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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그리스도론

heojohn 2020. 4. 5. 23:06

 

 

  이 연구 리포트는  에두하르트 로제(Eduhard Rohse)신약성서신학에서 제10장부터 12장까지를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로제는 이 3개의 장들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를 통하여 예수 부활의 신앙이 자라났고, 예수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론 형성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소망을 가지게 하는 종말론이 되었다고 본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제10장)

 

1) 원시 그리스도교의 설교

로제에 의하면, 원시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에

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증인들을 통해서 먼저 전달되었다. 그러나 복음서의 기록에서 부활사화는 어떤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로제는 초기 케리그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죽음을 이긴 승리와 결코 죽을 수 없는 생명의 시작으로 선포함에는 일치한다고 본다. 로제는 이런 부활을 증언하는 자들이나 들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단지 헌신적인 믿음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분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로제에게는 부활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거나,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것은 선포를 통해서만 증거될 뿐이다.”

 

2) 부활소식

로제에 의하면, 복음서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증인들은 목격 장소와 시간을 증언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로제는 “(9; 22, 26장에 나오는 내용은 전설적인 내용이다)”고 규정하면서 바울은 부활한 주의 현현을 서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제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다른 기록들은 배제한 채, 7절만을 인용하여 주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12제자가 아니라, “부활하신 분을 선포했던 원시 그리스도교의 선교사 그룹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또 갈라디아서 1:16절과 고린도전서 9:1절을 연결하여 하나님께서 그(예수: 필자 주)를 그의 아들로 계시하셨으므로, “(바울: 필자 주)는 주를 보았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현을 보지 못했으므로 서술하지 않았으며, 바울은 단지 계시에 의해 주를 본 것이 된다. 그러므로 부활한 주의 현현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복음은 예루살렘 부활 사화를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갈릴리 부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요한복음서는 20장과 21장에서 예루살렘 부활사화와 갈릴리 부활사화를 기록하고 있다. 로제는 이런 부활사화를 역사적 보도로 평가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 함축된 중요한 의미를 발견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케리그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으며, 부활하신 분은 그의 권속들에게 주로 증거된다는 하나의 일치된 증언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텅 빈 무덤 사건

로제에게 텅 빈 무덤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서 기자는 28:1절 이하 기록에서 천사의 말을 빌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나, “스스로 부활을 묘사하기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주장하면, 천사가 말해주었다는 증언만으로는 반론의 증거로서 미흡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론(제11장)

 

여기서 로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존칭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리스도론의 형성과정을 진술한다. 로제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 사건에 나타난 보편적 의미를 신앙고백과 설교를 통해서 전파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예수는 메시아이며 다윗의 자손이시다. 그는 인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가 되신 분이시다.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셨다가, 구원 사역을 펼치셨으며, 결국 영화롭게 들리우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로제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우리의 죄를 위해(고전 15:3-5) 죽으셨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의 피는 많은 사람들(=모두)을 위해(14:24) 흘려진 것이다. 그의 이러한 해석에 하면, 그리스도교는 예수 부활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의 출생과 죽음 자체는 곧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딤전 2:5)”을 뜻하게 된 것이다. 로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보편적인 의미는 바울이 쓴 로마서 3:25절 이하에서 구원에 연결되어 나타난다. 로제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사람에게 속죄제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받으면 속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 하는 것이다.” 로제는 우리말로 속죄제물로 번역된 그리스어 힐라스테리온의 개념은 더 이상 법궤의 뚜껑과 관련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법궤는 이미 분실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희생제사에서처럼 속죄 제물이 되었으므로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유월절 어린 양(고전 5: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1:29)”으로 간주된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전 15:20). 이것은 바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로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무효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결합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고 본다. 로제에 의하면, 이러한 공속은 사도행전 저자의 확정된 구조에 따라 여러 구절들(2: 14-39; 3:12-26; 4:9-12 등등) 에서 형태화되었다. 케리그마에서 구약성서의 본문들과 증인들이 이것과 연결되고, 이러한 연설의 마지막에는 청중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수용하도록 호소하는 내용이 추가되어졌다.

 

2) 존칭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체의 칭호는 신앙의 고백이다. “예수는 메시아시며 그리스도이시다(8:29).” 이방세계에서는 다양한 신의 아들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된다. 팔레스틴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이해된 헬라어 파이스는 아들의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헬라 공동체에서 그리스도는 아들의 의미를 넘어 주(Kyrios)로 불려졌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고전 12:3)”는 고백이 나타났다. 로제는 의 칭호는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하나님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퀴리오스 그리스도론(Kyoischristologie)”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주의 말씀으로 소개하였다(살전 4:15: 고전 7:10, 12; 9:14; 11:23).”

