점을 제시한다. 그는 그의 이론을 간략하게 언급한 후 월리스 또한 자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서둘러 이 대요를 간행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발표하는 이 대요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몇몇 기술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이나 근거를 여기에 제시할 수 없었다고도 말한다. 이어서 그는 스스로 공정한 결과는, 문제에 대한 양면의 사실과 의의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것을 균형 잡히게 함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의 학문적 연구 태도를 진술하는 이런 말에서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은, 다윈의 진화론은 종의 기원에서 서둘러 발표된 그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윈의 이러한 학문적 행태는 그 뒤에 행해진 그의 연구 및 다윈주의자들의 연구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변종의 기원을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종의 기원을 논함에 있어 박물학자가 생물 상호간의 유연관계, 그 발생학적 관계, 그들의 지리적 분포, 지질학적 계승 및 그 밖의 이와 같은 사실들을 고찰하여, 종이란 것은 개별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변종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응당 생각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는 이런 주장을 뒤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무릇 이러한 모든 점에 있어서 큰 속의 종은 변종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이러한 유사성을, 만약 종이 이전에 변종으로 있었고 또 거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가 있지만, 만약 종이 개별적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다윈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자연선택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바이다.” 서문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 말에서 보면, 다윈 자신은 그의 이론을 자연에서 일어나는 부분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추종하는 다윈주의자들을 보면, 온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법칙으로 진화론을 믿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다윈은 그들에게 교주이고 그의 진화론은 교리이기 때문이다.

 

변이

 

다윈은 그의 진화론의 바탕이 되는 생물의 변이에 관한 이론을 1장 재배〮 〮〮사육하에서 생기는 변이2장 자연하에서 생기는 변이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같은 것은 것은 같은 것을 낳는다는 유전의 원칙을 알고 있지만, “이 원칙에 의심을 품은 자는 오직 이론적인 저자뿐이다고 말한다. 신학교육을 받았던 그는 창세기에서 야곱이 얼룩무늬 양과 염소를 길러낸 사실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어떤 목적을 가진 사육가들의 인공적인 선택의 노력이 누적되면 새로운 품종으로 변이한다는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종의 변이에는 자연선택이 작용한다. 자연적인 변이는 사소한 개체적 차이가 누적적으로 유전하면서 나타난다. 유전하지 않는 것은 진화에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종은 이렇게 특징이 확고해진 변종에 불과하다. 다윈은 변이는 자연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가 변이를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생각했다는 반증이다. 결국 다윈에게는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종들은 변종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종으로 분류되는 변종의 기준은, “첫째로는 중간 연쇄 형태의 발견에 의해서, 둘째로는 이 양자 사이에 있는 일정하지 않은 차이량에 의하는 이외에는 종과 구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윈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재배 사육하의 많은 종들이 인간의 선택적 교배를 통해 변이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연에서 과거에 있었던 불확실한 변이와 미래에 예상할 수 있는 변이도 자연적인 사실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생존경쟁에 의한 자연선택

 

다윈은 자연선택을 생존경쟁의 결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3장 생존경쟁 4장 자연선택 또는 최적자 생존에서 아무리 경미한 변이라도, 또 어떤 원인에서 생기는 변이라도, 그러한 변이가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그 한 개체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그 개체를 보존하도록 작용할 것이고, 그러한 변이는 또 어떤 종에게서든지 일반적으로 자손에게 전해져 내려갈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그 자손도 마찬가지로 생존의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이든 주기적으로 다수의 자손이 태어나지만, 생존경쟁의 과정에서 그 가운데 소수만이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리 경미한 변이라도 유용한 점이 있으면 보존되는 이 원리를, 인간의 선택능력과 구별하기 위해 나는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로 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이러한 보존의 원칙 또는 최적자 생존의 원칙을 나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다윈에 의하면, 자연선택의 특징은 재배 사육하에서의 육종개량을 위한 인위적인 선택과는 달리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변이가 어떤 생물의 목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직 무목적적인 자연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변이의 법칙과 이 이론의 4가지 난점

