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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무신론의 시발점’으로서『공산당 선언』에 대한 비판

heojohn 2020. 3. 31. 22:37

 

목차

 

. 서론

. 마르크스의 초기 유물론적 공산주의 운동

1. 공산당 선언의 배경

2. 초기 공산주의 운동

.공산당 선언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문제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의 관계

3. 사회주의공산주의 문헌

.공산당 선언에 대한 비판

. 결론

 

. 서론

 

과학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과학의 방법을 적용하려고 덤빈다. 과학은 물질의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왜냐하면 실험을 통해서 입증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입증에 성공한 것은 과학으로 살아남고 실패한 것은 폐기되고 만다. 그런데 불순한 목적을 가진 자들은 거짓 이론을 실험에 성공한 것처럼 과학적 사실로 주장한다. ‘과학적 무신론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과학적 실수가 아니라 비양심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의도된 거짓말이다. 문제는 이런 일에 일반인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과학주의 시대로 일컬어지고 있는 현대가 사실보다 거짓말이 오히려 판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좁은 의미로는 다윈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뜻한다. 과학적인 연구를 함에 있어서 순수하게 자연을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방법적으로 신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을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앞의 것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에서의 과학적 무신론은 다윈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총칭하거나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단순히 마르크스(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엥겔스도 포함된다)와 레닌의 주장들을 합쳐놓은 것뿐만이 아니라, 이것을 바탕으로 후대의 추종자들이 확장해놓은 이론들도 포함된다.

 

이 논문은 과학적 무신론에 의문을 가지고 그 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 대해 간략하게 검증하고 비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무신론 철학자 러셀은 어떤 일에 대해서 ?’라는 의문이 생기면, 그것이 일어난 역사적 조건과 환경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 ?’라는 의문을 가지고 역사를 추적해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 시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발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공산주의 유물론에 접목하여 유물진화론적인 과학적 무신론의 원형을 만들었고, 레닌이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이것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과학적 무신론을 그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오파린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화학적 진화론인 생명의 기원을 저술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을 완성했다.

 

기독교를 반대하면서 인간에게는 신이 필요 없다는 철학을 주장했던 무신론자 러셀은 1920년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를 방문했었다. 그는 같은 무신론자 레닌을 만나보고 나서는 그를 혹평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는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사회혁명에 대해, “계급의 분열은 해소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아득한 이상으로 (신의) 재림(再臨)과 비슷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공산주의 이상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재림을 말하는 것과 같이 허황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공산주의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유신론적 종교인들은 러셀의 입장과 같이 오불관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서는 힘이 자라는 데까지 애써 비판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며, 사람들을 속이는 적그리스도의 거짓 이론이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의 초기 유물론적 공산주의 운동

 

1. 공산당 선언의 배경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기독교적 공산주의 또는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이 논의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게 되자 사회주의 사상은 우주의 사물은 오직 물질이며 인류사회의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변화한다는 유물론적 공산주의로 변하게 되었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1841)로 박사학위를 받은 마르크스는 라인신문을 운영하다 추방되어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불연보를 발간하면서 헤겔철학을 연구하던 마르크스는 엥겔스를 만나 사상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평생 동지가 된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철학에 경제학을 접목하는 경제학-철학 초고(1844)를 발표했으나 다시 브뤼셀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최후의 철학적 무신론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에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개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포이어바흐 역시 자연물로서의 주체적 인간이 대상으로서의 현실에서, 그것을 보고 느끼고, 역사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에 바탕을 두는 관점은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철학에서 관념론적인 것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리고 엥겔스와 공동으로 저술한 신성가족(1845)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지 신이 종교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일 이데올로기(1845)에서는 독일 관념론 철학을 비판하면서 그는 앞으로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철학을 전개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드디어 18482월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은 엥겔스가 기독교 교리문답 형식으로 적어둔 25개 조항의 공산주의의 원리(원제: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제조건에 관한 학설)”(1843)를 기초로 하였다. 이것은 독일 망명 노동자 그룹인 의인동맹공산주의자 동맹으로 전환하면서 강령으로 선포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마르크스·엥겔스 자신들이 꿈꾸던 공산주의 사회를 현실세계에 세워보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무신론적 공산주의 유물론이 처음으로 역사적 모습을 드러냈다.

