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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무신론의 형성 과정에 관한 소고

heojohn 2020. 3. 31. 22:27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진화론의 결합 과정을 중심으로

 

  목 차

 

. 서론

 

.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다윈의 진화론의 만남

1.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종의 기원독서

2. 자본론 Ⅰ』에 나타난 다윈의 영향

 

. 엥겔스의 반듀링론등과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1. 반듀링론

1) 저술의 목적과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2) 유물론에서의 생명

3) 적자생존 또는 생존경쟁에 대하여

4) 진화와 유전, 그리고 원시생물에 대하여

5) 생명의 기원 및 변화의 원리에 대하여

6) 세포와 감각에 대하여

7) 생명관에 대하여

2. 자연변증법등에서

3.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의 배경

 

. 결 론

 

1. 서론

 

누구나 알다시피 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1883)와 프레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의 공산주의 유물사관은 철저하게 무신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그의 종의 기원마지막 구절에서, 최초의 생명체는 조물주에 의해 한 개 또는 몇 개쯤만들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다윈이 유신론자이니, 불가지론자이니, 혹은 무신론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윈의 생존시에 다윈과 가까웠던 사람들도 다윈의 견해를 두고 말들이 엇갈렸다. 그러나 다윈 자신은 자신의 견해를 불가지론자라고 말하면서도 분명히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성경적 창조 사건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그가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딱 부러지게 무신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가 남긴 저작들의 전체적인 문맥에서 보면, 다윈은 이신론자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이즈음에 진화론을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기독교계에서는 대부분 이신론적 입장인 유신진화론을 주장하고, 이외에 일반사회에서나 과학계에서는 대부분 무신론을 주장한다. 기독교계에서는 성경 대신에 다윈의 종의 기원을 택했고, 일반사회나 과학계에서는 다윈을 넘어 무신론으로 나아간 것이다.

 

진화론을 논의할 때 다윈이 다루지 못한 생명의 기원을 화학적 이론으로 설명한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진화론은 태초에 물질적 우주의 형성이 빅뱅에서 시작된 것으로부터 본다. 오파린은 철저하게 유물사관에 입각해서 그의 진화론을 진술하고 있다. 그의 유물론적인 견해에 의하면, 물질은 변증법적으로 발전 곧 진화하는 것이다. 오파린의 화학 진화론은 외견상으로는 다윈의 종의 진화론에서 빠진 부분 즉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부분을 완전하게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오파린의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공산주의 유물론의 토양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오파린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무신론자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진화론과 유물론 사상이 이렇게 네 사람에 의하여 결합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유물론이 지난 세기에 세계적으로 기세를 떨쳤던 과정에서 과학적 무신론은 현대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공산주의가 퇴조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순수한 다윈주의자조차 저도 모르게 무신론의 영향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 사상들의 역사적 결합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유물사관과 진화론의 결합 과정에 대한 고찰을 수행하고자 한다.

 

.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다윈의 진화론의 만남

 

1.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종의 기원독서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진화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엥겔스가 1859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종의 기원독서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엥겔스는 곧 이 책을 읽었고, 바로 마르크스에게 추천하는 편지를 썼다. 마르크스 평전에서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엥겔스는 즉각 이 책을 읽고서 거기에서 진화의 감각을 발견하고 매료되었다.

그는 그것에 관해 마르크스에게 열정적으로 얘기하면서 다윈도 그들 편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다윈도 그들처럼 인류에 관해 일종의 비종교적 역사를 믿고

있으며, 시장이 강요하는 경쟁과 모든 것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엥겔스는 그를 꼭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은 서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편지를 받고도 그의 권유를 즉각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다윈의 책을 읽어보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고 나서 그는 세계를 하나의 계통으로 생각하는 다윈에게서 역사를 보는 방식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경쟁의 법칙과 다윈이 세상에 내놓은 자연도태설 사이의 유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엥겔스에게 바로 편지를 보내서 돈을 구걸하는 내용과 함께 다윈이 동물들과 식물들을 통해 영국 사회의 특징인 분업과 경쟁, 시장 개방, 혁신, 생존을 위한 투쟁 등을 발견한 것에 대해 나는 놀랐네라고 썼다. 이 말은 곧 생물학에서 생겨난 다윈의 진화론이 마르크스에 의하여 과학적 사회주의 유물사관에 이식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로 인하여 열정이 다시 살아난 마르크스는 1년 이상 중지하고 있던 집필을 다시 시작했다. 1862년 가을 마르크스는 다윈의 영국 불독으로 부르는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의 자연도태설에 관한 강연회 시리즈에 참석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그의 강의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다윈에게 가까이할 생각을 하였다. 다윈은 그의 집에서 32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앞으로 출판되는 자신의 책들을 헌정하겠다고 제의하는 등 호감을 표시했으나, 다윈은 공산당 선언을 기초한 자가 내미는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다윈의 종의기원을 열심히 읽었던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1862)에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정신 현상학에서 부르주아 사회를 정신적인 동물의 왕국이라고 묘사했지만, 다윈은 동물의 왕국을 부르주아 사회로 묘사했다고 써놓고 있다.

 

2. 자본론 Ⅰ』에 나타난 다윈의 영향

 

1867자본론 I초판이 출간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한 권을 보내면서 자신을 충심의 숭배자라고 쓴 편지를 함께 보냈다. 그러나 다윈은 그 책을 읽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잘 받았다고 답신을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끝냈다. 다윈이 1882년에 죽은 뒤에 마르크스가 보낸 자본론 I초판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전체 802페이지 가운데 앞의 104페이지까지만 페이퍼 나이프로 잘려 있었고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이것은 이 책 후반부에서 마르크스가 다윈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다윈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I에서 노동자의 도구를 기능과 목적에 적합하게 개량하는 것에 대해서 다윈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윈은 그의 획기적인 저서 ()의 기원(起源)에서 동식물의 자연적

기관(器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일한 기관이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하나의 특수한 목적에만 봉사해야 하는

경우에 비해 자연도태가 형태상의 작은 변이(變異)를 덜 세밀하게 보존

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그 기관은 변하기 쉽다. 예컨대 여러 가지

물건을 베는데 쓰이는 칼은 거의 온갖 형태를 가질 수 있으나, 어떤 한

가지 용도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특수한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기계에 대해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하면서, 기계의 발달을 논의한다. 여기서 그는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된 존 왓트(John Wyatt)의 방적기의 발명(1735)을 언급하면서, 인류의 기술사’(技術史)에 대한 저술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기술사에 대해서는 다윈(Darwin)이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연의 기술 형성사로서 저술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자본론 I은 공산주의 유물사관으로서 인간사회의 생산적 기관의 형성사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양자의 관계를 각주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마르크스 유물론의 핵심 개념이 잘 나타나 있으므로 각주 전문을 인용해보겠다.

