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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과학의 필요성 The Need of Science in 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heojohn 2020. 4. 2. 17:14

1. 서론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기초

1) 창세기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이스라엘

3) 이스라엘을 버리신 하나님

4)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의미

3. 하나님의 창조를 아는 지식을 거부한 기독교

4. 엘렌 화이트가 환상으로 본 창조와 노아홍수: 홍수지질학

5.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는 창조과학

1) 창조과학의 역사

2) 창조과학에는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다

3)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타협했는가?

6. “스스로 있는 자이신 창조주 하나님

7.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왜 성경에 제한해야 하는가?

1) 자연에 계시된 하나님의 창조법칙

2)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

8. 결론

 

 

1. 서론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활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점점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 추종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들이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되었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왜 과학적 무신론을 이기지 못했는가? 성경의 자료를 찾으면서 이 질문을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그 원인은 원죄에 대한 회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미리 밝히셨고, 그것을 인간에게 원복음으로 주셨다. 그러나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의 원복음을 지키지 못하고 원죄를 저질렀다. 원죄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다. 이 논문은 아담에게 원복음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지식의 결핍이 원죄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에서 회개하라는 명령에는 원죄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이 별로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원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할 이유를 제기한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기초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의 실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요구하는 회개와 선교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 창세기

 

기독교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God)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1:1)는 창세기 첫 구절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구절을 통하여 태초에 창조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의 행위자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알거나 모르거나, 또는 믿거나 말거나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창조목적(1:26)을 밝히셨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곧바로 첫째 복음을 주셨다(1:28). 그것이 원복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의 창조목적대로 원복음을 지키고 살아가기를 바라셨음을 지시한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여 아담은 원죄를 저질렀다. 원죄는 온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된 아담이 그의 다스릴 대상인 땅과 모든 생물에 대해 합당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 지배권을 잃어버린 것이 원인이 되었다.

 

원죄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 그렇게 하여 아담의 후손은 아담에게 원죄를 짓도록 유혹한 뱀과 원수가 되는 본성을 가지게 되었다(3:15).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와 자식들을 낳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거두시니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육신이 되었다(6:3). 그들로 인하여 죄악이 더욱 관영(貫盈)해지고,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인간은 원죄가 유전된 본성조차 더욱 죄악에 물들게 되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한탄하시고(6:6),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세상에서 쓸어버리고자 홍수를 일으키셨다.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하여 바벨에서 탑을 쌓고 도시를 건설했을 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간들을 뿔뿔이 흩으셨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가나안에 거주했다. 그때 죄악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은 얼마 뒤 닥쳐온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가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큰 민족으로 성장했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이스라엘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430년 만에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 40년간 광야에서 유랑생활 끝에 가나안에 돌아온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 영토 전쟁에서 승리하여 다윗의 시대에 통일왕국을 세웠다(BC. 1010).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보다 더 많은 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본이라고 갈파했다(1:7).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했고, 엄청난 제사와 번제를 드리기도 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든 죄인으로 심판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호세아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호세아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애(mercy)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knowledge of God)”을 원하셨다(6:6).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제사보다 인애를 실천하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다면 솔로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본인 경외가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인애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경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이 경외해야 할 대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는 일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 주신 복을 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로 경외하면서 원복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엄청난 제물을 드리는 것과 같은 외식(外飾)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을 아는 지식을 온전하게 갖추고, 마음을 하나님에게 향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호세아 선지자에 의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매우 강력하게 요구하신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갖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인간들의 세상에는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니, 땅에는 피가 피를 뒤대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호세아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4:1-2)고 한탄하셨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쟁변은 서로 잘 아는 관계에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 땅의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쟁변하는 관계를 벗어나려면,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인애를 진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한탄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다.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4:6).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잊어버리겠노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들이 제사장 직위를 차지하여 그 자신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4:9)고 선포하셨다.

 

