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A 창조론 과 오메가Ω 창조론/알파 창조론 연구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논문: 연재 8)

heojohn 2022. 2. 16. 02:07

5. 넷째 날의 창조: 행성들의 미세조정

 

1) 광명과 궁창

 

넷째 날의 창조 톨레도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고 명령하셨다(1:14). 여기서 광명체들로 번역된 메오르트’(מְאֹרֹת)가 하늘의 궁창에 있어’(예히: יְהִי )의 동사는 미완료동사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루라고 번역된 동사는 하우’(הָיוּ)를 사용했는데, 이는 완료동사이다. 두 동사의 맥락을 연결해서 직해해보면, ‘낮과 밤 사이를 나누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 광명체들은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년한을 이루기 위하여 궁창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두 문맥의 행간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징조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기 위하여 궁창에 먼저 있게 하셨던 메오르트’(광명체들)를 이제 하늘 궁창에 옮겨서 있으라고 명령하신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이미 궁창에 존재하고 있었던 광명체들을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해 하늘의 궁창으로 옮겨오게 하신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넷째 날 하나님은 땅에 생태계를 조성하시기 위해 우주 광명체들의 궤도, 운행 주기와 빛의 밝기, 지구에서의 거리 등을 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미세조정하셔서 우주의 냉혹한 물리적 법칙 속에서 아마도 인류가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지구를 만드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궁창에서 비치기 시작하는 광명들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동안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모세는 그때 처음으로 지구에 비추기 위해 큰 광명인 해가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밤이 오면서 초생달과 무수히 많은 별들이 뜨는 장면까지 환상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미세조정된 우주의 운행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았다. 이제 넷째 날 광명체들의 미세조정 이후에 날의 길이는 24시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라도, 그 이전 날의 길이는 분명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나이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또 굳이 알 필요도 없는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모세가 본 환상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실제 광경과 다름없었으나, 모세가 그 환상을 보고 이해하고 서술한 기록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으로 남아 있다.

 

 

현대 과학이 발견하는 우주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상위한 점이 적지 않다. 현대 기독교인은 과학적 사실은 인정하고, 창조 톨레도트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제대로 이해하면, 과학적 사실과 상위한 점이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무이다. 다만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면서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허구적 논리는 적극 반론해야 한다. 과학이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허구적 논리에 오용되지 않는 한, 창조 톨레도트에서 서술되지 아니한 것들은 과학적 주장이 존중되어야 한다. 과학은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보았던 환상을 생각하면서 이 구절을 읽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매우 당혹스럽다. 그동안 자국어로 번역된 창조 톨레도트를 문자대로읽고 문자대로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왜 히브리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맹신하고 있을까? 그들은 쓸데없이 과학과 충돌하면서 창조 6일 하루 24시간설과 우주연대 6,000년설을 주장하여 기독교를 과학도 모르는 무지의 종교로 비난받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이제 책임을 면치 못할 자들이다. 여기서 문자적 근본주의자들의 문제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첫째는 창조 톨레도트의 ’(하루)의 길이 문제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낮과 밤의 24시간 하루는 태초에 천지가 창조된 때부터 태양이 빛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 그런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명확하게 근거가 없는 해석이다. 그런 해석의 오류는 첫날의 빛(‘오르’)과 넷째 날 땅에 비친 메오르트의 빛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해결된다. 그 해석의 오류는 첫날과 셋째 날까지 낮의 빛 오르는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해석한 대로 하나님이 흑암에 싸인 땅에 빛으로 임재하신 것이라고 이해를 바꾸면 된다. 첫날의 오르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이 땅에 임재하신 빛이고, 넷째 날의 빛은 메오르트’(발광체)에서 나오는 물질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셋째 날까지의 낮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는 시간이고, 밤들은 모세가 그런 환상들을 보지 않은 시간일 뿐이며, 그동안에 시간은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둘째는 문자적 근본주의자들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약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이다. 근본주의자들의 하루 34시간설과 젊은 우주론은 영국교회 주교 제임스 어셔의 창조 톨레도트 해석을 근거로 한다. 그것은 하루 24시간 6일 창조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아담 자손들의 족보를 따라 연수를 계산하여 하나님의 창조사건이 기원전 4004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젊은 우주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년이라는 오랜 우주론을 과학적 상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우주론과 오랜 우주론은 천동설과 지동설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두 우주관의 차이를 알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창조 톨레도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모세가 그 당시 지식으로 서술하여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된 것이고, 현대과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문제의 해답은 저절로 나타난다.

