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유사 창조론의 비판적 이해

지적 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

heojohn 2018. 9. 20. 10:34

지적 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서론

 

기독교는 초기 교회시대부터 토라-모세오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적 창조론을 가지고 있었다.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에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발표한 이후, 기독교는 고전적 창조론을 가지고 진화론과의 논쟁에 빠져들게 되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식물생리학자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1936년에 생명의 기원을 출판하고, 생명은 물질의 화학적 작용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오파린은 화학적 작용의 산물인 최초의 생물이 다윈의 진화 메커니즘에 의해 현재의 생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진화론은 철저하게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창조론과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심지어 오파린은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오파린의 장담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창조의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 진화론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진화론자들의 과학적 논리에 밀리면서 점점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4단계로 발전한 진화론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창조론 진영에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등장은 하나님이 보낸 지원군으로 여겨졌다. 만약 창조론이 진화론에 진작에 승리했다면, 지적 설계론은 역사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창조론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 설계론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창조론 정도로 알고 있을 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지적 설계자가 하나님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믿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유신론자들은 나름대로의 창조론에서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은 창조론과 동질성도 가지고 있지만, 이질성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동질성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창조자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질성은 전제된 동질성의 이면(裏面)에 가려져 있다. 두 가지 동질성에 가려진 두 가지 이질성을 보면, 진화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차이에서, 창조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체성과 관련해서 나타난다. 이 에세이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이런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지적 설계론과 창조론의 관계가 미래에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볼 것이다.

. 진화론 비판

 

1. 전통적 창조론의 진화론 비판

 

기독교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이 태초에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그 가운데 생물들을 종류별로 창조하셨고,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고전적 창조론의 핵심 내용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최초의 단순한 원시 생물이 점진적 변이를 거쳐 복잡한 고등 생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주장은 특히 생물이 종류별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성경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었던 기독교의 입장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청교도 이민으로 건국된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동향을 살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1860년에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1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예해방 문제로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미국 기독교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치열했던 남북전쟁이 끝나자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진화론 찬반 논쟁이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당시 미국 기독교인들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사용한 무기 역시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고전적 창조론이었다. 1863년 미국에서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25)에 의하여 설립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열렬한 반진화론 그룹이었다. 안식교의 열성 신자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George McGready Price, 1870-1963)는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다윈의 진화론에서 발견한 약점은 생물의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프라이스는 노아 홍수를 환상으로 체험했다는 화이트의 설교를 듣고, 노아의 홍수를 이용하여 지질학의 오랜 지질연대를 깨뜨릴 수 있다고 착안했다. 프라이스는 영국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가 그의 연대기에서 제안한 창조연대를 믿고 있었다. 그것에 의하면 우주는 BC. 4004년에 창조되었고, 노아의 홍수는 창조 후 1656(BC. 2349)에 일어난 사건이다. 프라이스는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는 오랜 지질연대를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질학이 오류라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라이스의 증명 방법은 BC. 2349년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에 의해 전지구의 지질이 단번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동일과정설에 기초한 오랜 연대의 지질학이 오류로 증명되고 진화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프라이스는 1923년에 그의 주장을 설명하는 신지질학을 출판했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프라이스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그가 책에 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랜 지질연대를 주장하는 주류 지질학계로부터 즉각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존 위트콤(John C. Whitcomb, 1924- )이 반진화론 입장에서 프라이스의 주장을 지지하는 논문을 써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위트콤은 수력학자인 남침례교 신자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1918-2006)를 끌어들여 그의 박사학위 논문과 프라이스의 이론을 확대한 창세기 홍수1961년에 출판했다(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창세기 대홍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 역시 미국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고무된 헨리 모리스는 미국에서 창조과학연구소(ICR: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를 설립하고, 그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세계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그의 창조과학에 동의하는 창조론자들을 모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현재에도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전 지구적 노아 홍수론을 무기로 진화론 반대 운동에 선봉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창조과학적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보면,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의 핵심 쟁점을 겨냥하지 않고, 프라이스처럼 노아의 홍수를 끌어들여 지질학의 오랜 지질연대만 공격한다는 것이다.

