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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톨레도트' 서술의 사실성 검토

heojohn 2020. 4. 11. 16:12

창세기 저자 모세는 창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창조 사건이 진행되는 각 단계를 자기의 눈으로 본 것처럼 서술했다. '창조 톨레도트'를 구성하는 모세의 서술은 현대인들의 과학적 지식과 괴리(乖離)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현대인들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창세기는 고대 근동지역에 전해지는 하나의 창조신화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창세기를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창조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동사와 모세의 서술적 동사, 그리고 모세의 서술하는 위치와 관점이 그때마다 달라지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세의 서술과 현대인들의 과학적 지식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에 대해 보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1:1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바라’(창조하다)는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1:2절은 모세가 공중에서 원시지구를 그의 눈으로 직접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때 이미 원시지구는 흑암에 싸여있었고, 땅은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모세는 그 위에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모습도 보았다. 아직 모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1:3 첫날)과 숨쉴 수 있는 하늘(1:8 둘째 날)과 발 디딜 땅(1:9 셋째 날)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본 자가 없다. 성경에서는 저자가 보지 못했던 과거의 사건이나,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을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환상이나 꿈에서 보거나 듣고 서술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모세도 창조 톨레도트를 그렇게 서술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창세기를 읽는 과정에서 과거의 문자적 해석이나 전통적 창조론이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신학이나 창조론의 과제는 이제까지 현대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과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했던 과학은 사실성을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오류를 수정했다. 그 결과 현대과학과 첨단기술이 발전하였고, 거대한 구조의 현대문명이 만들어졌다. 현대문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현대과학의 업적과 사실성을 신뢰한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 과학적 사실성을 무시하고 교회의 해석이나 교리를 무조건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사실성을 무시한 신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교회의 창세기 해석이 과학적 사실과 모순된다면, 과학적 사실을 선택하고 교회를 버린다. 우리에게 기독교를 전해준 서양 교회는 사실과 다른 천동설을 강요하면서 과학을 배척하다가 결국 유사과학인 진화론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에 빠져 있다.

 

결국 기독교가 현대사회에서 과학적 사실에 무지한 종교로 매도되거나 고사되지 않으려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이 자연에 계시되어 있으며,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법칙을 제대로 아는 지식이 없이 어떤 주의(主義) 또는 헛된 주장에 이끌려 남을 실족케 하는 자는, 그의 목에 연자 맷돌’(18:6)을 매다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사실에 맞는 창세기의 해석을 제시하기 위해서 기독교는 두 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 첫째 단계는 번역의 오류가 있는 성경을 읽으면서 발생하는 착오의 보정이다. 그런 착오는 원어 성경을 살펴보고 수정할 수 있다. 특히 창조 톨레도트의 정확한 번역과 납득할 수 있는 주석을 제공할 필요성이 가장 긴급하다. 둘째는 해석의 방법이나 상징 또는 비유가 사실에 비교하여 적절하지 않다면, 그 말이 쓰인 목적과 과정을 알아보면서 그것들을 성경의 전체적 흐름과 사실에 맞게 다시 해석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사실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이 아니다. 창세기 저자 모세는 창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창조 사건이 진행되는 각 단계를 자기의 눈으로 본 것처럼 서술했다. 창세기를 구성하는 모세의 서술은 현대인들의 과학적 지식과 괴리(乖離)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현대인들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창세기는 고대 근동지역에 전해지는 하나의 창조신화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창세기를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창조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동사와 모세의 서술적 동사, 그리고 모세의 서술하는 위치와 관점이 그때마다 달라지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세의 서술과 현대인들의 과학적 지식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에 대해 보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1:1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바라’(창조하다)는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1:2절은 모세가 공중에서 원시지구를 그의 눈으로 직접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때 이미 흑암에 싸여있었던 원시지구는 땅이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모세는 그 위에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모습도 보았다. 아직 모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1:3 첫날)과 숨쉴 수 있는 하늘(1:8 둘째 날)과 발 디딜 땅(1:9 셋째 날)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본 자가 없다. 성경에서는 저자가 보지 못했던 과거의 사건이나,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을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환상이나 꿈에서 보거나 듣고 서술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모세도 창조 톨레도트를 그렇게 서술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창세기를 읽는 과정에서 과거의 문자적 해석이나 전통적 창조론이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신학이나 창조론의 과제는 이제까지 현대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과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했던 과학은 사실성을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오류를 수정했다. 그 결과 현대과학과 첨단기술이 발전하였고, 거대한 구조의 현대문명이 만들어졌다. 현대문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현대과학의 업적과 사실성을 신뢰한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 과학적 사실성을 무시하고 교회의 해석이나 교리를 무조건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사실성을 무시한 신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교회의 창세기 해석이 과학적 사실과 모순된다면, 과학적 사실을 선택하고 교회를 버린다. 우리에게 기독교를 전해준 서양 교회는 사실과 다른 천동설을 강요하면서 과학을 배척하다가 결국 유사과학인 진화론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결국 기독교가 현대사회에서 과학적 사실에 무지한 종교로 매도되고 고사되지 않으려면, 기독교는 자연에 계시된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한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제대로 아는 지식이 없이 어떤 주의(主義) 또는 헛된 주장에 이끌려 남을 실족케 하는 자는, 그의 목에 연자 맷돌’(18:6)을 매다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사실에 맞는 창세기의 해석을 제시하기 위해서 기독교는 두 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 첫째 단계는 번역의 오류가 있는 성경을 읽으면서 발생하는 착오의 보정이다. 그런 착오는 원어 성경을 살펴보고 수정할 수 있다. 특히 창조 톨레도트의 정확한 번역과 납득할 수 있는 주석을 제공할 필요성이 가장 긴급하다. 둘째는 해석의 방법이나 상징 또는 비유가 사실에 비교하여 적절하지 않다면, 그 말이 쓰인 목적과 과정을 알아보면서 그것들을 성경의 전체적 흐름과 사실에 맞게 다시 해석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사실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