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연구/기독교 역사 이야기

세례논쟁 및 그 전말에 관한 고찰-루터, 츠빙글리, 재세례파, 칼빈

heojohn 2020. 4. 8. 22:59

 

I. 서 론

 

신약성경에 의하면, 세례는 처음에 유대인들을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3:1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3: 16), 그 후에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서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셨다(3:22). 더욱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는 갈릴리에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고 사도들에게 친히 명령하셨다(28:19). 그러므로 세례는 기독교의 처음 시작에서부터 집행되어온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제자, 즉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서 가장 중요한 성례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례의 형식을 차츰 정립하면서 세례를 포함한 7성례를 확정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세례는 7성례의 하나로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로마가톨릭교회의 7성례를 비판하여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의 성례만 인정하고 나머지 다섯 가지는 일반적인 전례로 격하했다. 루터의 이러한 견해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므로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동의하는 것이었다. 특히 뒤에 영국교회에서 나온 “39개조에서는 성례의 성격과 종류를 한정하여, “복음에서 우리 주께서 정하신것으로 세례와 성만찬의 두 가지만을 성례로 인정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성례의 원칙은 로마가톨릭의 견해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교회와 개혁교회의 세례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외형적으로는 일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치 속에서도 어떤 사항에서는 약간씩, 때로는 전혀 다른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시실이다. 종교개혁 진영 사이에서도 특히 재세례파는 세례를 받는 자, 즉 교회에 입문할 수 있는 자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온전하게 하는 자들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고, 성인들에게 몸이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고집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재세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종교개혁 시대의 세례를 이해하는 일에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의 세례관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이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어떻게 비판하고 논쟁하였으며, 그 전말은 어떠했는지를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루터, 츠빙글리, 제세례파, 그리고 칼빈으로 진술의 순서를 정하기로 한다.

 

 

II. 루터의 세례관

 

루터의 세례관에 대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루터가 1519년에 쓴 성례에 관한 3부작(참회, 세례, 성찬의 성례) 중에서 세례를 다루고 있는 거룩하고 축복된 성례와 그리고 그가 1529년에 쓴 교리문답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루터와 루터파 신학자들의 협의에 의해서 나온 1530년의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서1537년의 슈말칼드 신조를 또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II.1. “거룩하고 축복된 성례에 나타난 루터의 세례 이해

 

루터는 세례가 신자와 비신자를 구별하는 하나의 표지(標識)라고 본다. 루터는 세례(Die Taufe)라는 말이 희랍어 baptismos와 라틴어 meriso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루터는 이 말의 뜻에 의해, 세례는 사물을 완전히 물속에 집어넣어 물이 사물을 완전히 뒤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 말은 세례가 옛사람의 죄된 피와 육체로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빠져죽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독일어 Taufe의 어원인 tief라는 말의 의미에서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루터는 현실적으로, 특히 유아세례의 경우에 있어서는, 세례반에서 물을 떠서 수세자의 머리 위에 떨구는 관습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에는 외적인 표지와 세례의 의의와 신앙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세례의 집행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1) 세례의 세 가지 요소

 

(1) 세례의 외적인 표지: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속에 잠기는 행위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이 물속에 오래 있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곧바로 다시 나온다. 이것이 곧 “aus der Taufe gehoben"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세례에는 물속에 들어감과 그 물로부터의 나옴이 있다.

(2) 세례의 의의(意義):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죄에 대한 축복된 죽음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부활함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35절에서 세례를 거듭나게 하는 씻음이라고 말한다. 죄 많은 인간으로서 육적인 출생은 분노의 자녀만을 출산하게 된다(2:3). 그렇지만,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례에 의하여 영적인 탄생을 하게 된다. 예수께서도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수세자는 영적인 탄생으로 은혜의 자녀가 되고 죄가 죽으므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세례는 죄가 빠져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람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때에 그 의의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6:4)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된 죄는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 결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적 세례의 효력은 죽음의 순간에 완성된다.

루터는 세례를 받은 크리스찬의 삶을 축복된 죽음을 향한 여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루터는 죽음 곧 마지막 날이 될 때, 비로소 세례의 물로부터 들려올리워짐의 행위가 의미하고 있는 바가 완성될 것이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사망과 죄와 모든 악으로부터 해방되어 몸과 영혼이 정결하게 될 것이며, 영원하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례에서의 씻음으로부터 진실하게 들려올리워질 것이며, 완벽하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으로 지은 진실된 세례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루터는 이 말의 의미를 유아 세례자의 대부가 유아를 물속에서 들어 올릴 때, “, 너의 죄는 이제 세례의 물 속에 빠졌다. 그래서 너를 이제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흠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받아들이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루터는 이 때에 세례가 의미하고 있는 뜻과 대부가 말한 뜻이 성취될 것이다는 말에 덧붙여, 마태복음 24:31에서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자신이 재림하는 종말의 때에 성취될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개인의 종말, 곧 죽음의 때에 세례의 의미를 성취하리라고 했던 주장에 이 구절을 인용하여 강조한다면, 이는 루터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개인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의미하는 마지막 날의 종말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견해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루터는 개인의 죽음 이후 예수의 재림 때까지의 시간에 세례의 효력이 어떻게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의 세례의 효력에 대한 이 부분의 진술은 신학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또한 루터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이를 세례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런 비유가 과연 적정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 사건을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은 모두 죽었고, 오직 노아의 가족 8명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보면, 산 자는 들어감이 없었고, 죽은 자는 나옴이 없었다. 이는 루터 스스로 말한 세례의 첫째 요소인 표지에서 들어감나옴이 한 가지씩 결여된 사건이므로 전혀 세례와는 같지 않은 종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하나님의 은혜의 홍수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과, 또 이제까지 세례 받은 사람과 앞으로 세례 받을 사람이 노아 홍수 사건에서 구원 받은 사람보다 많으므로 세례가 노아 홍수 사건보다 더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도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루터는 예레미아 18:4-6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인용하여 세례를 받은 자의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는 세례의 표지와 의의는 죄와 죄된 인간은 둘 다 모두 이미 죽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아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첫 번째 출생인 육적인 출생 안에 거하고 있는 우리를 깨뜨리시고, 죽음을 통해서 흙이 되게 하시고 나서, 마지막 날에 죄없고 완전한 존재로 재창조하실 것이다.” 그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세례는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표지를 소유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로 가득찬 육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동안에는,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 순간으로부터 정결하고 흠이 없는 순결함 안에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루터는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세례가 죄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하거나 제거하지 못한다면, 과연 세례가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루터에 의하면, 세례가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시는 세례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겨야 한다. 세례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형시켜주시기를 시작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죽음과 마지막 날의 부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총과 성령을 쏟아부어 주신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할 일은 세례에 대한 희망을 굳게 견지할 것과 우리의 목숨이 어떠한 고난을 받을지라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의 죄를 도말할 것을 서약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시험의 고난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례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에 빠질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우리는 고난이나 다시 죄에 빠질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우리의 본성 속에 남아 있는 죄를 결코 우리의 잘못으로 탓하지 아니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기 때문이다.