 

2. 초기 공산주의 운동

 

이 무렵 유럽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되어 파리와 독일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에 직접 참가했다. 그러나 혁명운동이 모두 실패하자 두 사람은 1849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이들은 죽을 때까지 영국에 눌러 살면서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공산주의 이론을 연구하고 저술하고 출판하면서 공산주의 정치활동을 지도했다. 대륙에서의 혁명운동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국민의회가 성립(1848. 5.)하고, 프랑스에서는 파리코뮌을 거쳐 제2공화국이 출범(1848. 12.)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독일에서는 통일 독일을 위한 헌법을 만들어졌다(1949. 3). 사회주의 혁명운동은 대륙에서 이렇게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런던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장 먼저 성공할 수 있는 국가는 산업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영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혁명의 폭풍이 도버 해협을 건너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풍은 대륙에서 곧 진압되어 삭으라들고 말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초기 저작인 공산당 선언은 전술한 바와 같이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 철학과 포이어바흐의 철저한 반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다 프랑스의 기계적 유물론과 영국 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접목하고 산업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프랑스혁명(1789)의 역사적 실패 경험을 첨가해서 정치적 강령으로 완성한 것이다.. 마르크스를 연구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사회의 원형을 초기 기독교적 재산공동체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의 아버지가 유대교 랍비(후에 개신교로 개종했지만)였다는 사실과 그가 고등학교에서 성경과목 레포트의 성적이 좋았던 사실을 근거로 나온 허구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공산주의적 이상은 마르크스의 이론에서보다 영국 헨리 8(Henry VIII, 1491-1547, 재위 1509-1547) 치하에서 국교회 설립에 반대하다가 처형된 로마가톨릭교회의 순교자 토마스 모어(Sir Thomas More, 1477-1535)경이 쓴 유토피아, Utopia에서 보다 잘 나타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고 공산당선 선언에서도 비판했으나, 역사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 그의 공산주의 사회이론 역시 유토피아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들이 이상으로 삼았던 재산공동체 제도는 사유재산권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었다. 또한 마르크스 이전과 동시대에도 사회주의적 재산공동체 이론들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 공산주의가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 이론이 되었다.

 

유물론적 공산주의 사상에서 보면, 인간은 물질적 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적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생활에서 그의 욕구의 결과물, 즉 관념과 표상과 의식작용 등의 정신적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인간의 물질적 생활이 발전하여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이 분담되면, 상부구조 차원의 정신적 생산물인 종교, 도덕, 법률, 정치와 철학 등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 발전에 따라서 인간의 물질적 하부 토대가 정신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적 생활인 실천과정에서 인간의 소외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에서 제시한 논쟁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특별히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당시 대영제국이 선도하는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노동자에게 나타나는 물질적 소외, 즉 경제적 빈곤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문제를 공산당 선언에 담아 철학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을 위한 테제로 끌고 갔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방법론까지 제시했으며, 그들 자신이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소외에서 해방되고 물질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과 행동에 따르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최종 목표로 제시한 것은 인간사회에서 모든 소외가 사라진 뒤에 실현될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사회였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별로 주목하지도 않았다.

 

. 공산당 선언

 

