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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창조주이신가?

heojohn 2020. 3. 30. 22:08

창조의 빛

 

이 논문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이론, 즉 진화론을 검증하고 그 이론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기독교를 공격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진화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의 탈을 쓰고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이라는 두 개의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다. 이들은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부정하고 기독교를 말살해야 할 바이러스라고 선전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과 기독교는 지구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어찌 이 세상에서 진화론자들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주이실 수가 있고,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위해 진화론이 오류임을 증명하고 진화론자들과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Is God Creator?

 

Huh, Jung Yoon

Ph.D. (In course), Historical Theology,

Pierson School of Theology, Pyeongtaek University

 

By this dissertation, I am aiming for reviewing the evolutionary theories of scientific atheists and proving their theories are nothing but fabrications. For most of those attacking Christianity are evolutionists in the modern society They are armed with two theories under the masks of science, one of which is Darwin's biological evolution and the other Oparin's chemical evolution. Evolutionists are not only denying God and His creation, but also propagating Christianity as virus to annihilate. According to the evolutionists' theories, God and Christians should be expelled from the earth. How could God be the Creator and Christianity be in the world together with evolutionists? Therefore Christians have obligations for God and themselves to prove contradictions in the evolutionary theories and to be at war against evolutionists

 

진화론은 과연 과학적 사실인가?

- “과학적 무신론으로서의 진화론에 대한 고찰과 비판

피어선논단논문투고

 

 

목차

 

1. 서론

 

2. 자연발생론이 과학적 무신론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2.1. 그리스 철학에서의 자연발생론

2.2. 기독교에서의 자연발생론

2.3. 과학혁명 이후 17세기 전기까지: 초기의 실험 시대

2.4. 19세기까지: 과학적 실험의 시대

1) 17세기 후기

2) 18세기

3) 19세기

2.5. 자연발생론의 변종으로서의 과학적 무신론의 출현

 

3.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

3.1

3.2 변이

3.3. 자연선택

3.4.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검증과 비판

1) ‘의 분류

2) 생식장벽

3) 돌연변이 초기종의 가능성

 

4.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

4.1.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이론

4.2.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이론에 대한 검증과 비판

1) 생물학에 의한 오파린의 이론 검증

2) “변증법적 비약에 의한 생명의 발생은 가능한가?

 

5. 결론

 

 

1. 서론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과학은 진리의 도구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과학이 낳은 기계문명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사실과 과학이 앞으로도 계속 기계문명을 발전시키리라는 낙관적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과학에서 제기된 이론이나 학설이 언제나 사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아니한 과학이론이나 학설에 대해서는 섣불리 사실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이론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 확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실례로 다음 장에서 자연발생론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자연발생론을 가지고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논쟁했는지를 보면, 과학에서 제대로 된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도 마찬가지이다. 1858년에 발표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논술한 종의 기원(1859)1922년에 발표된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을 논술한 생명의 기원(1936)도 아직까지 제대로 검증되지 아니한 자연발생론의 한 유형일 뿐이다. 다만 이것들은 이전의 것에 비해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논술되었다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진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섣불리 사실로 믿는 것은 잘못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같은 에서도 똑 같은 개체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후손은 언제나 변종으로 태어나게 마련이다. 이것은 종내(種內)에서 다양성이 발현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학문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사람과 같은 이론을 그대로 똑같이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다윈의 진화론도 그렇게 자연발생론이러는 학술적 의 한 변종으로 태어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변종은 그때까지 공공연하게 진리로 전제되었던 유신론을 부인하는 변종괴물로 변했다. 잘못된 믿음이 변종괴물에게 생존과 성장의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주었다. 변종괴물은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라는 공산주의 공상가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또 하나의 변종사생아를 낳게 만들었고, 변종사생아에게서 오파린(Alexander Ivanovich Oparin, 1894-1980)의 화학적 진화론이라는 변종괴물의 손자가 태어났다. 이렇게 하여 자연발생론에서 하나의 새로운 종의 분화가 완성된 것이다. 필자는 이 새로운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명칭을 붙이고자 한다. 물론 이 과학적 무신론은 진정한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사이비 과학의 부산물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이비 과학의 부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과학계는 제대로 검증되지 아니한 이것을 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과학계에 새로운 으로 공인된 과학적 무신론이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에서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학적 무신론으로 교육된 현대과학자들에게서 이런 사이비 과학을 비판하고 시정하는 능력을 스스로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문제의 핵심이다. 그 결과 생명조차 한 순간의 물질적 현상으로 간주되면서 인간사회는 가치의 전통적 근본이 무너졌고 윤리라는 측면에서는 제멋대로 이기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약이나 도박이나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물질주의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이나 정서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입고도 구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이런 현실이 어찌 우리 인류가 추구해왔던 이상적 세상으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런 문제들에 주목하여 과학적 무신론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그것의 허구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정상적 사회의 가치와 윤리의 회복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과학적 무신론사상은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깊이 침투하여 고질화되어 있고, 사회는 그 위험성에 오불관언(吾不關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과학적 또는 경험적 방법으로 인식한 지식만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밀하게 과학적 검증을 했는지에 대해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아니한다. 그저 가르쳐주는 대로 학습하고 그대로 맹신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사이비 과학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있고, “과학적 무신론이 번성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된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서 과학적 무신론의 오류를 엄밀한 과학적 검증의 방법으로 밝혀내는 것과 함께 이런 사이비 과학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신론의 진리를 역사적 사실로 정립할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 논문에서 쓰는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필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 그리고 이것들에서 파생하여 과학적으로 주장되는 무신론들을 총칭하기 위하여 고안한 말이다. 여기서 과학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초자연을 부정하고 물질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는 원론적인 뜻에 다르지 않다. “무신론이라는 말 역시 자연법칙 이상의 초월적 능력을 가진 어떤 신적 존재를 부정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과학적 무신론과학적으로 연구 또는 주장되는 모든 무신론적 이론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무신론이외의 무신론은 철학적 무신론이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와 중세는 어떤 형태로든지 유신론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학적인 무신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무신론은 유신론의 틈새에서 잠시 머리를 내밀었다가 과학적 무신론에 압살되어 이제는 흔적만을 남기고 세상에서 소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무신론보다 훨씬 앞서부터 있었던 유신론은 어떠한가? 유신론을 초기 조상들의 신화로부터 전승된 신화적 유신론과 이후 각 종교들의 교리에서 주장되는 종교적 유신론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종교와는 별개의 흐름으로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철학적 유신론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현대의 과학적 방법에서 과학적 무신론을 분석해본 결과에 의하면, 그것은 검증이 완료되지 않고 아직도 논쟁중인 가설에 머물러 있는 이론이다. 유신론 또한 보이지 않는 신을 보여줄 수 없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과학적 무신론의 도전에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무신론과 유신론을 지지하는 두 진영의 사람들은 서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 유리한 이론을 만들어 상대방을 이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이론을 반박하고 검증하고 비판하는 논쟁이 끝없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쟁이 우리의 지적 경험과 인식의 방법적 차이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특유의 다양한 개성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그 안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생성의 기원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지 간에 그 생성의 기원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실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논쟁할 때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무신론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 1872.-1970)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의 유명한 서양철학사에서 어떤 일에 대하여 ?라고 물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러셀이 제시한 두 가지 의미에서, 하나는 이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이 어떤 앞선 환경에서 일어난 것인가?’이다. 이 말은 사실 무신론자인 러셀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왜냐하면, 무신론자에게는 이기적인 생존 목적 이외에 이러한 목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 말을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하는 목적과 배경을 유의해주시기를 당부하는 뜻으로 인용한다.