 

다윈(Darwin)은 자연의 기술사 [, 생명의 유지를 위해 생산도구의 역할을 하는

동식물의 기관(器官)들의 형성]에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인간사회의 생산적 기관의

형성사 [, 모든 사회조직의 물질적 기초가 되고 있는 기관의 형성사]에도 그와 동일한

주의를 돌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더 용이하게 저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비코(Vico)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자연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학(技術學)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산과정을 밝혀주는 동시에, 인간생활의 사회적 관계들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관념들의 형성과정을 밝혀준다. 이 물질적 기초를 사상(捨象)하고 있는 모든 종교사

(宗敎史)는 무비판적이다. 안개처럼 몽롱한 종교적 현상의 현세적 핵심을 분석에 의해

발견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관계들로부터 그것들의 천국형태(天國形態)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일이다. 후자의 방법이 유일하게 유물론적(唯物論的),

따라서 유일하게 과학적(科學的)인 방법이다.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 역사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유물론)의 결합은, 그 대변자들이 일단 자기의 전문영역

밖으로 나왔을 때에 발표하는 추상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에서 곧 드러난다.

 

이렇게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다윈의 진화론이 이식된 배후에는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쓴 과학적 논술에 감동을 받은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권유했고, 마르크스 자신이 또한 다윈을 열렬히 받아들인 사실이 감추어져 있었다.

 

. 엥겔스의 반듀링론등과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1. 반듀링론

 

1) 저술의 목적과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

 

그렇지만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다윈의 진화론이 강철 같이 일체로 결합하게 된 것은 엥겔스가 반듀링론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유물사관에 끌어들인 작업을 한 것이 더욱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말하는 오이겐 듀링(Eugen Duhring, 1833-1921)은 베를린대학의 과학교수로서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반대파였으며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듀링은 그의 유물론 사상체계를 서술하는 논문들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1을 강하게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사관 이론의 든든한 토대로 삼고 있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진화론까지 공격하였다. 이러한 듀링을 상대로 엥겔스가 반박 논문들을 썼으며, 이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반듀링론이다.

엥겔스는 반듀링론2판 서문(1882)에서 독일 관념론철학에서 정립된 변증법을, 의식적으로 자연 및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는데 적용하려 한 것은 아마 맑스와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또한 변증법이 자연, 인간사회 및 사유의 운동과 발전의 일반 법칙에 관한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변증법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통일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변증법적이자 동시에 유물론적으로 자연을 파악하는 데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수학에 정통한 사람이지만,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겨우 단편적이고, 불규칙적이며, 산만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그만 두고 런던으로 돌아가서 8년간의 시간을 바쳐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쳤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이론적 자연과학의 진보는 그의 작업의 거의, “아니 전부를 불필요하게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반듀링론을 썼다. 어쨌든 이 책은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정치와 철학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사상을 과학적 이론으로 요약한 것으로 마르크스가 죽기 전에 직접 원고를 다 읽고 출판에 동의한 것이다.

 

엥겔스의 반듀링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함께 공산주의 양대 경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경전이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므로 보통은 앞에서 말한 입문서들을 읽고 입문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읽는다. 반듀링론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철학을 다루고 있는 제1부의 제7장과 제8장에서 유기체에 관련한 논쟁문을 싣고 있다. 그 중에서 제7장은 듀링이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한 것에 대해 엥겔스가 반박하는 논문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논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엥겔스가 다윈의 입장을 얼마나 열렬히 옹호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생물학에 관련한 엥겔스의 지식, 곧 공산주의에 이식된 진화론적 생명관을 알 수 있다.

 

그는 반듀링론에 소개된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알리기 위하여 3개의 장을 소책자로 편집한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1882)을 출판했다. 이 소책자의 출판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는 이제 공상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진리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는 이 소책자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주의 발전사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 속에서 칸트-라플라스의 우주론, 현대 자연과학과 다윈, 독일 고전철학과 헤겔을 만나면 놀라게 될 것이지만, 과학적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독일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이 예상외의 호응을 얻게 되자 다음 해에 나온 독일어 3판에서는 독일산이라는 말은 잘못 쓴 것이므로 국제적인 산물이라는 말로 바꾼다는 각주를 끼워놓았다. 이것은 이 말속에 프랑스의 라플라스(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1749-1827)와 진화론의 창안자 다윈이 영국인이 들어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그의 말 바꾸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다윈의 과학적 권위에 크게 기대고 있으면서도 그와 마르크스가 창안 것으로 주장하는 과학적사회주의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소책자와 함께 공산주의 유물론 이해를 위한 입문서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며, 이 두 개의 소책자는 공산주의자에게는 필독서이다. 엥겔스는 여기서 자본주의에 의한 대공업과 세계시장은 생산의 무정부성과 상업전쟁이라는 존망이 걸린 투쟁으로 몰아넣었으며, 여기서 패배한 자는 용서없이 제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엥겔스는 인류 발전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동물의 자연적 상태가 인류사회에 수십 배나 더 난폭하게 옮겨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이것을 가리켜 다윈의 개체 생존투쟁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 계급투쟁을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적자생존(자연도태 또는 생존경쟁) 이론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2) 유물론에서의 생명

 

