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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신학의 종교개혁신학적 특징"과 한국교회

heojohn 2020. 4. 4. 03:21

I. "웨슬리 신학의 종교개혁신학적 특징"

      - [한국개혁신학]지 제19(2006.4) 논문(저자: 김 영한교수)

 

 

머리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교리 내용을 영국 성공회 전통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성공회 목사로서 믿었다. 그러나 웨슬리는종교개혁자들의 교리를 자신에게 다가온 성경의 빛과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재해석하였다.

 

웨슬리가 루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루터를 답습한 것은 아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서 신앙의 내적 체험을 하였으나 모라비안 교도가 된 것은 아니다. 웨슬리는 루터를 자기보다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나 동시에 그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웨슬리는 선행은총이나 인간의 자유의지와 보편구원, 특히 예정교리에 있어서 당시 칼빈주의에 반대하였던 알미니안주의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1. 웨슬리의 참회와 루터교적 경건주의 영향

 

첫째,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주로 선교 여행을 할 때, 대서양의 폭풍 속에서도 모라비안 도들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태도에ㅐ서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조지아주 선교에서, 그리고 런던으로 돌아와서 다시 모라비안 교도들을 찾아가서 그의 구원의 확신 문제에 대결하는 계기가 된다.

둘째, 웨슬리는 1738년 독일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중심지인 헤른훗을 방문하여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셋째, 이러한 신앙적 갈등과 고민을 통하여 웨슬리는 참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의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웨슬리가 체험했던 것은 바로 200년 전 종교개혁자 루터의 구원확신 체험이었다. 그것은 불신자가 갖는 회심의 체험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라는 종교개혁적인 의인(justfication)의 체험이었다.

 

2 성경의 권위 강조

 

웨슬리 신학의 출발점은 성경과 경험이었다. 그는 성경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이 모든 실재적 또는 상징적인 관계를 음미하는 초석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은 율법에 그리고 증언에 호소하고 그것에 따라서 영을 시험한다.”

그는 성경의 영감을 믿었고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는 그의 신앙을 피력하였다. “오 나에게 저 책을 주시오. 나에게 하나님의 책을 주시오....나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시오.”

 

3. 오로지 은혜에 의한 구원

 

웨슬리는 1838년 올더스 게이트(Aldersgate Street) 거리에서 내면적으로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후 설교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설교의 주제는 성경적 구원이었다.

웨슬리는 루터와 함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은혜교리의 확고한 토대 위에 섰다. 1740년 웨슬리는 이 이신득이의 교리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는 옛 길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믿음과 행위로써 구원을 얻는 새 길을 반대하였다. “우리 교회가 기독교의 굳은 반석이요 토대라고 불러야 할 마땅한 교리가 바로 이 교리였다. 로마 교황청을 기독교 왕국 밖으로 몰아내었고, 그리고 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이 교리이다.” 웨슬리와 똑 같이 루터도 탁상담화에서 믿음과 의인의 교리는 모든 거짓된 신들과 우상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물러나갈 때, 교황청의 토대는 무너지는데 그 토대는 바로 거짓 신과 우상숭배였다.”

 

구원에 관하여 웨슬리는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며 선포된 복음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이방인도 그 속에서 도덕 빛에 순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자연 빛에 의하여(by the natural light) 그들이 아는 뱌를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웨슬리는 교부 어거스틴으로부터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선행은총 개념을 수용한다. 이 선행은총 개념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의지의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자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은 원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보았다.

 

타락 이후에 하나님은 양심에 병행하는 성행은총을 주셨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도 은총은 전적으로 결핍하지 않다. 선행은총은 복음이 선포될 때, 개인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한다.

 

4. 말씀 중심의 복음사역-말씀선포가 복음 사역의 일차적인 수단이라고 보았다.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영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알미니안주의,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교개혁적 변증법적 긴장을 버리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은 만인을 위한 것이며, 구원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믿음은 하나의 선행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영국사회에서 웨슬리는 불굴의 용기를가지고 종교개혁적인 죄의 회개와 칭의의 복음을 외쳤다.

