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창조냐, 진화냐?

heojohn 2017. 11. 6. 05:22

 

 

I. 들어가면서

 

인간이 성장하면서 품게 되는 가장 큰 의문은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며, 또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인들과 창조론자들은 신의 창조에 의해서라고 대답한다. 이와 반대로 진화론자들은 인간은 하등 동물에서 진화했으며, 최초의 생명은 물질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 1942- )은 최근에 우주는 무(: nothing)에서 자발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M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M이론이 우주의 존재에 가장 필요한 법칙으로 알려진 초대칭 중력이론이며, 아인슈타인이 발견하기를 원했던 통일이론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결국 우주와 생명체의 기원에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거나, 아니면 자연적으로 발생되었다라는 두 가지 믿음을 각자 선택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말하자면 신의 창조를 믿는 입장과 진화론을 믿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신의 존재와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론은 각 민족의 고대신화에서부터 오늘날 각 종교의 교리에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은 신의 존재와 창조에 의문을 가지고 물활론적 자연발생설을 주장했던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진화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고대 자연발생설을 좀 더 다듬고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창조냐, 진화냐? 문제는 이 두 가지 믿음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관이 정반대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결국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 사이에는 인간적 또는 사회적 윤리를 공유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창조론자의 윤리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영원한 존재에 기반을 두는 것이지만, 진화론자의 윤리는 피조물로서 일시적 존재인 인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인간사회에서 이 윤리관의 차이는 엄청난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창조론을 신앙의 토대로 삼고 있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무신론에 바탕을 둔 진화론자의 잘못된 세계관을 교정하는 것은 물론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창조론자가 진화론자와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승자의 깃발을 세우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으로 무신론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존해야 할 궁극적인 규준은 항상 경험과 관찰에서 나온다는 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먼저 창조론에 대해서 기존의 틀을 되풀이하지 않고 좀 더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논의할 것이며, 진화론에 대해서는 4단계의 발전과정에 따라 차례로 논의하겠다.

 

 

. 창조론

 

1. 핵심 주제와 문제점

 

창조론을 종교적으로 가장 잘 기술한 것은 기독교의 창세기로 알려져 있고, 창조론은 기독교에서 신앙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우주와 생명체를 그의 뜻대로 창조하셨다는 창조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것이 핵심이다. 역사적 사건은 육하원칙(六何原則)에 따라 기술한 것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성경에는 창조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주장이 엇갈리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기독교 창조론이 너무 광범위하게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의 범주는 창조사건에 대한 논의에 국한해야 한다. 다른 주제를 논의하면서 창조론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창조론은 창조사건에 관련된 것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진화론자들과의 논쟁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창조사건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창조하신 것으로 끝났다. 기독교 창조론은 여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 이후부터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속하는 일이다. 창조론이 핵심적인 주제에 집중하면 진화론을 극복하는 연구에도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도 쓸데없는 논쟁을 종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아의 홍수 등은 창조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21세기 과학주의 시대의 기독교에는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과 현대인이 납득할 수 있는 창조론을 구성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자료에 대해서는 창조론에 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을 반박하려고 시도(試圖)하면서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한 홍수 지질학등을 창조론에 인용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이를 끌어들여 과학에 맞선 결과는 과학계와 일반인들로부터 냉소와 불신을 초래하였고,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이 기독교의 터전인 교회를 등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2. 창조자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이해

 