반듀링론7장은 엥겔스가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듀링을 혹독하게 반박하는 논문이기 때문에 비교적 상술해보기로 한다. 여기서 엥겔스는 먼저 자연과학의 이해가 에너지보존법칙이라는 양적 측면에서 에너지의 전화라는 동적 측면으로 바뀌게 되면서 자연과정의 변증법적 성격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곧 세계의 밖에 있는 창조자의 최후의 흔적도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엥겔스는 생물학에 대해서 생물학이 진화론의 각광 하에서 연구된 이래, 유기적 자연계에서도 종래의 고정적인 분류 경계선이 무너져종의 유형적 분류에서 구별의 특징이 그 절대적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생물학의 분류체계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린네의 유형론을 무너뜨린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과학적 이해에서 유물사관이 진화론과 같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변증법적 자연관에 의해 만들어낸 과학적 사회주의가 종래의 모든 관념론적 사상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엥겔스는 먼저 듀링이 세계의 발전에 대해 상당히 정통해 있으므로 생명의 발생에 관해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어서 엥겔스는 그러한 듀링이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회피한다고 비난의 포문을 연다. 엥겔스는 생명현상은 단백질의 화학작용이라는 유물론자로서의 주장을 진술한 다음에, 헤겔이 논리학에서 목적론(Teleologie) 또는 목적설을 매개로 하여 화학작용에서 생명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유신론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엥겔스는 듀링의 목적개념(Zweckbegriff)은 헤겔의 유신론적 개념을 차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유한 근저적인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헤겔적인 서투른 수작이라고 모욕적인 비판을 가한다.

 

3) 적자생존 또는 생존경쟁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심론적 활동에 대해서는 무한한 도덕적 분노를 느끼는 듀링이 정작 유물론자로서 자신은 본능적인 감각은 주로 이 감각의 발휘에 따른 만족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어서 듀링이 다윈을 공격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다윈이 맬더스의 인구론을 경제학에서 자연과학으로 이식하였다는 점,

그가 동물사육자의 관념에 사로잡혔다는 점,

그가 생존경쟁설(kampf ums Dasein)로서 비과학적인 엉터리 글을 쓴다는 점,

그리고 또 다윈주의 전체는 라마르크에게서 차용한 것을 제외하면

인간성에 대립하는 일종의 야수성에 불과하다는 점 등

 

엥겔스는 다윈이 생물의 종이 변화한다는 개념을 연구여행에서 얻었고, 돌아와서는 인공배양과 자연관찰을 통해 이러한 종의 가변성을 어느 정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생존경쟁은 생존의 싸움터에서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유리한 개체적 특질을 가진 개체가 생존할 가능성을 많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리한 개체적 특질유전하는 경향이 있고, “유전의 누적으로 인하여 일단 획득된 방향으로 더욱 강화된다.” 그러므로 종은 다윈의 이론과 같이 자연도태, 다시 말하자면 적자생존에 의하여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다윈의 생존경쟁의 관념은 인구과잉에 관한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견해와 동일한 결함을 갖고 있다고 듀링이 주장하는데 대하여 비판한다. 엥겔스는 다윈이 멜더스의 학설을 빌려온 것이라는 듀링의 지적을 시인하면서도, 이 모든 것들은 다윈이 탐구하여 얻은 실증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듀링이 이와 같은 실증적인 측면에 깊이 들어가기를 꺼리면서, 그 자신은 언제까지나 도덕적으로만 분노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말하자면 듀링이 다윈의 생존경쟁을 먹이의 약탈과 약육강식이 수행되고 있는 동물계 내부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동물적인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존경쟁은 듀링이 말하는 것처럼 동물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계에도 있음을 도덕가 듀링은 모르고 있으면서 도덕적인 분노때문에 자연전체의 모든 행동에 관한 법칙과 지식을 동물의 세계에 국한시킨 사람은 바로 듀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듀링이 다윈주의는 그 변화의 차이를 무에서 산출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엥겔스는 다윈이 각 개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무시하고 그 변화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시인한다. 그러나 엥겔스는 다윈의 문제의식은 원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원인의 결과가 지속적인 의미를 갖는 그 합리적 형식을 발견하는데 있었다고 변호한다. 다만 다윈은 그의 발견을 너무나 광범한 영역에 적용하여 그것을 종의 변화의 유일한 지렛대로 삼은 나머지 개체의 변화원인을 무시했다는 점은 진보를 성취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결점이라고 초점을 흐려 놓는다. 엥겔스의 이러한 주장은 모두 다윈과 그의 이론을 옹호하는 것들이긴 하나, 세부적으로 검토해보면 다윈의 이론과 일반 과학적 이론을 왜곡하는 주장도 없지 않다.

 

4) 진화와 유전, 그리고 원시생물에 대하여

 

여기서 엥겔스는 듀링이 다윈의 독일 불독이라고 불리는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을 비판한 것을 반박하기 위하여 뛰어든다. 헤켈은 자연도태론의 개념을 적응과 유전의 교호작용으로 확대하여, “적응은 진화의 변화적 측면을, 유전이 그 보존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듀링은 자연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생활조건에 대한 진정한 적응은 관념에 의하여 규정받는 충동과 행동을 전제로 한다고 말하면서, “여기서 비유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적응이라는 말을 쓴다면 이것은 개념 속에 유심론적 혼란을 끌어넣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엥겔스는 헤켈에 대한 듀링의 비판에 대해 듀링씨가 자연에 목적 개념을 적용시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반박하면서 수단과 목적의 관계는 결코 의식적 의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했던 듀링의 말을 근거로 인용하고 있다. 듀링이 자연에 목적 개념을 적용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맥락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듀링이 유물론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에 대해서 적응이라는 말을 비유적으로만 써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옳다. 엥겔스의 반박을 보면, 엥겔스는 듀링의 말을 오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왜곡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엥겔스는 청개구리 등의 보호색과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의 먹이 획득 행태를 합목적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의 예로서 제시한다. 그런 다음 엥겔스는 듀링의 적응은 관념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여 목적적 행위가 관념에 의해서 매개되어 의식적, 의도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말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유심론을 비판하는 동료 유물론자 듀링의 철학이 목적적 창조자, 즉 신에 도달하였다고 과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전에 관련해서 엥겔스는 유기계 전체가 하나의 원시생물에서나왔다고 주장하는 다윈주의는 잘못된 길로빠진 것이라는 듀링의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엥겔스는 그 근거로 다윈의 종의 기원6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엥겔스는 여기서도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반박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엥겔스가 말한 종의 기원끝 에서 두 번 째 페이지에서, 다윈이 자신은 모든 생물을 별개의 피조물로 보지 않고 몇 개 소수의 생물의 직계자손으로 본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고 말하면서, 듀링이 말한 하나의 원시 생물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가 인용한 구절의 전체 서술을 보면, “우리가 모든 생물을 특수한 창조물로서가 아니라, 캄브리아계 최초의 층이 퇴적되기 훨씬 이전에 생존한 어떤 소수의 생물에서 계통을 이은 자손으로 볼 때, 그러한 모든 생물들은 고귀하게 되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된다는 것이다. 다윈의 이 말의 뜻은 종의 기원마지막에 그의 진화론적 생명관(this view of life)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절과 연결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은 그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맨 처음에 조물주에 의해 근소한 것

