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호킹의 [위대한 설계]비판

『위대한 설계』읽기-3(모형 의존적 실재론)

heojohn 2020. 3. 19. 20:47


1. 고전적 실재론 vs 모형 의존적 실재론

 

호킹에 의하면 현대 물리학적 지식은 진짜 세계가 있고, 그 세계
의 속성들이 “관찰자에게 독립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기초”
로 하는 철학과 고전과학의 실재론을 옹호하기 어렵게 한다.406 현대
물리학자들은 경험적인 지식과 이론적인 지식을 구분한다. 왜냐하면
유리 어항 밖에서 보는 금붕어나, 다수의 앙상블의 부분적 존재이거
나, 또는 ‘홀로그래픽(holographic) 원리’에 의해 다른 차원의 경계에 드
리운 그림자처럼, 실험과 관찰에 의한 경험은 의미가 있지만, 이론은
실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가 불
룩한 유리 어항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볼 때, 실제로 우리에게 보이
는 것은 그 물고기의 왜곡된 상(像)이다. 호킹은 왜곡된 실재의 유명
한 모형으로 가톨릭교회에 의해서 교리로 인정되었던 아리스토텔레
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모형을 들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
레이는 실제적 관측에 의해 지구 중심의 주전원(周轉圓) 궤도를 태양
과 별들이 회전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모형이 틀렸음을 발견했
다. 이들이 태양 중심의 새로운 천체모형을 제시했으나, 가톨릭교회
는 오히려 이들의 주장이 성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갈릴레이에게 유
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에도 왜곡된 지구 중심의 천체모형은 계속 가
톨릭교회의 정식 교리로 유지되었다. 갈릴레이에게 내린 유죄판결이
잘못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992년이었다.


만약 우리가 왜곡되지 않은 금붕어 상을 보려면, 유리 어항 안에
직접 들어가서 금붕어를 보아야 할 것이다. 호킹은 그런 일을 하지 않
고도 왜곡되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모형 의존적 실재론’
을 주장한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은 동일한 현상을 “다른 개념 틀들
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을 포함한다. 그러나 ‘모
형 의존적 실재론’은 “그림이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여
기서 호킹은 과학을 관찰 가능한 것에 국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일부 의견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모형 의존적 실재론’이 관
찰 자료와 모형과 모형의 요소들을 연결시키는 규칙이며 “현대과학
의 해석에서 기본 골격의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형
이 실재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오직 “모형이 관
찰과 부합하느냐는 질문만” 의미를 가지게 한다. 그러므로 ‘모형 의존
적 실재론’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이 벌여온 “모든 논쟁과 토론을 우회
한다.” 호킹은 그의 M이론이 ‘모형 의존적 실재론’으로 설명될 것
이라고 말한다.


호킹은 모형 의존적 실재론의 토대가 되는 ‘관찰’도 “일종의 렌즈에
의해서 인간 뇌의 해석 구조에 의해서 형성”되는 “정신적인 그림 혹은
모형”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망막에 비쳐진 2차원 데이
터를 읽어서 “3차원 공간의 인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물
리학자들은 보지도 못했던 아원자 입자들의 모형을 기술했었다. 그
러나 그것들은 뒤에 관찰에 부합됨으로써 실재로 확증될 수 있었다.
호킹이 제안하는 좋은 모형의 4가지 요소에는 “우아할 것”과 “자의적
이거나 조정 가능한 요소들을 거의 포함하지 않을 것”, 그리고 “기존
의 모든 관찰들에 부합하고 그것들을 설명할 것”과 “만일 틀렸을 경
우 모형을 반증할 수 있는, 미래 관찰에 관한 상세한 예측들을 내놓을
것”이 요구되고 있다. 관찰에 부합되지 않는 모형들은 폐기되어 왔
고, 또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로부터 신학이나
철학에서, 그리고 현대에는 과학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나 실
재에 관련한 수많은 이론과 모형이 제안되었으나, 뒤에 다른 이론이
나 모형으로 대체되어버린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대체된 이론
이나 모형들도 다시 새로운 관찰에 의해 수정되거나 폐기되었다.


호킹은 그런 것들의 대표적인 사례로 호일의 정적 우주론이 허블
의 팽창우주론에 의해 폐기된 것과 뉴턴의 빛 입자 이론이 아인슈타
인의 광전자 이론에 의해 입자-파동의 이중성 이론으로 대체된 사실
을 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합의되지 않고 논쟁 중인 여러
가지 이론이나 모형들도 있다. 호킹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신의 실재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는 과학적 무신론과 과
학적 유신론도 그것들의 하나이다. 비판과 논쟁을 하려면, 그때까지
의 과학적 지식을 올바르고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호킹은
“옳음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흔히 모형을 버리는
대신 수정해서 살리려고 한다”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흔히 하듯이
특유의 핑계거리를 남겨놓는다. 아마도 호킹은 ‘옳음이 입증되지 않
는’데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
의 모형을 살리려고, 양자물리학적 실재론을 오용하고 있다는 사실
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2. 양자물리학적 실재론