현대과학이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연은 라틴어 Natura에 어원을 둔 것으로 이 말에는 사물의 본성(本性)’을 뜻하는 의미도 들어있다. 이 말의 그리스어 동의어는 오늘날 물리학을 뜻하는 Physis이며, ‘태어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면 과학은 처음부터 만물의 태어남본성을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은 자연철학에서 독립하여 경험적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우주 만물의 태어남과 본성을 탐구하면서 발전하였다. 과학은 실험이나 관찰을 위해 망원경과 현미경 등 광학기구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학이 우주 자연에서 만물을 관찰한 결과는 보이지 않는것들이 보이는것들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최첨단 관측기구를 사용해도 보이지 않는것들이 여전히 더 많았다. 그동안 과학이 발견한 우주의 구성과 운행의 법칙을 모의실험(simulation)해보니, ‘보이지 않는암흑에너지 약 72%와 암흑물질 약 23%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자연에서 보이는물질들은 약 5%에 불과하다. 과학은 보이는’ 5%에 대해서도 아직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과학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자연은 보이는물질만으로 구성되었으며 보이지 않는물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과학의 연구 대상을 축소시켰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과학적 정의를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창조론은 진화론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점은 분명하다. 창조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진화론은 이제까지 창조주의 존재와 창조사건을 부정하기 위하여 갖가지 자연발생설을 주장해왔으나 아직까지 실험이나 관찰에 성공한 사실이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입증된 과학이론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진화론의 실체는 고대 자연발생론에 여러 가지 과학적 이론을 첨가해서 만든 가설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 창조론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셨으며, 태초부터 현재까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존재로 살아계신다고 기록한 성경과 그가 창조한 자연에서 보고, 깨달은 것을 진술하고 있다. 이제는 양자물리학이 발전하면서 고전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진화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현대 양자물리학은 자연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재(實在)를 확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호킹과 같은 진화론자는 양자역학을 무신론에 인용하고 있지만, 그는 무()에서 자연법칙이 생겨날 수 있다는 허황된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호킹의 주장은 뒤에서 반론할 것이다). 어쨌든 양자역학의 등장은 진화론자에게도 창조론자에게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이런 현실에서 진화론을 반박하고 현대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보다 과학적으로 창조론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3. 창세기: 창조사건의 기록

 

창세기는 창조사건이 6일간에 이루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의 일부 창조론자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를 기준으로 창조 연대를 계산하여 최소 6천년설과 최대 15천년설 등의 젊은 우주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계의 주류 우주론은 약 140억 년의 우주 연대와 약 45억년의 지구 연대 등의 오랜 우주론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기독교 일부에서 노아 홍수설젊은 우주론으로 오랜 우주론을 반박하면서 과학계와 충돌하는 것이다. 사실 젊은 우주론은 성경에서도 별로 타당성 있는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6일 창조 사건을 보면, 첫째 날에는 빛을, 둘째 날에는 궁창과 물을, 셋째 날에는 땅과 바다와 식물을, 3일 동안에 나누어 창조하셨고, 태양과 별 등의 광명체는 제4일째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제5일째에는 어류와 조류를, 6일째에는 육지동물과 인간을 마지막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하루 시간 계산법을 태양이 없었던 앞의 3일과 있었던 뒤의 3일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앞의 3일간은 인간으로서는 추정이나 계산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보아야 한다. 창조 6일의 앞 뒤 3일에 근본적으로 이런 차이가 있음을 창세기 저자 모세가 몰랐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에 맞춰서 창조 6일을 전부 같은 이라는 말로 기술한 것은 안식일 계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안식일 계명의 근거를 하나님 자신이 6일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쉬었다는 창조 이벤트(event)에 두고 있음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20:11). 모세가 이렇게 7일 주기 안식일 모형을 창조 이벤트와 연결시킨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따랐다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가장 타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창세기의 부분적 문자 해석에 집착하지 않고 아담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폭넓게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하나님과는 다른 의도로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과 동등하게 보고 있는 젊은우주론의 시간 계산법은 인간적 오류가 아니면 오만으로 보일 뿐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적 데이터(data)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독교 일부에서 성경의 몇 글자를 추출하여 오랜 우주론의 과학적 데이터를 반박하고 있는 것은 천동설과 같이 무지한 주장을 되풀이 하는 실수일 뿐이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에서 지질학과 화석의 문제를 인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지구론이 다윈의 진화론에 중요한 근거가 된 것은 아니다. 다윈 진화론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은 과연 자연선택에 의하여 종을 뛰어넘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느냐는 생물학적 문제이다.

 

4. 화석: 생명의 창조 기록

 

창조를 인간의 문자로 기록한 창세기 외에도 자연에는 생물이 삶의 증거를 남긴 기록이 있다. 지층에 묻힌 화석이 바로 그것이다. 고생물학에서 연구되는 화석의 문제에 창조론이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동안 발견된 화석의 증거로 볼 때 오랜 지구론은 오히려 창조론에서 진화론을 반박하기에 좋은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생물의 진화는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종이 다른 종으로 변이하는 진화 과정에서 중간 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종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중간종은 현실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미 죽은 중간종의 화석은 과거 어떤 지층에서도 발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중간종이 현실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고 화석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이 혈안이 되어 중간종의 화석을 찾아 헤맨 끝에 1860년대에 독일에서 발견되었던 몇 개의 화석에다 시조새(Archaeopteryx)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진화론자들은 이 시조새의 화석을 파충류에서 최초의 조류가 진화한 중간종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화석들을 놓고 긴 연구와 논쟁이 벌어진 끝에 1984년에 이르러서야 이 화석들은 시조새가 아니라 작은 공룡의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에도 시조새와 같이 중간종이라는 화석과 뼈가 몇 가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몇 개의 화석과 뼈만 가지고는 시조새 사건처럼 얼마든지 다른 해석과 조작이 가능하므로, 현실에서 중간종이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지 않는 한,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

