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연구 페이퍼

바울신학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의 삶

heojohn 2020. 4. 5. 13:10

 1 서론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사도행전 11:26에 처음 나온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가르치는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파견한 바나바와 바나바가 다소에 찾아가서 만나매데리고 온 사울을 말한다. 당시 스데반의 순교사건으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이로 인해 각지에서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하였다. 바나바는 혼자 가르치기 힘들 정도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리고 온 것이다. 바나바와 사울(바울)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안디옥 사람들은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사도행전 11장 전반부에 보면, 욥바에 있던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율법에 먹기를 금지한 짐승들이 하늘에서 보자기에 싸여 내려오는 환상을 보고 이를 잡아 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다. 이것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한 베드로는 곧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 가이샤라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간다. 베드로는 그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때에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이러한 그의 체험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를 들은 믿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생명 얻는 회개를 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방인인 안디옥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아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또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이전에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성경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모든 인류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분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들이요, 율법을 모르는 자들은 이방인들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창세기에 의하면,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의 부부 8명 이외에는 모두 물에 빠져 죽었으므로 현생 인류의 시조는 노아가 된다. 그러나 이들도 아담의 계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인정된다. 그런데 아담을 조상으로 하는 인류가 결국에는 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로 구분되어야 하는가? 성경에 의하면,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담의 타락과 그 후손들의 죄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메시아로 오심에서 비롯한다.

 

2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신약성서신학을 연구한 로제에 의하면, “바울은 인간을 그에게 부여된 책임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순종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간주한다.” 이 말에서부터 로제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바울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학적 인식을 조명하고 있다.

 

2.1 창조주 하나님

 

바울은 고전 8:6에서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생겼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한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습니다고 말한다. 로제는 이 말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따라서 그를 생각하고 그를 섬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바울의 신학을 요약한다. 바울에게 우주(코스모스)모든 인간과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와 우주(모든 인간)을 화해시키셨고,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로제는 앞에서 요약한 바와 같은 바울의 신인식에서는, 스토아 철학과는 달리 로고스와 인간의 화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자연적인 신인식을 율법의 일반적인 승인과 복종의 전단계로 간주하는 헬라유대교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솔로몬의 지혜서 13)”: 모든 인간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존귀함을 거부하고, 그들의 죄를 자복하지 않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였다.

 

로제에 의하면, 바울은 인간을 영과 육의 이원론적인 상하부 구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상에 속한 영은 한시적이나 영혼은 불멸한다는 헬라적 견해와 육을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영지주의적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다.

 

2.2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

 

로제는 바울이 인간이 하나님과 주님에게 책임적인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소마(soma)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로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고전 5:3). 여기서 영과 육(소마)은 분명하게 내용적 대조를 나타낸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소마(soma)로 만나고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긴밀히 연관된다.” 소마는 단지 인간의 외적인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로제는 여기에서 그의 소마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총체적인 소마로 간주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소마의 총체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로제는 바울에게 있어서 죽은 자의 부활은 육체(소마)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소마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인들처럼 영혼이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소마는 영을 통해 인간의 전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며, 새창조를 입는 인간의 신령한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전체성을 해체하는 극단적인 성령주의자를 단호히 배격한다. 따라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죽음에서 육체(soma)로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로제는 케제만을 인용하여 바울의 소마 개념의 특징적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은 육신을 입고 한 분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주권에 속해야 할 필연성에 직면해 있다. 이제 인간에게는 이 세상의 대표자인 아담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부활 세계의 대표자인 그리스도를 택할 것인지 결단의 기회만 남아 있을 뿐이다(Kaseman, EVB I. 32).”

 

2.3 바울의 인간학적 용어들의 개념 이해

 

로제는 신약성서에서 바울이 인간과 관련하여 쓴 헬라어 용어들을 모아 신학적 개념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의 설명이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바울 신학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자료는 된다.

 

푸시케: 구약성서의 네페쉬와 같이,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신명 을 바친 삶으로서의 혼, 또는 마음, 또는 신령한 몸과 대조되는 자연의 몸을 가리키 기도 한다.

 

프뉴마: 구약성서의 루아흐와 같이 인간의 자아에 관한 인간학적 용어로 쓰인다. , 심령 등으로 번역된다.

 

카르디아: 원함(10:1), 갈망(1:24), 의지(고전 4:5)의 주체를 나타낸다. 마음으로 번역 된다.

 

누스: 이성으로 번역되는 말로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의 주체로 간주되는 전인을 가리킨다.

 

수네이데시스: 양심이라는 말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앎을 뜻한다. 로마서2:15에서와 같이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게 하고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

 

싸륵스: 자신의 가능성이나 능력으로부터 그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인간을 표현한다. 바울은 이 말을 구약성서와 관련하여 모든 인간의 모든 육체(3:20, 2:16)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인간은 육(싸륵스)와 피(아이마)로 표현된다. 할례는 육에도 마음에 도 받는다. 그러나 육에 받은 할례가 율법에 따른 것이라면, 마음에 받은 할례는 성령 으로 받는 것이다. (싸륵스)과 죄(하마르티아)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죄와 율법(노모스)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서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3:4).

 

3. 그리스도인의 삶

 

로제에 의하면, 바울은 복음을 믿는 자들의 새롭게 변화된 삶을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결정된 존재로 그리고 고양되신 주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새로운 창조로 표현한다.

 

3.1 새 생명

 

로제는 바울은 신비주의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새 생명(고전 15:22)은 아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형식은 신비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 얻은 생명은 새 생명이 된다. 바울에게 새 생명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와 율법과 죽음의 권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3.2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영 안에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프뉴마)”는 인간학적 개념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 로제에 의하면, 바울은 영의 개념에서 구약성서적인 이해를 전제로 하고 원시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교회에 주시는 종말적 선물임을 말한다. 프뉴마는 세례를 통해 공동체의 지체들에게도 선사된다(고전 6:11; 12:13 ). 여기서 하나님은 프뉴마를 통해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해주는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고양되신 주님께서는 프뉴마를 통해 그의 권속들에게 역사하신다. 싸륵스와 대조적인 프뉴마는 인간의 하층부를 억압하는 인간의 상층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프뉴마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5:24)고 말한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5:25)고도 말한다. 바울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싸륵스와 프뉴마의 싸움을 끝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6:11)고 말한다. 로제는 이것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승인을 얻고 그리스도의 일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신앙을 통해 이런 은사를 받아야 한다.”

 

3.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변화된 삶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들음에서 생긴다고 말한다(10:17).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1:27)이며, 이것은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1:28).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2:20).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범이 된다고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로제는 여기서 갈라디아서 3:13-15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며 피차 멸망할까 피차 조심하라는 말씀에서,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율법은 많은 계명들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에 사랑의 계명은 그때그때의 행동을 결정짓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제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계산하는 삶을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고전 7:17-24).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7:22에서는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 말한다. 이 말들을 인용하면서 로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규범에 대해 주님에게서 부름 받은 종들은 스스로를 주님에게 속한 자유자로 인식하여야 한다고 제시한다. 로제는 또 바울의 훈계를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책임성 있는 존재들로 이 땅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4. 결론

 

바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부분의 이해를 함에 있어서 필자는 로마서 12:14-21에 있는 바울의 훈계는 무엇보다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개역개정판에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따라서 이를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도 무난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교단의 교리적 또는 어떤 신학자의 신학적 주장에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면서 성령의 조명에 의한 각자의 이해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숭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