 

2. 전통적 창조론의 실패

 

전통적 창조론은 앞에서 설명한 고전적 창조론과 프라이스와 모리스가 발전시킨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통칭하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선택 -생물이 점진적으로 변이를 거쳐 진화하는 메커니즘(mechanism)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진화론 비판은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이 오류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고전적 창조론은 인간이 원숭이의 자손일 수 없다는 주장으로 비판하고,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노아의 홍수를 끌어들여 지질학에서 주장하는 오랜 지질연대를 반박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 창조과학적 창조론에서 오랜 지질연대를 반박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학적 자료는 모리스의 창세기 홍수이론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이 우주의 나이를 겉보기에는 오래된 것처럼 창조하셨지만, 사실은 약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현재 지질학계는 지구 나이 46억년 설을 지질연대의 토대로 삼고 있다. 그것은 물리학적으로 지구 암석과 월석, 그리고 운석의 생성 연대를 분석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과학적 분석의 결과를 비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반론하는 것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동안, 진화론은 현실적으로 과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기독교의 온갖 지원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공교육에서도 배제되고 말았다. 과학적 이론을 반박하려면, 그 이론의 방법에 따라 검증하고 오류를 발견하여 반박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또는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근거로, 반론해서는 진화론을 굴복시킬 수가 없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법칙을 서술한 책이지 물리법칙을 서술하는 과학책이 아니다.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경의 해석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토라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고집했던 로마가톨릭처럼,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학 발전의 힘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우주탐험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과학은 미국에서 초강국의 문명사회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과학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임을 입증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학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주장하는 기독교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전체를 무지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반대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는 모든 창조론 운동이 금지 당했고, 학교에서는 과학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공공 의식(儀式)에서 선서의 효력을 보증하던 성경의 사용이 폐지되었다. 창조론을 다시 공교육기관에서 가르치게 하려는 기독교의 노력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모두 좌절되었다. 학교에서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치게 하려던 최후의 도전까지 끝내 실패했다. 그 결과 유신론을 믿는 현대인들도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부모를 따라 교회를 잘 다니던 학생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할 무렵에는 이를 핑계로 교회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진화론 반박에 성공하지 못한 기독교의 전통적 창조론자들은 이런 현상을 다른 이유로 돌리지만, 냉정하게도 현실은 그렇다는 것이 사실이다.

 

. 지적 설계론의 도전

 

1. 지적 설계론의 등장

 

1984생명의 기원의 신비를 출판한 찰스 텍스턴(Charls B. Taxton) 등이 진화론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텍스턴은 1989년에 출판한 판다와 사람에서 유전자의 정보가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서는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정보의 원인으로 지적 설계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유전자의 이중 나선형 구조가 밝혀진 1953년 이후, 30년 이상 축적된 자료를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텍스턴 등의 지적 설계 개념은 진화론의 핵심을 직접 겨냥한 것이었으므로, 창조과학적 창조론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 설계론의 등장은 진화론이 추방한 창조자를 다시 모셔오려는 야심찬 기획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심판대 위의 다윈(1992)을 출판한 법학자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논쟁에서 사용한 진화론의 자료들에 의문을 제기한 시기를 지적 설계론이 등장한 때로 보고 있다. 진화론과의 논쟁을 지적 설계라는 학술적인 차원에서 발전시킨 인물은 1996다윈의 블랙박스를 출판한 리하이대학의 생물학 교수 마이클 비히(Michael Behe)였다. 그는 생물의 각 구조들을 살펴보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런 사실들이 지적 설계를 지시한다고 주장했다. 비히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적 방법으로는 발생될 수 없고, 결국 지적 존재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히의 이론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수학자 윌리암 뎀스키(William Dembski)이다. 뎀스키는 1998년 출판한 설계추론에서 특정화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을 지적 설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지적 원인의 탐지가 경험적 판단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어떤 복잡한 구조가 어떤 목적성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설계의 산물임을 추론할 수 있고, 아무리 복잡한 구조라도 정보의 의미가 없는 경우에는 목적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에 의한 산물로 구분할 수 있.