 

2)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옛 하늘과 옛 땅

 

넷째 날 창조 톨레도트에서 1:16-18은 모세가 그의 설명을 덧붙여놓은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모세는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과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인 해와 달을 서술했고, 그밖에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기 위해 있는 별들도 서술했다. 하나님은 하늘의 궁창에 있는 광명들이 땅의 시간을 주관하게 하셨다. 작은 광명인 병들은 징조를 주관하고, 밤에만 보이게 하셨다. 여기에서 주관하다는 뜻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멤쉐레트’(לְמֶמְשֶׁלֶת)는 왕의 통치권 또는 소유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구를 위해 우주를 미세조정하셔서 하루가 비로소 24시간으로 조정된 땅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 해도 창조 톨레도트의 날들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대적인 성경적이다.

 

넷째 날 지구에 임재하신 하나님이 생태계를 조성하시기 위해 우주와 태양계의 운행을 미세 조정하셨다는 성경적 해석에 의하여 창조 6일의 하루가 첫날부터 24시간이라는 설과 우주 나이가 약 6,000년이라는 근본주의적 주장들은 이제 기독교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이 라키아를 하늘이라고 부르시는 소리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겨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도 폐기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땅에서 관측하면, 모든 광명체는 대기권인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구 밖에서 우주선이 탐사해서 얻은 관측자료가 라키아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런 관측자료를 본 현대인들은 하나님이 라키아하늘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실제로는 대기권이고,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처럼 이해한 라키아는 모세의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오해라는 사실을 성경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주와 지구의 나이 6,000년설 논쟁은 그만 종식하고, 현대인의 과학적 우주연대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우주에서 지구는 다른 행성과 달리, 매우 정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생태계가 특별히 잘 보존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에서 생물, 특히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물과 대기권이다. 그것은 지구가 우연히 존재하는 행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특별히 창조하셨다는 주장에 강력한 근거가 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도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이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제안한 것이 인본 원리(Anthropic Principle). 인본원리에 의하면, 지구가 인간의 생존이 가능한 조건으로 운행하는 것은 우주상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세조정(fine-tuned)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미세조정된 우주상수가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이 그런 우주를 섬세하게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동안 우주 탐사에 열심을 내고 있는 미국 NASA 팀이 지구처럼 풍부한 물과 대기권이 보존되어 있거나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행성이 존재하는지를 탐색했으나, 그런 행성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에 케플러 우주망원경 탐사작업에서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그곳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에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해도 지구의 인간들과 다르거나 미생물이거나 또는 소통이 불가능한 동물뿐이라면 우리와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지구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다.

 

기독교에 남아 있는 과제는 이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버리는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만들어낸 라키아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그런 잘못된 지식들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한 아담을 심판하시면서 저주했던 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용납하지 아니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니, “이전 것”(הָרִאשֹׁנֹות:하리쇼노트)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65:17)이라고 선포하셨다. 이전 것이 바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 있는 하늘과 땅(1:1)이다. 그런 사실은 하리쇼노트에서 정관사 ’(הָ)를 뺀 리쇼노트라는 말이 창세기 첫 마디에 나오는 베레쉬트’(בְּרֵאשִׁית)에서 전치사 ’(בְּ)를 뺀 레쉬트와 같이 처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며, 따라서 창조 톨레도트에서 라키아를 잘못 이해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속에서의 하늘과 땅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면 확인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라는 계시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주셨다고 증언했다(벧후3:12-13). 그러나 모세의 잘못된 이해를 따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주신 계시가 그런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게 했다. 현대 문자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옛 하늘과 옛 땅을 잊어버리라는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마귀의 미혹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요한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한탄했다(1:5). 그래서일까?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요한에게 명확하게 다시 주어졌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는 계시를 주셨다고 증언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의미하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기억하거나 마음에 생각하지 말고, 현대적 우주관으로 그리스도가 계시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