1981년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된 이후에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유물사관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과학적 무신론은 다윈과 오파린의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과학적 무신론가운데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대한 비판은 생략하고 두 가지의 진화론 검증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 논문에서의 논제가 과연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인가?”로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이 검증의 결과에 따라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의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이렇게 대립하는 양 진영의 어느 한 쪽에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무신론이 진리라고 한다면, 유신론은 인간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할 환상이고, 종교는 박멸되어야 할 바이러스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인류사회가 이제까지의 가치에 대한 근거를 잃고 법과 도덕의 붕괴를 가져오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만은 분명하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다윈의 불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렬한 진화론자였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조차 이런 문제점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에 그가 런던시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과학적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성경 없이는 도덕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진화론이 진리로 입증된다면, 우리는 이런 사실에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논증될 수 있다면, 진화론이 떠받치고 있는 무신론은 앞에서 진술한 사회적 악의 제거차원에서도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무신론이 해체된다면, 반대로 유신론은 이전처럼 전통적 사회의 자명한 근거로서 입지를 완전히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과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논문에서 오늘날 과학적 무신론의 근거인 진화론을 엄밀하게 검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두 개의 진화론을 검증하고 있는 이 논문을 읽고 나면, 우리는 정확한 사실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2. 자연발생론이 과학적 무신론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두 개의 진화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음은 앞에서 러셀의 말을 인용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인류 사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신론은 각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신화에서부터 기록되고 있는 오래된 것이다. 각 민족의 고대신화는 예외 없이 신이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만들었고 또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고 있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신론은 각 민족의 고대 조상들로부터 전승된 전통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그러므로 무신론은 신의 존재와 창조를 의심하지 않았던 고대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며, 훨씬 뒤에 근대철학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계 각 민족의 고대신화를 널리 연구했던 신화학자이며 비교종교학자로서 저명한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89)는 유신론적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창세 신화가 진실인 이유는 세계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고, 죽음의 기원 신화가 진실인 것은 인간이 필멸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옛날부터 고대신화를 그대로 믿는, 말하자면 인간사에 전적으로 간섭하는 인격적 신에 대한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1. 그리스 철학에서의 자연발생론

 

고대신화에 대한 회의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밀레투스에서 자연철학이 생겨나면서부터였다. 신이 이 세상만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철학의 비조(鼻祖) 탈레스(Thales of Miletus, c-624-c-545 B.C.)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만물의 변화의 근원을 물이라고 하여 처음으로 자연현상을 신의 개입 없이 설명하였다. 그의 주장은 이집트를 여행하는 기회에 나일강의 진흙에서 작은 생물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생각에는 액체에서 기체로 또는 고체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이미 함유되어 이것이 생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610-546 B.C.)는 만물이 어떤 근원적인 실체로부터 유래했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또 한 사람의 밀레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5-528 B.C.)는 공기(pneuma)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혼도 공기이며, 공기가 탁해지면 물질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오니아학파(Ionian School)로 불리는 이 세 사람의 주장에는 관념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관찰의 방법에 의해 자연발생론을 처음 주장한 것이므로 과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과는 약간 범주를 달리한 관점에서 헤라클레이투스(Heraclitus, 460-375 B.C.)는 만물은 유전(流轉)하는 것이며 불이 그 근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유신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사고는 물질 자체에 이미 생명력이 주입되어 있다고 하는 물활론(物活論)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이런 사고는 범신론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와 창조를 좀 더 회의하는 입장에서 사색한 철학자들은 원자론자들로 불리는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460-370 B.C.)와 에피큐로스(Epicurus, 342-271 B.C.)가 있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생명은 태고의 진흙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뒤에 나온 에피큐로스는 인간에게 최고의 선은 쾌락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세상사에 신의 개입을 부정하는 쪽으로 더 나아가긴 했지만, 역시 물활론적인 입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었다. 이들의 견해는 이신론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유물론자들에 의해 유물론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소크라테스(Socrates, c-469-c-399 B.C.)의 제자 플라톤(Platon, 427-347 B.C.) 은 그리스 철학의 문헌적 기초를 만들어놓은 철학자였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과 그의 철학사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만물의 기초였으며, 불멸하는 것이었으며,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분리에 불과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그의 사상을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전파했다. 그는 악법조차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의 독배를 마셨다. 이들은 앞서 엠페도클라스(Empedoklcles, 493-433 B.C.)가 주장한 4원소설을 받아들였으나, 거기에다 이데아설을 추가적으로 제안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는 그의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설을 비판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사물을 질료와 형상으로 나누어 보았다. 여기서 질료는 물질이며, 형상은 유명론적인 실재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형상이 있고 이것에 따라 만물은 4원소의 질료가 조합하여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가 윤리학에서 목적론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유신론자라고 할 수 있으나, 그에게 신은 부동의 동자로서 제1원인일 뿐이었다. 이들에 앞선 이오니아학파를 소개한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였으나, 그때까지 그리스의 철학사상은 그에 의하여 종합되었다. 서양의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에 기초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삼단논법을 제시함으로써 이성적인 자연철학으로의 길을 열었다고 말해진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사고는 애당초 아르케(Arche), 엔텔레키(Entelechy) 프시케(Psyche) 등으로 불리는 신적 생명력이 물질에 이미 주입되어 있다고 하는 물활론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자연발생론은 자연을 육안으로 관찰하면서 얻은 경험을 이론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눈으로 썩은 고기에서 자연적으로 구더기가 나오는현상을 보았고, 그것을 주장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론적으로는 물활론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스 철학에서 신은 신화시대의 인격적인 활동을 멈추고, 자연 법칙에다 피조세계를 맡긴 채로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게 되었다.