 

21세기에 들어서자 지적 설계론자들은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과학적 또는 법률적 지위를 지적 설계론에 부여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재신은 진화는 가고 설계가 온다(2017)고 주장한다. 이재신은 그의 책에서 2004년에 발생한 워싱턴생물학회회보사건을 언급했다. 그것은 그 학회지에 캄브리아기 생물의 폭발적 출현을 진화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지적 설계론에 의해서만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논문을 게재해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이 논문의 게재에 대해 과학계가 반발하고 검찰의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담당기자가 징계 처분되었다. 문제의 논문은 후에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5년에는 펜실바니아주 도버시에서 공립학교 과학교육 수업 시간에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함께 가르치는 문제로 벌어진 재판에서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므로 거부당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스티븐 마이어는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세포 속의 시그니처(2009)다윈의 의문(2013)이라는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앞의 책은 지구에서 최초 생명의 출현이 지적 설계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고, 뒤의 책은 캄브리아기 생물들의 폭발적 발생이 진화론의 방법에 의해서는 설명이 안 되므로 결국 지적설계에 의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재신은 그 책들의 대표 번역자이다. 그러나 마이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 논증이 여전히 비과학적이라는 과학계의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이재신은 사실대로 시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적 설계론 진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 만연한 무신론적 경향성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쉽게 시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역사과학으로서의 지적 설계론의 한계

 

여기에서 논의하고 있는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지적 설계론 등은 학문적으로 역사과학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역사과학은 과거에 일어난 범죄 사건의 범인을 찾는 법의학의 방법과 같이 확보된 증거물을 분석하여 추론의 방법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사건 수사관들은 법의학 또는 과학이론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증거물을 분석하고, 사건을 재구성하여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법의학과 같이 역사과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물의 확보와 그것을 해석하는 지적 능력이다.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은 물질과 생명체를 증거물로 제시한다. 기독교의 고전적 창조론은 성경을,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성경과 창세기 홍수를 증거물로 제시한다. 과학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증거물을 거부하므로, 전통적 창조론은 증거물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전통적 창조론은 과학에서 논쟁의 당사자 자격을 아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무신론적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같은 증거물을 제시하면서도 왜 서로 다른 해석을 주장하는가? 그것은 해석에 필요한 증거물과 지적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역사과학은 주장된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검증하기 위하여 오래된 증거물을 분석하기 때문에 더욱 해석이 중요하다.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 방법은 보이지 않는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는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보여주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제한된 자료를 일방적 추론에 의지하여 왜곡 해석한 것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지적 설계론도 진화론처럼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지만, 지적 설계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역시 추론에 의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의 결론은 결국 추론적 해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진화론에서의 추론은 과학으로 인정되고, 지적 설계론에서의 추론은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과 진화론의 해석에 의하면, 물질들은 모두 무신론의 증거물이 된다. 왜냐하면 물질들은 물리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사실을 이용하여 우주에는 물리법칙만 있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귀납적으로 추론한다. 귀납적 추론에 물질들만 증거로 이용하는 것도 과학적 방법에 해당된다. 문제는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신의 말씀을 따르는 물질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은 창조 이후 이 세상의 물리법칙에 개입한 증거들을 남겨놓지 않았다. 지적 설계론은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최근에 개발한 이론이다. 그런 지적 설계론조차 진화론의 공세에 고전하는 이유가 바로 신이 개입한 흔적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추론의 방법에 의한 해석임에도 과학적 방법론 때문에 무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으로 인정받고 지적 설계론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그래도 승리의 희망은 밝다

 