3) 이스라엘을 버리신 하나님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력하게 요구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솔로몬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다윗을 세워 이스라엘 12지파를 묶어 하나의 통일왕국을 세우게 하셨다. 다윗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에게 일천번제(一千燔祭)를 드리고, 백성을 재판하는 데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을 간구했다. 솔로몬의 간구에 대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주시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와 권세의 복을 덤으로 얹어 주셨다. 솔로몬은 7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에게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축복하고,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왕상8:61)고 기도했다. 이때 화목제의 제물로 드린 소가 22천 마리요, 양이 12만 마리였으며, 번제와 소제와 감사 제물의 기름을 성전의 놋제단이 감당하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이어서 솔로몬은 13년을 들여 그의 왕궁을 건축하였다. 솔로몬이 그를 위해 건축한 왕궁은 성전보다 4배 이상의 큰 규모였다.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지혜를 이용하여 그의 왕궁을 건축하기를 마친 때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왕상9:6b),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왕상9:7a)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쓴 잠언서에서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5:16)는 말까지 했다. 그런 솔로몬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민족 국가에서 후궁 7백명과 첩 3백명을 맞아들여 하나님의 성전보다 더 큰 그의 왕궁을 채웠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여 제 나라의 풍습대로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후궁과 첩들에 빠져 하나님의 경고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왕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백성들마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무시하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솔로몬의 사후에 그의 나라를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주시겠다고 심판하셨다(왕상11:11). 하나님이 선택한 솔로몬의 신하는 에브라임 족속 여로보암이었으며,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그에게 이스라엘 10개 지파를 주기로 약속하셨다(왕상11:26절 이하). 솔로몬이 죽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북쪽의 10개 지파들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웠다(BC. 926). 이스라엘에서 북이스라엘이 떨어져 나간 이후, 남쪽에는 르호보암이 유다 지파와 벤자민 지파를 거느리고 유다왕국으로 남았다. 이스라엘이 두 개의 나라로 찢어진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홀히 한 솔로몬 때문이었으며, 그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경고와 심판이 실현된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생전의 약속은 지켜주셨지만, 그의 사후에 그를 기억하시지는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호세아는 여로보암이 세운 북이스라엘에서 BC. 792-753년경에 활동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곧 잊어버렸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니, “여호와께로 돌아가자”(6:1)고 외치면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고 호소했다. 호세아 선지자의 이름은 여호수아 또는 예수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구원자를 의미한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의 호소를 무시한 대가는 BC. 722년에 이민족인 앗시리아에 의하여 그들의 왕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10개 지파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었다. 호세아의 예언은 북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대부분 실현되었다. 그 뒤에 남쪽의 유다왕국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잊어버리게 되자, 하나님은 유다왕국도 버리셨다. 역사서는 하나님이 그가 보낸 예언자의 경고를 무시하는 이스라엘을 바빌론 느부갓네살을 보내서 멸망(BC. 586)시키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39:1-10). 이때부터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은 유랑민으로 떠돌며 유다 지파만 그루터기로 남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유랑민이 된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담이 원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과 매우 닮은 꼴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의미

 

400년 후 마카비의 독립운동(BC. 166-BC. 143)의 성공으로 유대인들의 하스몬 왕조(BC. 142-BC. 63)가 성립했으나, 100년을 가지 못하고 로마제국에 점령되었다. 이민족 출신인 헤롯 안티파테르(Herod Antipater) 2세가 로마제국의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어 하스몬 왕조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넘겨받았다. 그의 둘째 아들 헤롯왕 시대(B.C. 37-4)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해서 성장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복음을 선포했다. 천국복음은 그의 복음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모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흘 후에 부활했고, 40일 후에 승천했다. 그의 승천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천사로 추정되는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그의 재림을 말해주었다(6:11).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면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그의 권능으로 영생의 복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영생의 복은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늘어나면서 기독교는 세계 제1의 종교로 성장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 그리고 아담의 원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에서 회개의 요구는 잊어버린 것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개하라는 요구는 먼저 먼저 회개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이 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에 따라서 원죄에 오염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요약하면 회개한 기독교인들이 사라진 이스라엘 대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회개를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 기다리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3.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을 거부한 기독교

 

종교개혁에 이어서 과학혁명이 일어났다.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에서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가톨릭교회는 잘못된 성경해석을 근거로 하나님의 창조법칙인 지동설을 배척했다. 개혁교회 역시 과학을 무시했다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참패했다. 그 결과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 세상은 아담의 자손들인 인류가 원죄를 회개하지 않고, 원죄에 자기들의 죄를 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들이라면,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면, 우주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법칙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우주만물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을 배척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16세기 과학혁명 초기에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인 지동설을 거부하면서 과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그때까지의 우주관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의 천동설(지구중심설)이 오류임을 밝혀내고, 지구가 태양을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지동설(태양중심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인 지동설이 그들의 성경해석과 교리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지동설의 배포와 확산을 금지하고 탄압했다.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세워진 개혁교회도 천동설을 믿고, 지동설을 배척했다. 과학은 17세기에도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물질의 운동 법칙을 발견했고, 18세기에는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만유인력을 발견하여 고전역학을 완성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뉴턴은 만유인력에 의하여 작동하는 우리우주를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동기계라고 생각했다. 전지전능자가 제작한 자동기계는 제작자가 정해놓은 법칙에 따라 오류 없이 작동할 것이므로 돌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우주의 운행을 만유인력의 법칙에 맡겨놓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신론적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신론은 인간에게 원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오해한 주장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해야 할 일에 간섭하지 않으실 뿐이다.