화석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캄브리아기 대폭발화석이다. 캄브리아기(BC. 54천만년-5억년 사이) 지층에서 이전 지층에는 없었던 수많은 생물 종들의 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되어 아직도 연구와 논쟁이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다음으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실러캔스(Coelacanth)가 최근에 전혀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발견되어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일이다. 실러캔스는 BC. 4억년-7천만년 사이의 지층에서만 화석이 발견되었던 심해어류이다. 다윈이 예견했던 대로 이런 화석들의 문제는 그의 진화론에 불리한 증거이다. 창조론이 지질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이렇게 고대 지층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는 화석을 공동 탐사하는 일일 것이다. 창조론에서 증거가 희박한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거나 진화론을 반박한답시고 홍수지질학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들여서 오히려 역공을 당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성경은 과학적 이론을 가르치려는 목적이나 족보용으로 기술된 것이 아니라,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신다는 사실과 아담의 타락으로 구원의 섭리에 나서게 된 과정,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방법을 종교적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성경을 근거로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정죄했다가, 또는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 시간을 잘못 발표했다가, 그 후에 세상의 비웃음과 불신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적 이론으로 구성된 진화론을 반론하자면, 창조론자는 과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습득하여 보다 과학적으로 창조론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5. 유사 창조론: 유신진화론과 지적 설계론 문제

 

가톨릭과 개신교 일각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중간적인 유신진화론을 수용하고 있으나 이런 입장은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윈도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가톨릭의 유신진화론은 이미 바실리우스(Saint Basilius, 329-379)와 어거스틴(Saint Augustine of Hippo, 354-430),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의 기독교적 자연발생론의 전통에 진화론을 접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개신교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의 공세를 과학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굴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새롭게 등장한 매우 지성적이고 유용한 과학적 이론으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체는 처음부터 환원할 수 없는 복잡성과자연발생이 불가능한 정보체계를 필요로 하므로, “복잡한 생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무조건 주장한다.”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에 맞서는 창조론의 우군이자 이웃사촌이며, 과학적 논쟁에서는 창조론보다 우월한 유력한 대안으로까지 논의된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은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까지만 기독교의 창조론에 동의한다. 지적 설계론은 이신론적인 신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창조론과는 본질적인 거리가 있다. 이 논문이 유신진화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유사창조론이라고 따로 구분한다고 해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홍수지질학을 주요 자료로 삼는 근본주의적 창조론을 옹호하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주의 시대에서 기독교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사실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미흡한 부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합리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 진화론

 

일반적으로 진화론은 다윈과 오파린(Aleksandr I. Oparin, 1894-1980)에 의하여 주장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진화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윈이 1859종의 기원에서 발표한 생물학적 진화론이고, 그 다음은 오파린이 1936년에 생명의 기원에서 발표한 화학적 진화론이다. 그 외에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다윈의 진화론을 접목하여 만든 유물론적 진화론이 있다.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은 유물론적 진화론에서 발전한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호킹이 발표한 위대한 설계에서 M이론이라는 양자역학적 진화론이 등장했다.

이것들을 역사적으로 검토해보면, 1차 단계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2차 단계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Karl Marx, 1818-1883, Friedrich Engels, 1820-1895, 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에 의하여 공산주의 유물론의 도구로 전락했다. 3차 단계에서 오파린은 최초의 생명이 물질에서 발생했다는 화학적 진화론을 주장했다.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까지는 고전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그러나 제4차 단계에서 호킹이 주장하는 M이론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무()에서 물질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양자역학적 진화론이다.