또는 단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는, 그리고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그토록 단순한 발단에서 극히 아름답고

극히 경탄할 무한의 형태가 산출되고, 지금도 산출되고 있다는 이 견해 속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엥겔스가 말한 몇 개 소수의 생물이라는 말은 어떤 소수를 그의 방식으로 바꾸어서 표현한 말이고, 이것은 근소한 것 또는 단 하나의 형태”(a few forms or into one)라는 다윈의 결어에서 앞의 말(a few forms)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다윈의 어떤 소수라는 말에서 문맥상의 강조점은 하나의”(one) 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렇게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엥겔스가 듀링의 하나의 원시생물이라는 말 한 마디를 붙들고 공격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서 엥겔스가 소개하고 있는 헤켈의 견해에 의하면, 식물계와 동물계와 단세포 생물계는 각각 다른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엥겔스는 이어서 헤켈이 이것은 모두 그 원생적인 단충(單蟲)형태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헤켈은 원시생물을 3개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어서 엥겔스가 인용한 헤켈의 말은 이 두 사람이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다윈의 불독인 헤켈의 원생적인 단충(單蟲)형태모든 유기적 생물의 원형생물로서 완전히 동질적이고, 구조가 없고, 형태가 없는 단백질 덩어리이며, “세포발생 이전의 형상체로서 식물과 동물이 분화되었던 자연발생적인 생물 형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 말은 명백히 듀링이 말한 하나의 원시생물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존하고 있는 생물의 종이 수백만 개라고 알려진 상황에서 조상이 하나이냐, 4, 5개이냐 또는 몇 개 소수이냐는 숫자의 차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중요하게 논쟁할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다윈이 수백만 개로 변화해온 종의 혈통관계를 변화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원인적으로 규명하지 않았다는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원시생물들이란 말은 다윈은 물론 그 이전의 철학자들이 숱하게 사용했던 말임에도 엥겔스는 듀링의 원시생물들은 원시 유태인인 아담과 대비시켜 될 수 있는 대로 악평하기 위하여 듀링씨가 발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엥겔스가 이런 말로 듀링을 반박하는 것은 엥겔스의 주장에서 사실의 진위조차 혼돈한 것으로 만들고 만다. 다만 뒤에서 아담은 원시 셈족의 사람이었고,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가 중동 지방에서의 고대 이교도의 종교 신화의 한 구절임에도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은 듀링의 불행이라고 비꼬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엥겔스는 다윈을 비판하는 듀링을 공박하기 위하여 억지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게 엥겔스가 듀링의 말을 꼬투리 잡아 심하게 공박하는 것은 학문적 논쟁에서 보면 품위를 잃은 짓이며 정당하지도 않은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정이 학문적 품위나 주장의 정당성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듀링과 엥겔스 사이에 벌어진 이 논쟁은 듀링이 먼저 마르크스를 공격함으로써 촉발된 것이기는 하나, 사실상 이 논쟁은 독일 사회민주당 안에서 세력 확장과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경쟁과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때 듀링파였던 에두아르트 베른스타인(Eduard Bernstein, 1850-1932))이 주도권을 잡은 독일 사회민주당은 결국 유럽 사회민주주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의 정통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양대 산맥을 형성하게 된다.

 

5) 생명의 기원 및 변화의 원리에 대하여

 

그리고 엥겔스는 자연과학이 아직까지 유기물이 계통 없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아직까지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화학적 방법으로 출현하였을 것이라는 것뿐이다고 인정하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는 아무리 대담한 자연발생론자라 하더라도 다만 박테리아나 곰팡이 종류나 기타 대단히 원시적인 유기물만이 이 방법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 곤충이나 어류나 조류나 포유동물이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실토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말은 생명의 기원문제에 대해서 유기적인 자연산물의 연관이 계통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면, “혈통관계가 끊어진 곳에서별개의 조상이 출현했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결국 다시 창조자와 이신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엥겔스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유물론자 듀링을 공박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유물론자들의 이론적 한계를 인정하는 엥겔스의 독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엥겔스는 또 듀링의 글에서 단순한 성()적 구성의 행위만을 이 특성 발생의 근본원리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다윈의 자연도태를 왜곡하는 듀링의 자유 창작물이요 상상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엥겔스는 다윈이 자연도태를 변화의 보존을 표현한 것이지 변화의 원인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따위 왜곡이나 하는 듀링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인용해놓고 있다.

 

만일 생식의 내적 도식 중에서 그 어떠한 독립적인 변화의 원리가 발견

되었다면 이 사상은 완전히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발생의 원리와 성적 생식의 원리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또 좀 더