루터는 세례를 통한 죄의 사함에 대해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죄에 대한 책임 따위를 따지지 아니한다는 방식으로, 세례 안에서 죄는 사함을 받는다.”

(3) 세레의 신앙: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죽음과 마지막 날의 부활뿐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영원히 죄가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받게 될 것을 의미하며, 신앙은 이러한 세례의 의미와 세례가 이런 의미의 일을 이미 시작하였고, 또한 성취할 것을 믿는 것이다. 루터는 세례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이라고 본다. 그리고 신앙은 이 계약을 크게 확증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나님은 세례를 받기 이전의 불결함을 결코 따지거나 책하시거나 기억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세례의 신앙이야말로 모든 위로의 터전이기 때문에 모든 일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순결해지기 시작하였지만, “죽음과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야 크리스찬이 완전히 순결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세례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들

 

(1) 무지함 속에의 안주: 크리스찬 가운데 세례를 통해서 완전히 순결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무지로 인한 오해이며 큰 실수다. 루터에 의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이다. 루터는 이런 생각에 안주하여 최후의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죄에 대항하여 처절하게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용서해주시지 않을 것으로 본다.

(2) 외적인 속죄 행위: 루터는 세례의 효력이 죽음의 순간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발휘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례 이후 그 효력을 의심하여 속죄의 방법으로 선행(good works)을 추구한다. 이렇게 세례의 신앙을 저버린 자들은 다시 세례를 기억하고, 세례의 진리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기쁘고 담대하게 신뢰하며 의지하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에 의하여 세례의 효력이 다시금 발생하고 힘차게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3) 고해성사: 루터에 의하면, 고해성사의 근거는 세례의 안에 있으며, 세례의 갱신이며, 세례를 다시 일깨워주는 교시(敎示)일 뿐이다. 우리는 죄의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맺어주신 세례의 성례전이라는 계약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

(4) 안일한 생활: 세례의 본연의 직무는 죄의 도말이다. “죄를 도말하는 다른 방편이란 없다.” 그래서 루터는 세례의 사역과 그 목적을 완전히 성취하고 죄를 완전히 제거하기를 희망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만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세례나 세례의 사역, 즉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이룩하는 것보다 더 빠른 지름길이나 다른 방법은 없다고도 말한다. 안일한 생활에서는 세례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5) 연단에 의한 공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조차 많은 공적을 쌓아두면, 하늘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순례의 길을 떠나는 등의 일을 한다. 그리고는 죄에 보응하는 속죄를 드렸기 때문에 죄를 척결하는 노력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루터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교리와 설교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루터는 죄를 도말하는 세례와 세례의 의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표준으로써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선행이나 속죄 또는 연단 같은 외형적인 행위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3) 세례의 효력을 견지하는 방법

 

(1) 영적 지위의 획득: 세례에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토기장이에게 맡기듯이 하나님에게 내맡기는 서약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고 거룩하게 만드시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루터는 세례의 서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약속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세례의 목적을 빠르게 달성하려고 하는 사람은 영적인 지위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영적인 지위는 아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영적인 지위에서도 보다 높은 교황이나 사제 등의 지위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죽을 수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지위에서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규범은 최후의 순간까지 죄를 척결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연단하는 일이다.” 루터는 이런 세상적 지위에 대하여 이사야 1:22의 말씀을 인용하여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고 경고한다.

(2) 감사와 찬양을 드림: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거나, 아니면 응당의 대가를 치루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거나, 죄사함을 받기 위해 속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맺어진 세례의 계약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루터는 이와 반대로 우리는 세례의 계약 안에서 죄인인 우리를 아무런 대가없이 용서하시고 정결케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굳게 믿어야 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시험하지 말라: 루터는 세례를 받은 자들이 제 멋대로 살다가 거의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을 때, “세례를 기억하고 이 세례에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상기하기만 하면, 세례의 사역과 그 목적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계한다. 루터에 의하면, 이러한 생각은 세례에 대한 거짓된 보증이므로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세례를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하심을 굳건한 믿음으로 철두철미하게 붙잡고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에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경건하게 정진해 나가자고 주장한다.

 

II.2. “, 소 교리문답서에 나타난 루터의 세례관

 

루터는 1529년에 같은 자료를 사용해서 두 가지 교리문답서를 동시에 저술했다. 소교리문답서는 비교적 짧고 쉽게 문답식으로 서술되어 있고 분량이 작다. 그러나 대교리문답서는 변증적으로 길게 진술되어 있다. 이런 특징에서 보면 소교리문답서는 예비 또는 초급반 신자들을 위해 쓴 것이며, 대교리문답서는 고급반 신자 또는 교역자들을 위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루터는 소교리문답서 서문, 3에서 소교리문답서를 가르친 다음에 대교리 문답서를 가르쳐서 더 정밀하고 광범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라고 말한다.

 

1) 소교리문답서의 진술

여기에는 세례에 관한 루터의 견해가 짧지만 명료하게 네 가지로 진술되어 있다.

 

(1) 세례의 본성: 세례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의 말씀에 연관된 물의 성례이다. 루터는 마태복음 28:19절을 인용하여 이를 증언하고 있다.

(2) 세례의 축복: 죄를 사하며 죽음과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이 세례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 마가복음 16:16절이 인용된다.

(3) 세례의 힘: 이런 축복을 주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이에 연관된 하나님의 말씀과 이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이다. 물은 물일 뿐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하므로 세례가 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고 깨끗하게 된다(3:5-7).