 

다윈은 자연선택의 앞뒤에서 일어나는 변이의 법칙을 5에서 보충적으로 설명하고, 이어서 6에서 이 이론이 성립하기 쉽지 않은 난점을 진술한다. 그는 변이의 법칙에 관한 우리의 무지는 극히 큰 것이다. 백 가운데 하나의 경우라도, 우리들은 왜 A 또는 B의 부분이 변이하였는가 하는 이유를 감히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변이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거의 같은 체질을 유전받아서 비슷한 환경에 놓여진 종은 자연히 비슷한 변이를 일으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나, 혹은 또 이들 같은 종들은 옛날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형질들 중 어떤 것으로 때때로 귀선(歸先)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고도 한다. 이렇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변이의 발생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그의 자연선택 이론에는 여러 학자들의 반박에 대답하기 어려운 네 가지 난점이 있다고 한다. 다윈이 스스로 제시하고 있는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만약 종이란 것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에 의해 다른 종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우리는 도처에서 무수한 과도적 형태를 볼 수 없는 것일까?”

둘째로, 예를 들어 박쥐와 같은 구조와 습관을 가진 동물이 그와 전혀 다른 구조와 습관을 가진 다른 어떤 동물의 변화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연선택이 한편으로는 파리를 쫓는 데 쓰이는 기린의 꼬리와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관을 만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눈과 같이 훌륭한 기관을 만들 수가 있다고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셋째로 본능은 자연선택에 의해 획득되고 또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 벌들로 하여금 집을 짓게 하여, 훌륭한 수학자의 발견을 실제로 가져오게 하는 본능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넷째로, 종이 교배되면 불임이 되고 또 불임의 자손을 낳는데, 변종이 교배되면 그의 다산성이 손상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첫째 질문, 다시 말해서 우리는 종들 사이의 중간 형태를 띠는 생물이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문에 대한 다윈의 답변은, 생존경쟁에 패배한 중간 변종이 멸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각 지방에 무수한 과도적인 변종들이 틀림없이 존재하였고, 또 거기에 화석 상태로 매몰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거기서 그들 변종을 찾아볼 수가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증거를 기대하지 말라는 선언이다.

 

두 번째의 자연선택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발달되고 있는 기관들의 변이가 입증되지 않고 있다는 의문에 대해서는, 날다람쥐와 날치를 예로 들어 날지 못했던 조상들로부터 어떻게 진화해 나올 수 있는지를 상상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극히 완전하고도 복잡한척추동물의 눈은 하나의 시신경으로 구성된 무척추동물의 눈에서 진화해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외에도 다수의 동물들의 예를 들어 각 기관들의 진화과정을 설명한다. 그런데 다윈은 여기서 현대 진화론에서 논란이 되거나 부정되고 있는 몇 가지 자연선택의 명제를 예견하고 있다. “무수한 계속적인 변이에 의해서는 아마도 형성될 수가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나의 이론은 완전히 전복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경우를 결코 발견해 낼 수 없다.”자연선택은 단지 경미한 계속적인 변이를 이용하여 작용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자연은 결코 급격한 큰 도약을 하지 않고, 느리긴 하지만 짧고 확실한 단계에 의하여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자연선택은 어떤 생물에게 유익하다기보다는 더 유해한 어떤 구조를 그 생물에 결코 산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선택이 오로지 각자의 이익에 의해서, 또 그 이익을 위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윈은 계속되는 7에서 자연선택설에 관한 몇몇 학자들의 다른 견해를 인용하면서 위의 두 가지 답변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돌발적인 변이에 대해, 그의 이론으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과학의 영역을 떠나 기적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윈은 오직 자기의 주장에 대한 인정을 요구할 뿐이며, 반대 의견에 대한 인정을 거부한다. 다윈은 이렇게 변이와 두 가지 중간 형태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질문의 답변은 장을 달리하여 설명하겠다고 뒤로 넘긴다.

