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비판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출판

heojohn 2020. 3. 11. 14:44

오파린은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다윈에 정통했던 러시아의 식물생리학자 티밀리야제프(K. A. Timiryazev)에게서 배웠다. 오파린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에 레닌이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했다. 오파린에게는 이 혁명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대학시절에 학비를 벌기 위해 제약회사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그는 1918년에 러시아 전국화학공업노동자연맹의 대의원이 되었고, 곧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제정 러시아 시절에 망명하여 제네바에서 의학과 농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알렉세이 바흐에게 접촉하여 협조 요청을 하자고 제안했으며, 중앙위원회는 이를 승인했다. 바흐는 혁명 직후 귀국하여 이미 국가경제계획위원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오파린은 곧 바흐를 만났다. 바흐는 이때부터 오파린의 후원자가 되었다. 바흐는 오파린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 그가 맡고 있는 국가경제계획위원회 화학분과위원회(1919-1922)와 중앙화학연구소(1921-1925)에서 일하게 했다. 1922년 오파린은 러시아 식물학회에서 지구상에서 생명의 기원에 관련한 이론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오파린은 다윈이 미해결로 남겨놓았던 생물학의 1차적 관건인 생명의 기원문제의 해법을 화학적 방정식으로 제안한 것이다. 이때는 레닌의 건강이 나빠져서 그의 후계자를 놓고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다투기 시작하던 해였다. 그의 이론은 1923년에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오파린의 이론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6생명의 기원1판이 본격적인 책으로 출판되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생명의 기원에 나타난 오파린의 이론은 빅뱅(Big Bang)이 일어난 시기부터 우주의 물질적 변화를 역사적 단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유물사관에 바탕을 두고 물질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유물사관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레닌에 의해 과학적 무신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생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변증법적 및 화학적 방정식을 이용하여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이 과학적 무신론에 남은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는 이론이 되었다. 레닌이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과학적 무신론으로 소비에트 국가에서 정치적 복종의무를 지우는 절대적 교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레닌이 죽고 스탈린에 이르러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모든 국민들이 믿어야 하는 과학적 진리로 공식화되었다. 193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레닌-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철학 노선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는 이론의 유포를 금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완전한 독재 권력을 확보한 스탈린은 이 결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그에게 반대하는 정치적 주장이나 철학사상은 물론 과학이론까지 금지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그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자비한 숙청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오파린은 이미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을 발표했던 1936년에 소위 스탈린주의 헌법이 채택되었다. 이 헌법에서 러시아 공산당은 러시아가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 즉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받는다.’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 사회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에 이르면,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 스탈린은 3년 뒤 1939년에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과도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이렇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론적으로 예언했던 무신론 공산주의 사회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했던 것이다.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시기적절하게 이때에 출판된 것이다.

 

오파린의 이론은 그동안 서구의 다윈주의들에게는 물론 유물론자들에게도 미지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생물학의 제1법칙인 생명의 기원을 나름대로 설명한 것이었다. 오파린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과학적 무신론의 바탕에 생명의 기원이라는 1차적 진화론을 보완함으로써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2차적 진화론과 연결하여 과학적 무신론의 체계를 완성했다. 결국 이 세 가지 이론들로 과학적 무신론이 완성되었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어느 한 가지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었지만, 겉으로는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체계를 완전하게 구성하였다.

 

오파린은 당시 소비에트를 지배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서 생명의 기원을 화학적 진화론으로 서술했다. 오파린은 우주의 물질적 형성이 태초에 빅뱅에서 시작했고, 그 다음에 생명이 자연에서 물질의 화학 작용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오파린의 이론은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유물 진화론의 토대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의 기원에까지 소급한 것이지,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에서 생물의 탄생은 물질의 변증법적 비약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과학적 무신론은 마르크와 엥겔스, 다윈, 레닌, 스탈린, 그리고 오파린에 의하여 완성된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이 한때 세계적으로 기세를 떨치게 되었던 영향으로 이렇게 허구적인 과학적 무신론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이 시기에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공산주의자들의 무신론을 선전하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은 과학적 사실로 일반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었다. 생명의 기원공식 판본과는 별도로 대중용 선전판이 따로 출판되었다. 이 대중판 생명의 기원은 공산당원 또는 일반 인민들이 생명의 기원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 선전용 책자이기 때문에 쉬운 용어로 바꾸고 공산주의 이론에 맞게 편집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의 기본 틀과 내용의 순서와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논문에서는 이 대중판을 중심으로 검토하겠다. 왜냐하면 입증되지도 않은 화학적 공식을 이 논문에서 쓸데없이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