 

웨슬리는 휫트필드와 같이 설교가 하나님이 영혼을 구원하시는 우선적인 수단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 있어서 웨슬리의 복음사역은 개혁교회의 말씀사역을 수용하고 있으며, 오순절 교회가 하고 있는 은사사역이나 치유사역하고는 다르다.

 

5.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강조

 

웨슬리는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free grace)”을 설교하였다. 인간들은 죄인들이며 스스로 구원받을 수가 없으며,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믿음으로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웨슬리는 인간이 이미 은총의 상태에 있다는 것, 즉 선행은총의 작용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The grace of love of God)을 믿었고, 이 은총으로부터 구원은 모두에게, 모두를 위하여 값없이 주어진다(our salvation is free in all and free for all)고 설교하였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반대하였다. 휫트필드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와 인간의 부패성을 강조하였으나, 웨슬리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점에서 휫트필드는 하나님의 전적 주권과 예정이라는 정통개혁적 입장에 서는데 반해, 웨슬리는 인간의 선행의지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알미니안 입장에 섰다. 휫트필드와 웨슬리의 갈등과 결별은 단순한 선교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교리의 차이였다. 휫트필드는 복음주의 운동을 청교도주의에 연결시킨 것에 반해서 웨슬리는 알미니안 운동의 창시자인 로드에 연결시켰다. 웨슬리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보편속죄를 받아들이면서 제한속죄를 주장하는 정통개혁주의의 예정론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1741년 미국에서 돌아온 후 웨슬리는 정통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과 제한속죄 및 최후의 견인을 거부하고, 이를 따르는 휫트필드와 결별한다.

 

6. 지상에서의 상대적 성결론

 

웨슬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르침과 교회에의 기여는 그의 성결론이다. 이 성결론은 독일 모라비안 경건주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성화보다는 이신득의를 강조하였고, 더욱이 루터는 율법폐기주의의 경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웨슬리는 성화를 강조함으로써 현대의 복음주의에 직한 영향을 끼쳤으며 개혁신학의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신자는 중생이라는 일차적 성화(initial sanctification)에 의하여 내적 죄로부터 부분적으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다. 그리고 신자는 전적 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의하여 내적 죄로부터 온전히 씻음을 받는다. 마침내 신자는 영화(glorification)에 의하여 연약성(infirmities)에서 구원받는다. 웨슬리는 몸이 영화롭게 될 때, 즉 육신이 죽을 때 절대적 의미에 있어서 신자들이 성화된다는 칼빈주의에 동의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신자들이 지상에서 육신으로 있을 때에도 전적으로 성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웨슬리는 구원이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성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웨슬리는 거룩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연약성과 실수와 빠뜨림의 죄 때문에 전적 성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회개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죄를 웨슬리는 유한성(mortality)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무지와 실수에서 자연적으로 결과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화를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보는 점에 있어서는 루터와 비슷하다. 이러한 성화에 대한 은혜 낙관주의를 루터는 의인의 삶 안에서, 웨슬리는 성화의 삶 안에서 각각 주장하고 있다.

 

7. 중도적인 성령체험론: 개혁주의 성령론의 역동화

 