 

이신론은 하나님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낳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과 볼테르(Voltaire, 1694-1778) 등의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에 의해 촉발된 프랑스혁명이 기독교적 사회를 인간사회로 바꾸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순수이성 비판등을 출판하여 19세기의 문을 열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변증법으로 정신의 역사를 설명했지만, 그의 극좌파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1872)는 정신을 물질현상으로 설명했고,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변증법을 거꾸로 세워 유물사관으로 물질의 역사를 설명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듬해(1860)에 교회가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유명한 옥스퍼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영국성공회에서 가장 박식하다고 알려졌던 옥스포드 주교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와 다윈을 대신한 토마스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가 대결했다. 그 논쟁의 결과는 헉슬리가 완승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의 대표 인사인 윌버포스 주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진화론자 헉슬리에게 논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국 부족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윌버포스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왜곡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논쟁에서 참패한 이후, 성공회는 다윈의 진화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신진화론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독점한 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게 창조했다고 계속 설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을 유물사관에 끌어들인 과학적 무신론자들에 의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는 거꾸로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낸 우상이 되었다. 과학적 무신론이 점점 득세하는 바람에 현대사회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믿는 것은 미신(迷信)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과학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불완전하게 아는 지식으로 진화론과 논쟁에서 패배했던 기독교에 과학이 반격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성경적 지식으로만 설명하려고 했던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과학적 무신론의 공세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편 미국에서는 다윈의 친구이자 기독교 신자이며 하버드대학교 자연사(식물학) 교수인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가 죽을 때까지 다윈을 지지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약간 수정한 창조론을 소개했다. 그레이의 창조론은 진화의 원인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힘의 작용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유신진화론의 일종이었다. 1992년에 이르러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동설에 대한 오류를 인정하고 갈릴레이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이미 과학적 무신론의 득세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죄악에 오염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에게 점점 굴복하여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신 것은 인간뿐이라고 주장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이 되고 말았다. 개혁교회에도 유신진화론이 전파되었다.

 

4. 엘렌 화이트가 환상으로 본 창조와 노아홍수: 홍수지질학

 

세계 최대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침례교 근본주의자였던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1843년에 이루어진다고 예언했다가 실패했다. 그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다시 연구하여 예수 재림의 시기를 1844년으로 수정했으나 그것도 빗나갔다. 두 번이나 빗나간 예언으로 대실망에 빠진 밀러주의자들에게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25)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완전한 회개와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취지의 계시를 새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화이트는 밀러의 예언에서 오류를 수정한 새로운 예언을 제시했다.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는 추종자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회)를 설립한 것은 1860년이었다. 화이트의 예언과 축자영감설과 문자적 해석을 믿는 근본주의 안식교회 신자들은 열렬한 반진화론자들이었다.

 

화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환상으로 보았는데 창세기에 기록된 것과 똑같이 6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고 제7일에는 안식하셨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도 창세기의 문자 그대로 진행되었으며, 이때 죽은 생물의 시체가 화석 등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화이트의 주장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과 같은 것이었으며 진화론은 물론, 당시에 기독교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던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과 간격이론, 그리고 주류 지질학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었다. 교주 화이트의 주장에 감동을 받은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George McGready Price, 1870-1963)는 진화론을 비판할 것을 결심하여 신지질학(1923)을 저술했다. 진화론이 지질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 그는 신지질학이 진화론을 격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지질학은 지질학적으로 약 6,000년 전에 창조된 지구에서 노아의 홍수가 발생한 원인은 하나님이 지축을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라이스는 지구의 모든 지층을 비롯한 암석과 퇴적 화석, 빙하, 그리고 캐나다 록키산맥의 루이스 층상단층(the Lewis overthrust)과 그랜드 캐년 등이 지구에서 유일한 대격변이었던 노아홍수에 의해서 한꺼번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프라이스의 신지질학홍수지질학으로 불린다. 기독교는 그의 신지질학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고 환영했다. 프라이스는 그의 신지질학이 진화론에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고, 더 이상 죽은 사자에게 총을 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프라이스는 이를 바탕으로 1938년에 홍수지질학회를 설립했다. 존 휘트컴(John C. Whitcomb, 1924- )과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도 여기에 가입했다. 그러나 홍수지질학은 지질학의 문제이지 창조론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지질학에서는 창조를 말하지 않고, 창세기의 노아홍수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라이스나 모리스와 그들의 추종자들을 홍수지질학자로 불러야지 창조론자로 부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를 알게 된 안식교회는 정식으로 지질학자들을 양성하여 1958년에 앤드류스대학에서 지구과학연구회(Geoscience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여 홍수지질학회를 대체했다.