 

본능

 

세 번째 질문인 본능에 대해서는 8에서 다룬다. 다윈은 다른 새둥지에 알을 낳는 뻐꾹새와 노예를 만드는 개미와 벌집을 짓는 일벌을 비롯한 여러 생물들의 예를 들어 본능에 대해 이해하라고 한다. 또 어떤 개미 종은 다른 종들보다 노예들에 더 의존한다는 사실과 말벌의 애벌레는 본능적으로 다른 종의 생체를 식량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또한 벌들이 밀랍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자연 선택적 압력으로 인해 육각형으로 벌집을 짓는 습성이 본능으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노예들에게 식량공급을 의존하고 있는 개미종(Formica rufescens)에게서 노예개미를 제거했더니 아무런 먹이활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굶어죽는 사례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윈은 본능에 대해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윈은 본능이 습성의 변화를 축적함으로써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다윈에게 본능은 자연선택의 결과이긴 하나,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것이다. 다윈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 본능을 설명하는 그의 진화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뻐꾸기의 새끼가 그것의 젖형제를 둥지에서 쫓아내거나 --- 개미가 노예를

만든다든가 --- 말벌과의 애벌레가 쐐기벌레의 몸에서 자기 자신의 몸을 기르고 있는

것과 같은 본능을, 특별히 주어지거나 창조된 본능이 아니라 모든 생물을 진보로 이끄는

---즉 증식하고, 변이하고, 강자를 생존시키고, ()자를 사멸시키는 하나의 일반적

법칙의 작은 결과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인 영역은 아닐는지 몰라도 나의 사상으로는 훨씬

크게 만족을 주는 것이다.

 

다윈은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생존경쟁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인 본능에 대해서는 그의 진화론의 영역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잡종현상

 

네 번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9장 잡종현상에서 진술되고 있다. 생물학에서 어떤 생물은 다른 종과 교잡하여 잡종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잡종은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불입성이다. 그러나 다윈에 의하면, “최초의 교잡과 그 잡종의 자손의 불입성은 자연선택에 의해 획득된 것이 아니다.” 오래 계속된 사육은 불임성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사실은 종이 원래 변종으로서 존재하였다는 다윈의 소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다윈은 잡종의 형성 여부와 잡종의 번식 가능 여부는 종에 따라 다양하며, 특히 식물에서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생각되었던 두 종이 번식 가능한 잡종을 만들 때도 있는 반면에, 같은 종의 두 변종이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다. 다윈은 최초의 교잡과 잡종의 불임성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동식물이 자연 상태에서 옮겨지면 불임이 되는 경우처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장에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들은 종이란 원래 변종으로서 존재했다고 하는 소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는 나에겐 생각되지 않는다고 그의 네 번째 답변을 맺는다. 모든 변이를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했던 다윈이, 교배에서 나온 잡종의 불임이라는 변이를 과학적인 이론이 아닌 소신으로서 설명한다면, 그의 자연선택 이론은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윈이 답변하는 말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진화론은 체계를 갖춘 학문적 이론이 못 된다는 견해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진화론은 다만 그의 소신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석

 

과거의 생물들에 대한 지질학적 기록들인 화석에 대해서는 10장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에 관하여 11장 생물체의 지질학적 계승에 관하여에서 진술하고 있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점진적인 변이는 무수히 많은 중간 변종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를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화석에서 증거를 찾아보았으나, 화석은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 아니라, 돌변한 형태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는 이미 일부 고생물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어느 한 지층에도 수많은 중간 변종이 존재하지 않는 것근연종(近緣種)의 전군(全群)이 돌연히 출현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이론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하위 지층에서 종의 전군이 일시에 출현한다면, 그것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이론에 치명적인 것이 될 것이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긴 변명을 늘어놓은 다음에,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경의 권위에 의지하여 지질학적 기록을 불완전하게 보존된, 그리고 변화하는 방언으로 씌어진 세계의 역사로 간주한다는 말로 그의 진화이론을 방어한다. 그러나 다윈은 앞으로 새로운 발견들이 지속됨에 따라 중간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다윈은 초기의 생물들은 단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양한 형태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슷한 종들이 공존하다가 어떤 종은 멸종하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따라서 근래에 멸종된 종들은 더 일찍 멸종한 종들에 비해 현존하는 종들에 더 가까운 것이 된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다윈의 주장은 점진적 진화론(gradualism)에 근거하고 있다. 다윈은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하다는 그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으면, 그의 이론도 배척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곤란을 통과하고 나면 고생물학상의 그 밖의 주요한 사실은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변화를 수반하는 계통의 이론과 훌륭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지리적 분포

