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과학적 무신론’의 지배체제 수립

heojohn 2020. 3. 11. 13:34

1) 엥겔스의 생명관과 과학적 무신론 사상

 

앞에서 보았듯이 엥겔스는 생명을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최초의 생물은 단백질 덩어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각종 생물들은 단백질 덩어리에서 태어난 최초의 생명체가 계속되는 물질의 화학작용에 의하여 진화하고 번식한 것들이다. 그래서 엥겔스의 추종자들은 인간도 물질에서 생겨난 단순한 생물에서 점점 복잡한 동물로 진화한 동물 가운데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도 자연에서 특별한 존재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그저 진화하다보니 인간이 된 것뿐이다. 엥겔스는 인간의 정신조차 물질현상이 뇌에 전사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사유도 물질현상의 전사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행동에 도덕적 책임을 느낄 필요가 조금도 없다. 과학적 무신론자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현실적 생존경쟁에서의 승리 이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여기에는 도덕도 윤리도 의무도 없다. 오직 생존을 향한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이러한 개념을 근저에 두고 완성된 이론이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세상은 그것과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은 존재로 본다. 그러므로 인류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상이나 이론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것이 왜 생겨났으며, 그것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러셀은 오히려 신의 존재가 인류에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의 무신론 사상을 정립했다. 무신론은 내용이나 이름은 어떻게 바꿀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는 허구적 이론이며, 무신론자의 실질적인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장래에도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무신론의 세상에서 신학은 존립할 수 없다. 이제 기독교 신학은 현대 무신론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적 무신론을 검증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악한 영향력은 기독교의 장래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다.

 

 

 2) 레닌에 의한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

 

유럽 망명지에서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관점으로 수정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19172월에 독일과 제1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있던 러시아 제국에서 니콜라스 2세 황제가 퇴위하면서 혁명이 일어났다. 독일정부는 레닌 등 러시아 망명 혁명가들을 전원 귀국시키기로 하고 봉인열차를 마련해주었다. 레닌은 봉인열차를 이용하여 망명지 스위스에서 곧바로 귀국했다. 이때는 이미 멘셰비키파가 보수파와 연합하여 2월 혁명에 의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레닌은 귀국했으나 처음에는 이들에게 쫓겨 다시 망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 결국 볼셰비키파의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레닌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의 최후 승자가 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은 마르크스주의 정통이론과는 별 상관이 없는 레닌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붕괴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더욱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계획도 준비도 없이 갑자기 귀국해서 러시아 공산당 혁명에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 그것은 매우 무질서하게 진행되었으나 결과는 성공한 것이었다. 그것은 레닌의 볼셰비키파의 방식 즉 마르크스-레닌주의 방식이었다. 김준엽(金俊燁)은 레닌이 주도하는 러시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절대 권력자 황제가 갑자기 퇴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수 엘리트의 직업적 혁명가로 조직된 전위당의 지도하에 노동자빈농약소민족을 선동하여 국제적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킴으로써 대번에 권력을 쟁취하는 전례를 만들었다 평했다. 말하자면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선동을 통하여 국가 통치권을 거저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레닌은 이로써 조국 러시아에서 그의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실현하는 인물이 되었고, 공산주의 과학적 무신론을 세계에 확산시키는 데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그래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 의하여 최고수준의 과학적 무신론으로 평가되었고, 일반적으로 과학적 무신론을 대표하는 이론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당시의 실제적 상황을 보면, 수년간 전선에서 독일군과 교전하고 있던 러시아 병사에게 보급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마침내 탄약이 떨어지고 굶주리고 있는 사병들의 불만을 지휘관들도 통제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제가 직접 사령관으로 나섰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황제에게 직접적으로 쏟아졌다. 이미 패전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식량이 공급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빵을 달라는 시위를 하자 군인들이 동참하는 반란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태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니콜라이2세 황제가 돌연 퇴위하고 말았다. 그의 행동은 러시아제국에는 물론 그가 수장으로 있던 러시아 정교회에도 비극이었다. 국민들은 당장 먹을 빵이 없어서 황제를 끌어내렸지만, 더 큰 불행이 그들 앞에 닥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러시아제국에서는 반정부 세력을 탄압했던 결과로 정치세력이 거의 불모지 상태였다. 처음에는 멘셰비키파가 보수파와 연합하여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레닌의 볼셰비키파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마련해준 봉인열차로 망명자들과 함께 레닌이 돌아와서 ‘4월 테제를 발표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레닌은 ‘4월 테제에서 시민들에게 , 평화, 토지분배를 약속했다. 그렇지만 레닌은 반대파 멘셰비키에 쫓겨 다시 핀란드로 망명해야 했다. 레닌은 망명지 핀란드에서 국가와 혁명을 발표하고 비밀리에 귀국했다. 결국 레닌은 볼셰비키파의 10월 혁명에 성공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레닌이 권력을 잡은 현실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이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의 해석에 따라서 수정되어야 했다. 레닌의 주장은 최고 수준의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단계(1917)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산업자본주의 단계의 선진국에서가 아니라, 후진국에서도 가능하다고 수정했다. 이것은 그가 1919년에 조직한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3 인터내셔널로 불리기도 함)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 목적의 공산주의 교조(敎條)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