 

2.2. 기독교에서의 자연발생론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그동안 박해를 받아오던 기독교는 4세기에 이르러서는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 재위 306-337)의 밀라노 칙령(313)에 의해 로마제국에서 자유 종교로 공인되었고, 392년에는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I, 재위 379-395) 황제에 의해서 국교가 되었다. 유스티아누스(Justinianus , 재위 527-565) 황제는 이교도적인 그리스 철학 서적 등은 아예 읽는 것조차 금지하는 한편, 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여 그의 신앙심을 과시했다. 이렇게 해서 중세기에는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론(聖三位論)과 창조론이 서양사상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바실리우스(Basilius, 315-379)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9)에 의한 기독교적 창조론은 신의 창조 명령이 태초에 일회적으로 시행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영원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의 생명 발생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인간을 괴롭히는 해충들이 부패물과 인간의 죄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교리가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에 과학의 모체였던 자연철학은 오직 신학의 시녀로서 기능할 뿐이었다.

 

2.3. 과학혁명 이후 17세기 전기까지: 초기의 실험 시대

 

그러나 16세기에 발흥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한 종교개혁을 촉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와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로 이어지는 과학 혁명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이 과학 혁명가들이 주장하는 지동설은 이때까지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ios, c-83-c-168) 체계의 천동설을 믿고 있던 기독교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재발견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에 의해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 시대의 복고주의적 사조는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는 기간까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자연발생론(spontaneous generation)이 다시 생명력을 얻고 소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지식이 힘이라고 믿었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561-1626)이 귀납적 실증주의를 강조하면서부터, 각종 논제에 대해서는 관찰이나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과학적 사조가 17세기부터 확립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신화 또는 종교적 신에 대한 믿음 또는 회의적인 주장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자연발생론을 검증하기 위하여 관찰이나 실험이 갖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자연발생론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은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 1596~1650)의 기계철학이었다. 그는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알지는 못하는 어떤 자연적인 조건이 충족되면, 생물의 자연발생은 어김없이 기계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베이컨의 입장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데카르트의 철학도 받아들인 홉스(T. Hobbes, 1588-1679)는 실재하는 것은 물질일 뿐이며, 모든 자연현상은 바로 물질의 필연적이며 기계적인 운동이라는 유물론 체계를 만들었다. 홉스는 철학은 이 물질의 운동에 대해, 결과로부터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하여 물질 이외의 관념적인 것을 철학으로부터 분리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필연적으로는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사상은 뒤에 로크와 루소로 이어져 사회계약론 학파를 형성했다.

 

이 시기에 내과 의사였던 반 헬몬트(Jan Baptist Van Helmont, 1577-1644)는 어미가 낳은 것과 똑 같은 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제조법을 발표하였다. 알곡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를 유유와 기름이 담긴 항아리에 담아두면, 이것들이 어떤 발효를 일으켜 21일 만에 쥐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혈액순환의 원리를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 의사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조차 생물은 알에서 나온다는 생물학적 현상을 발견하고서도 그리스적 자연발생설을 부인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힘이 자연적 부패와 같은 과정에 작용하면 미생물들이 자연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4. 19세기까지: 과학적 실험의 시대

 

1) 17세기 후기

 

그러나 프란체스코 레디(Francesco Redi, 1626-1697)1665년에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자연 발생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반박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두 가지 실험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여 결론을 내렸다. 그는 두 개의 병에 죽은 물고기를 넣고, 한쪽 병은 뚜껑을 덮지 않고, 한쪽 병은 머슬린으로 덮었다. 그리고 그대로 며칠 방치하면, 뚜껑을 덮지 않은 병 쪽에는 구더기가 발생했으나, 머슬린을 덮은 병에는 파리가 알을 까지 못했으므로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실험으로 레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은 부정할 수 있었으나,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기생하는 기생충에 대해서는 자연발생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레디의 고전적 자연발생론에 대한 부정은 이후에도 쉽게 반증되지 못했다.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에 의해 발명된 현미경에 의해 많은 미생물이 관찰되었는데, 미생물의 발생 원인을 자연발생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자연발생론은 육안에 의한 관찰보다는 더욱 정교해진 현미경 관찰 자료를 근거로 새롭게 과학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물활론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막 발명된 현미경의 성능이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프린키피아에서 우주는 자연법칙에 의해 운행하는 기계와 같다고 설명함으로써 기계철학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뉴턴의 견해는 낙관적 인본주의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상사에 개입하는 종교적 유신론은 위축되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발생설을 되살리는 듯한 단자론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의 단자(monad) 개념은 이제까지의 물활론적인 원자 또는 생명력이 아닌,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게 우주에 충만한 극미(極微)의 원형체(原形体) 같은 것이다. 이러한 단자가 자연적 조건에 따라 우주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역경(易經)에 나오는 동양사상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이신론적 동양사상에 심취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2) 18세기

 