양자물리학은 1900년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 연구에서 양자 단
위를 발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의 광양자가설
의 발표는 양자이론 발전에 고속도로를 닦아놓았다. 『위대한 설계』는
호킹이 양자물리학 고속도로에서 우리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이야
기다. 책의 제목을 보고 언어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우리의 우주는 마
치 위대한 설계자인 신이 만들었다는 선입관을 갖게 한다. 그러나 호
킹이 주장하는 실제 의도는 그와 정반대이다. 호킹은 리처드 파인만
을 인용하여 양자이론의 모든 수수께끼가 실재의 이중성에 있음을 지
적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뉴턴의 고전물리학은 거시세계를 다루는
것이며, 양자물리학은 원자 규모의 미시세계에 관련한 것을 다룬다
고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웬만한 사람들로서는 두 가지의
물리학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
물리학을 만든 뉴턴도 실수를 저질렀고, 양자물리학을 만든 아인슈
타인도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물리학에서 실수를 저
지른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호킹은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심하고 말해도 된다’는 말까지 했
다고 소개했다.


고전물리학에서 실재는 물리적으로 하나의 개체로 결정되어 있
는 것이었다. 17세기에 빛을 관찰했던 뉴턴은 원 무늬를 발견하고
서도 파동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미립자(corpuscles)설을 주장했
다. 19세기에 빛의 이중 슬릿 통과 실험에서 파동을 발견한 토머스 영
(Thomas Young, 1773-1829)이 파동설을 주장했지만, 뉴턴의 지지자들
에 의하여 입자설과 배치된다고 거부되었다. 이 논쟁은 아인슈타인
의 광전효과 이론으로 빛이 이중성을 갖고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20
세기에 무승부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이 발전되면서 드
브로이에 의해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 입자들이 물질파(matter wave,
또는 드브로이 파: de Broglie wave)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1999년
에 실시된 탄소원자 60개로 만든 축구공 모양의

버키볼 실험에서는
분자 수준의 물질조차 이중성을 가질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와 같
이 실재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
고 한 가지 관측방법에 의존하여 파동설이나 또는 입자설의 어느 한
가지 이론만으로 실재를 설명한다면, 그 설명은 전적으로 오류인 것
은 아니지만, 또한 오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두 가지 물리학이 결정론의 개념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로 호킹
은 세 가지 양자이론들을 제시한다. 첫째는 물질의 파동-입자 이중
성 이론이고, 둘째는 불확정성 원리이다. 세 번 째는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의 ‘역사 합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입자가 종착점
에 도착하기까지에는 모든 가능한 역사적 경로를 가질 수 있다’는 뜻
이다.414 이런 사실은 존 휠러(John A. Wheeler, 1911-2008)의 ‘뒤늦은 선
택 실험’(delayed choice experiment)으로 확인되었다. 휠러는 1978년에
사고실험을 제안했었고, 실제 실험은 2007년에 이루어졌다. 이 실험
의 구조는 이중슬릿 실험 장치에 광자의 경로를 감지하는 기구가 하
나 추가된다. 광자는 이중 슬릿 앞에서 감지기를 켜면 스크린에 입자
로서 행동한 흔적을 남기고, 감지기를 끄면 파동으로 행동을 한 흔적
을 남긴다. 그런데 이중슬릿을 지나서 스크린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
다 감지기를 켜놓고 보아도 이미 이중슬릿을 통과한 광자가 파동이
아니라 입자의 흔적을 보여준다. 양자이론에서는 ‘뒤늦은 선택 실험’
에서 나타난 광자의 행동을 보고 파동으로 이중슬릿을 통과한 광자가
되돌아가서 입자로 다시 통과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실험을
보고 광자가 지나온 역사의 경로조차 변경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광자는 어떤 순간에도 관찰행위의
영향에 의해 파동성이 입자로 변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고전물리학의 직관적 실재 이해에서 근본적으
로 중요한 개념들이 무의미해진다. 호킹에 의하면 이제 양자물리학
은 고전물리학의 대안이다. 양자물리학은 “원자들과 분자들의 우주
를 표현하는 새로운 실재 모형”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뉴턴의 중력
이론도 앞으로는 ‘양자 중력이론’(quantum theory of gravity)으로 대체
되어야 한다. 양자물리학 이론들은 “새로운 형태의 결정론을 향해서
우리를 이끈다.” 호킹은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말과 정반대로” 신
이 모든 물리적 과정의 결과를 결정하기 전에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고 비꼰다. 새로운 결정론은 물질의 이중성 이론, 하이젠베르
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리고 파인만의 역사 합(Feynman’s sum-over
histories formulation) 공식 등에 의해 양자물리학에서 ‘실험에 부합하는
자연법칙들’을 따르는 것이다. 양자이론은 자연 시스템의 상태가 특
정 시점에서 결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다양한 과거들과 미래들
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확률을 결정”한
다.


그렇다면 실재는 과거에 확정된 사건들의 연쇄로서 존재한다고 보
는 뉴턴의 고전물리학적 결정론은 입지를 잃고, 그 대안인 양자물리
학적 불확정성 결정론에 밀려나게 된다. 호킹은 이런 사실을 근거로
그의 양자물리학적 결정론을 우주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호킹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