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유사 창조론의 비판적 이해

팀 켈러의 “창조, 진화, 그리고 그리스도인 평신도”에 대한 비판적 논평

heojohn 2023. 3. 19. 01:29

도입: 뭐가 문제인가?, 목사들과 사람들

 

이 글은 미국에서 복음주의 목사로 알려진 팀 켈러가 2009년 유신 진화론 지지 기관인 바이오로고스에 기고한  창조, 진화, 그리고 그리스도인 평신도라는 글을 읽고 논평한 것이다. 켈러는 그의 글을 시작하면서 정통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어떤 형태의 진화론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치된 한 가지 당연지사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성경을 믿기 위해 과학을 거부해야 한다면 성경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과학과 신앙이 조화될 수 없다는 견해가 엄청나게 과장된 그림이라고 주장한다. 켈러는 인간이 종교적 신념을 갖게 된 것이 진화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꽤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 철학자 피터 밴 인와건 Peter van Inwagen도 그와 같이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종교인이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켈러는 그리스도인 평신도들에게 과학이 말하는 창조와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 사이에 더 큰 일치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한다.

 

켈러는 먼저 정통 개신교인에게 과학이 말하는 진화가 안겨주는 네 가지 어려움을 말한다. 켈러는 그것이  성경의 권위(창세기 1장을 비문자적으로 읽어야 하는문제),  생물학(생물학적 과정의 진화)과 철학(리차드 도킨스 Richrd Dawkins처럼 철학적 질문까지 거의 모든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하는 진화)의 혼동,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아담과의 관계에서 온 우리의 죄성), 그리고  폭력과 악 문제(인간의 불순종과 타락이 가져온 폭력과 죽음의 고통)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켈러는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번째 폭력과 악 문제는 번째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 문제로 이어지므로 둘을 합쳐서 줄이고 세 가지 문제로 정리한다. 켈러는 이 세 가지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주석가, 성경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의 글을 참고했으나, 그의 글은 학문적 논증의 수준에 미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대중의 수준에 맞춘 목회자의 대답이라고 말한다. 켈러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목회자의 소명이라 믿는다. 여기서 켈러가 말하는 목회자의 소명은 기독교인들이 생물학(생물학적 과정의 진화)를 수용하게 만드는 일이다. 어쨌든 그의 세 가지 난점과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그의 글을 읽어보자. 켈러는 먼저 난점과 그것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그의 대중적인 수준에 맞춘 목회자의 보충적인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1. 진화는 창세기의 문자적 읽기와 조화될 수 있는가?

질문 1: 만약 하나님이 진화를 이용해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볼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문자적으로 볼 이유가 무엇인가?

: 성경 저자들의 권위를 존중하는 방법은 저자 본인들이 바라는 그대로 읽는 것이다. 문 자적으로 읽기를 바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지 우리 생각이나 관심사를 그들에게 덧씌워서는 안 된다.

 

논평:

장르와 저자의 의도, 장르와 창세기 1

켈러는 저자가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는지를 알려면 저자가 사용하는 장르를 알아서 문자적으로 읽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켈러는 사사기 4장과 5장을 비교하여 각각 역사적 산문과 드보라의 노래라고 장르를 설명하나. 켈러는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역사적 기록으로 보는 에드워드 영 Edwad Young을 빌려 고양된 준 시적 언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켈러는 고양된 준 시적 언어로 기록된 창세기 1장의 장르는 고양된 산문 서술로 인정되므로 문자주의적 해석을 본문에 덧씌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콜린스(C.J. Collins)를 인용한다. 그리고 켈러는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 창세기 1장의 창조 행위의 순서 2장과 다르게 자연적 순서를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1일의 빛과 제3일의 식물의 창조를 예시한다.