18세기에 들어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적 자연발생론은 프랑스에서 뷔퐁(G. L. Buffon, 1707-1788)과 영국에서 로마가톨릭 사제 니덤(Needham, 1718-1781)에 의하여 약간씩 수정되어서 계승되었다. 그러나 레디 이후에 미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결정적 실험은 100년 뒤 1765년에 이탈리아의 동물학자 라자로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 1729-1799)에 의해 시행되었다. 그는 유기물 용액을 가열한 뒤에 공기에 접촉시키지 않고 밀폐된 용기에 보관하면, 그 용액에서는 미생물의 자연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는 공기에 있던 미생물이 유기물 용액에 접촉하는 순간에 침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실험에 대해 자연발생론 지지자들은, 밀폐된 용기 안으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서 미생물이 자연발생했다가 사멸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니덤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스팔란차니가 유기물 용액을 너무 강하게 가열해서 생명력을 사라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도 생명 발생의 원인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논쟁에 거들었다. 그러나 프랑스 계몽사상의 중심에 있었던 백과사전학파는 기계적 유물론의 입장이었다. 라 메트리(1709~51)1747년에 유명한 인간기계론을 썼고, P. 올바크(1723~89)1770년에 자연의 체계를 썼다. 메트리는 정신현상도 물체의 상태에 의존한다는 것을 논증하려 했고, 인간을 동물보다 많은 톱니바퀴를 사용한 기계에 비유했다. 또 올바크는 물질과 물질의 운동 외에 다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 운동은 기계적 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목적과 같은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종교를 격렬하게 공격했고 무신론의 기초를 놓았다. 이렇게 양 진영에서 서로 반론하는 실험이 계속되면서 자연발생론 논쟁은 생명력이 계속 유지되었다.

 

3) 19세기

 

19세기에 들어와서도 자연발생론은 파스퇴르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념론적인 물활론에 기초하여 진술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관찰 도구로서 저배율의 현미경과 도구 사용의 부적합성, 그리고 실험자의 부주의 등으로 미생물이 무성생식으로 태어나는 번식 과정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생물의 속성에 대한 무지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달리 설명할 이론이 없었다. 그래서 생물은 두 갈래의 방법, 즉 생물의 생식에 의하여 태어날 수도 있고, 부패물로부터 자연적으로도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자연발생론에 관한 논쟁은 드디어 다윈의 출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판하여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의 주장은 창조자가 최초의 생명체를 한 개 또는 몇 개 만들었지만, 창조자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자연이 선택해서 종류대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새로운 이론이었다.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이 논문에서 비판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시초가 되는 이론이므로 다음 장에서 다시 자세한 검증을 할 것이다.

 

그러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더욱 발달한 현미경을 사용하여 박테리아의 속성을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는 이런 여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했고, 1861자연발생설 비판을 출판했다. 그는 생물은 생물로부터 발생한다는 생물속생설(生物續生說, biogenesis)을 확립하였다. 이로써 물활론적인 자연발생설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2.5. 자연발생론의 변종으로서의 과학적 무신론의 출현

 

이렇게 새로운 실증주의 과학사상이 등장하면서부터 철학적 논제에 대해서조차 철저한 실험적 논증이 필요하게 되었다. 철학과 이론과학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과학적 방법의 사용이 보편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학에서는 종교적 도그마에 묶여 논증의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원인이 되어 1859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후 철학과 신학은 사상적 조류에 대한 주도권을 과학적 무신론에 넘겨주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홀대를 당하는 처지로 입장이 뒤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과학적 논증의 방법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논리의 오류를 숨긴 채 현대인의 인식에서 신뢰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1) 다윈의 종의 기원은 그의 비글호 승선에서의 관찰 자료에 근거하여 귀납법적 논리와 경험에서의 추론을 엮어 실증적인 사실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종의 기원은 그 당시의 생물학적 수준에서는 반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런 방법으로 생물을 관찰한 사람도 없었고, 그런 방법에 의하여 생물학 이론을 구성한 자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자본주의 선진국이며 해가 지지 않는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Victoria Hanover, 1819-1901, 재위 1837-1901) 시대였고, 종교적 갈등을 잠재우고 관용의 분위기에 젖어있던 때였다. 이때 나온 종의 기원은 당시로서는 영국 국교회의 교리를 부정하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새로운 것으로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당시는 계몽주의 사상이 사회적 주도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기독교 제도에 회의적인 반론을 제기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다윈의 주장은 여기에다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창조자(Creator)하나 또는 몇 개의 원시생명 즉 최초의 생명체를 만든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창조자의 행위를 극도로 제한하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함으로써 그가 공부했던 성경의 창조기사를 부정했다. 그러나 그는 무한하고 신비로운 우주와 인간이 가진 과거와 미래의 예측능력에 대해 우연과 맹목적인 (진화의)결과로서만 이해하는 것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사람과 같은 지적인 마음을 가진 제일 원인(a First Cause having an intelligent mind)”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유신론자(theist)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만물의 기원에 대한 신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존재에 대하여 불가지론자(Agnostic)로 만족한다고 고백했다. 다윈의 이런 말들은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그의 아내 엠마를 위하여 그의 생각을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종의 기원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독교의 신적 창조교리를 부인한 이후에 전개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살펴보면, 과학과 신학의 투쟁에서 결국 승리를 쟁취한 것은 과학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승리자는 그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을 결정한다. 결국 찰스 다윈이 1858년 짧은 논문으로 발표하였고, 1859년에 출판한 종의 기원1판은 이 세상에 새로운 과학적 무신론의 패러다임이 등장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2)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 사상을 발전적으로 정치사상에 접목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을 세상에 가장 강력하게 유포시킨 사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 그들은 다윈과 동시대의 사람들로서 엥겔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즉시 읽었고, 크게 감동을 받은 나머지 마르크스에게 편지를 보내 빨리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년이나 지나서야 이 책을 읽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는 즉시 다윈에게 열렬한 찬양과 주종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그의 책을 헌정하겠다고 제의했으며, 실제로 1867년 그의 자본론1권을 출판하자 곧바로 보내주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읽은 그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를 전면 부정하는 자신들의 공산주의 사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서술하려고 매우 노력했다. 특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론, 다시 말하면 유물사관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매우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유물론을 과학적 무신론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문제를 더 논의하기에는 이 논문의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이 정도의 소개로서 그치고 다른 기회로 미루겠다.

