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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극론-동양사상으로 보는 창조론-

heojohn 2009. 6. 18. 20:35

 

 

신태극론

-동양사상으로 보는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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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ism based on the Oriental Philosophy

 

[Abstract] Theology so far has been led by western scholarship and occidental thought. However, an Easterner might find that his or her interpretation of the Bible from an oriental perspective is different from western theology. This paper is intended to review traditional oriental philosophy and issues from creationism, and to introduce a new way of the Bible interpretation of assimilating western theology from a new oriental perspective.

 

1장 서론

2장 태극론

3장 신태극론과 생명

4장 결론: 신태극론의 신학적 적용

 

 

1장 서 론

 

창세기 원역사 부분은 일부 신학자들로부터도 하나의 민족 신화로 취급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부분은 진화론자들과의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면서, 또한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때로는 이해를 돕고자 하는 해석들이 오히려 의미를 더욱 난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과학적인 사고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원역사 부분은 단지 종교적인 화제 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원역사 부분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창조론의 핵심내용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앙은 과학과 다르다’는 말로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가 500년이나 된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답습하기만 하면서, 시대의 발전에 뒤처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면, 우리 동양인들의 고유한 선이해(先理解) 속에서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서양 신학자들의 해석에 의존했던 성경을 재해석하는 길이다. 성경에 나오는 주제들을 동양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면, 성서가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건으로 훨씬 명료하게 드러나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성서의 사건들이 육하원칙(六何原則)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시도가 어쩌면 혼합주의라고 비판받을 것이 우려되기도 하나, 방법론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지 결코 혼합주의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오히려 종교 비교론적으로 나아가면서 인격적 유일신 종교, 곧 기독교의 우위성을 증명하는 방법이 되리라고 본다. 이 점에서 트렘퍼 롱맨 III세(Tremper Longman III)(2)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주 무시되는 단순한 진리는 최고의 성경 해석자는 성경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넓게는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지식이 없다면, 본문이라는 고대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는 게 불가능하다. 이러한 다리 놓기가 없다면 해석의 과제는 완수된 게 아니다(3).

 

서구에서 발전한 기독교 신학사상에서 더 나아가고자 하는 방법은 꼭 서구적인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기록된 중동은 오리엔트 지역이고, 성경 기자들은 동양인에 속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서 이제 루터와 칼빈의 개혁신학에 대해 낡고 녹슨 부위를 긁어내고, 신학의 근본이 되는 성경을 재해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울 사도가 시작한 서양 선교의 터전위에서 이제 동양 선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동양인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동양적 신학의 방법도 필요하다. 그 방법은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새롭게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안목으로 해석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구보다 더 오랜 역사적 전통과 함께 이제는 서구에 뒤지지 않는 과학적 지식의 선이해를 이미 가지고 있는 현대의 동양인들이 더 이상 서구에 추종적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동양 기독교인들로서는 서구적 성경해석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목회자들의 주장과 권위에 눌려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서구신학 추종적인 주장의 권위가 이제는 한계점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층에서 기독교를 비과학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종교라고 매도하고 떠나는 현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동양적인 사고에서 출발하여 새롭게 성경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이해와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시도하는 신태극론적 성경해석 방법이 동양사상과 기독교에, 가다머(Hans-Georg Gadamer)가 말하는 새로운 ‘지평의 융합’(4)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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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 소재 Western College 성경학부 석좌교수.

3) Tremper Longman III. [How to Read Genesis], (전영우.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IVP. 2006. p.41

4) Kevin J. Vanhoozer.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김재영,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서울, 기독 학생회출판부. 2008]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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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에서 제기하는 신태극론은 동양사상의 맥락(Context)에서 기독교의 창조론을 연구하는 동안에 발견한 태극의 새로운 이해이다. 여기서는 먼저 재래적 태극론과 신태극론을 간략하게 비교 소개하고, 결론으로서 창조론에 대한 신학적 적용을 검토하기로 한다.