 

논평자는 켈러가 창세기 1-2장을 제대로 읽어 보고 그렇게 주장하는지 의심한다. 진화를 과학으로 보는 켈러가 창세기 1장과 2장을 논의한다면, 적어도 과학적 논증의 편린이라도 주장에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켈러가 창조를 논의하는 이 글에서 그런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논평자는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읽기는 먼저 문자(단어) 단위로 읽지 않고, 문장 단위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창세기 1장은 태초의 창조역사를 압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역사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면, 설명에서 빠진 부분이 많아지므로 해석의 공간이 넓어지게 된다. 그런데 켈러는 어떤 방법으로도 창 1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다. 장르가 어떻든 켈러가 예시한 창세기 1장의 자연적이지 아니한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창조 제1일의 빛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또한 문자적으로 물리적 빛으로만 해석할 이유도 없다. 여기서 빛의 문제는 성경 해석의 제1원칙인 성경적 해석으로 하면 된다. 요한복음 1장을 참고하면, 태초에 하나님과 말씀이요 빛이신 그가 함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 바 되었고 그가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했다. 태초부터 계신 그가 그때에도 성령과 함께 이 땅에 생태계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볼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태초부터 6일 창조 사역을 함께 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 영광으로 빛이 나타난다. 논평자는 창조 제1일의 빛을 요한복음 1장의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 바 되었던 그로 해석한다. 그가 흑암의 지구에 인간 창조에 앞서 생태계 창조를 위해 직접 임재하셨다는 말이다(논평자의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 참조).

 

식물 창조는 제3일에 하나님이 땅에게 식물을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이뤄졌다. 켈러는 빛과 비가 가능한 제4일의 대기가 있기 전에 식물의 창조는 자연의 순서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이 내라고 하신 히브리어 동사 타드쉐’(תַּדְשֵׁא)는 히필-미완료여성 3인칭 단수 동사 명령형이다. 미완료 동사는 일의 완료가 아니라,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 명려 동사는 전부 그렇다. 따라서 진화적인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땅은 먼저 식물의 씨를 만들고 뿌리와 싹을 나게 하는 자연적 순서로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이 진행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식물이 성체로 즉시 창조된 것으로 이해하는 켈러의 주장은 생물학적 지식이 전혀 결여된 것으로 보지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식물은 씨앗 상태로도 빛과 비가 없는 상당히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땅에게 만들어내라고 명령하신 조상 씨앗들이 물려준 유전적 특성이다.

 

켈러는 결론으로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읽지 않고, 2장의 창조 순서는 문자적으로 읽는 것을 제안한다. 혹시 극도로 희박한 가능성으로 그 반대의 읽기도 인정하지만, 어떤 경우든 둘 다를 역사적 사건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켈러는 창세기 1장이 6일 창조의 날 ’(יֹום) 24시간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본문에 충실하고 영감된 저자의 의미에 최대한 귀를 기울인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진화론을 수용하는 자의 보편적 견해를 나타내는 것이다. 켈러의 두 가지 결론은 진화론 수용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진화론의 일부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발판을 만드는 것이므로 논평자는 거부하는 입장에 선다.

 

그러나 6일 창조의 날을 24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주의 나이를 최대 1만년 이내로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진화론을 수용하지 않는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논평자는 켈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날들이 반드시 24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근거를 창세기 2:17과 시편 90:4에서 본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יֹום)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지만,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날에 죽지 않고, 930세 넘게 살다가 죽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시간을 이렇게 노래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90:4). 천년이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라면, 하루는 얼마나 긴 시간이 되는가? 구약성경의 이런 구절들과 베드로의 하루가 천년 같도”(벧후3:8) 등의 말은 하나님의 날과 인간의 날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성경적 창조론자 곧 문자주의적 창조론자를 자칭하는 자들이 현대에 와서도 진화론을 반박하는 대항이론으로 젊은 우주론 24시간 날을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미지만 조장할 뿐이다. 창조의 6일은 하나님이 이 땅의 생태계와 생명체를 6단계로 나누어 만드시던 동안 사용하신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해라고 본다.

 

2. 진화가 인간의 독특성을 약화시키는가?

질문 2: 만약 생물학적 진화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동물에 불과하며 우리와 관련된 것들도 전부 자연선택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인가?

: 아니다. 진화를 생물학적 과정으로 믿는 것은 진화를 세계관으로 믿는 것과 같지 않다.