 

(3) 1917년 레닌이 러시아제국에서 마르크스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정권을 장악했을 때 알렉산더 이바노비치 오파린은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식물생리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1922년에 짧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36년에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1판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여 다윈이 설명하지 못했던 창조자(Creator)”는 자연적인 물질일 뿐이며, 생명은 물질의 우연한 조합, 그에 의하면 변증법적 비약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오파린의 이론은 공산주의 사상 이외의 모든 전통적 사상과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선전 자료가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현대인의 사고를 무신론에 빠지게 하는 등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토록 인류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사상은 그것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의 영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자연주의 또는 물질주의적 유물론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과학적 무신론의 망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윈은 생명의 출현 이후의 종의 변이에 관련해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주장했고,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허의 유물론을 바탕으로 그의 공산주의 유물사관을 주장했고,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화학적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오파린은 처음부터 유물론자로서 생명은 오직 물질적인 현상일 뿐이며, 생명체는 물질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일 뿐이라고 과학적 무신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에 대해 회의하는 것은 일치하지만, 이론의 방법과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 논문에서 이제까지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 것은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이 논문에서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그리고 이후에는 과학적 무신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은 같은 개념에서 쓰일 것임을 밝혀둔다.

 

 

3.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

 

다윈이 우리에게 제시한 이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한 종의 생물적 개체는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종과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세 가지 중심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면 복잡할 것이 없다.

 

3.1.

 

다윈은 ’(species)이라는 말과 함께 변종, (), 초기종(공통조상)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일차적으로 종이란 서로 다르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생물의 분류단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차적으로 다윈이 말하는 종의 개념은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의 개념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종이란 변이에 의해 변종이 되고 나아가 자연선택에 의해 다른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생명체인 원()종 이외에는 모든 생물 개체는 변종이다. 또한 새로운 종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조상 개체가 나타나면 그것에는 초기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공통조상이 되고 그 자손들은 다시 변종이 되는 것이다. 이 무렵 빅토리아 여왕의 대영제국 시대 사람들은 이란 하나님이 종류대로창조하신 것이므로 종은 불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지식이 다윈에 의해 뒤집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윈의 이론대로라면, 사람은 당시의 믿음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원숭이에서 변이된 하나의 생물적 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3.2. 변이

 

생물은 어느 개체도 똑 같지 않게 태어난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생물의 다양성이 발현되는 메커니즘(mechanism)을 다윈은 변이라고 부른다. 변이가 나타나는 직접적인 실례는 과학적인 실험 이외에도 식물재배를 하는 화훼업자나 동물사육을 하는 목축업자들이 품종 개량을 위해 인공적으로 잡종교배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다윈은 이렇게 인공적으로 품종의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도 똑 같은 변이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에서의 변이는 현실적으로 관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윈은 자연에서의 변이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지만 누적적으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이에 의해 자손은 부모로부터 변종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사소한 변이들이 축적되면서 다른 으로 분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이 곧 진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의 시대에는 아직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았던 때이므로 자손에게 나타나는 변이가 부와 모의 유전자의 조합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전체적인 창조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범생설(pangenesis)을 주장했다. 다윈은 범생설에서 제뮬(gemmule)이라는 부모의 형질 입자가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가정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제뮬에는 라마르크(Lamarck, Jean-Baptiste, 1744-1829)가 제안한 후천성 유전, 곧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들어 있었다. 다윈은 이러한 제뮬이 자손에게 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왓슨(James Watson, 1928- )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1953년에 유전자의 실체인 유전물질 즉 DNA(deoxyribo nucleic acid) 구조를 발견하고, 자손에게 나타나는 형질은 부모의 DNA조합에 의해서만 발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 유전학에 의해 폐기되어야 했다. 다만 현대 유전학계 일부에서는 라마르크의 후성유전설을 다시 주장하고 있기도 하나, 이런 주장은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3.3. 자연선택

 

생물의 각 개체는 부모를 닮은 자신의 신체적 구조와 주위의 환경에 의하여 생존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먹이를 놓고는 같은 종의 개체끼리도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위 포식자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생물은 이렇게 하고도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하고 출산한 자손들을 안전하게 키워내는 일에 계속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극복해야만 그 생물은 자손을 남길 수 있고 으로 생존할 수 있다. 만약 어느 하나라도 실패하면 바로 멸종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이라는 것이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사육 또는 재배하는 조건하에서 인위적인 선택으로 동식물에게 품종의 변이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에서도 동일하게 선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다윈은 여기에다 맬서스(Thomas R. Malthus, 1766-1834)인구론에서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 즉 제한된 환경조건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살아남고 불리한 개체는 도태되는 경쟁적 개념을 불어넣어 자연 선택이라는 독자적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선택과 같은 개념이다. 다윈도 종의 기원개정 5(1869)에서부터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과 충고를 받아들여 적자생존자연선택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 오히려 적자생존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이렇게 알고 보면 다윈의 진화론은 매우 단순한, 어쩌면 매우 엉성한 내용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그런데 다윈은 물론 현대 진화론자들의 저서에서도 자연선택이라는 용어에는, 진화를 위한 어떤 신적 창조력이 있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적 물활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이 종교적 도그마(dogma)진화해온 이유가 여기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3.4.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검증과 비판

 

1) ‘의 분류

 

다윈의 진화론을 이렇게 핵심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에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생명체의 변이가 다른 종으로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생물학적 의문이다. 왜냐하면 다윈의 이론은 만물이 종류대로창조되었다는 당시의 전통적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다윈의 자연적 에 대한 분류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의 분류 방법을 따르고 있었다. 린네는 자연계를 먼저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의 3계로 나누고, 계 밑에 강---종이라는 5단계에 의하여 계통적으로 분류했다. 린네는 종 하위에 변종을 넣어 두었는데 이는 현대적 분류법에서는 품종 또는 아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은 린네의 분류법에 따라 종과 변종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의 고전 유전학에서부터 왓슨과 크릭을 거쳐 온 현대 유전학에서는 진화론적 방법이 아니면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진화론에 경도되어 있다. 1940년대에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결합하려고 했던 현대종합설(modern evolutionary synthesis) 그룹의 멤버인 데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75)나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1904-2005) 등은 종을 정의하면서, “종이란 실제로 또는 잠재적으로 교배가 이루어지는 개체군의 자연 집단이며, 이들은 다른 집단과 생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다고 하여 생물학적 종의 개념을 새로 마련했다. 이들의 말에는 생식장벽(reproductive barrier)’이라는 개념이 종 단위를 구분하는데 쓰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필자는 진화론자들과는 달리 생식장벽이라는 생물학적 실제 현상을 이용하여 다윈의 이론을 비판할 것이다.