하나의 유령-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 이 유령을 격퇴하기 위하여교황과 짜르(러시아 황제), 메테르니히(Metternich: 오스트리아 정치가) 와 기조(Guizot: 프랑스 정치가),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 스파이 등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은 신성동맹을 맺었다.” 이렇게 시작하는공산당 선언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문제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이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명한 바 있다. 당시 마르크스는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를 절망이나 반항으로 이끌어가는 소외문제를 주목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외의 피해자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원인 제공자인 부르주아 계급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혁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은 인간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발전을 연구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서 역사적 합법칙성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또는 유물사관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생산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생산 노동자의 생산력을 착취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이 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그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대립관계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투쟁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폭력적 투쟁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혁명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이것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벌어질 계급투쟁의 변증법적 법칙이다. 부르주아지로부터 생산수단을 몰수하기 위해서 이제는 프롤레타리아가 정치적 지배계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현실적인 목적은 여기에 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런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을 고취하기 위한 선동에는 이렇게 주장하는 부분도 있다. “요즘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公的)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겹겹의 상부구조 전체를 폭파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허리를 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현대 산업의 발전에서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양자에게 똑같이 불가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탐욕적 무한경쟁에 의해 점점 소수가 되는 반면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다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의 관계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당들과 대립하는 별도의 당을 결성하지 않고, 또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와 별도로 분리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이것은 공산주의자에게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성공을 위해서 분파적 이해(利害)를 버릴 것과 국제적 보편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선언이다. 그러나 사실상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 사회의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정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할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나, 1852년에 마르크스에 의해서 정식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선언에서도 이 개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다른 프롤레타리아 당들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주아지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는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부르주아지 사회에서의 부르주아적 개성, 부르주아적 독립성, 부르주아적 자유의 폐지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적인 것들로 대치시키려고 한다. 또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은 개인의 게으름을 조장하고 사회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개인은 일소되어야 하고, 사유재산은 폐지되어야 한다. 공산주의 사회는 나아가서 가족제도를 폐지하면서 나라와 아이들의 가정교육을 사회교육으로 바꾸고, 교육과 여성도 사회적 공유제도 아래 두자고 주장한다. 나아가서는 나라와 국적까지 폐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사회 제도를 모조리 폐지할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사회는 이제까지의 영원한 진리, 모든 종교나 도덕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구성하는 대신에 폐기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반대로 행동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반역사적이고 반동적인 사상은 인류 역사에서 비인간적인 독재자 몇 명이 발상했던 적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성공한 예는 없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10개의 테제를 실천할 것을 구체적으로 다시 제안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에 의하면, 이러한 조치가 성공적으로 시행된 이후에는 부르주아 사회가 몰락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된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계급적 차별이 없어지고......공권력은 정치적 성격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한 계급으로서 가지는 자신의 지배권도 폐지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조차 폐지될 것이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3. 사회주의공산주의 문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과학적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이전의 모든 사회주의를 열거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1) 반동적 사회주의(Reacionary Socialism)

 

(1) 봉건적 사회주의(Feudal Socialism)는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들이 그들에게서 지배계급의 지위를 빼앗아간 부르주아지를 문서적으로만 비난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지지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목사가 영주와 손잡고 나아갔듯이 성직자 사회주의(Clerical Socialism)는 봉건적 사회주이와 손잡았다.” 그리고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는 기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의 색채를 가미한 것이며,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잡고 귀족의 울화에 대해 뿌려주는 성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시스몽디(Sismondi)의 쁘티 부르주아 사회주의(Petty-bourgeois Socialism)는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한 상태로 만든 것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상품경제를 이상화함으로써 올바른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3)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사회주의가 스스로 진정한”(true) 사회주의를 자처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문헌적인 이론만 있지 실천이 없는 독일 사회주의는 아무런 의의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2) 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적 부르주아철학자이며, 무정부주의자이며, 철학의 빈곤을 저술한 프루동(Prodhon, 1809-1865)공산당 선언에서뿐만 아니라, 프루동의 책 이름을 거꾸로 쓴 빈곤의 철학을 출판하면서까지 가혹하게 비판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적 독재 권력을 쟁취하는 혁명을 통해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달리, 프루동은 자본주의의 지속적 유지에 기초한 행정개혁을 주장하는 보수적 사회주의(Conservative Socialism) 또는 부르주아지 사회주의(Bourgeois Socislism)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공산주의(Critical-Utopian Socialism

and Communism)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투쟁이 아직 발전되지 못했던 초기에 생시몽(Saint-Simon), 푸리에(Fourier), 오웬(Owen) 등이 세웠던 본래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체계는 당시에는 혁명적인 것으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나타난 추종자들은 반동적 종파를 형성하는 오류에 빠졌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최초의 투쟁이 발생한 뒤에 공상적 사회주의는 전반적인 금욕주의와 평등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사회과학, 새로운 사회법칙에 의한 공산주의가 태어날 수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바로 그런 새로운 공산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이다.