(4) 물세례의 취지: 우리 가운데 있는 옛 아담은 모든 죄와 사욕과 함께 매일의 슬픔과 참회를 통해 죽어지는 한편, 거듭 나는 새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깨끗하게 영원히 살게 된다. 증거의 말씀으로 로마서 64절이 인용되고 있다.

 

2) “소교리 문답서에서의 유아세례

소교리 문답서에서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해설부에서 언급하고 있다.해설부는 주로 본문에 나온 내용들을 부연 설명하는 질문과 답변으로 되어 있다. 루터는 그의 서문에서 본문의 뜻을 명확하게 가르치기 위하여 해설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본문에는 없었던 유아세례에 대해 특별히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아세례에 대한 변증의 필요성이 생긴 다음에 추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저들을 보호하는 부모나 친척이나 기타 다른 이들이 세례를 받게 하기 위하여 함께 올 때에 세례를 베풀 것입니다.” 여기에는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증언하는 몇 개의 성경 말씀이 인용되어 있는데, 에베소서 6:4절과 사도행전 2:38-39절이 대표적이다.

 

3) 대교리 문답서

대교리문답서는 문답식이 아니라 변론적인 진술로 되어 있다. 그 중에서 세례는 제4부에서 86개의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세례 2)항에서 루터는 세례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여기서 다루고, “이단과 분파주의자들을 대항하여 유지되고 방어되어야 할 것에 대한 문제는 좀 더 배운 사람들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1) 신적인 기원을 가진 세례: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루터는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음을 예로 들어 세례가 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나타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음을 기록한 누가복음 3:21의 기사를 들어 이를 증언한다. 세례의 외형적인 것만 보고, 물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이 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첨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2) 세례를 받는 목적: 루터는 세례의 능력과 효과와 유익과 열매와 목적은 구원받는데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홀로 믿음만이 구원하고 행위나 외부적인 것들은 이 목적에는 아무 것도 공헌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무리들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루터는 곧 이들을 소경의 인도자라고 부르면서, 믿음이라는 것은 믿어야 할 그 무엇, 우리가 거기에 매어달리고 서야 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루터에 의하면, 올바른 세례의 믿음은 물에 매어달리고, 이것이 그 안에 순수한 생명과 구원이 있는 세례가 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배격하는 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피 흘리시고 세례를 명령하신 그리스도를 배격하는 자가 된다.

(3) 세례의 혜택: 루터는 먼저 세례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세례의 축복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마가복음 16:16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례가 하나의 행위라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이다. 루터는 세례 받은 자에게 물과 말씀이 합쳐서 하나의 세례를 구성하여 육체와 영혼은 구원되어 영원히 살게 됩니다고 말한다.

 

4) “대교리 문답서에서의 유아세례

루터는 유아세례의 문제를 논증하기에 앞서, “악마가 그의 종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혼란케 하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진술로 보아 당시 유아세레에 대한 반대가 극심하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루터는 유아세례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충분히 소교리문답서의 해설에서 언급했으므로, 이 이상은 배운 사람들이 언급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확장된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

 

(1) 유아세례의 유효성: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구원의 효력이 생긴다. 그러나 세례의 효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수세자의 믿음이 결핍할지라도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이 없는 곳에는 참된 세례도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자는 어리석고 주제넘은 사람들이다. 하나님 편에서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으로서의 유아세례의 효력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2) 유아세례부터 시작되는 날마다의 세례”: 루터는 물에 잠겼다가 거기서 다시 나오는 세례의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옛 아담이 죽고 새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를 통해 계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례의 의미를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루터가 말하는 날마다의 세례의 뜻이고, 한편으로 유아세례의 정당성에 대한 변증이다.

(3) 유아세례의 영속성: 루터는 세례를 영원히 남는 것으로 본다. “비록 우리가 여기에서 탈락하고 죄를 지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여기에서 나아갈 수가 있어서 다시 옛사람을 굴복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세례는 고해를 포함하고 있는데, 회개는 여기서 옛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루터는 세례로부터 떨어지는 자가 있으면, 그를 즉시 돌아오게 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례로써 한 번 죄 사함을 얻으면, 그 사죄는 우리가 사는 동안 날마다, 즉 옛 아담을 우리의 목에 매고 다니는 동안 남아있기 때문이다.

 

II.3.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서슈말칼드 신조에 나타난 루터의 세례관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1930년에 나온 것이고, 슈말칼드 신조는 1937년에 나온 것이다. 앞에서 나온 거룩하고 축복된 세례의 성례와 교리문답서는 루터가 혼자서 작성한 것들인데 비하여, 이 고백서와 신조는 작센 지방의 선제후(Der Kurfurst Johann Friedrich)의 명에 의하여 작성되었고 루터파 신학자들이 협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용은 역시 역시 루터의 견해를 반영하였으며, 역사적으로도 루터파의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그 내용을 그대로 루터의 견해라고 본다.

 

1)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서

이 고백서는 28개조의 주요 신조와 변증서로 되어 있다. 세례에 관한 내용은 각각 제9조에 간략하게 명시되어 있다.

 

(1) 주요 신조 제9(세례에 관하여:전문): 여기서는 루터파의 세례에 관한 견해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가운데 재세례파의 유아 세례관에 대한 배격을 천명하는 부분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변증서 부분에서 더욱 강력하게 진술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세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세례는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며,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바쳐진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유아(幼兒) 세례를 거부하고 유아들은 세례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재세례파 사람들을 배격합니다.

 

(2) 변증서 제9(세례에 관하여): 여기서 루터는 그들이라는 말로 로마가톨릭교회를 지칭하면서 그들이 앞의 주요 신조 제9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례에 대해서는 로마가톨릭과 서로 견해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나 루터는 재세례파가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오류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나머지 변증의 대부분을 채운다. 그 요지는 구원은 세례와 함께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2) “슈말칼드 신조

여기서 루터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제정의 말씀에 의해 명령된 것으로 바로 물로써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는 말씀과 더불어 물로써 행하여지는 씻김”(5:26)이라는 베드로의 말과 말씀이 요소에 첨가되어 성례가 된다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루터는 말씀(하나님의 제정)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물에다가 물을 통하여 죄를 씻어내는 영적 능력을 부과하였다고 말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도미니쿠스회 수사들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또한 세례에서 신적 의지의 도움을 통하여 죄를 씨어낸다고 가르치는 둔스 스코투스와 프란시스코 수사들에게도 동의하지 않음을 천명한다. 그리고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으로 슈말칼드 신조를 매듭 짖는다.