 

2) 생식장벽

 

생식장벽이라는 말은 생물은 종이 다르거나 지역과 시간, 그리고 생식기 구조 등에 차이가 있으면 생식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윈 당시의 린네 분류법에 의하면, ‘생식장벽은 오늘날과 달리 종의 상위에 있는 속 단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쨌든 생물학적 진화론은 하등생물이 고등생물로 진화한다는 것이므로 이런 차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검증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나의 종 또는 속이 생식적 장벽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다른 종 또는 속으로 진화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화론은 정당한 이론으로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다윈이 주장하는 변이가 실제로 생식적 장벽을 건너 뛰어넘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생물의 생식적 장벽은 다윈 시대에는 그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현대의 생물학계에서도 깊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한 문제는 다윈의 범생설이 틀린 가설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진화론을 무너뜨리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입장에 서있는 현대의 생물과학은 이 생식적 장벽을 종 분류의 기준에만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의 생식장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다윈이 주장하는 변이가 소진화(=종내 변이, 품종, 변종)까지는 가능하지만, 종을 뛰어넘는 대진화(=종의 분화, 돌연변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생물들에는 두 가지의 생식(reproduction) 유형이 있다. 첫째 유성 생식은 부의 정자를 모의 난자가 수정하는 순간에 부와 모의 유전자 결합이 이루어지며, 자손의 몸체가 형성된다. 유성생식에서는 부모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새로 자손의 유전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 둘째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은 부가 없이 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으므로 생식장벽이나 변이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생식장벽은 유성생식 생물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생식장벽은 생식행위의 전(pre-zygotic)과 후(post-zygotic)로 나누어보아야 한다. 먼저 생식행위 후에는 암수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라는 수정 과정이 이어진다. 그러나 수정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다. 암수가 생식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수정이 되지 않으면, 결과는 불인으로 끝나고 자손은 태어날 수 없다. 그런데 생식행위 후에 수정이 안 되는 생식 장벽의 이유가 확실히 밝혀진 것은 1990년에 시작되어 2003년에 완료된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 이후이다. 여기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각 생물은 유전물질인 DNA의 구조와 수와 구성물질 및 수정과정에 개입하는 성분비물의 화학적 성분과 기능 등이 각각 다르다. 이런 것들이 다른 종과의 생식에서 수정을 방해하기 때문에 생식장벽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어떤 종의 난자도 다른 종의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종간에는 억지로 생식행위를 했다하더라도 앞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수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는 말과 당나귀, 그리고 호랑이와 사자 같이 근린종이 억지로 교배하여 생식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그 자손은 불임이 된다. 말하자면 불구 자손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종교배를 통해서 태어난 잡종 개체를 하나의 초기종으로 볼 수는 있지만, 자손의 번식을 가로막는 생식장벽에 의해 새로운 종으로 분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식행위 전의 생식장벽에 대해서는 기존 종내에서의 문제는 이곳에서 논외로 하기로 하고, ‘초기종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만약 생식 가능한 하나의 초기 종이 정말 아주 우연하게태어났다고 해도, 초기 종이 자손을 생식하기 위해서는 암수의 생식기와 생식행위 방법에서 구조적 결합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실제 수정이 가능한 초기종의 암수가 서로 짝을 맞추어야 하는데, 초기종에서 구조적으로 생식 가능한 암수가 정말 동시적으로, 동일지역에서, 만들어져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적 확률의 원리에서 보면, 극히 낮은 확률의 사건이 동일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겹쳐 일어나는 것은 자연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주 우연하게하나의 초기종이 생겨났다고 해도, 이러한 구조적 생식장벽 때문에 그것은 혼자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억지로 근린종과 생식행위를 한다 해도 생식행위 후의 생식장벽에 막히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3) 돌연변이 초기종의 가능성

 

점진적 변이의 누적이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다윈은 돌연변이진화를 적극 부정했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인 골드 슈미트(Richard Goldschmidt 1878-1958)25년 동안이나 집시나방 (gypsy moth, Lymantria)의 계대 실험을 했지만, ‘초기종은 물론 중간종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1940진화론의 물질적 기초, Material Basis of Evolution에서 초기종이 생겨날 수 있는 길은 돌연변이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초기종희망적 괴물(hopeful monsters)”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이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희망적으로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절망의 역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험의 결과였으므로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신다윈주의(New Darwinism)라고 불리면서,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 이론을 결합한 현대종합설과 경쟁하는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진화론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 역시 점진적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중간 화석의 부재를 변명하기 위해서는 슈미트의 주장을 빌려야 했다. 1972년 굴드는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공동으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제안했다. 이것 역시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새로운 초기종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돌연변이에 의해 하나의 초기 종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설명한 생식장벽에 막혀 새로운 종의 출현은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는 이런 (돌연)변이가 우연하게성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고, 무지한 일반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종이 살고 있는데 이것들이 하나 또는 몇 개의원시 생물에서 (돌연)변이된 것이라고 한다면, 특히 캄브리아기에는 수많은 종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에서 본다면, 그 많은 종들이 우연하게’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종의 진화가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돌연)변이된 초기종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윈의 진화론을 검증하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생물에게 종내 변이, 즉 품종이나 아종 수준의 소진화는 일어나도 생식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이 되는 대진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적 방법으로 따지고 보면 다윈의 진화론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노래(가설) 수준에 그냥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이런저런 새로운 이론을 덧붙이면서 누더기가 된 다윈의 진화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부정되면 그들의 무신론도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다윈의 진화론은 종내에서 일어나는 다양성의 발현 곧 품종의 변화를 상위계층의 분류에까지 적용하려는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자연선택론은 물활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문제는 다윈을 반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윈이 미결의 장으로 남겨두었던 진화의 제일 원인또는 제일차 법칙을 해결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4.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

 

