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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운 거머리·구더기, 알고보니 ‘수술 명의’

heojohn 2022. 11. 5. 23:25

입력 2016.10.25 10:33

피부이식수술, 괴사 피부 제거 등에 활용

첨단의료 시대에 기술의 발달로 각종 수술 및 시술 기구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옛것임에도 효능을 인정받으며 당당히 의료기구로 사용되는 것이 있다. 바로 거머리와 구더기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거머리와 구더기를 ‘의료용 기구’로 인정하고 있으며, 독일의 한 대학에는 ‘거머리 학과’가 개설될 정도다. 도대체 거머리와 구더기는 어떻게 우리 질병을 치료하는 것일까?

 

거머리

거머리
피부이식수술 시 혈액 응고 방지 위해 사용

거머리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 기록은 기원전 1500년 이집트 벽화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거머리가 인체의 피를 뽑아냄으로써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거머리는 동양에서도 사용됐다. 양(梁)나라의 학자 도홍경의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거머리에 대해 ‘악혈(惡血)과 어혈(瘀血)을 몰아내고 여성에게 있어 무월경을 치료한다’, ‘어혈에 의해 만들어진 배 안의 적취(積聚)와 덩어리를 없애는 작용을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거머리는 과거 국내 의료계에서도 사용됐다. 1613년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종기가 생긴 뒤 점점 커지면 물로써 피부의 상처를 씻고 큰 붓 대롱을 한 개 취하여 제일 높은 곳에 세운다. 이후 큰 거머리 한 마리를 대롱 속에 넣은 뒤에 자주 냉수를 떨어뜨려 넣어주면 거머리가 그 정혈의 피고름을 빨아먹어 가죽이 줄어드는데, 이렇게 하면 독이 흩어지고 반드시 낫는다”는 구절을 통해 거머리의 의료적 사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거머리를 손가락이나 발가락 절단 환자의 접합수술, 말초혈관이 막혀 조직이 썩어 들어가는 버거씨병 환자의 치료, 새로운 피부 조직을 이식하는 재건수술 등을 할 때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다. 주로 성형외과나 정형외과, 한방 쪽에서 사용한다. 대한생물요법학회 한동하 회장(한동하한의원 원장)은 “특히 피부이식수술이나 신체부위접합수술을 한 뒤에는 접합 부위가 기존 신체와 결합하게 하기 위해 혈액이 굳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때 이식 부위에 거머리를 올려놓으면, 굶주린 거머리는 10cc 정도의 피를 빤다”고 말했다.

그런데 거머리의 침샘에 들어 있는 생리활성화 물질이 항응고 작용을 하기 때문에 거머리를 떼어낸 뒤에도 최대 10시간까지 출혈이 발생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혈관이 형성되고, 모세혈관까지 충분히 피가 흐르게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거머리의 생리활성물질은 소염진통 작용을 하기 때문에 화농성 여드름의 염증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한동하 회장은 “거머리는 한 번 사용하면 감염성 의료 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바로 폐기한다”며 “개인이 판매하거나 들에서 잡은 거머리는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료용 거머리를 사용하는 곳에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거머리요법을 시행하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와파린 등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사람, 혈우병 환자, 월경 중인 여성은 과다출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삼간다. 또한 켈로이드 환자는 거머리가 문 상처 탓에 가렵고 부풀어오르는 상처가 생길 수 있으므로 거머리요법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구더기

구더기
괴사한 피부 제거할 때 사용

모든 구더기가 의료용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구더기 중에서도 검정파리종인 구금파리의 유충을 의료용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상처 부위에 풀어놓으면 소화효소를 주변으로 분비해 괴사 조직을 액화시킨 후 먹어치운다. 이 과정에서 소화효소에 들어 있는 알란토인, 중탄산암모늄 등 각종 성장인자가 새살을 돋게 하고 항균 기능도 하는 것이다.

구더기가 상처 치료에 사용된 역사는 200여 년 전으로 흘러간다. 당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야전 기록에는 구더기의 상처치유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나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전쟁 중 부상당한 병사들의 상처 치료에 구더기가 사용됐다.

거머리는 1940년대 현대식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항균 능력에서 항생제의 효능이 구더기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항생제 내성 문제 탓에 의료용 구더기 사용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구더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임상시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구더기는 특히 당뇨병 등으로 다리가 썩어 절단해야 하는 환자의 치료에 큰 희망이 되고 있다. 한동하 원장은 “구더기요법은 대부분 괴사한 피부에 파리 유충을 넣고 가제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며 “이 과정에서 구더기가 다리의 썩은 부분을 먹어 제거하고, 유충의 침에 포함된 물질이 상처 부위의 미생물을 죽여 상처 부위가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상 환자의 경우에도 반복적으로 죽은 피부가 생성되기 때문에 거머리요법을 이용하면 죽은 피부를 제거하고 새로운 피부가 돋아나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주로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한방에서 사용한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난치성 궤양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환자에게 구더기를 이용해 치료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 회복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 연구에서는 당뇨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것밖에 치료법이 없는 60대 여성의 경우 구더기요법을 실시한 결과, 1주일 만에 상처 궤양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3개월 후에는 완치돼 퇴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유전자 조작이 이뤄진 구더기가 죽은 살을 먹고 세균을 죽일 뿐 아니라 체내에서 세포가 성장하고 상처 회복을 돕는 인체성장인자라는 호르몬 생성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지난 3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과 뉴질랜드 마세이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을 한 구금파리 유충이 인체 성장인자의 생성과 분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구더기요법은 당뇨병성 발 궤양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유전자 조작된 구더기가 상처를 깨끗하게 없앨 뿐 아니라 상처의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한동하 원장은 “다만, 구더기요법은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입원 치료 중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