현대 과학주의 사회에서 이런 진화론들을 반박하고 물리치기 위해서는 진화론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과학적 지식의 습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창조론 진영에서 진화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고, 창조론에 과학적 지식을 적용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지지부진하다. 전자의 이유로는 유물론적 진화론을 논의한 엥겔스의 반듀링론자연의 변증법등이 공산주의 서적들이므로 자본주의 문화권에서는 널리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자의 이유로는 창조론자들이 기존의 성경적 틀에 안주하려는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과학적 지식의 습득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킹의 M이론이 기초하고 있는 양자역학은 아직 일반적 수준에서는 물론 과학계에서조차 널리 이해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논문에서는 역사적 발전 단계에 따라 4가지 진화론을 차례로 논의할 것이고, 결국 진화론은 모두 오류로 판명된 고대 자연발생론의 재판(再版)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1.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 1단계

 

다윈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성공회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했다. 1831년 졸업 후에 그는 곧 바로 영국 해군 함정 비글(Beagle)호에 승선하는 기회를 잡아 5년을 항해하면서 각지의 생물 표본들을 수집하였다. 다윈은 이 표본들을 연구하여 화훼업자와 목축업자의 인공적 품종개량이 자연적으로도 발생 가능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미 발표되어 있던 라마르크(Jean Baptiste 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Lamarck, 1744~1829)의 용불용설 등 몇 가지 진화이론들을 참조하여 1859년에 유명한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이 책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동물이 기껏해야 넷이나 다섯의 조상으로부터, 그리고 식물은 그것과 같거나 더 적은 수의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자연선택에 의하여 작은 변이가 축적되면서 점진적으로 다른 종으로 진화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윈은 이 책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생명력이 창조자(the Creator)에 의하여 최초에 몇 개 또는 하나의 형태’(a few forms or one)에 불어넣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 책은 종류대로의성경적 창조사건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므로 대영제국 기독교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는 등의 숱한 논쟁에 맞서 다윈의 불도그로 불리는 로버트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가 다윈의 이론을 적극 변호해주었다. 그러나 이미 다윈의 생존시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1-1902)는 유명한 백조 목(S) 시험관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바탕으로 하는 진화론이 오류임을 입증했다. 그는 이 실험으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한 자연발생설 실험 대회에서 상금을 획득하고, 1861자연발생설 비판을 출판하여 생명속생설(生命續生說: biogenesis)을 확립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다윈의 이론에는 생물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윈도 이미 이 문제를 예견하고 현실에서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소수로 중간지대에 고립되어 있는 환경 탓이며, 과거에 살았던 중간종의 증거는 앞으로 불완전하게나마 화석의 유물 가운데서 발견되리라고 주장했다. 다윈이 이런 약점을 스스로 공표한 것은 만약 앞으로도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화석에서도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윈의 진화론에 오류를 지적했던 사람은 바로 다윈의 친구이며 변호자였던 헉슬리였다. 대신 그는 돌연변이설을 주장했다. 미국의 유명한 현대 다윈주의자이며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굴드(Stephen J. Gould)는 돌연변이설을 다시 강조하여 진화는 점진적 방법이 아니라, ‘희망의 괴물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수정했다. 진화론은 불리한 증거에 대해서는 이렇게 재빨리 이론을 수정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렇지만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가 일어난다는 이론도 입증되지 않았다. 창조론은 과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이런 사실들로 진화론을 반박해야 한다.

현대 생물학 DNA이론에 의하면, 부모의 DNA를 조합하는 변수(變數)의 범위 안에서 변이하는 소진화는 가능하디고 인정한다. 그러나 소진화는 종내(種內)의 다양성의 발현을 표현하는 다른 말일 뿐, 종간(種間)을 뛰어넘어 변이하는 대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류적 견해이다. 왜냐하면 생물은 부모 유전자 조합의 표현형(表現型)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생식장벽(Reproductive Barrier)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생물학에서도 다윈의 진화이론은 오류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다윈의 오류를 억지로 외면하면서 다윈주의자를 자칭하는 자들이 있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이 이렇게 오류가 드러났음에도 폐기되지 않고 아직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논의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사관에 인용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비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 진화론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다윈의 이론을 교묘하게 왜곡하면서 신의 존재와 창조사건을 부정하려는 무신론적 억지일 뿐이다. 그러나 다윈은 신의 존재에 대하여는 스스로 무신론자는 아니라고 부인하고 불가지론자임을 고백했다. 그런데도 다윈의 진화론이 완전히 무신론적이라고 오해하게 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영향 때문이다. 다윈은 생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무시했으나, 엥겔스는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 이론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 인용하고 찬양하였다. 엥겔스의 목적은 공산주의 유물론을 과학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하여 다윈의 과학적 권위와 명성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자칭 현대의 다윈주의자들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 영향에 빠져 있다.