오파린(Alexander Ivanovich Oparin, 1894-1980)은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1917년에 식물생리학을 전공하던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오파린이 러시아 식물학회에서 지구상에서 생명의 기원에 관련한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한 때는 다윈이 죽고 나서 40년이 지난 1922년이었다. 이 해는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해였다. 그리고 그의 이론에 관련된 소책자가 출판된 것이 1923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6지구상에서의 생명의 기원1판이 책으로 출판되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그 뒤에 오파린의 일생 동안 몇 차례 개정되었으나, 그 속에 담긴 기본적인 사상과 이론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책은 생명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서방에서는 오파린의 이론을 화학적 진화론이라고 부르지만, 오파린은 변증법적또는 유물론적 법칙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생명의 기원에 나타난 오파린의 이론을 보면, 우주 물질의 변화를 화학적으로 설명하고 이러한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철저하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추종하는 소비에트 러시아 공산주의 집권 세력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서구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오파린이 그의 생명의 기원이론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1953년에 대중용으로 생명의 기원을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대중판은 일반인들에게 공산주의 유물사관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려고 만든 선전용 책자였기 때문에 내용을 공산주의 이론에서 쓰는 용어로 바꾸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의 기본 틀이나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4.1.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이론

 

우주는 대폭발에 의하여 생겨났으므로 초고온 상태에서 차츰 냉각되었다. 처음으로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탄화수소가 12,000에서 나타났다. 탄화수소는 빅뱅(Big Bang) 우주 기원설을 증명하는 우주의 공통 물질이다. 지구를 포함하는 태양계는 약 50억 년 전에 우주 먼지 또는 가스 덩어리로부터 형성되었다. 차츰 우주가 냉각되면서 나타난 원자들의 결합을 통해 간단하지만 매우 다양한 무기화합물이 만들어져서 지구의 바닷물에 함유되었다. 우주의 물질적 진화 역사의 가장 긴 시간이 여기까지의 과정에 소요되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무기화합물에서 유기화합물로 진화하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우주와 지구의 물질적 진화를 설명한 오파린은 특이하게도 지구의 원시 대기에 수증기는 있었지만 산소와 질소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원시 바다에서는 아미노산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단백질이 합성되었다. 다양한 외부적 힘의 영향을 받아 고분자 입자들로 결합한 단백질 화합물이 원형질 형태의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를 형성하여 생명체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물질 발전에서의 새로운 법칙, 생물학적 성격을 갖는 법칙이 적용되었다. 오파린에 의하면, 이 법칙은 생물을 살아 있는 기계로 보는 관념론적 기계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형질 조직이 기계와 다른 점은 부분의 배열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화학변화의 일정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의 유물론적인 생명의 기원이론의 기초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러한 물질적 화학 변화의 축적이 질적으로 새로운원형질의 존재형식을 초래하였고,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간단한 원시생명이 태어나는 변증법적 비약이 발생했다. 오파린은 이 새로운 변증법적 비약세포가 아닌 살아있는 물질로부터 세포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준 O. 레페신스카야의 실험을 기초로 해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을 근거로 해서 오파린은 과학에서의 반동주의자인 독일의 생물학자 비르효(Rudolf Virchow, 1821-1905)의 세포는 세포에 의해서만 생겨난다는 세포속생설은 근본적으로 반박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파린은 이렇게 변증법적 비약으로 생성된 최초의 원시 생명체는 주변의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했을 것이라는 종속영양설을 제안했다. 또한 원시생물의 구조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완성되어 갔으며, 햇볕을 이용하여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들어내는 독립영양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파린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남조류가 발생했고, 이후 이런 식물을 먹는 단세포 동물계가 생성되었다.

 

이후부터 오파린의 이론은 원시생물이 점점 고등생물로 진화했다는 다윈의 이론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생명의 출현 이후에 이어지는 오파린의 이론은 우리가 더 검토할 필요가 없다. 오파린은 그의 책의 결론에서, 유물론 과학이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생물을 만들었다거나 뜬 구름 잡는 듯한 생명기원설”, 그리고 관념론이나 형이상학과 반동적인 실증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을 모두 타파했다고 말한다. 또한 앞으로도 과학이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물변증법적 세계관과 이론 및 방법론이 중대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곧 생체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므로 생명은 물질의 특별한 형태 이외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것에 의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생명의 기원3판의 결론 부분에서는, 물질대사에서 나타나는 고등형태의 물질 유기화(有機化)를 더 자세하게 연구하면 자연에서보다 생명을 더 높은 비율로 합성할 수 있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이것이 인공 생명을 만들어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로 나아가게 하리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공 생명의 출현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4.2.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이론에 대한 검증과 비판

 

오파린의 이론에서 중심적인 개념은 자연에서 무기물이 무기화합물이 되고, 이것이 다시 유기화합물로 변화되는 다단계 과정을 거쳐 원시 생명체로 변증법적 비약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변화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1953년 유명한 유레이(Harold C. Urey; 1893-1981)와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의 공동실험에서 몇 가지 아미노산이 생성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오파린의 이론에 의해 원시지구의 환원성 대기에는 없었다고 가정했던 이산화탄소가 후에 화성의 대기에서 발견됨으로써 논거를 잃고 말았다. 그 뒤에 이와 유사한 실험들이 수없이 시도되었으나, 생명체에서 필수적으로 생성되어야 하는 수많은 단백질 종류 중에서 이들이 실험에서 생성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몇 개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유기물질을 이용하여 세포조직과 같은 구조를 만들어도 생명현상은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파린도 이 부분이 가장 덜 연구되었으며, 여기에 가장 심각한 지식의 간격(most serious gap in our knowledge)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파린은 어떻게 검증되지도 않은 가설을 마치 과학적 진리인양 주장하고, 이를 근거로 다른 과학자들의 정당한 이론을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오파린이 순수한 과학자가 아니라, 공산주의 유물론의 광신자로서 체제를 확산 유지하려는 집권세력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의 과학이 곧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낼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는 공산당의 상투 용어를 써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동분자라고 비판했고, 현대에서 그의 추종자들도 역시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판본들을 보면,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지 않는 세계의 모든 철학과 과학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포함된다. 더구나 이러한 비판은 판을 거듭할수록 더욱 확장되고 치밀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신봉하는 공산주의 이론이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선전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 뒤에 나오는 이론은 일반적인 과학서적에서처럼 자연에서 발견한 현상을 바탕으로 이론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유물론적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이론은 겉으로는 과학의 가면을 쓰고 과학적 방법으로 잘 설명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그의 이론은 가정을 전제로 한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1) 생물학에 의한 오파린의 이론 검증

 