 

 

2장 태극론

 

2.1 태극론의 소개

 

모든 사회에 걸쳐 점술은 하나의 문화적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대는 물론 현대에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 때문에 점술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서양인들이 별자리의 변화에 기초한 점성술에 빠져 있다면, 동양인들은 대개 음양(陰陽)이라는 역(易)과 이에서 발전한 오행론(陰陽五行論)을 응용하여 미래의 변화를 설명하는 점술 책의 해석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은 역의 사상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은 태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태극이란 동양사상을 이루는 하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누구나 태극에 대해 초보적으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태극은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의 형상이 태극에 바탕을 두고 그린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극을 설명하는 태극론은 동양철학의 원류이고 동양의 우주론이며, 동양인의 세계관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역을 해설한 역경은 중국 최고의 고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경전이다. 우리나라 천부경(5)은 중국보다 더 오래된 태극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과 민족종교 진영에서는 동양사상의 원류는 고대 한민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경에서 역을 형상화한 괘상(卦象)은 약 5,000년 전에 중국의 전설적인 삼황오제 중에서 복희 황제가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음(--)과 양(ㅡ)의 기호 3개를 중복되지 않는 형태로 한 괘씩 묶어서 만든 8괘뿐이었다. 그 뒤 2천년쯤 지난 무렵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복희 8괘를 64괘로 확장하면서 괘사전을 붙여 해석했다. 이것이 주역(周易) 원전이다. 은나라 말 서백의 제후였던 주 문왕(6)은 아들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하기 전에 죽었으나, 아들에 의해 왕으로 추서되었다. 그들 부자는 강태공을 책사로 삼아 은나라의 폭군 주를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해야 할 당위성을 주역의 논리로 설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대성공하여 주역은 국가의 흥망성쇄는 물론 개인의 운세까지도 예단(豫斷)하는 점술서의 원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역경은 공자가 주역의 원전을 해설하면서 붙인 계사전을 포함하는 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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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조선 단군왕검이 우주의 비밀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르친 것을 신지 혁덕에게 녹도문으로 기록케 한 것인 데, 신라 최치원이 고비(古碑)에서 발견하여 한문 81자로 적은 것이 전해 온다. 대종교 등 민족종교에서 경전 으로 쓰고 있다.

6) BC 11세기 말 은나라 말 서백후로 이름은 창이다. 은의 마지막 왕인 폭군 주에 의해서 감옥에 있을 때 주역을 썼다고 한다. 그의 아들 무는 은나라를 물리치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주역을 잘 활용하여 민심을 모을 수 있었 다. 중국 역사는 주나라 시대부터 패권이 서쪽 지역으로 넘어가는 큰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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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태극론의 개념

 

태극론에는 우주가 태초에 무극(無極)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와 태극(太極)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무극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아주 큰 것 까지 어디에도 아무 것도 없으므로 무극은 영(零)이다. 그러나 태극론에서 보면, 태극은 일(一, 하나)이므로 1에서 우주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무극 개념은 나중에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태극과 같다(無極而太極))고 수정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왜냐하면 영零)으로서는 존재를 나타낼 수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극은 어떻게 모든 우주의 태초를 설명하는가? 태극이란 단순히 하나를 뜻하는가? 아니다. 태극에서 일(1)의 개념은 태음(太陰)과 태양(太陽)이 내포되어 있는 하나인 것이다. 태극에서 태음과 태양은 땅과 하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태극은 하나의 원 안에 태음과 태양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원은 하늘과 땅을 포함하는 하나의 우주를 나타낸다. 우리나라 태극기도 이런 형상이다. 태극은 태초의 역(易)이 시작하는 곳이다. 태극과 그것의 형상에 대해서는 국가, 학파, 학자에 따라서 조금씩 견해가 다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태극은 수평선에서 해가 뜨기 직전의 하늘과 땅의 형상을 나타내지만, 중국은 번개가 내리치는 형상이고, 거기에다가 태음에는 양의 씨앗을, 태양에는 음의 씨앗을 넣어 놓고 있다. 이것은 음양이 각기 자(子-소음, 소양)를 잉태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사실상 양의(兩儀)의 단계를 지나 사상(四象)으로 나가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태극은 최초의 태음과 태양이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것처럼 머리와 꼬리를 서로 맞물고 있는 형상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태극형상이 더 원형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은 음과 양의 생장변화(生長變化)를 뜻하는 개념이다. 역은 움직이는(動) 것이지, 고요하게(靜)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태음은 움직이면서 태양의 기를 흡수하여 자(子)의 형상과 속성을 가진 새로운 개체인 소음을 낳는다. 또 태음이 자(子)를 낳고 쇠약해지면, 태양은 태음의 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자(子)를 낳는다. 이렇게 태극(1)은 양의(兩儀: 2: 태극이 분리된 상태)-사상(四象: 태양과 태음+처음 분열처음소음과 소양)-팔괘(八卦: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64괘(掛: 주역捘: 체를 이루고 있다)로 나아가면서, 끝없이 성장과 분열을 반복한다. 이것이 역捘:본질이다. 음이 양을 불러들이고, 또 양은 음을 불러들이면서 음양이 결합하면 성장과 탄생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역이 뜻하는 생장소멸이다. 태극, 역, 음양 등이 이렇게 활동하는 것을 운행(運行)이라고 한다. 태극기에도 팔괘 가운데 ‘건이감곤’ 4괘를 배치하고, 태극의 운행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과정으로 태극은 역으로서 성장 발전하며, 역은 운행한다.