올더스 게이트 거리에서의 성령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확신에 찬 복음 설교자가 되게 만들었고, 성공회의 교리의 담을 넘어 세계를 자기의 교구로 삼게 했다. 웨슬리는 성령의 증언하는 사역 속에 기초한 확신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는 성령의 직접 증언은 성령의 간접증언인 우리 영의 증언, 즉 선한 양심의 증언(witness do a good conscience)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영의 분별에 있어서 웨슬리는 성령과 나의 영의 공동증언을 주장한다. 성령의 증언과 인간의 환상이나 마귀의 현혹(delusion)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증거와 나의 선한 양심의 증거 사이의 일치이다. 성령의 직접적 증언은 나의 영의 증언, 즉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선한 양심의 증거를 동반해야 한다. 나의 인격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동반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사랑, 화평, 희락, 오래 참은,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지니고 있어야만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영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확신교리는 제도적 신앙과 열광적 신앙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는 로마 가톨릭이 구원의 확신을 성례전에 연결시키고, 과격 개혁교회가 예정교리에 집착함으로써 신앙의 활력을 상실한 것과 신앙의 확신을 추상화시킨 것에 반대하였다. 또한 열광주의자들이 영혼 속의 내적 빛에 연결시킴으로써 신비주의화 시킨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8. 네 가지 권위

 

웨슬리는 종교적 권위의 네 가지 원천으로서 하나님만을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자주 성경과 전통과 이성, 그리고 경험에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적 신앙의 일에 대한 접근을 위한 네 가지 토대를 놓았다.

 

웨슬리의 네 가지 원리는 종교개혁적 원리와 모순되거나 상충되지 않고 서로 보완적이다. 그는 네 가지 권위가 유래하는 궁극적인 권위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보았고,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성경이라고 보았다. 웨슬리의 네 가지 권위는 종교개혁적 원리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원리를 보완하는 요소로서만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네 가지 권위를 네 가지 측면으로 본다든지, 또는 서로 대등한 독립적인 요소로서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웨슬리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종교개혁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성경이라는 원리가 가장 핵심적이며 으뜸가는 원리이고, 다른 요소들은 성경의 원리를 보완하는 원리로서만 기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네 가지를 평행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그의 후예들이 이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의 문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웨슬리 사고의 취약점이다.

 

9.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긍정-예정론 부정

 

웨슬리는 예정을 하나님 말씀의 모순으로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을 위하여 죽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예정론이란 위험한 실천적 결과를 초래하여 도덕적 면허내지 복음화와 선교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값 없는 은총이라는 설교에서 그는 예정론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첫째, 설교의 목적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고 무효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예정론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효로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선택받은 자에게는 지키지 않아도 되고, 선택받지 못한 자에게는 지킬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예정교리는 종교의 위로, 즉 기독교의 행복을 파괴하는 경향을 갖는다.

넷째, 예정교리는 직접적으로 선을 향한 우리의 열심을 파괴하는 경향을 갖는다.

다섯째, 예정교리는 전 기독교의 계시를 전복하는 직접적이고 명백한 경향을 갖는다.

여섯째, 예정교리는 성경의 전 범위와 취지에 명백히 모순되는 텍스트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성경 구절에 명백히 위배된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이 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일곱째, 예정교리는 신성모독으로 가득 찬 교리이다. 예정론은 기독교 체험의 기초를 해체하는 것으로서 모든 슬픈 범죄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위험스러운 것이다.”

 

웨슬리는 신자들이 이미 획득한 신앙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예정론의 부정은 선행은총론 및 자유의지론과 더불어 보편구원론을 이룬다.

 

 

10. 웨슬리의 예정론 이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예정교리의 비판에서 웨슬리는 값없는 은총과 칭의의 믿음을 설교하는 그의 신본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단지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의 관점을 더 내세우는 인본적인 모습만이 나타난다. 웨슬 리가 예정론 이해에서 가지는 근본적인 오류는 예정이란 인간이 착안점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점을 명료히 알지 못한 데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예정은 그의 예지에 근거한다. 그의 예지는 우리의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실증적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지는 그의 예정 안에 이미 정립되어 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와 책임은 서로 모순되거나 이율배반을 보이지 않는다. 예정이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면제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철학적, 세속적, 피상적 오해일 뿐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행위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이것은 철학적으로는 자가당착이나 신학적으로는 신비이며 인간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인정하였다. 웨슬리가 하나님의 예정론을 비판한 것은 과격 칼빈주의자들이 빠질 수 있는 반율법주의 내지 율법폐기주의자들에 대한 전쟁을 시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개혁신학의 핵심은 예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론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예정론을 신론에서가 아니라 교회론에서 다루었다.