 

1961년에 프라이스의 신지질학업데이트한 버전처럼 읽히는 창세기 홍수, The Genesis Flood가 존 휘트컴과 헨리 모리스에 의해 공저로 출판되었다. 창세기 홍수의 초고는 1957년 휘트컴이 그레이스 신학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것이었다. 휘트컴의 논문은 진화론자들의 공격을 받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성경적으로 옹호하는 것이었다. 휘트컴은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홍수지질학에 과학적 설명을 보완하라는 출판사의 권고에 따라서 모리스를 공저자로 끌어들였다. 창세기 홍수는 두 저자가 문자적 오류없는 성경을 연구의 기초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서문으로 시작된다. 창세기 홍수는 프라이스의 신지질학을 거의 표절한 수준을 넘지 못했으나, 제목을 바꾸는 등 외견상으로 다른 것으로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다. 모리스는 제2판부터 홍수지질학과의 연관성을 감추기 위해 프라이스에 대한 언급과 각주를 삭제한 것, 창조를 기원전 6,000년경으로 못 박은 것,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진화론 비판에 인용한 것 등 몇 가지를 수정했다. 모리스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회에서 얻은 인간과 공룡의 발자국이 팰럭시 강에서 함께 놓인 채로 발견되었다는 자료를 넣었다가 주류 과학계의 비판을 받게 되자 3판에서 슬며시 삭제하기도 했다. 프라이스는 안식교의 교리에 따라 에덴의 창조보다 앞선 시기에 생물이 거주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6일 창조를 태양계와 지구 생명체에 한정시켰으므로 창조의 연대를 6,000년 전으로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창세기 홍수는 아무리 이름을 바꾸고 수정을 해도 그것은 지구의 나이가 약 6,000년에 불과하다는 젊은 지구론과 그 지구의 지표가 노아홍수에 의해 단일격변적으로 형성되었다는 홍수지질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어쨌든 창세기 홍수는 미국 남침례교를 중심으로 진화론과 대결할 수 있는 확실한 창조론으로 홍보되었고,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다. 창세기 홍수의 출판으로 미국교회에서 촉발된 창조론의 부흥은 안식교 신자인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정통주의 학설의 위치까지 격상시켰다.

 

5.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는 창조과학

 

1) 창조과학의 역사

 

안식교회가 홍수지질학회를 지구과학연구소로 개편하면서 프라이스의 추천인물을 배제하고 사실을 안 모리스와 몇몇 개신교 창조론자들은 1963년에 독자성을 내세울 수 있는 창조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조직했다. 프라이스가 그 해에 죽었다. 모리스가 회장이 되었을 때 창조연구회는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의 개념을 대신한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또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성경적 창조론은 1860년 옥스포드 논쟁에서 기독교의 윌버포스가 진화론자 토마스 헉슬리에 패배한 이후 공개적으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모리스가 이 무렵 창조에 과학을 붙인 창조과학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과학교육 시간에 가르치는 진화론과 동등한 지위를 얻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모리스는 라하이(Tim F. Lahaye, 1926- )가 설립한 크리스천헤리티지대학 창조과학연구센터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72년 운영난으로 창조과학연구센터 조직이 해체되자, 모리스는 창조연구회를 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로 개편했다. 그러나 창조연구소는 실질적으로 홍수지질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일 뿐이다. 홍수지질학은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가 약 6,000년 전에 창조된 지구의 지질을 한꺼번에 형성했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이름을 붙인 영향으로 적지 않은 창조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홍수지질학과 과학적 창조론 또는 창조과학의 내용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 창조과학은 사실상 아직까지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의 범위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이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창조사건을 연구하는 방법은 창조의 증거물로 남겨진 우주만물과 생명을 연구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창조 이후에도 한참이나 지난 시기에 있었던 노아홍수에 대한 연구를 창조를 연구하는 과학의 의미를 가진 창조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속임수다. 창조과학은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일 뿐이다. 모리스의 창조과학을 과학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이나 기관은 모리스의 추종자 이외에는 전혀 없다. 프라이스가 그의 홍수지질학에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을 진화론과 타협한 자로 비난했듯이, 오늘날 모리스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창조과학에 반대하거나 오류를 지적하는 창조론자들을 걸핏하면 타협론자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모리스가 홍수지질학회에서 프라이스에게서 배운 버릇을 그의 추종자들이 써먹는 것이다.

 

창조론의 기본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창조론을 가르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일에 쓰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논쟁은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창조주의 존재와 지구 생명의 기원이 창조된 것이냐, 또는 진화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진화론과 유물론을 결합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생명의 기원 문제의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1922년 알렉산더 오파린(Alexander Oparin, 1894-1980)이 러시아 식물학회에서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한 것이 시발점이다. 오파린은 1936년에 과학적 무신론의 원전 생명의 기원을 출판했다, 미국에서 이 책의 번역본이 출판된 것은 1938년이었다. 오파린은 세계 생명의 기원학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취임하여 과학적 무신론을 세계적으로 전파했다. 그는 심지어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연구를 독려했다. 과학적 무신론이 미국 사회에서 확산되는 동안에 모리스의 창조연구소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동안에 청교도가 세운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1조의 영향으로 국교를 금지함에 따라 기독교는 국교적 지위를 잃고 모든 종교 가운데 하나로 격하되었다.