우리나라 천부경에서의 역사상(易思想)은 이와는 좀 다르다. 천지(天地)의 음양이 역을 통하여 자를 낳는데 이것을 사람이라고 본다. 이른 바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삼태극 개념이다. 여기서는 서구에 많이 소개된 주역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2.3 역(易)사상의 발전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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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자: 공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 도교의 창시자. [도덕경]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고, 죽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고 도 한다.

8) 추연: BC 340-260, 공자와 같은 지방 출신. 음양에다 오행론을 접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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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은 끊임없이 운행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구체(具體)를 이루었다가 부서지고, 또 구체를 이루어나간다. 구체가 모이면, 조직화하면서 집단이 되고, 성(盛)하고 쇠(衰)한다. 이에 따라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생겨난다. 스스로 되어간다는 것이 노자(7)가 가르치는 자연이고 도(道)이다. 동양사상은 자연적 변화에 집중하여 사고를 전개시켰다. 역은 이렇게 해서 인간의 운명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공자가 주역에 계사전을 붙여 해설하고, 2세기쯤 뒤에 추연(鄒衍)(8)이 음양에다 다섯 가지 운행의 법칙을 조합하여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으로 역의 개념을 확대발전시켰다. 추연의 역(易)은 우주만물이 성쇠를 반복하면서 음양오행론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행(運行)한다고 보고 있다.

복희가 처음 만든 역은 용마에 그려져 있는 하도(河圖)를 보고 팔괘를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복희는 원래 황하의 치수를 연구하면서 물 흐름의 원리를 깨달았던 자임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에 복희 역은 홍수를 관찰하면서 자연변화의 법칙을 깨닫고, 귀납적으로 치수의 방법을 그려놓은 기호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자연의 변화는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역의 기본사상에서 역을 도(道)로 보는 도교(道敎)가 생겨났고, 역의 변화를 신의 작동으로 보면서 복을 구하는 무속적인 종교들이 파생하게 되었다. 민간에서는 역이 점을 치는 도구로 성행하였고, 음양 오행론이 접목되면서 운명을 믿고 복을 비는 무속을 확산시켰다. 무속신앙은 점을 쳐서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복을 얻고자 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에서 역사적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파악한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사상이 특징인 도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도교는 가장 자연주의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공자는 역에서 천명(天命)사상을 내세웠다. 이것이 맹자를 거쳐 유학으로 성립하였고, 주자학 또는 성리학 등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는 이기론(理氣論)(9)이 당파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가 무속과 혼합되면서 중국과, 한국, 일본 등지에서 토속적 불교로 변모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유불선(儒佛仙) 종교의 근원에는 재래적 태극사상에서 발전한 무속신앙이 근원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도교에서 보면, 태극의 개념은 자연주의적 이신론(理神論)이고 도의 원천이다. 그런데 인격적인 신, 곧 상제(上帝)가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상제라는 말은 그대로 중국어 성경과 중국 기독교에서도 쓰이고 있다. 상제는 기독교의 창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역의 도리(道理)에 따라서 최초로 출생한 사람으로서 죽어서 인간 최초의 조상신이 되었다. 역의 도리는 최고의 우주 원리이다. 그러므로 역의 도리는 상제도 바꿀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이 도리에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종교로 믿는 도교(道敎)는 그래서 자연주의자들이다. 도교에서는 상제도 도리에 따라야 한다. 상제는 창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최고 조상신으로서 받들어진다. 그러므로 상제는 효(孝)의 차원에서 드리는 제사에서 숭배된다. 중국 성경의 요한복음 첫 부분을 보면 이러한 중국인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太初有道 道與神同在 道就是神 這道太初與神同在......