높은 입장에서 이른바 자연발생을 재생산(생식)과 절대적으로 대립

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생산(발생)으로 보는 것이 자연

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설을 신봉할 수밖에 없는 유물론자로서 듀링은 이 글에서, 변화의 원리가 빠져 있는 이 사상즉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아직까지 유전자의 구조와 메커니즘(mechanism)이 발견이 되지 않았던 당시에 듀링은 생식에 의한 내적 도식(발생 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듀링이 자연발생과 재생산(생식)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의 발생원리로 생각할 수는 없는지에 대해서 사색하는 내용을 쓴 것이다. 이렇게 보면 듀링은 철학자로서 생명의 발생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논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듀링을 가리켜 이 따위 허풍을 떨 수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헤겔을 잠꼬대운운하면서 비난하고있다고 억지스럽게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엥겔스의 이런 행태는 공산당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계급투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선동한 사람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변화의 원리에 대해서는 유물사관에서의 변증법이나 진화론에서의 자연도태에서 다 같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원리는 다윈에 앞서 라마르크가 그의 동물 철학에서 제시한 용불용설에 먼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엥겔스는 다윈이나 또는 다윈을 추종하는 자연과학자들 그 누구도 라마르크의 위대한 공적을 과소평가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에 의하면, 라마르크 이후 특이한 일치가 발견되었고, “이 일치는 진화론(Die Entwicklungstheorie)에 가징 확고한 기초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 특별한 일치란 것은 당시에 헤켈이 배 발생도 및 생물계통수를 발표한 발생학과 퀴비에(Ceorges Guvier, 1769-1832)가 각 지층에 묻힌 화석을 연구하여 지질 년대와 화석 년대를 결정하는 방법을 발표한 고생물학에서, 생물의 발생과정과 화석이 묻힌 지층의 발달과정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엥겔스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뒤에 헤켈의 배 발생도와 생물 계통수는 과학적인 오류로 판명되었고, 퀴비에의 화석연구에서는 중간 화석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다. 엥겔스는 이런 사실을 예견했었는지 용의주도하게도 진화론 자체는 아직 연륜이 짧다고 하면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종의 진화과정에 관한 오늘날의 엄격한 다윈의 견해가 많은 수정을 받을 것임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해놓고 있다.

 

그리고 엥겔스는 다윈의 유기적 종의 진화에 관하여듀링이 가지고 있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듀링은 동종의 자연산물이 어떠한 계통에 의하지 않고 서로 독립하여 병존한다는 것을 가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말했다. 왜냐하면 듀링은 자연발생과 생식발생을 모두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듀링은 종의 변화에서 계통이 매개하는 것은 자연에 대해 부차적으로 작용하는데 불과한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듀링에게 만물의 특질이 심오하게 서로 다른 근거는 우주의 제 관계와 생존조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 반면에 다윈이 역설하는 자연도태는 이차적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듀링의 견해에서 보면 다윈의 진화(Entwicklung) 이론은 제한된 이차적 범위에서만 유효한 것이며, 이것은 형태변화(Metamorphose)로 혼동할 소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듀링에게는 오히려 구성(Komposition)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다윈의 자연도태 이론이 변화의 보존만을 다룬 것이라면, 그것은 구성적인 것이지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변화의 원리는 훨씬 뒤에 왓슨과 크릭에 의하여 유전자에 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엥겔스는 듀링의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지도 못하고 물고 늘어지면서 “”니벨룽겐의 반지의 작가와 비견될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하자고 비아냥거림과 동시에 공박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다윈과 관련하여 듀링을 공박하는 논문을 다시 살펴보면, 유물론자 듀링은 다윈의 진화론이 아직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같은 유물론자 엥겔스는 막무가내로 듀링을 공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물론자들끼리도 주도권 경쟁에서 보여주는 무자비한 공격성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6) 세포와 감각에 대하여

 

이제까지 보듯이 유물사관에서 적용된 변증법이 다윈의 진화론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엥겔스가 다윈을 위하여 듀링을 맹렬히 반박하는 이 논문에서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제1부 제8에서 엥겔스는 듀링이 그의 철학에서 무기물에서 유기물인 단백질의 형성, 단백질과 세포, 그리고 생명의 출현 등에 관련하여 논의한 것에 대하여 비판한다. 엥겔스는 여기서 종의 기원만을 다룬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 영역을 벗어나 생명의 기원에 관련한 영역으로 한 발짝 들어가는 것이다. 엥겔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파린에게 넘겨줄 영역에 먼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엥겔스는 먼저 듀링이 자랑하는 수학 및 자연과학에 관한 박식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듀링이 중력의 작용을 받는 원자라는 말을 쓴 것을 두고 공박한다. 엥겔스는 듀링의 이 말이 원자와 분자 사이의 구별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원자는 중력이나 다른 물리학적 운동 형태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작용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현대과학의 상식수준에서 보면, 듀링과 엥겔스 사이에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는 고등학생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기물에 관한 학문(생물학)에서 진화라는 말 대신에 구성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한듀링은 유기체의 형성에 관한 무식을 폭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엥겔스는 유기체는 가장 저급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세포, ...... 단백질 덩어리로 되어 있으며, 이 세포는 그 내부에 세포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모든 세포는 반복되는 세포분열에 의하여 동물의 알 속에 있는 배종이 수정 뒤에 차차 완전한 동물로 발육하는 것이며, 동일한 방식으로 증식하며, 발육하고, 성장해서는 소모된 조직의 교체가 일어난다. 엥겔스는 이 과정을 발육이라고 하지 않고 구성이라고 말하는 듀링에 대해서는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엥겔스는 생명에 대한 듀링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하여 무기계도 역시 자기를 완성하는 운동의 체계이다. 그러나 ...... 물질 순환의 매개와 고유한 배열이 시작되었을 때 비로소 좁고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생명을 말할 수 있다는 듀링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물질 순환이라 함은 신진대사를 뜻하는 것이며, 고유한 배열이란 세포분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듀링을 반박하여, 배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단세포 동물은 무생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며,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식물과 심장이 없거나 또는 다수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동물은 무생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엥겔스의 이런 반박은 현대생물학에서 보면 순전히 억지이다. 그러나 유물론 세계에서는 억지라도 목소리가 크거나 세력이 큰 자가 이기는 법이다. 억지스러운 엥겔스의 비판은 계속된다. 듀링은 자연계의 모든 유기체의 근저에는 한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면서, 이 유형은 가장 불완전한 식물의 가장 저급한 활동 속에서도 벌써 그 일반적인 본질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엥겔스는 여기서 듀링의 주장은 완전히무의미한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유기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유형은 세포라고 하면서, “세포보다 저급한 훨씬 저급한최하급 유기체를 열거하고 있다. 원생 아메바, 어떠한 분화도 없는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 기타 일련의 적충(Monere)과 수관이 있는 모든 해초류(Siphoneen)가 그것들이다. 생물은 모두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세포학 이론은 나중에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아직 이것을 모르는 엥겔스는 이것들은 모두 그 본질적인 성분이 단백질이고, 따라서 단백질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살고 죽음으로써 고급 유기물과 연결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엥겔스는 여기서부터 단백질 자체를 생명으로 보는 그의 독특한 유물론적인 생명관을 보여주고 있다.