 

2. 유물론적(또는 변증법적) 진화론: 2단계

 

독일 헤겔(Georg Wi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철학의 극좌파에 속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철학에서 변증법이라는 헤겔의 용어로 헤겔의 관념 철학을 비판했다. 그들은 이전의 철학에 남아 있던 유신론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새롭게 역사적 유물론을 제안했다. 그들은 역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공산당선언(1848)을 발표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뒤엎고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종의 기원(1859)을 읽고서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엥겔스는 같은 독일 사회민주당원인 오이겐 듀링(Eugen DÜring, 1833-1921)이 그들의 사적 유물론과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자 듀링을 반박하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 논문들에서 엥겔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 이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패배한 자는 사정없이 쫓겨났다. 이것은 다윈이 말한 개체의 생존투쟁이 훨씬 증폭된 힘으로 자연에서 이 사회로 옮겨온 것이다.” 엥겔스는 논문 곳곳에서 진화론의 용어를 자주 인용하고, 다윈을 찬양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 논문들을 편집하여 반듀링론(1878)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의 핵심적인 3개의 장을 뽑아서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1882)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엥겔스는 이때부터 이 책에 붙인 이름과 같이 그들의 이론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엥겔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면서반듀링론을 쓰는 동안 공산주의 사회운동 이론을 진화론적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엥겔스가 발표한 사회 및 자연의 변화에 관한 후기 이론들에 대해서는 유물론적(또는 변증법적) 진화론으로 불러야 한다. 특히 엥겔스는 반듀링론에서 유물론적 생명관인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그는 이 책에서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아직까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화학적 방법으로 출현하였을 것이라는 것뿐이라고 하면서 오파린보다 먼저 화학적 진화론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 책에서 당시의 진화론 수준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리 대담한 자연발생론자라 하더라도 다만 박테리아나

곰팡이 종류나 기타 원시적인 유기물만이 이 방법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 곤충이나 어류나 조류나 포유동물이 이 방법으로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 철학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자연의 변증법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론1권밖에 쓰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엥겔스는 자본론2권과 3권을 대신 써야 했다. 그 바람에 정작 그가 집필하던 자연의 변증법을 미완성 유고로 남겨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자연의 변증법서문에서 엥겔스는 화학적 진화론의 핵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놓았다.”

 

마침내 화학적 친화력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이전에 화학적으로 무차별적인 분자들 이 차례로 화학적으로 구별되게 되며, 화학적 성질을 획득하며, 서로간의 결합에 돌 입하는 점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 진화하게 되는 물리적 운동형태의 상호작용이 더욱 더 전면에 등장한다.

마침내 만약 기온이 아주 평균화되어 ...... 최소한 그것이 단백질이 살 수 있는 한계 를 넘지 않고, 다른 화학적 조건들이 적합하다면, 살아 있는 원형질이 형성된다. 이러 한 조건들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무형의 단백질이 핵과 세포막을 형성하여 최초의 세포를 생산한 조건이 생길 때까지 수천년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포 역시 전체 유기적 세계의 형태 학적 발전의 기초를 제공했다.

그 일부는 점차 최초의 식물로 분화되었고, 다른 것들은 최초의 동물들로 분화되었 다. 그리고 최초의 동물로부터 본질적으로 계속적인 분화에 의해 동물들의 강, , , , 종들이 발전된다. 그리고 마침내 ...... 포유동물이 발전되며, 이것들 가운데 자연이 자체의식을 획득한 포유동물인 인간이 발전되었다.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은 이러한 엥겔스의 유물론적 진화론에 기초해서 발전했다. 진화론 발전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진화론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 또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밖에 안 된다. 더욱이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는 유물론 이외의 모든 사상적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효과는 다윈과 마르크스 그리고 엥겔스가 모두 죽은 후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면서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비록 엥겔스를 대신하여 레닌의 이름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불렸지만, 엥겔스의 유물론적 진화론은 레닌의 볼셰비키 공산당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는 국교이던 러시아정교회를 폐지당하고 무신론자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과학이론들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예찬했다.