 

다윈이 1213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변이에는 환경적 차이가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데, 다른 대륙지역 또는 격리된 섬에서도 동일종이 분포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설명하려는 것이다. 한 대륙의 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종들은 다른 대륙보다 그 대륙의 다른 지역들의 종들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전제된다. 항해 중에 이러한 예들을 직접 관찰하였던 다윈은 한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대양의 섬에 이주한 종들은 시간에 따라 변이되지만, 여전히 대륙의 종들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윈은 이주에 있어서의 장애물이 다른 지역들의 종들로 하여금 차이를 띠게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생물과 생물의 상호 경쟁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윈은 이주와 변이를 수반한 유전의 결합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이주지역에서 벌어진 생존경쟁의 패배자는 멸절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역에 따른 동물 및 식물군의 분포를 단순히 지리적 환경의 차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윈은 스스로 왜 대양의 섬에는 서식자가 드물고, 그런가하면 이런 곳의 생물의 대부분은 지방적이거나 특수한 형태인가?” 등의 사실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리고 다윈은 이주하는 방법에 관련해서 생물의 어느 군은 그의 종이 모두 특수하게 되고, 다른 군은 동일한 강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의 모든 종은 세계의 인접한 지역의 생물과 같게 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알 수 있다고 하는 기준으로서는 이러한 동일한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먼저 무엇이 동일한 원칙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이제까지의 다윈의 주장이 점진적인 변이의 축적과 생존경쟁에 의한 자연선택이라는 점에서 동일원칙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다윈이 하나의 현상만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동일과정에서 상이한 변이를 일으키는 현상까지 포괄하려는 꼼수와 같은 용어이다. 다윈을 보면, 그의 진화론을 이런 논리적 방법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방대한 관찰 자료를 열거한 뒤에는 주관적인 견해를 들어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귀납적 논증의 방법이기는 하나, 다윈은 너무나 많은 예외가 있는 경우에도, 또는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이를 무시하고 추상적인 가설을 사실로 주장한다. 이러한 습성은 후에 나오는 진화론자들의 특성이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이런 습성이 축적되어 다윈주의자들의 본능이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종들의 분류

 

14에서는 생물의 다양한 차이를 단계별로 구별하고 있는 생물들의 계통적 분류방법을 다룬다. 다윈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 있는 종에 대해서는 모든 박물학자들이 그의 분류에 사실상 계통을 이용하고 있다.” 여기서 분류는 공통 조상을 가진 공동자손들을 계통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다윈은 생물 상호간의 유연, 형태학, 발생학, 흔적기관 등에서 아무리 사소한 차이라도 그것은 정확한 분류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종의 분류에 있어서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상동(相同)기관과 후천적으로 획득한 상사(相似)기관의 판별도 중요한 요소이다. 다윈에 의하면, 분류는 자연적 배열의 원칙에 의해 계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진화론적 계통에 불연속성이 있으면, 그것은 멸종에 의하거나 화석 기록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다윈은 변종, , , , , 및 강으로 그의 자연분류법에서의 단계를 표시한다. 이에 따라 현존 생물을 계통적으로 분류하면, 최근의 조상부터 최초의 조상까지 연결된다. 다윈은 분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본 장에서 고찰한 여러 가지 사실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무수한 종, 속 및

과가 각각 그것의 강 또는 군 안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생겨나와 그 계승의 경과 도중에

변화되었다는 것을 참으로 명백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내게는 생각되기 때문에, 나는 비록

그것이 다른 사실이나 증거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저 없이 이 견해를 채용

하는 바이다.