 

결국 공산주의 사회와 다른 사회주의 사회의 차이는 이렇다. 사회주의 사회는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 자신의 성과에 따라 받는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는 각자 자신의 능력(형편)에 따라 일하고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받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등장했던 공산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을 보여주었다.

 

4)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는 당면 목표의 달성을 위해, 노동계급의 당면한 이익을 위해각국의 현실적 조건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선언한다. 또한 공산주의자는 독일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있지만,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와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에서 혁명을 고취하는 말을 이렇게 선포한다.

 

지배계급을 공산주의자의 혁명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사슬밖에 잃을 것이 없으며 얻을 수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의해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부르주아지의 모든 재산은 만인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쓸 수 있는 공동의 것이 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이런 사회를 촉진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는 만민이 평등하게 소유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공산사회가 실현되는 것이다. 현실성을 배제하고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각자 개성을 가진 인간들로 이런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전지전능한 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이런 사회가 변증법적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신의 개입 없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주장한 것이다.

 

. 공산당 선언에 대한 비판

 

앞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공산당 선언은 인류 사회역사를 유물론적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산주의 사회로의 발전은 필연적이라고 예언하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든 진리와 종교와 철학적 사상들을 폐기하고 유일하게 남게 될 공산주의 종교에서 예언자로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신이 없는 공산주의 종교에서 예언자는 그 자신이 교주가 되어 최고의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언은 실현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아닌 예언은 오류이므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후에 계속 수정되었지만,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핵심사상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을 정당화하는 계급투쟁이다. 마르크스는 이후에 공산당 선언의 이론적 체계화에 힘을 쏟아 자본론을 쓰고 계급투쟁의 원인이 되는 잉여가치론을 발견했을 뿐이다. 엥겔스 역시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타난 생물학적 진화론을 끌어들여 공산주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위장하기 위하여반듀링론을 썼다.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못 다 쓴 자본론2권과 3권을 완성하는데 주력했었다. 그러므로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예언의 바탕인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비판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한 계급투쟁은 인류역사의 원시시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생산관계가 이 투쟁의 원인을 만들고 또 이끌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다수의 피지배계금을 거느렸다. 봉건제도를 무너뜨린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는 지배적 부르주아와 피지배적 프롤레타리아로 계급형태가 바뀐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에서 승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 점차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마침내는 유토피아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그의 예언에 의하면 부르주아 사회가 필연적으로 붕괴되는 이유는 탐욕적인 부르주아가 점점 자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기계화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임금을 착취하는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점점 다수가 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해고의 위협과 착취에 대항해서 소수의 부르주아지와 계급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필연적이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제도가 전적으로 부르주아지 독재에 의해 지배되고 부르주아지가 전혀 견제를 받지 않는다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체적으로 부르주아의 탐욕을 견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절제의 윤리와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정신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11표제의 민주적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국민의 대표들이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자본가의 일방적인 탐욕을 견제하는 법제를 만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적한 내재적 모순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능력과 제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체적 해결 능력을 간과하여 아예 자본주의 사회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하기 때문에 계급투쟁과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침내 계급은 물론 국가마저 없어지게 할 것이라는 예언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했던 국가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반동으로 몰아 숙청, 처형, 강제수용소 수용 등 비인간적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이와 반대로 나타났다. 공산당 선언이 오류였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당 선언의 오류의 원인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그의 자본론1권에서 계급투쟁의 원인이 되는 부르주아의 착취가 C(투하자본= c+v)C(생산물 가치=c+v+s)로 가치가 증식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식화하고 있다. 여기서 본래의 투하자본은 C이다. C는 원재료(c)와 임금(v)뿐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물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이 투입된 시간의 임금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원래의 생산물 가치는 투입된 원재료와 생산자의 노동시간에 지급한 임금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이것을 C로 값을 매겨서 판매한다. C에는 잉여가치 s가 덧붙여져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C’의 구성요소인 잉여가치(s)는 원재료(c)에 아무리 많이 투자(C)해도 그것만으로는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v)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v)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잉여가치(s)가 노동을 제공한 프롤레타리아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잉여가치를 발견한 것이 마르크스의 최대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이 프롤레타리아에게서 계급투쟁의 동력을 유발하는 것도 바로 잉여가치착취설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만으로 생겨나는 것인가? 마르크스 이론에 의해서 잉여가치를 공식화하면, s=C-C(c+v) 가 된다. 말하자면 잉여가치는 투하자본에 덧붙여진 것이지, 원재료에 노동을 더하는 것만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주장은 원재료에 투하된 자본을 무시하고, 노동만을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단면적 사고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v)이 적절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양쪽의 입장을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논의해보겠다. 여기서 노동자는 먼저 임금(v)으로 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잉여가치(s)를 전적으로 노동자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임금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원재료와 임금을 투하자본(C)으로 제공한 자본가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노동자가 임금이라는 보상이 없다면 노동을 하지 않듯이, 자본가도 잉여가치라는 보상이 없다면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가 일할 곳도 받아야 할 임금도 없다. 아무도 일하지 못하는 사회, 다시 말해서 아무도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과연 공멸하지 않고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해서 공산당이 집권했던 국가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자본가 역할을 했던 국가가 스스로 붕괴하거나 공산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방법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실이 그 답을 제공한다. 이런 사실은 곧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무오류의 신적인 권위로 했던 예언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결론