그동안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상대가 인정하지 않는 증거와 이론을 제시하면서 과학을 부정했다. 상대를 부정하는 것이 논쟁이 아니라, 상대의 이론에 오류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것이 논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과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현대 창조론은 검증된 과학적 이론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 사실적 진리를 탐구하고 있다. 논쟁에서는 상대의 이론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승리의 맥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동안 다각적인 검증에 의해 이미 폐기처분 대상이 된 것이다. 현대 진화론은 폐기처분된 다윈의 진화론에다 무신론 과학자자들이 다윈주의라는 도그마(dogma)를 집어넣어 만든 인공지능 이론이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프로그램이 망가지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갈아 끼우면 계속 작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변신과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윈주의 인공지능 이론에도 치명적인 두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첫째는 생물의 DNA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다른 종류의 DNA를 가진 생물의 생식세포는 수정이 안 되는 생식장벽(reproductive barrier)이 있다는 사실이다. 생식장벽에 가로막혀 생물들은 같은 종류의 자손들을 번식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유전자 돌연변이 이론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하여 태어났다고 알려진 생물들을 조사해본 결과는 진화가 아니라, 질병이나 불구, 또는 퇴화(退化) 현상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현상에 당황한 현대 진화론자들은 집단유전학(集團遺傳學, population genetics)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개체의 유전자 변이에서 진화의 증거를 찾으려다 실패하자, 개체군에서 유전자 진화를 찾으려는 시도이다. 집단 유전학은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에 바탕을 둔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개체군 단위에서는 유전자의 발현 빈도가 자연선택의 압()에 의해 결정되고, 그 개체군의 유전자 변이는 그 결과에 따라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집단유전학에 의하면 진화는 개체가 아니라, 개체의 집단인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영국의 수학자였던 하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독일의 의사인 바인베르크(Wilhelm Weinberg, 1862-1937)1908년에 각각 발견한 것이다. 진화론의 역사를 보면, 위기 때마다 새로운 이론을 끌어들여 연명하고 있는 이론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현대 진화론자들은 진화 원인이 유전자의 변이에 있다는 견해에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바로 현대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이다. 유전자의 본체는 DNA(Deoxyribo Nucleic Acid)로 만들어진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인간 DNA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2기 책임자로서 일했던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2006년에 신의 언어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DNA는 신이 쓴 암호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생물의 DNA는 신의 개입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유신론자이면서 진화론자임을 자처하는 콜린스는 그의 주장을 바이오로고스(bio-logos)라고 표현했다. 콜린스가 합성한 이 말은 생물 언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지만, 콜린스는 이 말에 유신진화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바이오로고스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공통조상의 DNA에서 변이를 거쳐 진화했으므로 서로 유연관계에 있다. 어쨌든 바이오로고스를 주장하는 세계적 생물학의 권위자 콜린스는 어떤 창조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물질이 생명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순간은 있을 수 없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생물의 DNA 설계에 신의 개입은 우연이나 가능성이라는 추론 이상의 역사적 사실임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이나 현대 창조론이 콜린스의 주장을 입증하여, 무신론적 진화론에 대해 승리의 깃발을 차지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것은 창조자를 믿는 자들의 희망이다. 창조자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그 다음에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서 패배하는 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이 그 승리의 깃발을 차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적 창조론자들은 애초부터 창조론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노아의 홍수를 끌어들였고, 또 진화론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지질연대 공격에 치중하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론에 승리하는 일은 지적 설계론자나 현대 창조론자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 중에서도 지적 설계론 그룹이 승리의 깃발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DNA 연구를 이끌어갈 과학적 인재들이 지적 설계론 그룹에 가장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6년에 개최된 오직 창조’(Mere Creation)라는 지적설계 세계학술대회는 진화론을 극복하는 운동의 방법적 모델을 보여줬다. 이 학술대회는 어떤 창조론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오직 창조'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합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1999년부터 지적 설계론 단체인 Discovery Institute가 주도하는 학문과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쐐기(Wedge)전략도 반진화론 운동에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에 승리하는 길을 찾는 학술적 운동에는 지적 설계론 그룹이 주도하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창조를 믿는 사람들의 희망은 오직 창조라는 깃발 아래 함께 모여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을 깨뜨릴 방법을 함께 탐구하는 일에 걸려 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자들이 그들의 오류를 시정하고, 이 운동에 참여한다면, 그들에게도 희망이 없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 세포까지 개발되었다고 한다(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24895_22663.html). 이 세포는 빛에 반응하고 일부 물질대사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세포와는 달리 DNA가 없고, 자기 복제 기능도 없다. 그러나 만약 과학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공 세포 제조에 성공하고 더욱이 인공 생명 제조까지 성공한다면, 신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생물학에서 밝혀진 대로, DNA 활성화에는 생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체 세포 안에는 먼저 단백질을 만드는 특정화된 복잡성을 가진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세포가 지적 설계의 산물임을 암시한다. 더욱이 최초의 생물이 자기 조직기능을 넘어 번식 기능까지 갖춘 상태로 진화론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생물의 기원에 어떤 지적 존재의 설계 또는 창조자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도전에 맞서 오직 창조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승리의 희망은 밝아 보인다.