 

이러한 다윈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모든 생물은 하나의 공통 조상을 가진 것이 된다. 그에게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필요 없다. 그의 진화론에서는 추상적 이론으로 사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증거는 필요 없고 추론만으로도 충분하다. 편견적인 주장을 고집하는 다윈의 이러한 태도가 오늘날 다윈주의자들에게도 학문적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총괄적 결론

 

여기까지 책을 마무리한 다윈은 15에서 이제까지 제시한 그의 이론(理論)들과 그에 대한 이론(異論)들을 요약한다. 여기서 그는 이론(異論)에 대해 이들 여러 가지의 반대되는 견해는 중대하기는 하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결코 변화를 수반하는 계통의 이론을 전복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고 선언한다. 매우 도전적이고 비학술적인 언사이다. 그리고 또 2차적 법칙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용어는 그의 자연선택설을 중심으로 하는 생물의 변이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은 당연히 2차적 법칙보다 먼저 언급해야 할 1차적 법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이 용어를 유보해둔 이유를 그의 진술의 맥락에서 찾아보면, 그가 캄브리아기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상정(想定)하는 하나 또는 몇 개의 원종을 산출한 특수한 창조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기 위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추론이 중요한 것은 왜 다윈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그 뒤에 나타난 종의 기원에 대해서만 논의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진화론은 오직 2차적 법칙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원종에 변이가 일어나서 변종이 되었고, 원종은 멸절되었다. 이후의 모든 생물은 변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윈이 말하는 종은 어떤 변종의 조상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그의 진화론은 그 종의 계통 안에서 공동자손들이 변이를 축적하여 새로운 종으로 진화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윈은 원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최초의 원시생물의 의미를 가진 원종에 대해서 다윈의 생각은 극히 단편적으로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윈은 나는 자연선택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유일무이한 변화의 수단은 아니었다고 말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가진 생각은 단순하다. “나는 동물이 기껏해야 넷이나 다섯의 조상으로부터, 그리고 식물은 그것과 같거나 더 적은 수의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윈의 진화론에는 하나님이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윈은 이런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종은 2차적 법칙에 기인한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이 조물주에 의해 사물 위에 새겨진 법칙을 언급한 구절과 연결해보면, 그가 기원의 문제를 생각하지 아니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윈이 1차적 법칙으로서 조물주의 법칙, 그리고 제2차적 법칙으로서 진화의 법칙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다윈은 캄브리아기 이전에 어떤 소수의 생물(원종)이 존재했었고, 그로부터 변이가 일어나서 변종이 되었다는 인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에 대해 연구했던 다윈이 생명의 기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식 이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아니한 점은 의외라고 여겨진다. 다윈에게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그것들의 직계자손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생물과 코끼리와 원숭이와 인간은 공동자손이다. 다윈은 그의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조물주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하고 있다.

 

생명이 그것의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최초에 조물주에 의해 소수의 또는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는, 그리고 이 지구가 불변의 동력법칙에 따라 계속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그렇게 단순한 발단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놀라운 무한한 형태가

발생되었고, 또 진화되고 있다는 견해에는 장엄함이 있는 것이다.

 

 

III. <종의 기원>에 의해 촉발된 과학과 신학의 논쟁

 