그런데 민간에서는 상제의 후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이 상제를 최고의 조상신으로 받들었다. 어느덧 상제는 숭배의 대상인 신의 자리에 등극하고, 상제의 밑에는 온갖 인간사와 생사화복을 분담하는 잡신들까지 만들어졌다. 이들과 접신(接神)한다는 굿이나 또는 도통(道通)한다는 주술로 복을 비는 무속이 생겨나고, 종교적인 차원의 무속신앙으로 까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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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기론: 기(氣)는 포괄적 개념이나 음양(陰陽)·오행(五行)은 좀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사물의 발생과 변화를 설 명. 이(理)는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의 기의 운동 법칙이 된다. 이와 기는 서로 떠나지도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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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태극과 역(易)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받은 동양인의 선의식(先意識)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자연주의적인 것이다. 불교가 동양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같은 자연주의적 우주관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얻고자 시작한 석가모니의 불교는 중국에서 무속신앙을 만나 어느덧 우상을 숭배하고 복을 구하는 혼합종교로 변형되어서 우리나라에까지 퍼진 것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동양의 종교는 모두 이와 비슷한 신앙유형을 가지고 있다. 동양종교에서 죽은 조상을 신으로 승격시켜놓고 숭배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이런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현재 역경을 [Book of Change]로 번역해놓은 책이 100종류도 넘는다고 한다. 그들의 학문에 역(易) 이론을 적극 활용했었다는 유명한 몇 사람들을 들어보면, 디지털 이론의 원조로 불리는 독일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라이프니츠 (1646-1716), 역사철학에 변증법을 도입함으로써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에 토대를 만들어 준 독일 철학자 헤겔,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던 저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양자역학(量子力學)(7)의 개척자 닐스 보어,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이들을 살펴보면, 서구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 토대를 마련한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망라되어 되어 있다.(10)

서구로 넘어간 역의 개념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창조론을 부정하는 이론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동양의 역(易)을 받아들여서 무신론적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창조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간 것이다. 그와 달리 동양 지식인들은 역을 잘못 이해하여 무위자연 사상에 젖어 있다가 서구의 무신론적 공산주의 체제를 불러들였고, 역을 과학에 잘 이용한 서구의 과학주의 문명에도 뒤처져 버렸다. 서양은 창조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꼴이 되었으나, 동양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선진문명의 터전마저 서양에 내준 꼴이 되어버렸다.

 

2.4 태극과 역(易)사상의 오류 비판

 

복희가 황하의 치수를 위해 그린 그림(하도:河圖)를 잘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히 치수의 원리를 그려 놓은 것이라는 것을알 수 있다. 즉 양(ㅡ)의 기호는 완전한 제방을 나타낸 것이고, 음( 완)의 기호는 무너진 제방을 나타낸 것이다. 기호 3개를 묶어서 만든 하나의 괘는 홍수와 치수에서 물의 범람과 제방을 그린 것이다. 그것은 모두 8가지 괘로 그려졌다고 앞서 말했다..