 

. 창조자 또는 지적 설계자

 

창조론에서는 창조 사건의 행위자인 창조자가 전제되고 있다. 그리고 지적 설계론에서는 DNA 암호를 설계한 지적 설계자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창조자나 지적 설계자는 서로 다른 말이지만, 두 가지 모두 기원 사건의 행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같다. ‘전적으로같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체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창조론에서는 창조자의 속성을 반드시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에서는 지적 설계자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생명의 기원에 개입한 어떤 행위자를 건제한다는 점에서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조자와 지적 설계자의 정체성을 논의하게 되면, 그때부터 양쪽은 이질성을 드러낸다. ‘오직 창조와 같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1. 창조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기독교는 유대교 경전을 구약성경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 창조론은 유대교의 토라에서 나온 것이다. 토라의 전통에서는 창조자 하나님의 이름 앞에 양적(量的), 질적(質的)으로 존재론적 속성을 표현하면서 최고의 수식어(omni-)를 붙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원불변하시고, 초월적이고, 편재하시고, 무한하신, --- 등의 절대적 지배자의 속성을 가졌다고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은 고전적 창조론에서부터 창조과학적 창조론까지 전통적으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유대교에 성문서 경전인 토라와 함께 구전으로 전해진 비밀 경전 카발라에는 토라와는 다른 창조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구전되던 카발라는 1세기 무렵부터 문서화가 진행되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시기에 유대교에도 개혁이 일어났다. 이삭 루리아(Isaac ben Solomon Luria, 1534-1572)가 고대 카발라의 창조론이 사회적 현실과 모순된다는 것을 깨닫고 카발라 창조론을 다시 썼다. 루리아는 고대 카발라의 창조 이야기를 생명의 나무교리로 바꾸었다. 루리아의 개혁적 교리는 팔레스타인 밖에서의 가르침이 금지되었지만, 결국에는 1772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유럽에서 책으로 출판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루리아는 카발라의 개혁에 찜쭘 이론을 중심으로 삼았다. 찜쭘은 히브리어로 위축 또는 비움을 뜻하는 말이며, 카발라에서는 창조자가 창조의 장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기의 일부를 비웠다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렇게 되면 창조자는 그의 속성을 제한했다는 의미가 나오게 된다. 토라의 창조자가 절대적 지배권을 가졌다고 서술한 것에 비하여 루리아의 카발라는 창조자가 상대적 지배권을 가졌다고 서술한 것이다.