 

맺음 말

 

웨슬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한다거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적용하는 과격 칼빈주의에 반대하였다. 종교개혁신학의 전통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마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속의 효력은 믿는 자에게만 적용된다고 본다.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에 인간의 행위와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전파에 결신의 효과를 거두고, 신자들에게 신앙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서는 기여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선행하는 은총에 대해 반응하는 인간의 책임에 있는 것으로 봄으로써 인본주의의 길을 열고 있다.

 

 

 

 

 

II. "웨슬리 신학의 특성과 한국 교회"

       -[한국개혁신학] 19권(2006) 논문

저자 이상직 교수

 

이 논문은 성경적 원칙을 적용하여 18세기 영국의 산업화로 인하여 발생했던 도시 빈민들과 일반 시민들의 도덕적 타락과 영적 공황을 새롭게 변화시켰던 웨슬리 신학의 전통을 성화론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그 특색을 현대 한국교회에 적용시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1. 현장의 신학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산업혁명 시대에 하층민들과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위로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성령의 내주와 은총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설교하였다.

 

2. 성령의 신학, 산 믿음의 신학

 

웨슬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통하여 객관적인 구원의 업적을 행하시고(칭의), 다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g현실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신다.(성화) , 성부에 의해 계획되고, 성자에 의해 성취된 구원의 업적이 우리 안에서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성령에 의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기능의 강조야말로 웨슬리의 구원관과 복음주의적 선교활동 전체의 요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2.1. 완전 타락한 인간이 선행은총에 의해 하나님에 대한 희미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1:9). 웨슬리는 선행은총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나 양심을 강조하는 대신 치유하고, 조명하고, 예비하는성령의 활동을 강조한다.

2.2. 웨슬리는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인 깨달음의 은총, 즉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에 이르는 은총을 강조한다. 회개는 1차적 율법적 회개와 2차적 복음적 회개가 있다. 칭의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앙이다.

2.3. 웨슬리에게 칭의의 은총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베풀어준 죄의 용서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준다. 칭의를 얻을 때 성령을 받는다. 성령의 간접적 증거는 성령의 열매들이다.

2.4. 의롭게 하시는 은총과 함께 성령은 성화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신다. 성화된 사람은 선행을 행할 수밖에 없다.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이란 절대적 완전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능한 상대적 완전이며,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충만으로 나타난다.

 

3. 교회론적 신학

 

웨슬리는 은총의 수단으로서 성례전의 중요성과 제도적 교회의 중요성을 잠시라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은총의 수단은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모든 외적 표지, 언어, 행위를 말하며, 그 정해진 목적은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통상적인 매개체라고 웨슬리는 말하고 있다. 교직제도와 설교는 중요하나,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설교, 교직제도, 전통은 오히려 무의미하다.

웨슬리에게 교회란 성령이 충만한, 그리고 성령으로 굳게 결합된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생명체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고 인도하는 주체는 성령의 역사이다. 교회의 주요한 표식은 구성원들의 성결한 생활이며, 그 근원은 그리스도 자신인 것이다. 웨슬리는 가시적인 교회와 그 은혜의 수단의 객관적인 연속성을 깊이 수긍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으로 한 몸 된 교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관을 제시하였다.

 

결어

 

웨슬리는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라 성경의 원칙을 재발견하여 시대와 교회를 선도하는 목회자요 전도자요 신학자였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신의 신학을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의 신학을 계승한다. 그러나 그는 신자들의 산 믿음과 성령 안에 사는 성화의 삶을 누구보다 강조하였다. 그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명목상의 신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그 구원사역을 신자들의 내적 확신으로 인도하고 죄를 이기게 하는 성령의 증거를 누구보다 강ㅈ도한 신학자였다. 끄래서 웨슬리 신학은 현대 한국교회에도 변함없는 자성의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숭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