 

3.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 3단계

 

오파린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당시 모스크바 대학원에서 식물생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곧 공산당 조직에 가입하여 러시아 화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1922년 오파린은 러시아 식물학회에서 유물론적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처음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생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출판한 것은 1936년이었다. 레닌이 죽자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확산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런 조류를 반영하여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에서 서구 사상을 관념적 유신론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하고, 화학적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는 빅뱅에 의하여 생겨난 우주자연은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으므로 최초의 생명체는 물질의 화학작용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설명했다. 오파린에 의하면, 물질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발생한 것은 물질의 변증법적 비약이었다. 그는 현재의 생물계는 최초의 생명체에서 진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그런 과정은 다윈이 이미 밝혀놓았다고 했다.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은 앞에서 설명한 엥겔스의 유물론적 진화론 개념을 화학적 이론으로 새롭게 정리했을 뿐이다. 오파린은 그의 생명의 기원이론이 공산주의 유물론에 뿌리박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책의 곳곳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물론 레닌이나 스탈린까지 인용하고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이론을 진화론의 제2법칙이라고 하면서 제1법칙을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다. 다윈이 남겨놓았던 제1법칙의 여백은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을 발표함으로써 화학적 진화론으로 채워졌고, 무신론적 진화론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표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교재가 되었다.

미국의 시카고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하던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1953년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오파린의 이론을 실험했다. 오파린의 이론은 지구에서 생명이 처음 발생되었던 원시의 대기에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수증기(H2O)와 같이 수소를 함유한 분자들이 주요 성분이었으며, 이것들이 번개, 자외선, 화산폭발 등의 자연 에너지에 의해 간단한 형태의 유기물로 합성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밀러가 이런 조건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몇 가지 아미노산이 생성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해에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최종본인 6차 개정판을 출판했고, 왓슨(James D. Watson, 1928- )과 크릭(Francis H.C. Crick, 1916-2004)은 생물의 세포 안에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했다. 생명체의 세포 구성 물질인 단백질 합성에는 아미노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시에는 아미노산이나 단백질 등의 유기물질이 생명체 밖에서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밀러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세계는 온통 오파린의 이론이 증명된 것으로 믿었다. 이에 오파린은 1957년 모스크바에서 16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생명의 기원에 대한 최초의 국제회의를 조직했고, 1970년 제3회 프랑스의 퐁타무송 회의에서 국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학회회장으로 추대되기까지 했다. 오파린은 물질에서 인공생명체가 발생하는 실험이 곧 성공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고, 밀러는 1974년 그의 실험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영국 출신 레슬리 오르겔(Leslie Orgel, 19272007)과 공동으로 미국판 생명의 기원을 출판했다. 세계 과학계는 인공생명체 제조 실험에 경쟁적으로 덤벼들었으나 결국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오파린은 1980년에 죽고 말았다.

이후 과학이 좀 더 발전된 후에 재검증해보니 오파린의 이론도 밀러의 실험 결과도 잘못 해석된 것으로 밝혀졌다. 왜냐하면 오파린의 원시대기는 잘못 가정된 것이었고, 생물에 필수적인 20가지 아미노산은 자연에서 합성되는 것과 무조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시작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계기로 생물의 DNA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DNA연구를 계속하면서 세포와 생명의 유전정보가 물질의 화학작용에서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자연에서 직접 생명현상이 발생 가능하다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1994년에 이르러서는 레슬리 오르겔조차 생명현상은 결코 화학적으로 발생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후에도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연구와 실험에 뛰어들었으나 아직까지 성공한 과학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만약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다윈의 창조자에 의한창조 주장은 물론 기독교의 창조론도, 모든 종교에서 믿는 신의 존재도 완전히 사라져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4. 호킹의 양자역학적 진화론(M이론): 4단계

 