다윈은 <종의 기원>서론에서 개체 간의 생존경쟁이론은 맬서스(Thomas R. Malthus, 1766-1834)<인구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하며,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로부터 점진적으로 동일한 과정을 거쳐 퇴적하는 지층형성의 이론, 동일과정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필자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다윈의 진화론은 라마르크가 제안한 후천적 경험에 의한 변이가 다음 대에 유전한다고 하는 획득형질유전론또는 용불용설자연선택이란 용어로 바꾼 것일 뿐이며, 최초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느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이미 제안한 이론에 그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첨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곧 과학과 신학의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옥스포드 논쟁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자 이론의 진위를 막론하고, 진화론은 당시의 과학 및 신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당시 절대적으로 신의 창조를 믿고 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의 동요를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영국 국교의 옥스퍼드 주교 새무얼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1860630일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옥스퍼드대회에서 다윈의 친구 헉슬리를 상대로 진화론에 관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창조론자 편에서 윌버포스가 다윈의 친구이며 진화론자인 토마스 헉슬리를 주로 공격했다. 윌버포스가 장황한 연설 끝에 헉슬리에게 그의 조상이 원숭이냐고 물었다. 이에 듣고 있던 헉슬리는, “저에게 주어진 질문이 제 할아버지가 미천한 원숭이이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천부의 재능을 부여받고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지만 이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영향력을 중대한 과학 토론이 웃음거리가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이기를 원하느냐 라는 것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원숭이가 내 할아버지이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유명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논제의 검증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 말싸움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나타내준다. 이 논쟁에서 윌버포스는 헉슬리에게 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제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도 전에 신학자는 과학자로부터 무례와 무지를 공격당하고 완패한 것이다.

 

당시 검증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했던 다윈의 진화론은 헉슬리 교수와 라이엘 경, 그리고 후커 박사 등, 당시 쟁쟁했던 그의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공고한 이론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헉슬리는 매우 명망 있는 왕립협회 회원으로서 논쟁에 아주 뛰어났으며, 지질학회와 인류학회 등에서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그의 신학적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서 불가지론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헉슬리는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대안은 무엇이냐? 라는 말로 역습하면서 불독이 물어뜯는 것처럼 공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고 불렸다. 다윈에게는 또 하나의 유명한 지지자가 있는데, 바로 독일 불독이라고 불리는 헤켈(Ernst H. Haeckel, 1834-1919)이다. 한편 다윈과 함께 항해하면서 그를 도왔던 비글호 선장은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였고, 스스로 사악한 짓을 했다는 이유로 자살했다고 한다.

 

2. 자연발생설과 파스퇴르에 의한 실험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발생설에 속하는 것이다. 자연발생설은 고대 자연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유래된 오랜 사상의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승 플라톤(Platon, BC. 427-347)과는 달리 그는 영혼을 믿지 않았으며, 4원소설, 곧 우주는 흙과 불과 물과 공기로 구성되었다는 설을 주장하여 자연주의 사고의 기초를 놓았다. 물론 창조자라는 신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지구위에서 최초의 생명은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났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오직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만이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주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St. Tommaso d'Aquino, 1224-1274)에 의하여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위대한 신학자 아퀴나스는 그의 자연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보이도록 창조하셨다는 논리로 덮어두고, 그의 철학적 방법론만 채택했다. 이렇게 서양의 중세기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자연발생설은 겨우 명맥을 보존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는 증거도 미약했다.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겨난다는 사실 정도가 유력한 증거가 되는 정도였다. 이러한 자연발생설에 대해 과학자로서는 벨기에의 의학자 반 헬몬트(Van Helmont, 1577-1644)가 밀이나 치즈를 더러운 아마포로 덮어두면 생쥐가 태어난다고 주장했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에서 제기된 다윈의 진화론은 이런 자연주의 사상의 작은 텃밭에서 자라난 것이다.

 

1861년 이러한 자연발생설은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7)에 의해 완전히 부정되었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인 그는 S목 플라스크를 만들어 공기는 통하되 박테리아는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플라스크에 영양액을 넣고 열을 가한 후 내버려두었다. 그 결과 S목 플라스크 안에는 어떤 미생물도 자라지 않았다. 이 영양액은 그 후 1백여 년이 넘도록 썩지 않았다고 한다. 파스퇴르의 증명에 의하여 생물은 생물에서 생겨난다는 속생물설이 확립되었다. 과학자들은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자연발생설이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윈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따라서 다윈의 진화론도 급속도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난파한 다윈의 진화론을 살리기 위해 다윈주의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냈다. 진화론이 완전히 부정되면 과학자로서의 그들의 생명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어서는 안 되는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지구에서의 원시생명은 태초에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날아왔다는 우주기원설 등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지구 생명의 우주기원설은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우주에서 출생한 그 생명이 기원은 어떻게 된 것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설은 최초 원시생명의 출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론에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부정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헉슬리와 같은 방법으로 불가지론에다 미루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지식에서 보면, 원시생명이 긴 우주여행을 거쳐 지구로 날아오는 동안 우주방사선이나 극한의 저온에, 그리고 지구대기에 진입해서는 초고온의 마찰열을 견디고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쉽게 부정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다루는 이 논문에서는 이 한 가지 예를 들어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3 진화론의 문제점