이 그림이 주문왕에 의해서 교묘하게 왜곡된 것이다. 주문왕은 물의 흐름을 민심의 흐름에다 적용하고, 이를 더욱 세분하여 64괘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도설을 덧붙이고 그럴 듯한 이론을 만들고 확대해석해서 주역을 꾸며내었다. 그는 은나라를 뒤엎고 주(周)나라를 건국하려는 계책으로 주역을 꾸몄고, 주역을 하늘이 내린 예언서처럼 퍼뜨려서 혹세무민한 것이다. 물론 이때 악명 높은 폭군 걸왕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흐트러진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으는 방법으로서는 참으로 비상한 계략이었고, 대성공이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과 낚시꾼 강태공은 마침내 주나라를 건국했다. 그러자 일반인들은 주역의 64괘를 신통력이 있는 주문이나 부적처럼 믿게 되었고, 특별한 의미가 없음에도 하늘의 신비한 계시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연구하고 해석하는 경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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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성환, 김기현 “역경 속의 현대과학” [주역의 과학과 도]. 서울. 정신세계사. 2002. p. 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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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왕의 주역은 당시 정치적 야심가들이 민심을 조작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도참서(圖讖書)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들과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들을 살펴보고 내린 나의 결론은 그렇다. 그 뒤에 공자의 계사전을 덧붙인 역경도 그렇다. 역경이 어렵다고 하는데, 별 의미가 없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니 어려울 수밖에 더 있겠는가? 물론 이 책들이 가치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읽어보고 이 같은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어찌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책들로 인하여 동양의 사상이 미신으로 빠져 들어간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백성들의 민심은 이때부터 전제군주와 엘리트 그룹의 필요에 따라 조작 대상이 되어버렸고, 난세 때마다 각종 도참서들이 꼬리를 물고 나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자연현상을 상징화한 기호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무슨 대단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양, 이해하지도 못할 난해한 문자를 써서 설명을 붙여놓은 이런 종류의 책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미혹된 자는 결코 정상적인 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는 법이다.

태극에서 태음과 태양은 원래 비존재와 존재의 이원적 구조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비존재는 무한하다. 반면에 존재는 유한하다. 태극은 무한한 비존재 안에 존재가 하나의 알처럼 그려져 있는 형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태극의 구조를 형상화함에 있어서는 원을 반으로 나누는 꼴이 아니라, 테두리 없이 하나의 원으로 그리거나, 적어도 하나의 원 안에 또 하나의 원이 있는 알(卵)의 형상으로 그려야 정확한 개념이 나온다. 즉, 존재의 외곽은 무한한 비존재의 영역이므로 테두리가 필요 없다. 그러나 굳이 외곽까지 표시하자면, 하나의 알을 표시하는 원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을 그리면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그렸다면, 개념의 오류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창세기1:2절에 묘사된 태초의 땅과 물의 구조를 보면 땅이 물에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생명체의 알과 닮은 형상이다. 태극은 알과 같은 형상인데, 현재와 같이 원을 반으로 나누는 형상으로 그리게 되면서부터 오해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우리는 동양사상의 원천인 재래적 태극과 역(易)사상을 살펴보았는데, 그것들에 대한 오류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고 본다. 동양사상이라 함은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이 포함되지 아니한 재래적 태극론과 역(易)사상을 말한다. 우리는 동양사상을 재조명하여 태극론과 역(易)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서구사상의 한계를 넘어가는 지렛대로 활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신태극론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다.

 

3장 신태극론과 생명

 

3.1 신태극론

 

재래적 태극론의 오류를 비판하는 앞의 장에서 태극의 본질적인 형상을 설명했다. 이 설명은 비존재와 존재라는 태극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존재는 소태극으로 분화했다는 신태극론의 역(易)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태초에 하나의 태극에서 소태극으로, 즉 하나의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분화한 것이지, 소태극이나 소우주가 발전해서 태극이나 대우주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장소멸은 소태극이나 소우주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태극의 형상은 불변하므로 언제나 (1+0)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체가 우주와 상호감응(相互感應)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감응은 어떤 형태로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대우주와 소우주, 즉 태극과 소태극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순조롭지 못한 상태가 병이라는 것이, 동양에서 인간의 몸을 다루는 한의학의 출발점이다. 이는 동양사상의 가장 중요한 명제의 하나인 ‘인간은 소우주’(11)라는 말과도 뜻을 같이 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같은 이해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프렉탈 구조(12) 이론이 있다.