 

엥겔스는 감각을 동물계의 특징으로 보는 듀링의 관점을 반박하기 위하여 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듀링은 식물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감각으로의 비약이 완성된 점에 있는 것이다. 이 경계는 잘 알려진 과도적 형태로 인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렇게 외면적으로 불확정적인 또는 확정할 수 없는 형태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식물에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감각의 흔적이 없고 또 감각에 대한 소질도 없다고 했다. 엥겔스는 듀링의 말 외에도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감각은 특수한 분화로, 동물의 절대적인 특성이라는 말까지 끌어다 비판 대상으로 세워놓는다. 이러한 엥겔스의 인용 목적은 첫째로 헤겔의 서투른 수작을 듀링이 최후의 궁극적 진리라는 자리에 모셔놓는 것을 비꼬기 위해서이다. 둘째로 엥겔스는 식충식물을 예로 들어 동물에게만 감각이 있다는 이 두 사람의 말과 듀링의 동물과 식물 사이의 확정할 수 없는과도적 형태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셋째로 엥겔스는 원생동물과 식충류 등은 어떤 신경기관의 흔적이 없다고 하면서, 생리학적으로 감각은 그 어떤 신경기관이 현존하는 것과 결합되어 있다고 한 듀링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감각은 반드시 신경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세히 확증되지 못한 일종의 단백체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아직 감각과 반응이라는 생리적 현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생리학 수준에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여기서 갑자기 듀링이 다윈에게 동물은 식물에서 진화한 것인가?”라고 질문한 것을 두고 듀링은 형체를 형성하는 도식화를 매개로 하여 수행되는 신진대사야말로 생명과정의 특징이다라는 것밖에는 말할 줄 모른다고 핀잔한다. 그리고는 도식화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듀링은 앞서 구성이라는 말과 도식화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7) 생명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듀링의 생명론에 대한 비판을 마친 엥겔스는 자신의 생명론에 관한 진술을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이 부분 역시 진화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뒤에 오파린이 화학적 진화론을 다룬 생명의 기원에서 여기에 나오는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여 그의 이론에서 지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제7장이 다윈의 종의 기원과 연결점을 갖고 있다면, 8장은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과 연결점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엥겔스는 아직도 듀링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먼저 유기적인 신진대사가 생명의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 라는 것은 30년 동안이나 알려진 과학적 상식이라고 전제한다. 이것을 듀링이 형체를 형성하는 도식화에 의한 신진대사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생명을 생명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똑 같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엥겔스에 의하면, “신진대사는 생명이 없어도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그러한 예로서 유황을 연소시켜 유황산을 제조하는과정과 트라우베((Moritz Traube)의 인공세포에 의한 피막 실험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상식으로 보면, 엥겔스가 이것을 신진대사와 같은 것으로 보면서 듀링을 비난하는 것은 엄청난 착오를 저지른 것이다. 엥겔스가 신진대사라고 본 앞의 예는 화학적 작용일 뿐이고, 뒤의 예는 삼투압 현상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엥겔스는 이러한 신진대사로는 생명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유물론에서 가장 유명한 명제 중의 하나를 제시한다.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 그리고 이 존재양식은 이 물체의 화학적 성분의 부단한 갱신에서 성립한다.” 이 말은 이렇게도 말해진다.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 생명이 단백질과 함께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아직 분해되지 않은 한 개의 단백질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예외없이 생명현상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생명론은 가장 저급한 생물로서 이미 모든 본질적인 생명현상들을 보여주는 단백질 덩어리에서 시작한다. 나아가서 엥겔스는 이러한 생명현상 중에서 특수한 분화가 일어나려면 이 생명체 중에 다른 화학적 결합이 반드시 출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엥겔스는 단백질의 본질과 생명의 본질을 같은 것으로 본다. 살아 있는 단백질은 자체적으로 노쇠한 부분을 분해하고 배설하며, 그동안에 다른 물질을 섭취하고 중화하는 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풍화된 암석, 산화된 금속 등의 생명이 없는 무기물의 괴멸은 단백질의 생존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부단한 대사가 멈추는 순간 단백질은 분해되기 시작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이와 같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은 어떤 순간에나 그 자체인 동시에 또한 타자인 것에서 성립한다.” 생명으로서의 단백질이 생명 없는 물체와 다른 점은 섭취와 배설에 의해서 야기되는 신진대사는 자발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엥겔스는 신진대사의 자발적 과정은 그 담지자인 단백질에게 내재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며, 이 과정이 없다면 단백질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단백질에는 내재적이고 선천적인신진대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화학이 인공적으로 단백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려면, 이러한 생명현상이 미약하게나마 나타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엥겔스가 여기서 결론적으로 하는 말은 유물론자에게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지침으로서 작용했으며, 결국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에서 화학적 진화론을 출생하게 한 것이다.

 

생명을 단백질의 존재양식에서 섭취와 배설의 신진대사로 파악한 엥겔스는 생명의 기타 모든 단순요소는 단백 특유의 유연성에서 다음과 같이 파생된다고 말한다.

 

(1) 감수성(Reizbarikeit): 단백과 그 영양물 사이의 교호작용 속에 이미 벌써 들어 있다.

(2) 수축성(Kontraktibilitat): 대단히 저급한 단계에서도 음식물을 소화시킬 때 벌써 나타난다. (3) 성장의 가능성(Wachstumsmögloichkeit): 가장 저급한 단계에서도 분열에 의한 증식에서 볼 수 있다.

(4) 내적인 운동(inner Bewegung): 이것이 없으면 영양물의 소화나 흡수가 불가능하다.

 

엥겔스는 이와 같은 그의 생명의 정의가 불충분한 점을 시인하고, 그 이유로서는 모든 생명현상을 포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단순한 생명현상에만 국한해서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생명의 현상들에서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러한 생명의 정의도 해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엥겔스의 이 말로 인하여 유물론자들이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게 되었으며, 얼마나 해악을 끼쳤는지 당시 엥겔스 자신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다.