 

II.4. 루터의 세레관 요약

 

루터의 세례관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는 세례를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28:19) 그리스도인이 되는 외적 표지로 시행되는 것이며, 또한 세례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도 죄인인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세례는 물로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첨가되어 죄 씻음과 거듭남의 효력을 지니는 것이 된다. 믿고 세례를 받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구원의 약속이 있다(16:16). 성경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이러한 주장이 루터의 세례관의 일관된 골자이다.

그는 세례의 의미와 효력은 일생에 걸쳐 유효하며,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새롭게 세례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악마는 그리스도인의 안일함을 파고들어 죄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결핍된 상태에서 세례를 받았거나 또는 세례 후에 범죄했다 하더라도 다시 세례를 기억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이 루터의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논리와 공로에 의한 구원을 배격하는 신학의 근거가 된다.

루터는 유아세례를 허용하는 그의 세례관에 반대하여, 유아세례를 불허하는 입장을 가진 재세례파의 주장을 배격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능력이 물에 부과되었다고 주장하는 아퀴나스와 도미니쿠스 수사회의 견해를 비판한다. 또한 신적 의지의 도움을 통하여 죄를 씻어낸다는 스코투스와 프란시스코 수사들을 비난한다.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허용되어야 하며,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외적 표지를 가져야 하며, 수세자는 하나님이 세례를 통하여 약속하신 구원을 믿어야 한다. 다만 외적 표지는 머리에 물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이러한 루터의 세례관은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없었던 것이고, 로마가톨릭교회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재세례파와는 끝내 일치된 견해를 보지 못했다.

 

 

III. 츠빙글리의 세례관

 

III.1. 츠빙글리의 논문 세례의 이해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1525년에 세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개혁의 초기에 츠빙글리는 세례에 대해서 재세례파의 목사 발타자르 후브마이어(Balthasar Hubmaier, 1485-1528)가 인정했듯이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재세례파의 견해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재세례파가 츠빙글리파의 분파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츠빙글리가 재세례파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논문의 서두에서 이러한 논쟁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그의 독자들에게 논쟁의 효과가 아닌 진리의 가르침에 감동되길 충고하고 있다. 그가 이 논문을 쓰게 된 이유는 세례에 관한 진리의 가르침을 독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의 가르침에 따라 세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논문은 논쟁적이다. 이 논문에서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와는 완전히 다른 세례에 대한 견해를 보이면서 재세례파를 논박하고 있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모든 교사들은 요한복음 35절의 물과 성령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에, “세례가 지니지 않은 능력과 거룩한 사도들이 가르치지 않는 능력이 물에 속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시대로부터 모든 교사들이 이제까지 이러한 오류에 빠져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아야 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직접 받으실 때, 모든 형식적인 의를 박탈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울이 히브리서 96절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기신 두 가지 성례가 있으니 바로 세례성찬이다. 그러나 성례라는 말의 뜻에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죄를 사해주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이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성례는 단순히 거룩한 사물의 상징이며, “세례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서약한 표시다.” 츠빙글리는 여기서 성경을 인용하여 할례의 서약과 유월절의 양에 대한 감사를 고찰하면서 세례에 대해 확장된 논증을 진술한다.

 

1) 세례의 성경적 근거

츠빙글리는 세례를 구약에서의 할례로 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월절 제물을 성찬에서의 빵과 포도주로 바꾸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포피를 자르는 할례와 어린 양을 잠아서 드리는 유월절 제사는 이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 성례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하신 것이다. 그는 세례가 네 가지 방식으로 사용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서약할 때에, 둘째로 성령 세례 때에, 셋째로 구원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 그리고 넷째로는 내적 믿음을 위해서 외적으로 물에 잠기는 것이다. 즉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시여를 위한 것이다. 그것들의 성경적 근거는 차례대로 요한복음 3(23: 요한의 외적인 물세례), 사도행전 1(5: 성령 세례), 요한복음 4(2)과 사도행전 19(6: 구원의 가르침과 세례), 벧전 3(21: 구원의 표)이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요한복음 6(47)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와 구원을 반드시 연결한 것은 아니며, “구원은 항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믿지 않는 자 중에서도 세례를 받은 자가 있었고, 세례를 받고서도 떠난 자가 있었다.

 

2) 세례의 의의

그는 이와 같은 세례와 구원이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재세례파와 반세례파가 동일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래서 그는 물세례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가르침 없이도 물로 세례를 줄 수 있으며, 이러한 외형적 세례가 구원과 확고하게 연결되지 않은 의식적 표시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유아세례 및 가르침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세례도 가능하다. 재세례파들이 세례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구원받는데 필수적 한 가지는 믿음 혹은 신뢰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 안에 심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것이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성령의 내적 세례이다. 성령세례의 외적 표시는 방언이듯이 세례는 가르침의 외적 표시다. 또한 방언이 성령세례 전후에 주어질 수 있듯이 물세례도 가르침의 전후에 주어질 수 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외적 표시로서 방언과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할례가 믿음의 표시가 아니고 언약의 표시이듯이 세례도 언약의 표시이다. 믿음은 외적 일들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으로부터만 발생한다.” 이런 사실을 오해했던 때에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반대했었다고 고백한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재세례파는 죄가 없이 살 수 있음을 아는 자들만이 세례의 표시를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재세례파들과 논쟁한 사실들을 진술하고 우리가 죄 없이 살 수 있다면, 세례는 헛되이 제정된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세례는 언약의 표시이며, “입문의 표시인, 의식(ceremonii, 그리스어 celeta)이다.” 그는 세례와 관련한 성경을 인용하여 재세례파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III.2 재세례파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반박

 

1) 유아세례 반대에 대한 성경적 반박(28:19-20)

