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 4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실험과 평가

1.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실험이나 저작 ① 1953년 시카고 대학원에서 유레이(Harold C. Urey, 1893-1981) 교수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가설을 설명하고 이를 검증하는 실험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박사과정 학생인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는 산소가 없는 환원성 대기를 가정하고, 수소, 메탄, 암모니아와 수증기를 혼합한 무기화합물을 고압전기를 방전하는 장치에 넣고 6일간 가열하다가 급냉시켰다. 여기서 그는 아미노산을 얻었는데, 이는 아미노산이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으며 점차 더 복잡한 유기화합물인 단백질로 변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 실험은 유레이-밀러 실험으로 유명해졌며, 마치 오파린의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 것처럼 발표..

『생명의 기원』비판-1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그의 일생 동안 6차례 개정되었고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에서 출판되었다. 오파린의 화학 진화론은 아직까지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어서 유물론에 대한 비판적 가치밖에는 없다.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어느 판본에서나 서두에서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유물론적 세계관이 과학적 진리라는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생명의 기원 문제를 이해하는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물론자인 오파린은 생명은 “본질적으로는 물질적인 것”이며, “물질의 특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생명은 물질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고 법칙에 따라 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이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초물질적인, 영적인, 본원의 존..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출판

오파린은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다윈에 정통했던 러시아의 식물생리학자 티밀리야제프(K. A. Timiryazev)에게서 배웠다. 오파린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에 레닌이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했다. 오파린에게는 이 혁명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대학시절에 학비를 벌기 위해 제약회사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그는 1918년에 러시아 전국화학공업노동자연맹의 대의원이 되었고, 곧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제정 러시아 시절에 망명하여 제네바에서 의학과 농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알렉세이 바흐에게 접촉하여 협조 요청을 하자고 제안했으며, 중앙위원회는 이를 승인했다. 바흐는 혁명 직후 귀국하여 이미 국가경제계획위원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오파린은 곧 바흐를 만났다. ..

‘과학적 무신론’의 학습 교재

레닌은 혁명에 성공한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미추린(Ivan Vladimirovich Michurin, 1855-1935)을 통해 라마르크주의 생물학을 받아들였다. 레닌은 미추린의 농작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의 이론과 방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레닌은 병석에 누워 있을 때에도 그에게 사람을 보내 연구 성과를 알아보기도 했다. 레닌이 사망한 직후에 스탈린은 철저하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것으로 행세했다. 따라서 미추린의 라마르크주의 생물학적 원리 또한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에 의해 소련의 생물학계를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되었다. 이때부터 소비에트공화국연방에서 생물학 이론은 라마르크주의와 일치해야 했으며, 이와 다른 이론은 배척되었다. 이와 다른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은 체포되거나 망명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