 

한의학에서 몸 표면의 경혈로 인체를 다루는데, 이는 몸 전체의 뜻이 인체표면에 반영되어 있 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또한 손이나 귀, 발등에도 인체의 축소판인 연관된 구조로 되어 있는 바,

이는 바로 프렉탈을 의미하는 것이다.(13)

 

프렉탈 이론은 부분은 전체를 닮고 전체는 부분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라이프니츠가 우주는 무수한 단자(14)로 구성되어 있고, 단자에는 완전한 우주구조가 들어 있다는 그의 형이상학적인 단자론(單子論:Monadism)과도 연결된다.

여기에서 동서양 사상을 융합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신태극론에로 나아가는 길이 발견된다. 재래적 태극론은 태극(1)에서 태양과 태음을 똑 같이 존재(0.5+0.5=1)의 형상으로 이해함으로써 오류가 생긴 것이다. 신태극론은 신태극(1)에서 태양과 태음이 존재와 비존재(1+0=1)의 형상이라는 개념이다. 즉, 답(1)은 같지만, 신태극은 존재(1)와 비존재(0)라는 유무(有無)의 대립적 공존(共存)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나, 태극에는 비존재(0)가 없다. 비존재는 무(無)로서 무한하므로 영원하고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비존재적 무한 속에서, 유한할 수밖에 없는 존재는, 존재의 전체로서 하나 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태극은 구조적으로 알의 형상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재래적 태극론의 오류를 수정하는 신태극론은 비존재와 존재의 구조로서 나타나며, 불변하고, 영원하다. 왜냐하면, 신태극은 태초의 형상으로서 무(無)를 형상화한 태음(0)과 또 외형적으로는 나눌 수 없는 하나(1)의 존재인 태양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신태극의 형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나(1)는 존재의 전체이시며,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실재적 형상이다. 존재는 다만 하나(1) 안에서 분화하면서 확장될 뿐이다. 부분은 전체에 포함되어야 하므로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은 하나님(1) 안에 내포될 수밖에 없다. 부분이 전체를 닮아 있는 우주만물은 프렉탈 구조이므로, 유일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닮은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창세기 1:27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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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말은 서양에서 스토아 학파의 전통적 견해이기도 하다.

12) 프랙탈이라는 용어는 '파편의', '부서진'이라는 뜻의 라틴어 fractus에서 유래했는데, 폴란드 태생 수학자 베노 이트 B. 만델브로트가 만들었다. 불규칙적인 세부나 무늬가 점차적으로 더 작은 크기로 반복되고, 순수하게 추상 적인 것의 경우 무한히 계속 반복하여 각 부분의 부분을 확대하면 전체 물체와 근본적으로 같게 된다. 실제로 자 기유사체는 크기를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다. 즉 크기에 대해 대칭을 이룬다. 자기유사체란 구성 부분이 전체와 닮 은 것이다.-출전 [브리테니커]

13) 김승호 [주역 원론: 사물의 운명. 서울 선영사. 2006] p.342

14) 단자: 모나드(monad)란 원래가 수학상의 용어로 ‘1’ 또는 ‘단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모나스(monas)에서 나온 말이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든 존재의 기본으로서의 실체는 단순하고 불가분(不可分)한 것이며, 이를 모나드라고 이름지었다. 모나드는 원자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실체로 그 본질적인 작용은 표상(表象)이다. 표상이 란 외부의 것이 내부의 것에 포함되는 것으로, 모나드는 이 작용에 의해 자신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다 양성에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모나드에 의해 표상되는 다양성이란 세계 전체를 말한다. 모나드는 ‘우주의 살아 있는 거울’이라고도 하며, ‘소우주(小宇宙)’를 이룬다. 출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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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는 말의 개연성은 저절로 입증되고 있다.