 

엥겔스는 이 장에서 마지막으로 듀링의 주장을 인용하여 비판한다. 듀링은 지구의 범위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가진 의식학(BewuBtseinslehre)의 단초를 전개하기 전에 쾌락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은 감각기관이라는 특수한 장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세계에도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감각적인 쾌락과 고통의 대립은 보편적인 것이므로 전우주의 어떤 세계에서나 본질상 동일한 감정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듀링은 우리에게는 주관적 세계가 객관적 세계보다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며 이 양 세계의 구조는 통일적 유형에 의해서 생각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이러한 듀링의 주장을 은하계로 서둘러 도망친다고 야유하고 있으며, 듀링을 아예 무식한 자로 깔아뭉개기 위하여 지상의 자연과학에서 다소간 오류를 범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어쨌든 엥겔스의 반듀링론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관련하여 제7장을 먼저 살펴보았고, 이어서 엥겔스의 생명관이 나타나 있는 제8장도 추가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나타난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에서 그의 진화론은 바로 제8장에 있는 엥겔스의 유물론적 생명관을 지침으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엥겔스는 이렇게 하여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으로 건너가는 교량을 만들어주었다.

 

2. 기타 자연변증법등에서

 

그 외에도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 자연변증법(1883)을 썼고 여기에도 다윈을 인용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주석과 단편]에서 과학의 역사에 대하여논하면서, 엥겔스는 19세기의 경험적 자연과학이 18세기의 기계적 일면성을 극복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음을 지적한다. 엥겔스는 발전의 원인으로서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을 꼽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 전화해명되지 않은 현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자연의 무수한 모든 작용원인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체의 운동을 열의 일당량에 의해 측정이 가능해짐으로써, 자연의 운동은 철학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사실로서 통일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기세포의 발견으로 유기체의 생성, 성장, 구조의 비밀이 벗겨졌음을 꼽고 있다. 세 번째는 유기체의 다양성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다윈의 진화이론이 통합적으로 대답하고 있는데, 엥겔스는 이것을 매우 중시한다. 이로 인하여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계열에 따라 모든 유기체의 현재 상태는 물론 인간정신의 전화까지에 대한 해명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만약 이러한 전사가 없다면 사유하는 인간두뇌의 존재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하여 유물론적 자연관이 지난 세기와 전혀 다른 견고한 다리로 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엥겔스는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는 이유를 딱 부러지게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관념론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1886년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출판하여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를 더욱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엥겔스가 이렇게 힘써 다윈을 옹호하면서 진화론과 유물사관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를 결정적으로 확인한 것은 1883년 죽은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행한 엥겔스의 추도사를 통해서였다. 바로 1년 전인 1882년에 다윈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장엄하게 치러졌고, 웨스트민스터 사원 묘지에 매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1명의 초라한 조문객들만이 모여서 런던 외곽의 한 공동묘지 한 구석에 초라하게 묻히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엥겔스는 추도사를 통해 인간 역사에서의 마르크스의 업적과 자연과학에서의 다윈의 업적을 동등한 것으로 비교한 것이다. 엥겔스의 이런 행동에는 다윈을 매우 훌륭한 과학자로 인정하고 그의 진화론을 매우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당시 사조를 반영하여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도 그것과 동등하게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평가는 어떤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지식에 관련해서 본다면,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에 나타난 바와 같이 물리학과 화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마르크스는 수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라파르그(Parul Lafargue), “마르크스는 고급수학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변증법적 운동을 다시 발견하곤 했다. ‘과학이란 수학을 사용할 줄 알 때만이 진정으로 발전된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고 증언했다. 엥겔스는 다윈의 진화론적 연구 방법을 사회이론에 적용하여 1884년에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하게 자연과학 법칙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론과 같이 과학적 무신론의 범주에 포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의 배경

 

레닌은 다윈의 종의 기원진화론과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유물사관 사상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에서 그대로 전수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정통파 레닌이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성공하자 이 사상은 러시아의 광대한 영역에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진화한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런 러시아 풍토에서 오파린의 순수하게 유물론적 진화론이 다시 태어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 가문의 혈통이 완성된 것이다. 생명의 기원에 나타난 오파린의 진화론은 철저하게 무신론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여기서 오파린은 엥겔스와 다윈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오파린은 그의 생명의 기원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종교적 관념에 대해 더욱 파괴적인 타격이

가해졌습니다. C. 다윈과 그 뒤를 이어 많은 학자들, 특히 K.A. 디말랴제프, A.O.

V.O. 코발레프스키 형제, I. I. 메체니코프, 그 밖의 소비에트 러시아의 훌륭한

연구자들은, 성서의 가르침과는 달리 현재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유성에 영원한 옛날부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주었습니다. 가장 진화한 식물과, 인간을 포함해서 가장 진화한 동물은 지구상에

돌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유성이 출현한 뒤로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구조가 간단한 생물이 연속적으로 진화해 온 결과 비로소 발생한 것입니다.

 

오파린에 의하면 수백만 년 전에 지상에 살고 있던 동식물의 유해가 발굴된 것을 연구해서, 그 당시 지상에 살고 있던 생물은 오늘날의 것과는 다른 것이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생물은 점차 단단해지고, 종류도 점차 적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물계의 가장 간단한 것의 최초의 출현, 즉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의 조상의 발생에 대한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자연과학은 이미 물질계의 발전이라는 구체적인 조건과 무관하게 생명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의견을 타파했으므로, 살아있지 않은 물질로부터 생명에로의 이행, 즉 생명의 발생 즉 기원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파린은 이러한 생명의 기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엥겔스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F. 엥겔스의 천재적 저작 반듀링론』 『자연변증법에서, 과학의 진보가 훌륭하게

일반화되어 생명의 기원 문제에 대해 유일하게 올바른 과학적 제기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이 방면의 과학적 연구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소비에트 생물학은 이 방향에 따라 진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자연의

진화라는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생물의 발생이 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배척하고, 생물계와 무생물계는 통일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그는 생명을 물질 진화의 산물, 역사적 조건과 생명 출현에 선행

하는 시대에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에 의해 준비된 물질의 질적인 개조라고 간주했

습니다.