 

논평:

켈러는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믿으면 앨비 플랜팅거 Alvin Plantinga 영속적 자연주의까지 자동적으로 믿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신 무신론(New Atheism)자의 신념과 같이 인간의 모든 본성이 무작위의 유전적 변이나 다른 다양성의 원천에서 생겨나서 자연선택 때문에 인류에게 널리 퍼진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켈러는 여기서 신 무신론자 샘 해리스 Sam Harris가 미국 국립보건원장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0llins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그런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말을 인용한다. 콜린스는 인간 생명이 생물학적 진화 과정’(‘생진과’)에서 형성되었다고 믿으면서도 거대한 진화이론’(‘거모이’)은 믿지 않는 기독교 신자들 단체 바이오로고스를 설립했다.

 

켈러는 신 무신론을 믿는 자들이 피터 버거 Peter Berger 개연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 사회에서 반대자들이 공적으로 개인이 의문을 제기할 수 없도록 사회적으로 도태시키려 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켈러는 여기서 특별창조론을 믿는 평신도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생진과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믿어도 거모이를 안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엩킨슨 David Atkinson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구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특별창조론을 믿는 평신도들과 생진과를 믿는 신자들이 신 무신론자들을 논박하고 몰아내야 한다는 공통적 과제를 제안한다. 그 제안에서 켈러가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 상태를 줄일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리스도인 평신도들에게 생진과 거모이를 구분하게 돕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더 강조한다. 켈러가 신 무신론자들을 몰아내는 일을 공통적 과제로 하자는 제안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생진과를 믿게 하려는 기회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음은 경계해야 한다. 켈러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더 늘어놓지만, 유명한 복음주의 설교자의 면모를 잃어버리고 만다.

 

3.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죄와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질문 3: 만약 생물학적 진화가 사실이고 역사적 아담과 하와가 없었다면 죄와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진화에 대한 신념은 역사적 타락 및 문자적 아담과 하와와 조화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답이 없는 질문이 많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관점에 열려 있어야 한다.

 

논평: 켈러는 먼저 앞의 두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질문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갔다고 시인한다. 첫째로 그는 창세기 1장을 문자적 기록으로 보지 않으며, 둘째로 생명이 생진과로 생겨났다고 믿는다고 해서 거모이 진화까지 믿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다. 셋째 질문에 대해 그는 생진과를 믿는 정통그리스도인 가운데 창세기 2장이 실제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도 부인하는 많은 사람들 뒤에 숨어서 설명한다. 켈러는 목사로서의 자신이 정통 그리스도인적 입장임을 강조하고자 분명하게 그가 (조금 약한 표현으로) 정말 좋아하는 유명한 기독교 작가 씨 에스 루이스도 그와 같은 관점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켈러는 그들을 앞에 내세우면서 다만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장기간에 걸친 교회의 성장 및 생명력에 대해 그가 염려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설명한다.

 

성경의 신뢰 가능성

켈러는 그의 첫째 염려를 설명한다. 켈러는 브루스 월키 Bruce Walke가 지적하듯이 시편 139-13 주께서......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라는 구절이 시편 저자가 자신이 완벽하게 생물학적 방식으로 발생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를 하나님이 정상적인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 비유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켈러는 이어서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 케네스 키친 Kenneth Kitchen이 주장하는 창세기 2-11장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많은 압축과 비유로 담은 고층 이야기라는 결론을 끌어온다. 켈러는 결국 톰 라이트 Tom Wright의 로마서 5장 주석에서 아담을 이해하는 바울의 관점을 인용하여 그의 대답을 결론짓는다. 톰 라이트는 바울이 아담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에 담긴 소위 신화적 또는 비유적 차원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이 역사적 첫 쌍의 존재와 최초의 죄를 의심하게 만든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여기서 켈러는 자기와 바울의 성경 이해의 방법에 차이가 없음을 내비치면서 자기는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읽기를 기대하지 않는 저자를 따라 문자 그대로 보지 않고 있으나, 바울은 다만 정말 확실하게 아담과 하와는 실존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가르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켈러가 쓴 글에 담긴 뜻은 그가 창세기는 저자를 따라 역사적으로 읽지 않지만, 톰 라이트가 쓴 로마서 주석에서 보듯이 창세기를 바울처럼 역사적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그런 변화가 올 경우에 켈러가 우려하는 것은 교회 전체에도 해롭고 평신도들 역시 분명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켈러는 결국 평신도를 속이는 목사가 아닌가? 켈러도 이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어지는 켈러의 설명을 들어보자.

