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A 창조론 과 오메가Ω 창조론/알파 창조론 연구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논문:연재 11)

heojohn 2022. 3. 6. 14:35

2) ‘아담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의 마지막에 인간 아담을 만드시는 모습을 매우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를 논의하시면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וַ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고 선포하셨다(1:26).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이처럼 인간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과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시면서 인간의 창조목적을 모세에게 알려주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창조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목적에 관한 서술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부분이다.

 

이 구절에서 한글 성경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번역한 것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스스로 나아세’(נַעֲשֶׂה: ‘우리가...만들자’)라는 미완료형 1인칭 복수 동사의 주어가 되셨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엘로힘이라는 복수 명사를 주격으로 하는 동사에는 단수를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모세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 사상이 모세의 이해를 따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사도 요한의 복음서와 바울의 로마서에서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의 확립에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많은 논쟁이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 삼위일체 논쟁은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 쓴 터툴리안(Tertulian, 155-240년경)에서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후에 아리우스(Arius, 270-336)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기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로 대립이 격화되자, 325넌 열린 제1차 니케아공의회가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배격하고 아타나시우스의 견해를 [니케아 신경]에 채택함으로써 일차적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이의가 제기되고 논쟁이 계속되었으나, 381년 콘스탄틴노플에서 열린 제8차 공의회가 채택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서방교회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라틴어 번역본에서 성령이 성부에게서도, “성자에게서도”(필리오케) 발출된다고 일방적으로 삽입한 문구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이 동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말았다. 개혁교회는 성경의 근거를 확인하고 필리오케를 삽입한 서방교회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인정한다.

 

되돌아가서 이 구절의 히브리어를 줄여서 직역해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들의 형상과 우리들의 모양대로 아담(단수)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아담의 복수)이 땅과 생물을 다스리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에서 아담(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담’(인간, 사람)은 단수 명사로 나아세동사의 목적어로 쓰였다. 그 말이 그대로 뒤에 이어지는 복수 동사 웨이레뚜’(וְיִרְדּו: 다스리게 하자)주어가 되는데, 단수의 아담이 어떻게 갑자기 복수의 아담(인간)으로 바뀔 수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가 만든다의 목적어인 아담’(사람)을 처음에는 단수로 쓰셨는데,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그 아담을 주어로 하는 동사를 웨이레뚜’(다스린다)라는 복수 동사를 쓰심으로써 복수의 아담을 만드신다는 말씀으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는 과정에서 단수 아담을 갑자기 남자와 여자의 복수로 바꾸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모세는 어떻게 설명하였을까?

 

그 의문에 대해 모세가 설명한 1:27(יִּבְרָא אֱלֹהִים אֶת־הָאָדָם 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 בָּרָא אֹתָם׃)을 분해하면, 아담을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미완료형)라고 서술하고, 이어서 그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완료형)고 설명했다. 그리고 또 이어서 그들’(אֹתָם: 오탐, 3인칭 복수대명사)을 창조하셨다고 다시 복수로 설명했다. 여기서 마지막 설명 부분은 한글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모세가 하나님의 뻬찰모 뻬첼렘’(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을 반복 사용하는 설명문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단수)을 그의 형상만으로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오탐’(복수)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1:26에서 웨이레뚜동사를 복수형으로 말씀하신 이유와 그 말씀에 대한 구조적 의문은 하나님이 그의 형상만으로(모양은 빼시고) 인간을 복수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의문이 다 해소되었을까?

 

기독교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며 동일본질(consubstanialis)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모세가 창조 톨레도트에 기록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삼위일체의 경륜과 내재의 일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은 성령(רוּחַ אֱלֹהִים)을 보내시고, 흑암 속에서 깊은 물 밑에 잠겨 있는 땅을 품에 안고 있게 하셨다. 요한에 의하면 성자는 그 흑암 속에 갇힌 땅에 빛으로 임재하셔서 생태계를 만드시고, 생명체를 만드셨다. 성자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아들도 그와 같이행한다고 말씀하셨다(5:19).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인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온전하게 믿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은 창조 톨레도트 1:27에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인간을 직접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느 분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의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해답은 요한의 해석에 따르는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1:3). 요한에 의하면 그분은 창조 톨레도트에서 첫날에 빛으로 이 땅에 임재하셔서 창조를 실행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요한의 해석과 다른 창조론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 해석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유대교의 일신론적 창조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비기독교적 관점에서 나온 해석이다.

 

3)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손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창조하시기로 계획하셨으나, 실제로 실행된 창조는 모양대로가 빠지고, 남자와 여자로 나뉘었다. 그런 사실은 1:26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계획에서 우리들의 형상을 따라 우리들의 모양대로 만들자라고 하신 말씀과 1:27에서 모세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라고 설명하는 서술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키데무테누(모양대로)’를 반영하지 아니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뻬첼레메누)만 반영하여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히브리어 사전과 성경의 용례를 보면, ‘형상’(첼렘)은 겉모양 또는 우상 등을, ‘모양’(데무트)은 원형을 닮은 것들을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남성적인 분이시고, 우주만물과 생명의 창조주로서 모든 일을 명령하시는 분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에게 여성적인 면은 보이지 않는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세계에 여자는 아예 없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왜 인간(아담)에게 그의 데무트를 주시지 않고, 그 대신에 여자를 주셨는가? 인간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판단에 속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인간이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을 부정신학이라고 한다. 인간의 세계에 하나님이 주시기로 계획하셨던 데무트대신에 여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정신학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결국 데무트의 결여는 하나님에 의하여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이다. 이와 관련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는 신학적 인간론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세에 의하면 인간 아담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이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계획하셨다. 여기서 3인칭 복수 대명사 그들은 처음 창조된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포괄하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아는 자들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신 인간과 그 자손들의 역사적 행적에서 발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DNA에 담긴 생명정보가 생물의 종류마다 다르고, 그것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은 이미 현대인의 과학적 상식이 되어 있다. 현대 생물학과 뇌과학에서는 각종 생물과 인간에게는 그들의 뉴런 세포의 DNA에 그들의 행위가 기억되고 있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 정보에 기반하여 자손을 생육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동일한 원복음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악이며, 그 죄는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무시했던 죄인의 자손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 죄인이 된 아담의 자손들이 그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인간의 후손에게 그런 짐승의 DNA가 유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는 물론, 그 자손들도 데무트가 결여된 DNA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의 DNA데무트가 결여된 탓으로 누구나 죄악의 본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인 숙명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무시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과 죄악이 관영함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서술했다(6:5). 현대사회에서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현실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무시하고, 죄악에 빠져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모세가 1:27에서 하나님이 처음 계획과는 달리 데무트를 빼고, ‘첼렘만으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창조하셨다고 서술한 것을 읽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DNA데무트의 결여가 죄악의 본성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신학적으로도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인간의 자손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혈통인 유대인들이 저지른 것이다. 그들을 그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려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정죄하고, 로마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했다. 필연적으로 그들의 죄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그들의 자손들에 의하여 다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이 등장하게 되었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현대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 기독교인이 그런 사회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게 되돌리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그의 죄를 가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외식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