 

(1) “진화의 용어

 

종의 기원에 나타난 다윈의 논리는 방대한 관찰 자료를 귀납적 방법으로 이론화한 가설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너무나 많은 예외와 불규칙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다윈은 변이의 메커니즘(Mechanism)을 추상적인 이론으로서만 설명하고, 변이의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 단계에 대한 사실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은 치명적인 결점이다. 다윈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현재의 생물은 과거에 수많은 중간 단계를 거쳐 진화해온 변종이다. 그것은 과거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입증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다윈의 고백처럼 중간 단계를 인정할 화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간 단계는 생물의 완전한 형태에서는 물론이고, 신체기관의 부분적인 화석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시대에서도, 현재까지도 중간단계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윈은 중간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로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윈 이후 그의 추종자들도 이러한 중간 화석에 목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사건과 같이 화석을 조작하는 일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현대 진화론자들과 지질학자들은 이제 중간 단계의 화석이 발견될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다. 그래서 굴드(Stephen J. Gould, 1941-2002) 등의 현대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점진적 변이론을 포기하고, 새로운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돌연변이(Mutation), 돌발적 변이(Jerky Evolution), 또는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hypothesis) 등을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점진적 변이는 다윈의 진화론에 있어서 핵심이다. 이 이론을 포기하면 다윈의 진화론의 생명은 죽고 껍데기만 남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여기서 파생한 다른 진화론도 근거를 잃는 것이 되므로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 또는 수정하기 위해 나온 어떤 진화론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은 만물은 변한다는 철학적인 주장인 것이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제까지 생물학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종 안에서의 변이(소진화)는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 공인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종으로의 변이(대진화)에 대해서는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윈주의자들은 그들이 제시한 가설에서 이론상의 허점 또는 증거부족이 드러나면,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도 진화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과학계에서 검증을 생략하는 수단으로 이 철학적 용어를 계속 확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사실과 그 정도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항상 이로운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인간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이론이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진화론이 진보의 법칙으로 무한대의 영역에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진화라는 말로 변화 또는 발전 과정의 설명을 얼버무리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현상이 바로 이러한 영향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진화론에 기댈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는 다윈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런 사상체계를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로 역()과 음양오행(陰陽五行)사상이 바로 그것인데, 체계적인 면에서는 진화론보다 훨씬 우수하다. 과학과 철학에서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

 

(2) 본능과 암수의 생식기능

 

생물의 진화는 본능이나 감정 뜨는 욕망 등을 포함하는가? 이런 것들은 생물의 기관들의 작용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또 진화는 이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가? 또 생물은 자신의 욕망 등의 선택에 의해서 자기의 신체기관에 변이를 초래할 수 있는가? 진화와 관련하여 이런 질문들이 당연히 제기되고 답변되어야 한다. 다윈은 이런 질문을 다루지 않았지만, 진화론의 진위성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다윈은 생물의 물질적 구조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린다. 생물은 형질(形質)을 가지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의 형()에 대해서만 불확실한 가설을 제기할 뿐이고, ()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본능이나 감정 등의 방법으로 생물의 신체기관에 어떤 변이를 초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본능에 대해서는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그가 생물의 변이를 설명하는 것은 반쪽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면, 본능이 아닌 것이다. 다윈은 그의 진화론 설명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철저히 피해 가고 있다. 다윈에 의하면, 극심한 생존 경쟁하에서는 유리한 방향으로 그 구조, 체질 및 습성에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최적자 생존의 조건이다. 이렇게 무한한 변화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어려운 일이다.