 

죄와 구원

켈러의 두 번째 우려는 진화와 죄와 구원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켈러는 그것을 생진과로 풀어보려고 한다. 켈러는 문자적 아담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창세기 2장과 로마서 5장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켈러는 기독교적 용어를 사용하여 주장하면서도 그 말의 개념을 달리 사용하곤 한다. 켈러가 그런 말들을 사용하면서 주장하는 바는 그의 말대로 현대인에게는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켈러는 아간의 처형( 7)을 보기로 들고,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은 공동체와 가족의 환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대(federation), 언약(covenant), 유대(solidarity) 등의 관계를 맺으면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것의 혜택을 받아 작용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담과 언역 관계에 있어서 그가 역사에서 한 일이 우리 것이 됩니다고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와 바울의 가르침과 다르다. 켈러의 주장은 자칫 사이비 교단들에서 흔히 가르치는 집단 구원론처럼 오해되기 쉬운 견해이다. 그리스도와 바울은 각자의 믿음대로 받는 구원을 가르치셨다.

 

켈러는 역사적 아담이 없었다고 이해하면 아담 안에서 인류의 죄를 설명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은혜를 설명하는 기독교 교리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아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죄와 은혜가 다 언약적으로 작동한다는 바울의 논리 전체가 무너지고 맙니다고 지적한다. 켈러는 우리가 바울을 시대의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고, 오히려 아담에 대한 그의 기본적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다(You can’t say that ‘Paul was a man of his time’, but we can accept his basic teaching about Adam.)고 주장한다. 켈러는 엘런 제이콥 Alan Jacob 우리가 죄와 유선(hard-wired)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과 모든 인류가 똑 같이 죄성을 가졌다는 것이 전통적 관점의 토대라는 주장을 인용하면서 논의를 매듭짓고 만다.

 

모델 하나(아담 하와의 진화)

켈러는 먼저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 인물이라면 생진과의 산물일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한다. 켈러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데릭 키드너(Derek Kidner)의 오래된 창세기 주석 모델을 인용한다. 켈러에 의하면 키드너는 욥기 10:8-9와 창세기 2:7을 비교하여 하나님이 도공처럼 흙으로 아담과 욥의 몸을 지어냈다는 표현이 진화와 같은 자연적 과정을 의미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물었다. 켈러는 키드너의 진화와 같은 자연적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호모 파베르(homofaber: 도구 제작자, 오랜 지적 존재) 무리에서 선택하여 그의 형상을 불어넣고, 특별하게 하와를 창조하여 최초의 인간 쌍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확립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아담의 방계 사람들에게도 부여하셔서 동일한 존재 영역으로 불러들이셨다. 아담의 연대적 인류 대표성 그런 경우였다면, 안으로는 아담의 자손들에게, 바깥으로는 아담의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었으나, 아담의 불순종은 똑같이 둘 모두의 기득권을 박탈했다(and his disobedience disinherited both alike). 이 모델에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연속성도 있고, 성경이 말하는 불연속성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숨결을 입었다는 아담과의 유대 관계로 인해서 인간만이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 켈러는 키드너 모델의 접근법이 아담의 가족과 관련한 여러 가지 난제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켈러는 아담의 타락 전에 죄와 고통의 문제를 설명한다. 켈러는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어둠과 혼란을 창조(1:2)하신 하나님이 이것들을 6일의 창조적 과정을 통해 제압하셨다는 전통적 신학의 입장을 소개하고, 그때 사탄이 거기 있었으므로 완전한 창조가 될 수 없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와 관련한 각주에서는 창1:1-2에 대한 간극이론’(=간격이론)과 고든 웬햄(Gordon Wenham) 4가지 해석이 있음을 참고하라고 소개한다. 켈러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안 지을 수 있는(posse non peccare)’ 상태에서, ‘죄를 안 지을 수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상태로 떨어졌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을 인용한다. 그리고 구원의 마지막에는 논 포쎄 페카레(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지만, 어떤 이의 지적을 빌려 에덴동산에는 일종의 죽음과 부패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고 추정한다. 여기서 켈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아담과 하와가 조건부 불멸성을 받았을 수도 있고, 그 경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인간들은 아담이 타락하기까지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삶을 미리 맛보았을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 켈러는 어떤 관점을 취하든 하나님의 창조가 적어도 상당히 미개발 상태였고,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해 땅을 경작하고 개발하게 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켈러는 이 모델에서 타락의 문제를 설명한다. 타락의 결과는 영적 죽음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을 세상 누구도 몰랐던 까닭은 아무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켈러의 주장은 그만이 영적 죽음에서 부활했기 때문에, 아니면 오직 그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켈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청지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인간의 죄과를 논의하면서 더 큰 자연의 악이 인간의 도덕적 악과 결합되어 정말 어둡고 혼돈스러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창조주의 역할을 하는 자연의 악이 무엇인지도 켈러의 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런 의문을 남긴 채, 켈러는 새로워질 세상( 8:19-23)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본디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회복할 때만 그리될 것(고전 15:42-45)이라고 말하고 섷명을 끝낸다. 그러나 켈러가 이 모델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전통적 창세기 이해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다른 모델들과 결론