 

이 논문에서는 과학적 무신론의 시발점이 되는 공산당 선언을 살펴보고, 핵심적 내용인 계급투쟁과 그것의 토대인 잉여가치에 대한 착취설을 비판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제까지의 영원한 진리, 모든 종교나 도덕폐기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반대로 행동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에게는 공산주의만이 인간사회에서 유일사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는 공산주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종교(특히 기독교)는 천국이라는 아편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의지를 마비시키는 것이고, 도덕은 혁명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공산당 선언은 이론적 철학사상이나 허구적 소설이 아니라, 실천적 추진력을 가진 정치적 집단의 실천적 강령이었다. 그래서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가 거꾸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에서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Pol Pot, 1925-1998)에 의하여 저질러진 킬링 필드사건이 있다. 폴 포트는 크메르 루지(캄보디아 공산당)를 이끌고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1975년부터 축출된 1979년까지 불과 4년 동안에 당시 인구 약 800만 명 가운데 약 200-300만 명(UN 추정)의 국민을 희생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 선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거짓 이론으로 밝혀졌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물론 현대에서도 그들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은 거짓 이론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정치적 음모가들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혁명의 동력을 얻기 위하여, 러셀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아득한 이상으로 (신의) 재림(再臨)과 비슷한 것을 제시하면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선동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산주의 혁명운동에 나서라고 허위 선전으로 프롤레타리아를 격동(激動)하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헛된 이상, 즉 과학적 무신론에 현혹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진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각지에서 숱한 희생자만 남기고 실패의 역사로 평가된 것이다. 그것의 시발점은 바로 공산주의의 경전 공산당 선언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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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평화연구원총서 7.

 

허정윤. “과학적 무신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박사학위논문: 평택대학교, 2014.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lies in researching and criticizing about the Communist Manifesto. Marx and Engels declared to abolish eternal truths, all religion, and all morality instead of constructing them, on the new basis of the Communist Manifesto in 1848. This conception was developed to the prototype of the scientific atheism, being painted with a color of science atheistically in their later writings by accepting Darwinism. Anyway the system of the scientific atheism is a theory of spontaneous generation or evolutionism which consists of materialistic evolutionism of Marx-Engels-Lenin-Stalin, Darwin's biological evolutionism and Oparin's chemical evolutionism. Even though the scientific atheism look,s as if it had a consistent system, it is truly a false theory. The Communist Manifesto stands at the starting point of the scientific athe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