 

프라이스와 모리스를 비롯한 홍수지질학자들이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다윈의 진화론과 오파린의 과학적 무신론을 반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들의 홍수지질학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오파린의 과학적 무신론을 반격하는 도구로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오파린의 과학적 무신론은 다윈의 진화론과보다 더 깊이 생명의 기원을 다룬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진 과학적 지식을 알고,그들의 핵심 주장을 과학적으로 반론해야 맞는 것이지, 3,500년 전에 쓴 홍수 이야기로 무엇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인가? 1978년에 안식교 지구과학연구소가 대학원 프로그램을 개설하자, 모리스도 1981년에 모리스의 창조연구소도 창조과학 대학원을 설립하고 네 가지 석사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창조연구소는 대학원 운영이 예상보다 지지부진한 동안에 창세기로 돌아가자는 교회 세미나를 기획하여 크게 성공했다. 덕분에 창조연구소는 세계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2) 창조과학에는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다

 

1987년에 미구 연방대법원이 과학이 아닌 창조과학(홍수지질학)을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는 것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크게 타격을 받은 창조연구소와 지구과학연구소의 창조론 연구자들이 망연자실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 1940- 2019)심판대 위의 다윈(1991)을 출판하면서 지적설계론에 의한 진화론 비판 운동이 일어났다. 저명한 법학자인 존슨은 진화론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이라고 반격했다. 존슨은 다윈 이후 150년 이상 계속된 창조론 대 진화론논쟁의 본질이 유신론 대 무신론이라는 양대 세계관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에 고무된 창조론자들은 창조라는 용어를 지적설계로 바꿔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식교회 지구과학연구소는 현대과학의 사실성을 인정하면서 타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식교회 지구과학연구소는 최근 클라이드 웹스터(Clyde L. Webster, Jr.)처음부터 끝까지-지구의 기원과 초기 역사출판했다. 웹스터는 종교적 관점과 과학을 적절히 조화시킬 때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이자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식교회의 개정 이론 몇 가지를 보면, 모세가 창조 제4일에 본 것은 약 1만 광년 이내의 지구와 태양계의 주변이고, 그보다 먼저 창조된 먼 우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 연대로는 지구와 달이 약 46억년 전의 물질로 만들어졌으나, 지구의 생명체는 약 6,000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식으로 과학적 이론과 조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안식교회는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 원본 이론을 거의 폐기하고, 전면적으로 개정했다. 안식교회의 홍수지질학을 베껴서 창조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모리스의 추종자들은 아직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실을 안다면, 표절 작가가 원본 작가에 대해서도 역시 타협이론이라고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지적설계론에 의하면 생물은 자연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적설계자의 설계에 의하여 창조된 생물이 그 증거물이다. 따라서 지적설계론자는 그 증거물에서 창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과학적으로 연구한다. 지적설계론은 분명 창조론의 우군이긴 하나, 창조자의 정체성애 대해서는 기독교 창조주 하나님을 지시하고 있지는 않다. 2005년에 도버 지역연방법원은 지역교육위원회가 생물교육 시간에 지적설계를 가르치기로 한 결의를 재판하여 지적설계는 과학이 아니고 종교라는 이유로 가르치기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과 도버 지역연방법원이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부시 대통령은 진화론과 지적설계를 학교에서 동시에 가르칠 것을 승인했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은 창조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미흡하다. 최근 지적설계론자들의 동향은 과학적 무신론자의 생명의 기원론을 반박하기 위해 생물의 DNA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캠브리지대학에서 생명의 기원을 연구한 과학철학자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세포 속의 시그니쳐, Signature in the Cell: DNA and the Evidence for Intelligent Design(2009)와 생명체의 다양성을 다룬 다윈의 의문, Darwin’s Doubt: The Explosive Origin of Animal Life and the Case for Intelligent Design(2013)을 출간했다. 어쨌든 지적설계론이 창조과학에 없는 과학적 지식을 하나님의 창조를 아는 지식에 일정 부분 보태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그리고 중국 6개국이 공동으로 1990년에 시작하여 2003년에 끝낸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에서 인간 게놈에 있는 약 32억개의 DNA 염기쌍의 서열을 밝혀냈다.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신의 언어(2006)를 출판하여 유신진화론을 개혁교회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러나 콜린스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약 5%DNA 이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정크(junk: 쓰레기) DNA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콜린스의 주장이 오류라는 사실이 후속 연구를 통하여 밝혀졌다. 현재 생물학계는 어떤 DNA도 생명의 기능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본다. 이렇게 통섭적으로 살펴보면, 창조주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생명의 법칙을 DNA에 심어놓았다는 사실이 합리적으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오파린의 지시에 따라 인공 DNA를 합성하여 인공생명을 만들려고 연구하는 목적이 창조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들이라면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창조론을 연구하는 일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창조과학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창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는 모리스의 창조과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들은 주류과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노아 홍수지질학을 창조과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창조와 노아홍수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아는 지식을 그들만이 가진 것처럼 주장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입증하는 지식을 가졌다면,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득세하게 되었는가? 어떤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설교를 했고, 어떤 기독교 신학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잘못 가르친 책임이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를 잊어버린다고 선포하셨다. 현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들이 과학적 무신론을 다시 뒤집어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회개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이 회개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원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따르는 길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학적 지식으로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입증하는 길밖에 없다.