재세례파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마태복음 2819절만을 인용하여, 제자로 삼아 가르친 뒤에 신앙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마태복음 28장은 재세례파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이 구절을 새로운 접근법에 의해 해석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절로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로 이어진 20절의 말씀에서, 츠빙글리는 제자를 삼는 입문식이 있은 다음에 가르치는 일이 온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는 그리스어 본문에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베풀라는 두 개의 절 사이에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없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이 구절은 츠빙글리에 의하면, 말의 순서에 따라 해석해야 할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제자를 삼으면서 세례를 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말은 세례를 주면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이름으로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에 대한 해석은, 그리스도가 마가복음 16(16)에서 하신 말씀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의 위엄이나 능력 또는 힘 안으로와 같은 의미로, “이름 안으로의 뜻이 된다. 나아가 츠빙글리는 삼위의 이름에다가 능력과 위엄과 은혜의 삼요소를 덧붙인다. 츠빙글리는 그리스도 자신과 제자들의 말씀에서, 세례는 결국 성장하는 과정으로 입문하는 표시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시나 서약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유아 세례를 금하는 말을 하는 재세례파는 심각하게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이외에도 재세례파들이 죄 없이 살 수 있음을 아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논박하는 근거로서 마태복음 3, 마가복음 1, 누가복음 3장과 요한복음 1장 등을 제시하고, 여기에 기록된 요한의 세례가 단지 회개의 표시로서 주어졌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성령을 소유한 자들이 아니면 세례를 집행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재세례파의 교리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장과 로마서 6장을 인용하여 반박한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여기에서 기록된 세례는 단지 입문의 표시나 의식 이상이 아니다. 물로 했던 요한의 세례는 제자들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외적 세례와 같다.” 물세례는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서약하며, 우리를 그리스도께 접붙이는 입문의 표시다.” 그러므로 츠빙글리는 외적 물세례를 의미 없이 반복하는 재세례파를 향하여 재세례를 피하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재세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가 없고, 분파를 형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 세례의 효력과 성취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인의 세례가 마술의 형태와 같은 미신적 행위들이 무가치함을 확신시켜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세례는 어떤 방식으로도 죄를 씻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죄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을 통해서만 사라진다.” 그러나 일부 초기 교부들은 요한복음 3(5)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오해하여 물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3:6)이라고 이어서 하신 말씀을 보고, 물질적 물은 영혼의 정결에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대로 세례는 물과 함께 말씀에 의해 시행되지만, 그것이 결코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외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말씀은 외적으로 선포된 말씀이 아니라, 내적으로 이해하고 믿는 말씀이어야 한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은 요한복음 4장에서 그리스도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말씀에서의 물과 같은 것이다. 이 물은 예수께서 처음 적용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 물은 구약에서 이사야 55장과 14장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물의 형태로 드러난 복음의 선포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은 세례에서의 물질적인 물과는 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외적 물세례는 영적으로 깨끗하게 할 수 없음이 분명하며,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접목되는, 그리고 그분께 삶을 서약하고 그분을 따르는 외부의 표시임에 불과하다.” 재세례파는 이를 잘못 이해하여 물 자체가 정결함과 구원의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재세례파들에게 재세례의 권한을 주지 않았으나, 재세례파는 오히려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근원임을 지적한다.

 

3) 세례의 기원과 제정

츠빙글리는 재세례파가 세례의 기원을 마태복음 28장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면서 세례는 하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제정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보다 앞서 그의 사역 중에서도 세례를 베푼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츠빙글리는 재세례파들과 교황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세례를 요한의 세례와 같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한다.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다만 요한이 그리스도와 다른 것은 성령세례를 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요한은 물세례와 가르침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또는 그의 제자들과 같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츠빙글리는 요한도 복음을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 1(29)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했고, 또한 3(35-36)에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른다고 경고한 것 등은 복음의 선포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받은 요한의 세례를 그들의 것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츠빙글리는 누가복음 16(16)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으로부터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도행전 19(1-6)에서, 바울이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다고 하는 열두 명쯤 되는 제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사에서의 세례라는 말을 그리스어 원문을 인용하여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다시 물세례를 베푼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이 부분을 길게 해설하면서 그 제자들이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추정한다.

그런데 특기할 사항은 여기에서 츠빙글리가 루터파와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방랑자들을 향하여, “행위는 없고 단지 지식만으로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비난을 새롭게 추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츠빙글리는 이미 이때부터 루터와는 다른 실천적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III.3 츠빙글리의 세례에 대한 요약

 

츠빙글리는 이 논문에서 그의 초기 사역에서 재세례파에 동조한 때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재세례파의 오류를 깨닫고 그들에게서 이탈한 후에 쓴 이 논문은 대부분이 재세례파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 재세례의 부당성과 무의미함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의 주장을 보면, 큰 틀에서는 다른 개혁자들과 같은 견해를 보이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세례를 기독교인으로서 입문의 표시에 불과한 것이고, 구원에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는 마틴 루터와 배치된다. 그러나 내적인 세례로서 믿음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츠빙글리가 목적하는 것은 재세례파에 대한 반론이라는 점에서 보면,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을 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는 루터파 혹은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방랑자들을 비난하는가 하면, 심지어 교부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했다고 하는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격한 비난과 때로는 억지 같은 주장을 하는 것 등은 츠빙글리 신학의 약점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 논문이 재세례파에 의한 개혁파 안의 교리적 혼란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었던 당시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결점은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사실 츠빙글리는 이러한 종교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IV. 재세례파의 세례관

 

종교개혁시대에 유아세례에 관한 논쟁은 현대 기독교신자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토록 재세례(또는 성인세례)에 집착하면서 유아세례에 반대하던 재세례파의 신앙의 교리는 이제는 역사의 기록으로만 겨우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세례파가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물론 종교개혁 진영 안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였고,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말았다는 사실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아물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종교개혁 초기부터 재세례와 유아세례가 이토록 치열한 쟁점이 되어야 했던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먼저 재세례파의 형성과정과 그들이 나름대로의 성경적인 세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대의가 그들의 신앙 어느 부분에 함의되어 있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세례파의 비극이 된 뮌스터 왕국에 대해서도 역사 속에서 살펴보아야겠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칼빈이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재세례파의 종말기에 즈음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이 문제의 전말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IV.1. 재세례파의 형성과 몰락

 

