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과학적 무신론’의 학습 교재

heojohn 2020. 3. 11. 13:42

레닌은 혁명에 성공한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미추린(Ivan Vladimirovich Michurin, 1855-1935)을 통해 라마르크주의 생물학을 받아들였다. 레닌은 미추린의 농작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의 이론과 방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레닌은 병석에 누워 있을 때에도 그에게 사람을 보내 연구 성과를 알아보기도 했다. 레닌이 사망한 직후에 스탈린은 철저하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것으로 행세했다. 따라서 미추린의 라마르크주의 생물학적 원리 또한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에 의해 소련의 생물학계를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되었다. 이때부터 소비에트공화국연방에서 생물학 이론은 라마르크주의와 일치해야 했으며, 이와 다른 이론은 배척되었다. 이와 다른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은 체포되거나 망명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오파린은 아무런 증거도 없으면서 유물론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이론을 구성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이 환영할 만한 것이었고, 사실도 그랬다. 미추린이 1935년에 죽자 그의 지위는 리센코(Trofim Lysenko, 1898-1976)에게로 계승되었다. 오파린에게는 평생 두 사람의 열렬한 후원자가 있었는데 리센코와 알렉세이 바흐(Aleksei N. Bakh, 1866-1936)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유물사관이 철학적 가설이었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러시아 현실에서 이미 성공한 정치적 교의가 되었다. 말하자면 공산당 정책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강제적 실천력을 보유함으로써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괴물이 된 것이다.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은 후천적 용불용설의 라마르크주의를 공식적으로 수용했다. 라마르크주의는 후천적 방법에 의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독재자 스탈린에게 필요한 인간은 공산주의 사회인이다. 보통 인간이 공산주의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이러한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물질이 변화되어 형성된 원시 생명체와 여기에서 진화된 보통 인간은 언제든지 또는 얼마든지 공산주의형 인간으로 진화 또는 개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라마르크주의와 유물론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이론이었다.

 

1936년에 구소련에서는 유명한 공산주의 이론 하나가 등장했는데, 스탈린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약칭: DIAMAT)이다. 이 이론은 서구에서는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조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해에 열린 공산당 대회에서 DIAMAT스탈린주의 헌법과 함께 유일한 공산주의 철학의 교정(敎程)으로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의 공식적인 철학교과서이 짧은 책을 재해석하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주입적으로 교육시켜서 사상적정치적 통제에 이용되었다. 이후 DIAMAT는 스탈린이 죽을 때(1953)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철학사상의 참된 정점을 서술한 것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레닌이 세운 코민테른을 통해 세계 공산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재로 쓰였다. ‘DIAMAT는 그대로 중국, 북한, 동유럽 등의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들에게 학습교재로 쓰였고,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적 원리가 되었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그것의 부교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1948년에는 당중앙위원회로 하여금 오스트리아의 수도원 성직자 멘델의 유전법칙을 종교와 자본주의의 사기행위라고 규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소비에트공화국연방에서는 과학이론도 정치적 결정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그래서 스탈린은 리센코의 이론에 따라 황당한 농업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곡물 농사를 망쳐 소비에트에 대기근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스탈린이 결정한 정책적 오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었다.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과학은 더 이상 멘델의 유전설에 대한 스탈린의 혐오와 같은 변덕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정치사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탈린이 레닌주의자로서 쓴 것이 레닌주의 기초(1924)였고, 독재자로서 쓴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1936)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상 스탈린주의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 책들은 서방에서는 매우 저급한 것으로 무시되었으나,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와 그 위성국이 된 나라에서는 공산주의 학습의 필수교재로 채택되는 등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든 이론에 남아 있는 실체는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혁명이론밖에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일한 권위자가 된 스탈린의 해석은 주변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교리가 되었다. 이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스탈린주의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이 1953년 갑자기 죽음으로써 스탈린주의는 막을 내렸다. 뒤이어 등장한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 1894-1971))는 스탈린을 심하게 격하하는 운동을 했지만,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1906-1982)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시대에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는 한계점에 이르러 1990년에는 두 손을 들고 만다. 이로써 소비에트에서 영원한 진리로 주장됐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더 이상 변증법적으로 비약할 동력이 소진되어서 몰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가 몰락한 것은 유물론적 변증법칙에 의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과학적 무신론에 내재된 모순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나 오파린은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에 의해서 그의 후원자 리센코가 비판되고 숙청된 후에도 죽기(1980)까지 건재할 수 있었다. 그의 생명의 기원에 나타난 화학적 진화론은 명백하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의 과학적 무신론을 바탕으로 서술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비판이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그의 이론은 세계적으로 실험되고 있었다.173)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그의 생애 동안 6번 공식 개정판을 출판한 이외에도 대중판을 따로 만들어 보급할 만큼 공산당에게는 필요한 이론이었다. 이렇게 공산주의 사회를 오도한 두 가지 과학적 무신론의 학습교재 내용을 차례로 검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