 

또한 생물은 번식을 위해서 생식기관이 조화되는 암수의 쌍이 있어야 한다. 다윈에게 자연선택과 변이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개체적인 것이다. 다윈이 애당초 논외로 하는 원종의 출현 단계에서 암수가 어떻게 동시 발생했느냐는 문제는 제쳐두기로 하자. 그렇더라도 그 뒤에 변이가 일어날 때마다 암수의 생식기가 조화롭게 작동되자면, 지근거리에 있는 암수에게 동시적인 변이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근거리에 있는 소수의 암수의 쌍에서 생식기관이 동시적으로 변이를 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모든 생물의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매번 우연하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 만약에 변이의 발생에 있어서 장소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간격이 발생한다면, 그런 생물은 자손을 번식할 수 없으므로 멸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많은 생물의 종들이 어떻게 번성하고 있는가? 다윈의 진화론으로서는 이런 질문조차 답변할 수 없다. 그의 진화론은 그가 고백했듯이 관찰한 자료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가설을 세운 것에 불과한 것이다.

 

 

IV. 결론

 

이제 결론에 이르러서 다시 살펴보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 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는 생명의 기원 문제를 그의 연구 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는 그가 다루지 못했던 생명의 기원 문제를 1차적 법칙에 미루어 놓았다. 그러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다윈이 신의 존재를 정식으로 부인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회의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이제까지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다윈은 공개적으로는 그의 명석한 친구 헉슬리의 불가지론과 견해를 같이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의 근거로 그의 진화론을 이용했다. 생명의 기원이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자연발생설 가운데 하나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자연발생설은 다윈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도 파스퇴르의 실험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열성적인 지지자들에 의해 과학계에서는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진화론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이후 60여년이 지난 1922년에 구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에 의해서였다. 오파린은 그 해 모스크바 식물학회에서 처음으로 화학진화에 의한 생명의 기원 가설을 발표했다. 그의 가설은 후에 <생명의 기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또 하나의 유명한 진화론의 고전이 되었다. 자연발생설 가운데 다윈에 의해 시작된 진화론은 오파린에 의해 가장 강력한 무신론적 자연주의 이론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논문에서 다룰 사항이 아니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겠다.

 

한편, 종이 변이에 의해 분화(分化)되었다는 다윈의 주장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분자생물학자들의 공로로 게놈(Genom) 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 유전자의 특성이 거의 밝혀지고 있다. 유전공학이 밝혀낸 생물의 유전자 정보는 생물의 탄생에서부터 생존활동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많이 해소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다윈의 2차적 법칙도 철저한 검증이 가능해졌다. 현대의학에서는 수술 또는 유전자 조작 등의 방법으로 신체구조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인공적인 변이와 자연에서의 돌연변이가 정상적으로 유전되는 사례는 관찰기록이나 논문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분자생물학자들은 변이를 연구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남은 의문에 대해서는 유전공학의 발전을 좀 더 기다려 보아야 그 결과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가 진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했지만, 하나의 이론으로서 완성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현대에 이르러서 학문적으로는 거의 부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그의 진화론은 공산주의 유물론과 결합하여 인간사회의 진보이론의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바로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젊은 세대가 진화론의 마력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진 자들에게는 못할 일이 없지 아니한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돈을 많이 가진 자들에게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생물적 쾌락이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돈이 하나님이 된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등생물은 물론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조차 목적과 방향도 없이 살아가는 변종일 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논문에서 신학이 과학을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학의 입장에서 유물론 과학주의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논쟁하지 않으면, 신학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적인 과학주의, 또는 다른 주술적 이론에 훨씬 끌리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과 과학의 논쟁을 연구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 되었고, 필자는 이 논문이 그런 일에 하나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허정윤

Jung Yoon HUH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역사신학)

Graduate School of Theology, Pyeongtaek University

EMail: djtelco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