1) 재세례파의 형성과 신앙고백

재세례파의 형성은 츠빙글리의 취리히 지역, 토마스 뮌처(Thomas Muntzer, ca. 1490-1525)에서 후트(Hans Hut, ca. 1490-1527)로 이어지는 중부 독일 지역, 그리고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멜히오르 호프만(Melchior Hoffman, ca. 1500-1543)에 의해 독일 북부 지역으로 옮겨가는 등의 다원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재세례파의 초기 형성의 배후에는 인문주의의 영향이 크게 미쳤음은 츠빙글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츠빙글리는 1516년 발간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을 읽었고, 또한 바젤에서 에라스무스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츠빙글리는 그의 사역 초기부터 성경에 근거가 없는 로마가톨릭의 전통주의를 비판하면서 개혁을 외치고 있었다. 그는 헬라어를 강습하면서 신약성경 읽기를 지도했었는데, 여기에서 학습한 일단의 신자들 중에서 유아세례의 사례가 신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츠빙글리의 취리히 지역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에 널리 확산되어 있었던 헬라어 성경연구의 바탕에서 다발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츠빙글리도 처음에는 이들의 주장에 동조했으나, 더 깊은 성경연구를 통해 곧 그의 견해를 바꾸었다. 그는 성경에서 보아 이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으나, 후브마이어(Balthasar Hubmaier, 1485-1528)1525년 하나님으로부터 유아세례를 폐지하라는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츠빙글리와 결별하였다. 츠빙글리는 곧 이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논증하는 세례, 재세례, 그리고 유아세례에 관하여를 써서 발표하였으나, 후브마이어 또한 재세례파의 입장을 밝히는 신자의 그리스도교적인 세례를 발표하여 츠빙글리를 반박하였다. 후브마이어는 다음 해 1526년에는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교육을 받기까지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대단히 오래되고 아주 새로운 선생들의 판단이라는 책을 써서 초대교회부터 5세기까지 유아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신앙세례만 주었다고 주장했다. 후브마이어는 유아세례를 성서가 금하는가에 대하여 그렇다고 답한다.” 이후에 일어난 사태를 보면, 츠빙글리가 취리히 시의회를 움직여 이들을 추방하기에 이른다. 추방된 이들은 박해를 피해 각지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세력을 확대하여 후기 형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527년에 재세례파를 비판하는 설교를 한 루터는 1528년 독일에 침투한 재세례파에 대해서 재세례파에 관해서 두 명의 목사에게라는 글을 써서 발표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1528년 황제의 명령과 1529년 슈파이어(Speyer)제국회의 및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제국회의는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이들은 체포되면 사형을 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제국법령 및 각 나라의 정부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처형된 재세례파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후브마이어를 비롯하여 모라비아에서 형제원을 창설했던 야콥 후터(Jakob Hutter, 1500-1536), 네델란드와 독일 북부 지역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새로운 엘리야로 자칭하면서 재세례파를 이끌었던 호프만과 그의 제자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 가운데 1527년 쉴라이타임 신앙고백(Schleitheime Confession)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마이클 새틀러(Michael Satttler)의 참혹한 처형은 재세례파의 수난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토록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 또는 광기에 이르게 했던 재세례파 신앙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것은 재세례파 신앙고백이라고 할 쉴라이타임 신앙고백의 7개조에 잘 나타나 있다.

 

(1) 회개 및 개심을 경험하고 자기의 죄가 그리스도에 의해 다 소멸되었다고 진실로 믿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2) 일단 아나뱁티스트의 신앙을 받아들인 후 세례까지 받은 이가 실수하거나 죄를 지었을 경우, 비록 부주의의 결과였다 하더라도 파문시킨다.

(3) 성찬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는 우선 세례를 받아야 한다.

(4) 세례 받은 이들은 사단이 이 세상에 심어놓은 악과 죄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성별해야 한다.

(5) 교회의 목사는 바울이 명하듯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평판을 듣는 인물이 어야 한다.

(6) 교인들은 여하한 이유를 막론하고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7) 교회 교인들은 누구도 맹세할 수 없다.

 

여기서 보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불사했던 재세례파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했던 이유는 (1)항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유아들은 이러한 회심과 개심이나 죄의 소멸을 믿는 신앙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 유아세례의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재세례파의 뮌스터 왕국의 건설과 몰락

초기에는 초대교회의 교회를 본받고자 했던 재세례파의 개혁운동은, 그들의 평화주의적인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1535년에 이르러 결국은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재세례파들이 그동안 신앙적 대의를 지키기 위해 뿌린 피의 대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으니, 실제는 호프만의 말세적인 예언에 반응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호프만을 비롯한 재세례파의 묵시적 예언가들은 차츰 말세의 천년왕국이 그들에 의해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천년왕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곳은 처음에는 스트라스부르크였으나, 나중에는 뮌스터로 바뀌었다. 뮌스터는 네델란드에 가까운 독일 북부 지역의 작은 도시로서 로마가톨릭교회 주교의 영지였다. 이 도시에서 영주와 주민들 사이에 교회세와 봉토세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것은 흉년과 전염병 때문이었다. 스피츠는 그의 종교개혁사에서 호전적 아나뱁티스트들이 벌인 소동들 가운데 그 광란의 극치를 이룬 것은 뭐니뭐니 해도 뮌스터 왕국(Kingdom of Munster)의 선포라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재세례파들의 뮌스터 왕국은 건설과 몰락에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는다. 그 경위는 대략 다음과 같다.

1532년 시의회는 주민들의 압력에 못 이겨 루터파 설교가 로트만(Bernard Rothmann)에게 설교와 교회의 지도를 맡기기로 했다. 이렇게 뮌스터가 개혁파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개혁파 난민들이 몰려 왔다. 그런데 로트만은 15341월 얀 마티스(Jan Matthys)가 이 도시에 보낸 두 명의 네델란드인 재세례파 사도(바에텔 보에크빈더, 빌렘 쿠퍼)에 의해 다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재세례를 베푸는 것을 보고 이에 반발하는 루터파 설교가들에 대해서는, 로트만이 직접 나서서 무마할 수 있었다. 로트만에게 사도를 파송하여 재세례를 받게 한 할렘 출신 얀 마티스는 뮌처와 같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믿지 않는 다를 제거해야 한다는 과격한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여기에 이 도시의 유지이자 직물상인 크닙퍼돌링크(Bernt Knipperdolinck)의 협력아래 뮌스터는 빠르게 재세례파의 거점 도시가 되었다. 그는 엘리야라고 자처하던 호프만을 따라다녔던 인물이다. 이런 분위기는 뮌스터가 천년왕국의 새 예루살렘이라는 예언까지 나돌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15342월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왔다. 네델란드에서 이 도시에 온 라이덴의 존(John of Leiden, 또는 Jan Bockelson)이 크닙퍼돌링크와 함께 시가지를 뛰어다니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건을 벌인 것이었다. 온 도시가 이런 종교적 히스테리의 물결에 휩쓸리자 중산층 루터란들은 이 도시를 떠나게 되었고, 각지에서 온 무산층(proletarians)이 대신 자리를 메웠다. 이것은 이달 말경(28)에 벌어진 시의회 선거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이 도시행정의 실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때에 얀 마티스가 네델란드로부터 이 도시에 왔다. 이때까지 이 도시의 지도자로 군림하던 로트만은 그의 지도권을 마티스에게 양도했다. 마티스는 이곳에 남아 있던 루터란과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을 즉시 처형하려고 하였으나, 이는 거부되었고 대신 추방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도시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강제로 재세례파로 개종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은 시에 귀속되었고, 사회조직은 재정비되었다. 공산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주교의 군대를 물리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 밖으로 출격했던 마티스는 전투에서 죽고 말았다. 그렇다고 주교가 완전히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마티스가 죽고 나자 그의 자리는 이제 라이덴의 존이 물려받게 되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자 곧 공포에 질려 복종할 수밖에 없는 정치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는 또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일부다처제를 실시하고, 스스로 약 15명의 미모의 여인들까지 아내로 거느렸다.