 

구원자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라고 호칭한 것은 기원 후 1세기말부터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로제는 이 무렵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요한복음에서 로고스론(1:1)과 도마의 고백(20:28)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양성론과 삼위일체론의 교리로 발전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던 다양한 존칭들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론의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되었다.

 

3) 그리스도론의 형성

로제에 의하면, 이외에도 그리스도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중요한 세 가지 사고영역이 있었다.

 

(1). 지상적 그리스도: 그리스도에 대한 존칭은 부활하시고 고양된 분뿐만이 아니라, 지상적 주님에게도 부여된다. 로제에 의하면, “신적인 인간이 이적을 통해 신의 현현을 확실하게 한다는 사상이 이미 있었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에게 위임되었다(주어졌다: 필자 주).” 예수는 귀신을 축출하고 병을 치유하며 죽은 자를 소생시킬 때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난다. 지상적 그리스도의 신적 행위는 십자가 신학과 결합되었다.

(2). 동정녀 탄생: 로제는 이시야서 7:10“....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구절이 그리스도교의 처녀잉태설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본다. 그것은 누가복음 1:32절과 상응하게 된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선재: 로제는 잠언 8: 22절에서 지혜는 창조 때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창조사역에 동참하였다는 고대 유대교 전승을 찾아내고,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지혜에 대해 언급한다. 고대 세계에서 전승된 선재 모티브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초기 그리스도교에 다시 나타난다. 영원한 로고스는 육신이 되었다는 사상은 요한의 복음서 1:1절 이하 로고스론에 나타나 있다. 바울의 선재 사상은 고린도 전서 8:6절에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그의 것이고: 필자 주)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사느니라).”

 

3. 종말론(제12)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승천한 그리스도가 곧 재림할 것이라는 기대가 매우 강하였다. 그러나 재림이 지체되었을 때, 그것은 임박한 종말이 아닌 미래에 도래하게 될 종말로 설명되었다.

 

1) 임박한 종말 기대

예수는 그의 현재를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표적으로 보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로제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 승천한 후에 변화된 그리스도론을 통해서 변화된 종말론적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임박한 미래에 확실히 나타난다. 그래서 공동체는 마라나타-우리의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를 외친다. 바울 자신도 임박한 종말론자였음이 그의 편지에서 입증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전 4:16-17). 로제는 고린도 전서 15:52절을 인용하여 그래서 그들은 부활(방황: 필자 주)하지 않고 방황(부활: 필자 주)하게 된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부활 또는 변화되지 아나하면: 필자 주) 미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헬라어인 파루시아개념은 불충분하게나마 묵시적으로 주의 재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로제는 이런 그리스도의 재림 묵시의 특징을 주께서 가까우시다. 그는 오시며 우리는 그에게 속한다는 의미로 요약한다.

 

2) 재림지연의 문제

바울이 기대하던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생전에 실현되지 않았다. 바울은 그의 죽음에 앞서 지연되는 재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로제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고린도후서 15장에서 바울이 생전에 주의 재림을 기대한 것은 단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빌립보서 1:23절을 빌려 해석하고 있다. 로제는 그 근거로 바울이 데살로니기후서 2:3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앞서 종말 사건들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로제에 의하면, 묵시사상 또한 왜 아직 마지막이 아닌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공관복음서 묵시록(13:1-27 병행)에서는 종말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유로서 종말 전에 일어나야 할 종말 사건들이 비유로 열거되어 있다. 종말은 기대되고 있지만, 임박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종말의 지연이 초기 교회를 크게 동요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지금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며 그의 권속들은 성령을 통해 그와 결합되었다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3) 구원의 현재

하나님의 평화는 그의 선택받은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2:14). 여기서 로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그들이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시공간적 현재라고 본다.

 

4) 하나님의 영

로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의 완성은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영접했던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 영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영의 사역은 경이로운 현상과 환상적인 작용과 방언과 같은 것을 통해 표현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영은 다가올 구원의 열매로 제공하는 것이다(8:23).” 하나님의 영은 세례를 받을 때 이미 받은 것이며, 세례 받은 자의 실존은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미 결정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현존하므로 하나님의 주권은 이미 실현되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은 재림이 언제 도래할 것이냐 하는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4. 종합적 평가

 

로제는 신약성서신학은 신약성서 문헌들에 대한 역사비평적인 해석에서 출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로제는 신약성서의 케리그마를 객관적이고 비평적으로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들은 불트만의 신약성서신학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며 충분히 그것과 대화를 시도해야만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불트만은 잘 알려진 대로 예수의 부활사건 같은 것은 신화적인 서술이므로 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성서에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신화가 제거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원시 기독교의 케리그마를 통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제에게는 그리스도를 신앙하느냐 아니하느냐하는 칭의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로제는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 저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로제에 의하면, 기독교는 단지 케리그마에 의해서 발전된 종교이며, 여기에 나타난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제물에 그치고 만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영과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숭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