 

3)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타협했는가?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대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렇다면 근본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의 문자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에는 그 책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면, 재앙을 더하거나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했다(22:18-19). 요한은 그의 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1:1). 그런데 처음에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리스어 요한계시록에는 하데스’(ᾍδης)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초기 영어성경에서는 ‘the hell’(KJV)로 번역했지만, 최근에는 ‘Hades’(ASV)로 번역했다. 한글성경은 초기에 나온 KJV를 따라서 음부로 번역했다(1:18).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범죄한 신이나 인간의 사후 거주지인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최고신의 이름이므로, 그대로 음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사망과 음부(‘하데스’)의 열쇠를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것으로 서술했다(1:18). 구약성경의 히브리 세계관에서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의 열쇠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의 기준에서 보면,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데스의 열쇠를 가진 것처럼 서술한 것은 그리스 신화와 타협했다고 비난하기에 딱 알맞은 것이다.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홍수지질학의 원조 안식교인 프라이스에게서 자기들과 다른 관점의 창조론을 타협주의라고 비난하는 버릇까지 배웠고, 지금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요한이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설명한 것은 타협이론이지 성경에 없는 문자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억지 비난을 하기 위해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 말할 것인가?

 

요한의 서술은 죽은 자만을 다스리는 하데스보다 산 자의 죽음과 죽은 자의 세계까지 모두 모두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더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한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관을 전파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베드로 역시 하데스가 다스리는 타르타로스’(ταρταρωσας)를 언급했다. 베드로에 의하면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타르타로스에 가둬두고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벧후2:4). ‘타르타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타르타로스를 영어성경(KJV, ASV)‘hell’, 한글성경은 지옥으로 번역했다. ‘하데스와 같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르타로스라는 말은 성경의 세계관과 전혀 맞지 않늗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그리스 신화와 타협한 것인가? 베드로의 서술은 당시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관을 선교할 목적으로 그리스 신화를 배워서 쓴 것이다. 그와 같이 기독교 세계관을 선교하기 위하여 다른 세계관을 연구하는 것은 선교에도 필요한 것이고, 그만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요한과 베드로에게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과학적 무신론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과학적 무신론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인 과학을 아는 것이 기초이다. 기독교인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진화론이나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선교에 필요한 행위이지 과학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해석하려는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제 그만 종식되어야 한다. 더구나 번역성경을 읽으면서 문자적 해석에 집착하는 근본주의는 허망한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말한 재앙을 더하거나, 거룩한 성에 참예함에 제하는 심판을 피하는 방법은 있다. 통할지는 모르지만 원의(原意)를 알지 못하게 번역한 성경 때문에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추론과 상상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성경도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뇌인지과학센터장인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anur S. Ramachandran) 교수는 샌드라 블레이크스리(Sandra Blakeslee)와 공동으로 인간의 다양한 언어기능을 연구했다. 그들은 연구를 정리하여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 Phantoms in the Brain(1999)을 출판했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좌하두정소엽은 대뇌의 좌하에 있다. 인간의 좌하두정소엽은 유인원의 것과 비교해서 대개 6-7배의 크기로 발달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좌하두정소엽 부분이 덜 발달되었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뇌는 그 정도에 비례해서 언어기능이 떨어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문자나 언어를 그대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여 비유적이거나 다의적인 암호나 시적 문장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진화주의 뇌과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좌하두정소엽 부분이 덜 진화되었다는 측면에서 보기도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좌하두정소엽 병증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성경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해석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성경 안에 제한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서 자신의 결함을 깨닫고, 진실로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근본주의자들이 회개하는 데 필요한 질문 몇 가지를 던져놓는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던 아담이 원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솔로몬이 쓴 잠언서와 전도서와 다수의 시편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율법과 구약성경 지식에 통달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근본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부 들어 있다면, 근본주의자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의 기원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에서 진화론을 뒤집어 세우고,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과학적 유신론을 왜 먼저 발견하지 못하고 타협이론이라고 비난하는가? 그동안 기독교는 하나님을 성경의 문자에 제한함으로써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천도 제멋대로 했다. 그런 틈을 이용해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이 땅을 지배하게 되었고, 모든 생물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을 선포하면서 요구했던 회개는 하나님을 성경의 글자 안에 제한해 놓고, 하나님의 원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도 제대로 하지 않는 현대 근본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누구보다 근본주의자들인 모리스의 창조과학자들은 가장 먼저 회개할 필요성이 있다.