15348월에 주교의 용병들을 물리친 존은 새 예루살렘 왕국을 선포하고 왕좌에 즉위했다. 그는 로트만을 궁정 웅변가에 임명하고 크닙퍼돌링크는 수상에 임명했다. 그는 또한 그의 아내 중에서 여왕을 임명하기도 했다. 그는 시장 한복판에 금술로 만든 왕좌를 설치하고 그의 왕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왕국의 운명은 15351월에 주교의 군대가 뮌스터시를 포위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되었다. 포위가 계속되자 도시에는 식량이 떨어졌고, 인육을 먹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그 해 6월에 도시를 탈출한 시민의 협조로 주교의 군대는 도시를 함락했다. 존 왕을 비롯한 신하들은 모두 체포되어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이로써 재세례파 뮌스터 왕국은 몰락했고, 이 도시는 다시 주교의 손으로 넘어갔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다시 로마가톨릭교회에 합류했다. 이로써 재세례파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쉴라이타임 신앙고백 이외에 재세례파의 세례교리를 따로 살펴볼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V. 칼빈의 세례관

 

우리는 이제 이 논문의 주제로서 마지막 남은 칼빈의 세례관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가 쓴 기독교강요와 그가 재세례파의 세례교리를 어떻게 비판하였는지를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칼빈은 그의 성례관을 기독교강요최종판(1559) 4권 후반부에서 논술하고 있다. 그는 성례의 의미를 총론적으로 논구하는 14장 다음의 15장에서 세례에 대해 논술하고 있으며,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16장에서 따로 진술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성만찬을 논술하는 17장과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사를 비판하는 18장을 서술한 다음에 성경에 근거가 없는 나머지 성례들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19장에서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칼빈의 세례관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칼빈은 그에 앞선 루터와 츠빙글리라는 두 개혁자 사이에서 중간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칼빈의 입장은 루터보다는 츠빙글리 쪽에 좀 더 가까이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 종교개혁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던 재세례파와의 세례논쟁에 관해서라면, 칼빈은 이 두 개혁자보다 오히려 강화된 논증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세례관의 차이와 그들이 재세례파를 비판한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이 논문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함께 김문기 교수의 논문 재세례파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유아세례에 대한 소고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V.1. 칼빈과 재세례파 세례관의 차이

 

칼빈과 재세례파의 세례관의 차이는 크게 보면 다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집례자에 따라 세례의 효력이 좌우되는가?

재세례파는 집례자의 합당성 여부가 세례의 효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며, 로마교황의 권위 아래에서 받은 세례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재세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도행전 19:3-5에 근거하여 완전한 신앙에 의한 재세례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재세례파를 도나티스트라고 비난하면서, 세례의 효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종속된 것이므로 집례자의 권위에 상관없이 유효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세례는 요한이 시작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나 그리스도의 세례는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재세례는 필요 없는 것이 된다.

(2) 세례는 개인적 신앙의 완성인가, 아니면 신앙의 과정에 필요한 외면적인 표지인가?

쉴라이타임 신앙고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세례파에게 세례는 완전한 신앙을 이룬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며, 세례 후에라도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그들의 공동체에서 파문되어야 한다. 재세례파의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헌신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칼빈에게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죄의 용서를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그의 자녀가 되는 믿음으로 교회에의 입문을 허락받았다는 성별의 표지(signum)’이다. 동시에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기념의 표(nota)’이며, 이에서 나아가 수세자의 고백에 대한 표식(symbolum)’이다.

(3) 유아세례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재세례파의 관점에서 보면 유아세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유아들은 신앙을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는 이와 같은 논리적 이유와 함께 성경에서도 유아세례를 베푼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유아세례를 한사코 반대한다. 그렇지만, 칼빈은 그의 입장을 옹호하는 논증의 근거를 구약의 할례에서 찾아 재세례파를 반박한다. 할례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다. 칼빈에게 유아세례는 할례와 같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례이며, 신약에서 세례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과의 언약관계를 확증하는 중요한 성례이다. 신자들의 유아들은 부모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유아세례를 논설하는 기독교강요16장의 제목을 유아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제도와 그 표징의 본질과 가장 잘 일치한다고 달아 놓고 있다.

 

V.2. 재세례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칼빈이 재세례파를 처음으로 비판한 것은 1534“Psychopannychia”에서였다. 여기에서 주된 비판의 요지는 재세례파가 주장하는 영혼수면설이었다. 칼빈은 츠빙글리와 마찬가지로 죽음과 부활 사이에 영혼이 잠잔다고 하는 영혼수면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칼빈이 재세례파를 본격적으로 공격한 것은 1536기독교강요초판에서부터이다. 그는 기독교강요를 프란시스1세 왕에게 헌정하는 서문에서 참된 신앙을 가지고자 하는 종교개혁파들을 변호하고, 재세례파들에 대해서는 마귀의 도구라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초판을 저술할 무렵은 뮌스터 왕국이 기세를 떨치고 있을 때였고, 출판할 때는 뮌스터 왕국이 몰락할 무렵이었다. 이 무렵에는 유럽의 모든 통치자와 당국자들이 재세례파들을 국가에 대해서는 반역자들이고, 교회에 대해서는 이단자들로 보고 있었다. 더욱이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는 로마교황에게 충성스런 신자였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초판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프란시스1세에게 헌정사를 쓸 때에는 재세례파의 폐해가 역사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인 것이다. 칼빈은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종교개혁자들이 재세례파와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 것을 매우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칼빈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원인이 대부분 재세례파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다른 종교개혁진영과 특징적으로 차이가 나는 재세례파의 세례관, 특히 유아세례에 대한 입장이 매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강요2판에서부터는 유아세례에 대해 한 장 분량의 진술을 추가하여 재세례파의 견해를 반박하게 된 것이다.