호킹은 양자역학을 인용하면서 생명이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오파린의 주장을 넘어 물질이 무()에서 생겨났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의 M이론은 무에서 우주가 생겨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그의 이론은 우주의 시작이 과학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며 어떤 신의 손길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는 우리는 아주 어린 우주에 존재했던 양자 요동의 산물이며,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이 주사위놀이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을 직접 조롱한다. 그의 M이론에 의하면 별이나 블랙홀 따위의 물체들은 무로부터 생겨날 수 없으나, “우주 전체는 그럴 수 있다.” 호킹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근거인 양자역학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여 문제의 해답을 확률로 풀어낸다. 그러나 과학의 불변의 도구인 수학으로 보면, (=0)는 가감(加減)의 효력이 없는 것이며, 승제(乘除)하면 모든 수()를 무(=0)로 환원한다. 그러므로 무(=0)를 포함한다면 어떤 방정식으로 확률을 구해도 그 해답은 무(=0)이다. 애당초 무(=0)에서는 과학법칙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또한 별이나 블랙홀 따위가 없다면 없이 어떻게 우주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인가? 창조자에 의한 법칙이 아니라면, 어떤 사물에 적용되는 법칙이 먼저 존재했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증거가 없는 진화의 제2차 법칙에 이어 화학적으로 불가능한 제1차 법칙을 조작해놓더니, 이제는 성립 불가능한 M이론으로 제0차 법칙까지 주장하고 있다. 호킹이 말하는 과학법칙은 우주물질이 생겨난 이후에야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호킹의 M이론은 양자역학의 일부 이론을 이용하여 이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호킹이 말하는 무()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진공(眞空)을 왜곡 과장한 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진공에서 전자가 쌍생성하거나 쌍소멸하는 현상이 실험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 미시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양자역학의 진공과 태초에 우주가 생겨나 자리 잡은 무()는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호킹의 주장이 반박되지 않고 오히려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서양철학과 과학의 영향으로 무()의 개념이 명확하게 가르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양적인 이해에서는 무()라는 말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유()의 반대 개념이다. 동양사상에서 태초의 유()는 우주자연을 의미하며, 따라서 무()는 우주자연의 안이 아니라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호킹이 말하는 양자론적 의미의 무()는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진공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호킹은 우주 바깥의 무와 양자역학의 진공을 동의어로 사용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결국 M이론은 원자 안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미시세계의 현상을 우주의 거시세계에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0)를 우주 바깥에 있는 무존재의 영역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M이론 등의 양자론적 진화론을 제대로 반박할 수 없거니와 창조론 자체도 혼란에 빠진다. 호킹의 M이론이나 다중우주론 등과 같은 현대 무신론자의 주장들은 모두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창조론에서 이미 ()에서의 창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홀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 호킹이 말하는 과학법칙은 창조자의 법칙을 대치한 말에 다름 아니다. 호킹은 현대 과학주의 무신론자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허구적인 각종 진화론은 호킹에 의하여 마침내 종착지에 도달한 것 같다.

 

 

나가면서

 

이 논문에서는 먼저 창조론이 창조주의 존재와 창조사건에 관한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논의했다. 창조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져 특히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실을 탈피하여 과학주의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변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반면에 진화론은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적 이론체계를 갖추었다. 진화론은 이제 무()에서 우주가 생겨났으며, 그 우주는 물질로만 구성되었고, 또 그 물질에서 생명이 화학작용으로 생겨났으며, 그 생명은 오늘날 우리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체계로 이론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본 결과에 의하면, 모든 진화론은 갖가지 상상을 엮어 만든 허구적 가설에 불과한 것이며, 고대 그리스의 물활론적 자연발생론에서 시작하여 그동안 무신론적 자연발생론으로 형용사 하나만 바뀐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아직까지 어떤 확실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온갖 실험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이유로 창조론이 기존의 낡은 이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창조론은, 특히 기독교 창조론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극복할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문헌

 

1. 1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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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 the Origin of Species, 1876.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88.

Oparin, A. I., 柘植秀臣 譯. 生命起源. 東京: 岩崎書店, 1955.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전대호 역.위대한 설계. 서울: 까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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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호 역. 자연의 변증법. 서울: 전진, 1989.

 

 

2. 2차 자료

 

데이브드 흄. 이태하 역. 기적에 관하여. 서울: 책세상, 2013.

마이클 베히. 현창기 외 역. “다윈이 몰락”, 위대한 설계, 그 흔적들. 서울: 새물결 플러스, 2014.

스탠리 밀러 · 레슬리 오르겔. 박인원 역,생명의 기원. 서울: 민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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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과학아카데미 편. 이을호 역. 세계철학사11. 서울: 중원문화, 2009.

헨리 모리스. 이기섭 역. 창세기 대홍수. 서울: 성광문화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