 

6. “스스로 있는 자이신 창조주 하나님

 

태초에는 무엇이 존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현대인들이 우주 너머를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대답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눠진다. 창조론을 믿는 유신론자들은 신(God)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진화론을 믿는 무신론자들은 물질이 초고밀도로 응축된 아주 작은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고대 동양철학자들은 음양(陰陽)의 세계인 태극(太極)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자들은 열역학 제1법칙’(또는 에너지보존법칙’)을 제시하면서 영원불변의 에너지(Energy)가 존재했다고 한다. 태초 이전에 그런 존재들의 명칭은 아직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아니한, 최초의 자연적 세계를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세계의 존재는 과학적 지식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인된 사실이다. ‘에너지 물질 등가의 법칙’(E=mc)에 따라 특이점과 에너지는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태초에 에너지는 에너지로 존재했을 것이다. 유신론적 관점에서 에너지 세계는 창조의 신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특이점은 태초의 빅뱅 사건 이전에 에너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물질이 아주 작은 크기로 응축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의 처소를 감추려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속임수이다. 태초에 자연은 그렇게 존재했다.

 

자연의 역사에서 서로 대립적인 창조론과 진화론의 두 가지 관점은 비교해볼 문제가 많이 있다. 창조론에 의하면 태초의 자연은 신이 창조의 손길을, 진화론에 의하면 특이점이 빅뱅이 일어나면서 변화의 역사를 시작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자연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행되어왔다. 자연의 역사는 변화이다. 자연의 역사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지구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해 창조론은 창조주이신 신이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론자 알렉산더 오파린(A.I. Oparin)1922년에 러시아 식물학회에서, 지구 생물들은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스스로생겨난 최초의 생물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1936년에 생명의 기원을 출판했다. 이후 오파린은 인간이 인공생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강변하면서 유물론과 진화론을 결합하여 과학적 무신론을 완성했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오파린의 추종자가 되어 신의 존재와 신의 창조를 부정하면서 인공생명의 제작에 계속 매달려왔으나, 아직껏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에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신이 최초의 자연에서 자기의 기원을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 I AM THAT I AM)”(3:14)라고 선포한 사실과 그가 우주만물과 지구의 생물들을 종류별로 창조했다고 서술한 창세기의 기록을 믿는다.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해석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존재의 기원을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인과법칙(因果法則)으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우주만물은 인과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과법칙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에서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포하신 스스로 있는 자의 의미는 하나님이 그런 인과법칙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시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 우주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우주 바깥에 계시는 초월적 존재임을 믿는다. 초월적 존재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과학을 배척하는 동안에 우주와 물질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들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우주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초월적 존재임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과학적으로 그런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정보는 신이 자기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진화론적 관점을 이용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지구 생명의 기원이 지구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이론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그동안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지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잘못 주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인공생명 만들기에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속임수에 빠져 있다. 이제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우주가 생기기 이전 태초의 자연에서 스스로 존재하셨던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영원불변의 에너지를 빅뱅의 방법으로 우주물질로 전환하시고, 우리우주에서 지구가 형성된 때에 지구의 생명들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와 같이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면, 진화론은 더 이상 신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이론이 아니고, 거꾸로 창조주인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론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현대 기독교인들이라면, 그동안 하나님을 아는 과학적 지식이 없어서 신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침묵했던 과거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는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있는 자의 이름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유신론을 깨달아야 할 의미가 아닐까?

 

7.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왜 성경에 제한해야 하는가?

 

1) 자연에 계시된 하나님의 창조법칙

 

성경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보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음에 관한 서술이 큰 줄기를 이룬다.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복을 취소하고 처벌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복음의 줄기와 심판의 가지들에는 역사적 사건들이 무성하게 잎을 피운다. 또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꽃처럼 피어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복음을 실천하는 방법적 문제는 인간들이 해결해야 한다. 원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만, 실천의 방법에 대한 가르침은 없다. 그러므로 세부적인 실천사항은 인간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에는 아직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를 성경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강변하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없지 않다. 그런 주장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그 자신과 그의 뜻을 알리는데 필요한 지식을 전부 계시했다는 잘못된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성경의 문자 안에 제한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성경의 토라는 약 3,500년 전에 고대 히브리인을 가르치기 위해서 쓰인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한 것이다. 신약성경은 약 2,000년 전 로마제국에서 토라를 믿었던 유대교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면서, 그가 선포한 복음을 전파한 기록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일하신다. 따라서 그분들에 대해 전부 기록한 성경은 없다. 오히려 기록되지 아니한 분량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은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법칙에 따르도록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은 땅과 생물로 구성된 자연에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따른다. 하나님의 창조법칙은 자연에 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복음에 따라 주권적으로 땅과 모든 생물들을 제대로 다스리는 일에 자연계시를 아는 지식은 필수적이다. 아담의 원죄 사건은 아담이 자연에 계시된 창조의 법칙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담이 뱀의 간교함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원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담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땅에서 선악과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땅을 다스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가 자연에 계시한 창조법칙을 아담이 깨달아서 원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담이 자연계시 알기를 기다리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은 참을성이 없는 분이며 아담에게 원죄의 덫을 놓고 기다린 분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복음과 아담의 원죄 사건도 자연계시를 알면,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