 

바울이 그와 같은 취지로 말한 것이 빌립보서 2장에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완전성 일부분을 비워내시고, 그것을 인간에게 나눠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율법에 묶어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상호 관계에서 소통하는 존재로 자기를 낮추셨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를 개혁한 것이다. 예수는 그때까지의 토라 해석을 개혁했다. 바울의 기록에 의하여 기독교는 인간 각자가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지위를 비로소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교회는 예수의 임박한재림에 열광했던 까닭에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지나갔다.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을 자처하던 로마가톨릭 교황은 인간의 지위 상승에 도움이 되는 해석을 결코 하지 않았다. 16세기에 이르러 르네상스에 의한 계몽운동이 사회 전반에 개혁을 축발했다. 종교개혁은 로마가톨릭 교황의 독점적 성경 해석권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되었고, 과학혁명은 고대 신화적 천동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하여 로마가톨릭에는 물론 유대교에도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종교개혁 후 루터파 신학자들이 빌립보서 2장의 의미를 발견했으나, 기독론에서 머물고 창조론에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2. 현대 창조론에서의 창조자

 

기독교에서 창조자는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그의 아들을 지상에 내려 보낸 것도 모자라 십자가 처형까지 당하게 하실 정도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큰 난제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과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이 도덕적 불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현실적 모순에 대한 해석이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는 동안 분명하게 드러났다. 양대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절대적 지배자이시고, 전지전능한 도덕적 심판자이시고 지극하게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벌레처럼 죽이는 악인들을 방치하는 현실에 대해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안에서조차 악이 번성하고 있었다. 더욱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건을 설명하는 창조론은 무신론적 진화론에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전통 신학에 한계를 느낀 서구의 현대 신학자들은 전통철학을 비판하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과정철학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과정신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들은 전통신학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통합적 연구의 길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각 신학 계열이 공동으로 연구한 자료들을 출판하고 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신학적 지향점은 같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토라와 카발라에 대한 연구는 물론 철학과 신학까지 통섭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들이 공동연구를 위해 마련한 빅 텐트에 과학신학자들까지 대거 합류함으로써 이들이 현대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하는 현대신학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창조론자들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질문들을 여기에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 신이 굳이 그의 완전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왜 창조를 해야 했는가?

토라의 창조자인 고전적 신의 가장 중요한 속성의 하나는 완전성(完全性)이다. 그러나 타자의 존재를 허용하는 창조는 그의 완전성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현대신학은 창조자와 인간의 관계에서 불완전한 상대성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창조의 이유는 무엇이며, 상대적 관계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2) 우주의 질서는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진화론은?

물질적 결합체인 우주와 그것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은 거의 완벽하게 밝혀졌고,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 일원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무신론적 진화론은 물질에서 생명이 발생되는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물리법칙과 생명법칙이 따로 있다는 사실과 창조자 또는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함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은 그런 사실을 무지의 오류또는 틈새의 신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부정한다.

(3) 완전한 신이 창조자이고 동시에 도덕적 심판자라면, 어떻게 악의 공존이 가능한 것인가?

악의 현존이 도덕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된 신정론(神正論)의 문제는 생명체의 역사와 현실에서 수없이 나타난 고통과 멸절, 그리고 인간들끼리의 살상과 악행에 신의 개입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성과 도덕적 기준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가?

(4) 창조된 세계에 종말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신이 세계의 창조자라면 그는 세계에 종말이 오도록 창조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세계의 종말은 신이 세계를 더 이상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신에게 세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인가? 현재의 세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신이 임시적 창조를 계속하기 때문인가?

 

3. 지적 설계자

 