 

켈러는 이제껏 애써 설명하던 키드너 모델에 곁들여 유신진화론과 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의 두 가지 모델을 짧게 소개하고, 양쪽의 혼합이 키드너 모델이라고 지적한다. 켈러는 인류는 한 단위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아담 안에서 한 불순종의 행동으로 타락했다는 교리가 아주 명백하다는 키드너의 주장을 인용하여 매듭짓는다. 이는 키드너의 모델을 켈러가 사실상 지지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켈러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완벽한 매체라는 점은 참으로 중요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알렉산더 Denis Alexander의 주장을 끌어다 놓는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유신진화론자이다. 여기서 논평자는 알랙산더도 켈러도 성경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하지만, 그들의 성경 해석은 왜곡되어 있음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결론에서 켈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의 책으로서의 과학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양쪽을 조화하고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켈러의 양쪽을 조화하려는 노력은 그리스도인들이 반과학적 종교인이나 반종교적 과학자들보다 더 큰 텐트(bigger ten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켈러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창조 과정에서 생진과를 사용하셨다는 데릭 키드너의 모델을 믿을 수 있게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켈러는 키드너가 그의 견해에 대해 탐색적 제안으로...,.. 잠정적일 뿐이며,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교정과 더 나은 종합이 있기 바란다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키드너의 태도가 올바른 태도라고 결론을 맺는다. 여기서 논평자는 켈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조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에는 긍정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유사과학에 불과한 진화론의 한 부분인 생진과를 하나님의 창조에 적용하려는 주장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팀 켈러의 성경 해석 및 주장의 비교 설명표

 

[창세기 해석]

1. 팀 켈러의 창세기 해석은 데릭 키드너의 주석에 따르는 모델이다.

2. 그의 모델은 유신진화론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을 혼합하여 조화시키고자 한다.

주제별 해석 창조론적 관점 팀켈러의 관점 ()신 진화론적 관점
창세기 1









창세기: 역사적 기록
-문자적 읽기

문자적 읽기 불인정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읽기
-시적 장르
-2장과도 다르다
문자적 읽기 불인정
-다윈의 Creator(불인정) -빅뱅(양자요동, 다중우주론)
-진화: 단순계에서 복잡계로

2: 무질서에서(혼동, 공허) 질서로(성령) 불완전한 창조 Creator 진화적 방법 사용(불인정)
창조 624시간
’(미국 장로교단 4가지 견해 인정)
긴 시간 창조(24시간 부인) 긴 시간 진화(물리적 시간)
1일 빛, 3일 식물 창조



자연적 순서 아님:
-창세기 1장이 역사적 기록 아닌 증거

태양의 빛: 우주 진화
식물: 다윈의 Creator가 창조한 최초 생명체 1개 또는 몇 개에서 진화(불인정)
사람 창조목적(1:26)
-땅 정복, 생물 통치



아담 타락 이후에도 사람의
할 일(하나님과 공동으로)