 

오파린은 그의 유물론적인 생명의 기원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레닌과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까지 인용한다.

 

생명의 진화적 발생에 대한 깊은 사상을 우리는 V. I. 레닌의 저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지구상에 인간과 그 밖의 어떠한 생물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던 상태가 있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금세기 초, I. V. 스탈린은 그의 노작 무정부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에서 유물론 학설의

기초를 설명하고, 생명이 어떠한 진화의 길을 거쳐 발생했는가를 완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를 들어 지구가 이전에 새빨갛게 작렬하는 불의 물질이었다는 것, 이어서

지구가 점차 식었다는 것, 그리고 나서 식물과 동물이 발생했다는 것, 생물계의 진화

결과 일정한 종류의 원숭이가 출현하고, 이러한 것이 전부 일어난 후에 잇따라 인간의

출현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렇게 자연의 진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오파린은 미국이나 서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비과학적 관념의 포로가 되어있어서 현재 생명발생의 문제를 인간 두뇌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저주 받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오파린에 의하면,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 1898-1976)1948년 레닌 전연방 농업과학아카데미의 8월 대회에서 이러한 반동적인 관념론적 견해가 외국의 생물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그의 생물학에 있어서의 입장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통해 폭로했다. 오파린은 결국 이런 반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서 다윈, 엥겔스, 레닌, 스탈린 그리고 리센코의 잘못된 생물학적 권위까지 까지 배후에 업고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파린이 그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위에 기대려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결 론

 

이제까지 다윈의 진화론이 유물론과의 결합을 통해서 과학적 무신론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았다. 현대에 이르러 비록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사회까지 인간의 총체적인 역사를 과학적 무신론의 토대 위에 세우려고 했다. 근대 역사에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공산주의가 정치적 실체로서는 비록 약화되었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아니 얼굴은 쇠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몸체는 진화론과 하나로 결합되어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몸체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같은 괴물로 오히려 힘이 강화된 셈이다. 앞에서 엥겔스가 한마디로 정의한 것과 같이, 유물론자는 지구의 역사에서 존재하는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으로 본다. 그러므로 생물은 어느 날 우연히 물질의 화학작용에서 생겨난 단백질 덩어리에서 진화된 것이다. 무신론자는 인간을 단순한 동물에서 복잡한 동물로 진화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적 도덕성이 필요 없다고 본다. 인간은 그저 단순한 동물에서 복잡한 동물로 변화된 것뿐이기 때문에 행동에 책임을 부담할 필요도 없다. 또한 인간의 사유는 물질의 반영이기 때문에 인간적 가치를 부여할 의미도 없다. 무신론자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현실적 생존경쟁에서의 승리 이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여기에는 도덕도 윤리도 없다. 오직 적자생존을 향한 생존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은 이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과학적 무신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신론의 토대 위에서는 얼굴이나 이름이나 이론을 아무리 바꾸어 써도 행동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소고에서 과학적 무신론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것은 이것의 실체를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그에 대한 비판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고의 자료가 과학적 무신론에 동의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길잡이로 쓰일 수 있다면 필자로서는 소임을 다한 것이다.

 

 

참고자료

 

Afanasyef, V. G., 변증법적 유물론. 김성환 역, 서울: 백두, 1988.

 

Attali, Jacques, 마르크스 평전. 이효숙 역, 서울: 위즈덤하우스, 2006.

 

Darwin, Charles, 종의 기원2. 박동현 역, 서울: 신원문화, 2006.

 

Engels, Friedrich, 반듀링론. 김민석 역, 서울: 새길, 1987.

 

---------------, 자연의 변증법. 황태호 역, 서울: 전진출판사, 1989.

 

---------------,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

김재기 역, 서울: 거름, 1988.

 

Marx, Karl, 자본론, 1·. 김수행 역, 서울: 비봉출판사, 2011.

 

 

 

초록

 

다윈의 종의 기원은 형식적으로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에 의해 보완됨으로써 하나의 체계적인 진화론이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윈의 진화론이 먼저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사관에 의해 용해되었고, 이 토양에서 오파린의 진화론이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사상이 하나로 용해되었고, 이것이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유물론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 유물론자는 생물이 어느 날부터 단백질 덩어리에서 진화한 것이고, 생명은 단지 물질의 화학작용일 뿐인 것으로 본다. 이러한 무신론자에게 인간은 그저 단세포 생물에서 차츰 복잡한 동물로 변화된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에 책임을 느낄 필요도 없다. 또한 인간의 사유는 물질의 반영이기 때문에 인간적 가치를 부여해야 할 의미도 없다. 무신론자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현실적 생존경쟁에서의 승리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필요 없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은 이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과학적 무신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신론의 토대 위에서는 얼굴이나 이름이나 이론을 아무리 바꾸어 써도 본질이나 행동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소고에서 과학적 무신론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것은 이것의 역사적 실체를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그에 대한 비판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동기에서였다.

 

 

Abstract

 

Darwin's The Origin of Species seems to be completed as one systematic evolutionism by being complemented by Oparin's The Origin of Life. However, Darwin's evolutionism dissolved first in the Marx-Engels' materialistic conception of history, and Oparin's evolutionism came into the world on this soil. In this way three ideas has formed in one and is called 'Scientific Atheism' But the problem is that it is based on the materialism which is different from the fact. Modern materialists thinks various forms of life came out of a chunk of proteins and life is being made out of some materials by accidental chemical actions. In the view of materialist, man does not need to hold responsibility for his doings, because he has only evolved gradually from a simple cell to a complex animal. The thinking of man is only a reflection of materials, and value of human beings is meaningless. What an atheist seeks is only victory in the every day war for survival and has no other goal. As non-atheists We must hope to live in the world not like that. It is the reason that we have to criticize on the 'Scientific Atheism'. No matter how he changes title or theory of his thought, his action remains the same as far as it is on the basis of atheism, I was motivated to write this assertion to find grounds of criticism on 'Scientific Atheism' by pursuing the process of its bi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