지적 설계론에서는 지적 설계자가 존재한다고 전제할 뿐 구체적으로 그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적 설계의 행위자라는 측면에서 그 정체성을 파악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앞에서 논의한 것들을 간략하게 다시 살펴보는 방법으로 정리해보겠다. 다윈의 블랙박스의 저자 마이클 비히에 의하면 지적 설계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으로 생물의 각 구조들을 설계한 존재이다. 설계추론의 저자 윌리암 뎀스키는 지적 설계자는 특정화된 복잡성을 가진 생명체의 정보를 만들어낸 존재라고 보았다. 뎀스키에 의하면 우리가 사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또는 의도적 설계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를 추론할 때 사용하는 확률과 정보 이론의 기준이 생물의 설계 추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기준에 의하면 생명체는 지적 존재의 의도적 설계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지적 설계론자는 아니지만 신의 언어를 쓴 스티븐 콜린스도 지적 설계자를 암시했다. 콜린스는 생명의 DNA 암호문을 만드신 분을 신으로 보고 있다. 암호문은 그것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정보이고, 신은 그 설계자이다. 생물의 생명 기능은 DNA 암호를 이해하는 관계에서만 작동될 수 있다. 세포속의 시그니처저자 스티븐 마이어도 세포속의 DNA는 지적 설계의 증거이고, 지적 설계자의 작품으로 본다. 마이어는 또한 캄브리아기 생물의 폭발적 발생이 지적 설계자의 창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적 설계론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지적 설계자의 존재는 분명하게 감지되지만, 지적 설계론에는 설계의 범위가 지구 생명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설계자의 작업이 설계로만 끝난 것인지, 실행까지 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설계자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욱 알 수가 없다. 설계자가 인간적 기준에서 선한 존재인지 또는 악한 존재인지, 심지어는 제2의 피조물인 외계 생명체인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지구상에 살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적 설계론의 입장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부정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지적 설계자의 속성과 설계의 목적, 그리고 설계의 실행 방법 등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과학적 사실에 의한 창조자의 존재 증명

 

역사과학의 추론에 이용되는 검증된 과학적 법칙이나 이론들은 과학적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열역학 제1법칙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하면 우주 에너지가 영원불변하게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 에너지 총량이 존재의 최초원인이라는 과학적 사실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면, 과학적으로 더 이상의 반론이 제기될 수 없다. 에너지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일을 시작한다. 현대과학에서는 우주 에너지가 우주물질로 전환된 사건을 빅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팽창하고 있다는 현대 표준 우주론은 과학적 사실로 인정될 수 있다.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창조를 논의하고 있는 현대 창조론은 빅뱅을 통하여 우주만물을 창조한 존재를 창조의 신으로 본다. 그렇다면 빅뱅은 진화론적 우연이 아니라, 우주 에너지 세계에 존재하는 창조의 신이 우주만물을 창조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작위(作爲)한 사건이다. 만약 창조의 신이 창조의 작위를 하지 않았다면, 우주 에너지는 지금까지 그대로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우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출애굽기 3:13-22에는 신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다. 빅뱅 이전에 최초의 자연에서 창조의 신은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신이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그야말로 신비(神祕)에 속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신비의 생명력을 가진 신이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양자물리학자들이 표준 우주론에 적용하는 대칭성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다. ‘대칭성의 법칙에 의하면 신의 존재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 신이 대칭성의 법칙에 의하여 우주 에너지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째는 진화론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빅뱅에서 시작한다. 빅뱅 이전에 우주 에너지 세계라는 최초의 자연이 있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곳에서 신이 진화론적 방법으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설명한다면, 진화론자들은 반론할 방법이 없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지구, 넓게 잡아도 우리우주에서는 무신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지라도,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까지 시야를 확장하면, 결국 유신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진화론자들은 무신론을 포기하고 유신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결론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동질성이다. 이 동질성을 고리로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 진영은 서로 연합하여 진화론을 물리칠 수 있다. 그동안 진화론은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은폐물에 실상을 감추고,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의 반격을 피하면서 오히려 공세에 나서고 있었다. 과학주의에 빠진 세상은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이 DNA임이 밝혀졌으므로 그곳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해야 한다. 최근에 인공세포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세포의 핵심인 DNA조차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지적 설계자는 열린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창조론에도 친화적이다. 지적 설계론 그룹은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DNA 연구에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 그룹은 창조의 신을 믿는 유신론 집단을 이끌고 진화론을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적 설계론은 어떤 반진화론 그룹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따라서 오직 창조운동과 쐐기 전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열린 이론이다 이제는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진화론이 창조자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은 더 이상 창조론에 지원군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대로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을 부수고 최종적인 승리의 깃발을 가져올 돌격대의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