사람의 공통조상
-현대인을 넘어서도 진화 계속

하나님의 형상(1:26) 인정
-2장의 아담에게 주입한 것으로

불인정: 적응에서 진화적 발현

사람 창조(1:26-27) 생물 분류학의 ‘hominid’(사람과)까지 진화 인정 불인정: 진화적 적응으로 발현

선한 창조 인정
-사탄의 존재: 불인정

불완전한 창조
-혼돈, 무질서
-사탄의 존재도 추정

불인정: 전부 진화적 적응에서 발현(불인정: 신도 사탄도 허상)

아담 타락 이전의 죽음과 고통 불인정



긴 시간 진화적 창조 과정에서 발생



긴 시간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 인정



창세기 2 천지창조의 톨레도트로 인정





불인정: 별개의 다른 기사로인정
- 특히 아담에 관련한 해석이 다르다

불인정

아담: 흙으로 만들어서 코에 생기(그의 형상) 주입 하나님이 사람과에서 선택하여 그의 형상을 주입 최초의 생명체에서 진화-사람의 남성 공통조상

하와
-하나님이 특별 창조,
-아담의 짝으로 만들어짐
인정 최초의 생명체에서 진화
-사람의 여자 공통조상호
아담의 대표성
- 인류의 조상
-
아담, 인류의 조상 불인정
-아담의 동시대 사람과에게 하나님 형상 부여 (사람속 집단)
-그들의 연합. 연대 등에 의한 대표(공통조상 아님)
사람과에서 사람속으로 진화(공통조상)
-homo-하빌러스 엘렉투스...사피언스
아담의 후손
-(원인류: 原人類)의 한 집단



-아담과 동일 존재 영역에서 사람과’ family

불인정




창세기 3
아담의 타락(원죄)
-선악과 언약 불복종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인정
-육체의 죽음 아닌 영적 죽음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서 아무도 몰랐다.
불인정

영적 죽음: 불인정,

-하나님은 언약과 달리 선악과를 먹은 날아담을 죽이지 않았다
-아간의 가족은 즉시 죽였다

불인정



원죄
-아담의 자손에게 유전
아담의 대표성에 의한 공동 범죄 책임(아간의 가족처럼) 진화적 적응에 의한 죄의식 발현(불인정)
창세기 4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 성경에 없는 난제 난제 해결 불인정
가인성을 쌓은 사람들: 성경에 없는 난제

난제 해결 불인정

 

3. 켈러의 모델에서 특징은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 창조에 생물학적 진화과정’(줄여서 생진과)의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그때까지 진화해온 사람과’(huminid) 무리에서 선택하여 하나님의 형상 을 주입해서 만들었다.

아담의 짝으로 하와를 특별 창조하심

동시대 사람과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고, 아담과 하와의 쌍이 그들을 연합하는 대표자로 정하심

하나님은 그들의 대표자 아담의 선악과를 먹은 범죄를 모두의 공동 책임으로 인정하심

하나님이 심판하신 원죄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유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유대적 표현)

따라서 원죄로 인한 아담의 죽음은 다만 영적 죽음이다.

 

[신약성경의 해석]

1. 켈러는 신약성경을 역사적 기록으로 인정한다.

2. 바울의 로마서 5장의 가르침에 따라 인류를 원죄에 빠뜨린 아담을 첫 사람으로 믿고, 그의 타락으로 인한 원죄를 인정해야 한다.

3. 원죄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약성경 저자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켈러의 주장]

1. 켈러는 현대의 개연성 구조사회에서 진화론을 거의 모든 것의 이론으로 믿는 무신 진화론 세계관(거모이)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위협이 점점 심해진다.

2. 그리스도인은 개혁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생진과를 수용해야 한다.

3. 개혁교회는 빅 텐트를 설치해서 유신진화론 진영과 손잡고, 공동의 적인 무신진화론 세계관 진영을 몰아내자고 제안한다.

 

[문제점 비판]

창세기를 기독교 세계관의 범위 안에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새로 쓴 그의 창세기를 해석하는 것 같다.

생진과를 수용해도 거모이를 수용하지 않는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개혁교회가 무신진화론을 몰아내려고 유신진화론과 손잡고 빅 텐트를 설치하는 것이 자칫하면 교회 전체를 유신진화론 진영에게 내주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논평: (알파와 오메가 창조론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