그렇다면 오파린이 반동적인 이론이라고 공격했던 비르효의 세포속생설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의 생물속생설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기둥 원리이다. 세포는 세포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물은 생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생물학에서 입증된 진리이다. 그리고 모든 생물의 몸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오파린은 생명이 자연에서, 물론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수정도 없이, 저절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아예 생식기능까지 갖춘 단세포 생명체가 자연에서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파린도 다윈도 지구에서 최초로 출현한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는 이론에서는 동일하다.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한 검토는 생물의 세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물은 무성 또는 유성 생식을 하면서 자손을 번식한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유성생식 생물의 세포는 체세포와 생식세포의 두 가지가 있다. 체세포는 몸의 각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며, 모든 체세포의 핵 안에는 그 생물의 유전자가 들어있다. 인간을 예로 들자면, 체세포 유전자에는 23쌍으로 구성된 염색체가 두 줄(23X2) 들어있다. 그런데 생식에 사용되는 성세포, 즉 정자와 난자에는 23개의 염색체가 각각 한 줄만 들어있다. 여기에 생식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생식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여 23개의 암수 염색체가 두 줄(23x2)로 결합해서 하나의 수정된 세포가 되어야 자손의 몸체로 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세포에는 반드시 46개의 염색체가 있어야 정상적인 생명체의 기능을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세포는 모든 생명체의 구조적 기본단위이다. 그리고 세포 안에는 그 생명체의 각종 생명활동을 지시하는 유전자 암호가 들어 있어야 한다. 유전자의 수와 구조는 각 생물마다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이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진화론적 생물학에서 원시생물의 모형으로 주장하는 막대세균의 단세포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 1>을 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생명체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적 구조가 간략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엄청나게 복잡한 것이다.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복잡한 구조가 생명적 존재라는 목적을 가지고 자연에서 저절로 우연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과연 이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검증하고도 자연에서 이런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났다는 진화론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림: 1>

 

2) “변증법적 비약에 의한 생명의 발생은 가능한가?

 

어쨌거나 오파린의 유물론적 이론(아직까지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어서 실질적 가치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화학공식을 인용할 필요는 없다)에 의하면, 물질적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변증법적 비약에 의해 생명이 발생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원세포 생물이 저절로 발생되어서 진화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생명의 인공적 합성이 유물론적 과학을 통해서 곧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현상은 자연이나 실험에서 관찰되지 못했다. 오파린이 자주 생명체의 물질대사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을 변명하기 위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이론을 발표한(1922) 이후 1980년에 죽을 때까지 소비에트 공산당 정부의 전폭적인 물적 · 인적 지원을 받으면서, 또한 그의 생애를 다 바쳐서 연구했고, 서방에서도 그의 추종자들이 온갖 실험과 연구를 계속한지 100년이 다 되었다. 오파린의 변증법적 비약이 마술적 주문(呪文)이 아니고 과학이라면, 그동안 인공적으로 만든 세포에서 변증법적 비약에 의해 한 번이라도 생명현상이 나타나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적 생명의 생성은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오파린이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는 입장은 판본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다. 그 이유는 오파린이 그의 이론이 사실적으로 입증되지 못하고 있음을 그때마다 변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전적으로 공산주의 유물론을 선전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하나의 도구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를 추종하는 진화론자들은 변증법적 비약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적 경우의 수는 아직 남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파린의 유물론적 가설에 따라 아무리 오랫동안 인공생명체를 실험한다 해도, 최초의 조상들 이후에, ‘세포속생설생물속생설이라는 생물학의 기본원리를 깨는 결과는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오파린의 이론이 입증된다면 생명은 물질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증명되는 것이고, 죽은 시체도 살려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존 생명체의 각 부분을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 있는 의술을 이미 확보했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저 고장 나는 것일 뿐이지 수리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공적인 생명을 과학이 만들어낸다면, 그 과학자는 지구에서 그가 만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신()의 지위에 등극하게 될 것이다.

 

5. 결론

 

이제까지 우리가 검토한 것과 같이 다윈이 생물 진화의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이는 생식장벽이라는 절벽에 막히면서 그저 종내(種內)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의 발현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또한 무기물에서 진화한 유기 화합물이 변증법적 비약을 통해 생명체가 되었다는 오파린의 이론은 공산주의 유물론의 선전용 허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물의 기본 단위가 되는 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아무리 실험해보아도 생명현상은 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명이 물질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며, 또한 생명체는 물질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윈과 오파린에 의한 진화론은 모두 허구적 가설이며 오류라는 사실이 검증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진화론은 생명과 물질의 법칙을 잘못 해석한 하나의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자들이 진화론에 근거하여 무신론을 주장하고 전통적 유신론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윤리체계를 뒤엎겠다는 혁명적 발상에서 나온 적대적 이념 공세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런 사실은 다윈의 진화론을 열렬히 환영했던 자들이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폐지한다고 선언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그리고 오파린은 이들보다 더 나아가 인간을 아예 기계와 같이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개조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화학진화론을 주장했다.

이렇게 알고 보면 진화론자들은 과학 교과서에서조차 자연선택을 만능기계처럼 창조력을 가진 자연으로, ‘진화라는 용어를 진보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도록 갖다 붙여 놓는다. 이렇게 해서 모든 논증 또는 검증 과정을 필요 없는 것처럼 생략해버리는 과학적 기만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검증된 과학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다윈과 오파린이 자연에서의 진화는 목적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방향성도 있을 수 없음을 명백하게 주장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진화론 추종자들은 진화가 좋은 목적과 방향으로 진보하는 생명법칙인 것처럼, 공공연하게 학생들과 일반인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진화진보를 동의어로 착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학사전에서도 그렇게 정의하고 있을 정도이다. 마침내 진화는 좋은 것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널리 퍼져서, ‘진화라는 용어를 어디에서나 마구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기만행위들에 의해 사회가 오염되어 이제는 인간 사회의 법적 규범에서 거짓말은 처벌 받을만한 행위에 끼이지도 않는다.

이제까지 이 논문에서의 검증만으로도 우리는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과학적 오류에 불과한 허위이론이다는 대답을 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진화론자들에게 공세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진화론자들은 인간을 원숭이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고 인간의 가치와 윤리의 근거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다른 동물과 같지 않은 지적 존재라는 사실과 진화론적인 정글의 법칙을 초월하는 위대한 존재임을 스스로 정립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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