신태극에서 하나(1)는 존재의 전체로서 유기체이며, 부분이 전체를 닮아 있는 프렉탈 구조이다. 요한복음 14:10-11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이어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하심으로써 강조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영을 받으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말하셨다. 이 말에는 프렉탈 구조 이론과 단자론과 인간은 소우주라는 뜻과 존재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뜻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또 신태극(0+1=1)에서 ‘1’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시라는 것과도 같은 뜻이다. 신태극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신태극에서의 역(易)은 하나님의 창조 영역 안에서의 변화를 뜻한다. 하나님의 창조를 벗어난 변화는 소멸, 곧 무화(無化=0)이다. 이것이 신태극론 개념의 핵심이다.

 

3.2 신태극론에서의 생명

 

기독교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창조자로서 살아계심을 믿는다. 우선, 창조론을 믿는 기독인들이 재래적 태극론, 즉 동양사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태음과 태양이 공존하고 있는 태극에는 원시생명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 조상인 상제가 최초의 역이 일어나는 순간에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은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진화론자들에 대해서는 유효한 반대 개념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생긴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우연히 생명이 발생했다는 진화론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구에서 태극의 생명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진화론 및 무신론적 공산주의 이론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서구 기독교 신학의 발전이 현재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지 못했던 이유로서는, 그들이 재래적 태극과 역(易)사상의 오류를 그대로 수용했던 한계 때문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국 부메랑처럼 동양으로 다시 넘어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동안 무신론이 확산된 것은 태극과 역(易)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 근본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왜곡된 것을 발견하고 시정하지 못한 것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장 결론: 신태극론의 신학적 적용

 

재래적 태극의 개념에서는 인간이 태극의 도(道)에 따라 출생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 신태극론(新太極論)은 태양(1)으로 형상화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분화되어 나왔으므로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인들이 기독교 창조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신태극론에서 생명의 근원적 존재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로서 태초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태극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1)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프렉탈 구조로, 단자론적으로, 소우주로서 생장소멸한다는, 역(易)사상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신태극(0+1=1)의 형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래적 태극(1=0.5+0.5)은 양의(2)로 발전해서, 사상(4)으로, 팔괘(8)로, 64괘로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태극은 태초에 한번 있었던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무(無)는 있지 않았던 것이 되어버린다. 성경에서도 비존재적인 무의 창조기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과연 무는 없는 것인가? 무(無)를 말하면서도 모른다고 하면 무책임한 것이 된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면 거짓이 된다. 이것이 재래적 태극론의 오류였다. 이런 오류를 동서양 어디에서도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무(無)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것이 성경 이해의 오류였다. 그로 인하여 파생하는 악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나 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신태극(0+1=1)에서 비존재적인 무(0)는 이미 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태극론에서는 하나님과 무(無), 즉 흑암은 태초 이전부터 공존하고 있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재래적 태극과 역의 이론이 서양으로 건너가서 서구과학 발전에 끼친 공로가 적지 않지만, 그로 인해 물질적 존재에만 집착하는 무신론 자연주의를 확산시킨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현대의 발전된 양자역학과 유전자 공학이론을 보면, 재래적 태극론과 기존 과학의 기계론적인 이론들의 대부분은 부정되어야할 단계에 와 있다. 그렇지만 신태극론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현대과학은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최종적인 질서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길로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와 동양사상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를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평융합의 가능성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곡된 태극과 역(易)사상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잊고 있는 동양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영원한 존재이심을 제대로 일깨워주면, 기독교 신앙의 전도는 그만큼 용이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태극론적으로 창조론을 이해해야 하는 첫째 이유이다. 진리성을 가진 신태극론과 기독교 창조론의 지평 위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신학으로 나가는 해석적 융합의 방법을 시도한다. 또한 그것이 개혁신학의 나아갈 길이라고도 본다.(끝)

 

첨부 자료: 창세기 원역사의 신태극론적 해석(생략)

참고문헌: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