 

V.3. 특히 유아세례 반대에 대한 칼빈의 비판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 종교개혁진영의 각 분파들은 성경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같았다. 문제의 발단은 성경해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었다. 칼빈은 재세례파가 성경해석에 있어서 상황에 관한 이해 없이 성경구절을 짜 맞추거나 일반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아세례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유아세례관에 대한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들이 성경의 어느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고 또 반박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게 된다.

 

(1) 먼저 재세례파는 성경에 유아세례의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는 단지 인간의 인간의 뻔뻔스러움과 호기심 그리고 어리석은 경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유아세례는 하나님이 그의 주권으로 창시한 것이며, 사도행전 16: 15-32에 나오는 가족 세례에 유아도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또한 마태복음 19:13-15에서 예수님이 천국은 아이들과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아이들에게 안수하신 일을 예로 들어 아이들이 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2) 또한 칼빈은 아브라함이 처음 이삭에게 베풀었던 구약에서의 할례를 세례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할례와 세례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동일한 약속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들에 의해 베풀어진 할례를 통해 거룩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에 의해 베풀어진 세례를 통해 거룩성을 받는다(고전 7:14). 칼빈은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께서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다(15:8)고 말한다.

그러나 할례와 세례의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할례는 생후 8일째에 하는 것이지만, 세례는 정해진 날자가 없다. 이런 사실에 대해 왜곡되게 해석하는 재세례파를 비판하면서, 칼빈은 구약에서 ‘8’이라는 숫자에 부활의 뜻이 있음을 발견했다. 여기서 칼빈은 할례와 세례에 새로운 삶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여 칼빈은 세례가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육신의 완전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할 육신을 죽이는 현재 삶의 전체과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의 이러한 견해는 루터와 같은 것이다.

(3) 재새례파는 그리스도의 두 개의 선교명령의 구절(28:19, 16:16)에 근거하여 먼저 복음을 가르치고 수세자가 회개와 신앙을 고백한 다음에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런 조건을 이행할 수 없는 유아들에 대한 세례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 순서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에서와 같이 성인들에게는 유효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신자의 자녀들에게는 이미 출생으로부터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으므로,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에게는 성장함에 따라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할례를 믿음으로 인친 것(4:11)이라고 한 말에 의해서도 보증된다.

(4) 세례가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는 것(3:5)이며 영적인 중생이라고 보는 재세례파에게는, 중생이 불가능한 유아들에게 세례는 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칼빈은 요한이 이미 어머니 태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1:15)는 구절과 성령과 불의 세례(3:11) 및 성령과 물로 거듭남을 말하는 요한복음 3:5를 들어, 성령의 사역이 영혼의 죄를 태우는 불과 몸의 부정을 씻는 물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성령은 유아 때 주어진 표징(tessera)이 전 생애의 과정에서 역사하도록 돕는다.

(5) 재세례파는 사도행전 19:5에서와 같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물세례는 요한의 것과 그리스도의 것이 동일하며, 재세례파가 주장하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받은 세례(19:5)는 성령세례라고 본다. 따라서 재세례파가 이를 물세례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또한 재세례파는 세례는 진정한 씻음(5:26)을 통한 죄사함을 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유아들은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칼빈은 이미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죄인인 우리는 유아 때부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의 표지(signum), 즉 세례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유아에게 죄사함을 선물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6) 재세례파는 유아들을 성만찬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을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논증으로 활용한다. 이에 대해 칼빈은 유아들에게 성만찬을 베풀 수 있는 나이 제한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지만(22:19, 고전 11: 25-29에 근거하여), 세례의 경우에는 성경에 이런 제한적 말씀이 없다고 논박한다. 칼빈에게 유아세례는 오직 정당할 뿐이며, 유아세례는 구약에서의 할례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일 뿐이다.

 

 

VI. 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관련 자료들을 통해 3명의 종교개혁자들 사이에 있었던 세례관의 차이와 그들과 재세례파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살펴보았다. 이들의 세례관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는 종교에서의 교리적 차이가 때로는, 재세례파의 경우와 같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과 비극은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크게 외쳤던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의 반향(反響)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돌이켜 보면, 먼저 헬라어 고전과 신약성경을 읽은 인문주의자들과 양식 있는 성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부정과 허위성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 지도자들도 인문주의적 지식을 바탕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할 수 있었고, 이런 인문주의자들로부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지지를 먼저 획득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성경 구절의 해석이 각자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이와 같은 성경해석의 차이는 결국 각파의 특징적인 교리로 발전하였고, 교리논쟁으로 이어졌다. 교리논쟁은 개혁진영 각 분파들 사이에서 성경해석의 차이가 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그 배경에는 생존과 주도권의 다툼으로 발전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칼빈이 재세례파의 유아세례 반대를 반박하는 논쟁도 이러한 것의 하나이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재세례파는 그들의 개혁교리를 너무 과격하게 밀고나간 끝에 결국 고립에 빠졌고, 결국 그들이 천년왕국을 건설했다고 믿었던 뮌스터 왕국의 실패로 몰락하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종교가 세상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누구의 성경해석이 옳고 어느 교파의 교리가 바르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대답을 들은 적이 없으며, 성경해석과 교리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문기 교수가 그의 논문 재세례파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유아세례에 대한 소고에서 유아세례에 관해서는, 칼빈의 견해와 같은 맥락에서, 주장한 결론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도록 하여 이들이 전 생애의 삶 속에서 세례에 대해 기억하게 하고, 이것으로 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계속 나타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그가 에큐메니칼적인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서 서로 장점과 단점을 보완하여 목회 현장에서 적용하는 지혜를 강조하자는 주장도 옳다. 그러므로 이렇게 타당한 주장에 대해서는 비단 이 논문에서 살펴본 개혁자들의 세례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교파의 아디아포라(adiaphora)적 교리에 대해서도 폭 넓게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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