 

현대사회에서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은 과학에서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원복음에서 그가 창조법칙에 따라 창조하신 자연을 인간이 다스리기를 지시하셨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그의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그동안 과학을 외면했던 기독교회의 책임이 적지 않다. 오늘날 타락한 현대사회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을 왜곡해서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들은 과학을 알고 창조법칙을 위반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행동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창조질서가 무너진 현실이 빚어진 것은 기독교가 창조법칙을 알기를 소홀히 하고,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을 배척한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기독교회는 회개한 것이 별로 없고, 사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별로 없다. 기독교가 배척한 과학주의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회개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고, 기독교는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회개시킬 창조법칙을 알지 못했다.

 

성경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를 말해준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는 대개 한정된 성경적 지식에 만족하면서 자연계시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근본주의자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주신 원복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 근본주의자가 한편으로는 예언과 계시를 연구한다면서 일반역사까지 연구하는 데에 열심을 쏟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자연에 계시된 창조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담이 원죄를 저지른 원인은 자연계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자연계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원죄를 벗어나 원복음을 실천할 수 없다.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 에밀 브룬너(Emil Brunner, 1889-1966)가 자연계시에 관련해 벌였던 유명한 논쟁은 자연계시의 본말을 오해한 것이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알려주는 것이고,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다. 창조법칙을 알려주는 자연계시와 성경은 표리(表裏)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생물과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창조법칙에 따라 살아간다.

 

아담이 원복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창조법칙을 알았더라면, 아담은 원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복음 이해와 실천에는 자연에 계시된 두 종류의 지식이 필요하다. 첫째로 인간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땅의 법칙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둘째로 인간은 그의 생존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해서 자신과 생물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아담은 그런 지식의 부족으로 원죄를 저질렀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지식들은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한 과학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과학적 무신론을 물리치는 일과 하나님의 원복음을 실천하는 일에 필수적 지식을 제공한다.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에서 요구하는 원죄의 회개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죄의 회개는 과학적 지식으로 원복음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8. 결론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그를 올바르게 아는 지식을 강력하게 요구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그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원복음을 주셨다. 알고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원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은 같은 것이다. 원복음을 들었던 아담은 땅과 생물로 구성된 자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원복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원죄를 저질렀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아담의 자손들에게 유전되는 원죄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할 뿐이고, 현대사회에서 죄악은 더욱 관영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그의 천국 복음을 선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면서까지 가르치신 복음들에 의하면, 그를 믿고, 유전된 원죄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면, 모든 죄를 사면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아담이 창조법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원죄를 저지른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자연에 대한 지식을 배척하는 사이에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다. 그것은 원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조주 하나님의 원복음은 그를 아는 지식인들이 땅과 생물을 다스리기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소가 요구하는 회개의 실천에 의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원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원복음에 따라 땅과 생물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의 창조법칙에 따르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은 땅과 생물을 연구하는 현대과학에서 배울 수 있다. 인간이 그의 창조목적대로 살기를 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원복음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올바로 알고 실천할 것을 지시하셨다. 그것은 이 논문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과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파하고, 땅과 모든 생물을 창조법칙대로 올바르게 다스릴 것을 지시하셨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하나님과 그의 창조법칙을 아는 지식을 성경에 제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현대과학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bstract: God the Creator urges his people to know Him correctly. Why, then, have humans created by Almighty God now become scientific atheists who deny the existence of God and His creation? This article is a study of this question. God the Creator had the purpose of creation of man. When God had created man, He gave man the original Gospel, Adam had heard the original Gospel, but he could not follow it because he lacked knowledge of the land and living things. Adam’s behaviors became Adam’s original Sin. By God's judgment on Adam’s original Sin, his original Sin was inherited by his offspring. So human minds and plans have always been evil, and their sins have accumulated more and more in the world history.

 

Jesus Christ preached in the Heavenly Gospel that Adam's descendants must repent and regenerate themselves. But many Christians, like Adam, have lacked knowledge of land and living things, could not follow Jesus Christ’s Heavenly Gospl. In the while scientific atheists who have knowledge of land and living things have denied the existence of God, but become rulers of land and living things which God the Creator had created. It means that the original Gospel of God the Creator and the Heavenly Gospel of Jesus Christ have not yet been realized by Christians. Modern sciences have all information about the land and living things created in accordance with God the Creator’s creation laws. Modern Christians, then, are obliged to realize the original Gospel and the Heavenly Gospel by studying of modern sciences, and have to defeat scientific atheists. The author conclusively argues that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should not be limited to the Bible, but should extend to modern science to study God's laws of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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