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유물(무신)론의 발전과 비판

기독교의 과학적 무신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필요성

heojohn 2020. 3. 9. 00:56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유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그를 창조주로 믿는 종교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무신론 주장이 득세함으로 인해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근대 과학주의 사상에서 곁가지로 자라난 과학적 무신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 대해 비판의 수준을 넘어 오히려 뿌리까지 뽑아내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에 의해 1848공산당 선언이 나오면서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59년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다윈이 주장한 생물학적 진화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무신론적 유물론과 결합하여 과학적 무신론의 원형이 되었고, 이후 이것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이것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스탈린(JosephV. Stalin, 1878-1953)은 레닌의 후계자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과학적 무신론을 그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알렉산더 오파린(Alexander Ivanovich Oparin, 1894-1980)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했다. 그는 1936년에 생명의 기원을 출판하여 화학적 진화론을 발표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을 완성했다.

 

이제 과학적 무신론에 의한 세계관은 인류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면서 기독교에 가장 큰 적대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완전히 침묵한 것은 아니었지만, 변변한 대응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피하고 있었음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과학적 무신론은 점점 과학적으로 이론을 확장하게 되었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기독교는 수난을 당하면서 점점 뒤로 밀리다가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교회의 역사, 특히 우리나라와 인접된 국가의 교회사에서 목격하면서 과학적 무신론의 실체를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신학이 반론에 성공하지 못한 원인의 규명과 앞으로의 대책을 모색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게 되었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 1872.-1970)은 그의 서양철학사에서 어떤 일에 대하여 ?라고 물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러셀이 제시한 두 가지 의미를 보면, 하나는 이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이 어떤 앞선 환경에서 일어난 것인가?’이다. 이 논문에서의 질문을 러셀의 방법으로 바꾸어보면, 첫째는 과학적 무신론이 왜 기독교와 대립하게 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진리성에 대해 알아보아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적 무신론을 검증하고 그들의 주장이 진리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는 그동안 과학적 무신론이 역사적 실체로서 어떻게 발전되어온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과학적 무신론의 발생과 그 과정을 추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첫째의 대답에서 장래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고, 둘째의 대답에서는 반성해야 할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보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서 통섭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영국에서 독일인과 영국인에 의해 태동(胎動)된 과학적 무신론이 독일에서 발전하여 러시아에서 완성된 경로와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것의 이론이 과학적 사실인지를 검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접국인 러시아에서 혁명에 성공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에 의하여 그것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는 어떻게 유입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학문은 연구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 그동안 기독교에서 두려워했던 어둠의 영역으로 연구의 장을 넓힐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는 학문 연구에 있어서 항상 ?”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성과가 언제나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과도기적인 해답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신학에서도 그랬고, 신학을 비판하는 과학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학문적 연구는 어떤 질문의 정답을 끝내 찾아내기도 했고, 어떤 질문의 정답은 아직 찾는 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학문은 발전하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적 기록에서 살펴보면, 신의 존재와 창조를 서술하는 신화가 먼저 있었고 이것들에서 각 민족의 종교가 발전했다. 다음에 종교적 제도와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던 철학자들이 생물의 기원을 연구하여 자연발생론을 제기하게 되었다. 자연발생론의 초기에는 종교계의 유신론 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나, 과학혁명 이후 등장한 실증주의자들의 역공을 받으면서부터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과학적 실증주의 방법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이 등장한 시기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동안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종교계와 유신론자들이 전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격의 효과는 미미한 것이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종교계는 과학적 실증주의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고, 과학적 무신론의 과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반박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과학적 무신론을 분석해보면, 그것은 검증을 통과할 수 없는 가설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에서 보면, 또 하나의 질문이 파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왜 과학적 무신론에 두려움을 느끼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천동설을 믿었던 중세 로마가톨릭교회가 과학적 사실의 지동설을 탄압했다가 역전(逆轉) 당했던 트라우마(trauma) 때문이다. 둘째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기적 안일성 때문이다. 즉 대륙적 신학의 영역에서 점점 후퇴하여 교회라는 작은 섬들을 요새로 삼고, 거기에서 안주하고 연명하기를 도모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고 탄압자였던 로마가톨릭 교황도 사과했으므로 이제는 잊어버려도 좋다. 그러나 두 번째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계에서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종류대로의 창조를 부정하는 유신진화론을 수용하는 등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미래의 기독교에 생존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내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적 무신론의 중심에는 최초의 생명이 신의 개입 없이 자연에서 물질적 변화작용의 결과로 발생된 것이고 현재의 인류는 그것이 진화한 결과물이라는 가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설을 과학적 진실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가설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설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계시를 기록한 성경이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기독교 신자가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교회에 나올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결론이 자명하다. 그런데 과학적 무신론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보면, 철학, 지질학, 생물학, 사회학 및 물리화학 등에서 인간의 상상으로 짜깁기한 허구적 이론 체계이며, 과학의 탈을 쓴 가설이며, 인본주의적 우상의 교리인 것이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무신론적 유물론 철학이 다윈이 생물학적 가설로서 제안한 종의 기원과 결합하여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을 파생시켰으며, 이제는 이것이 기독교를 위협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 같은 거대한 괴물로 자란 것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이러한 사실을 어찌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것인가?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기독교가 과학적 무신론에 점점 밀려나면서 고사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알고 보면 교묘한 논리적 허구일 뿐, 결국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입증될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에 대해 과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니면서도 종의 기원을 저술한 찰스 다윈과 () 듀링론자연변증법을 썼던 엥겔스가 과학적 무신론의 창시자가 아닌가? 과학적 무신론을 발전시킨 레닌과 스탈린이 과학자였던가? 유일하게 과학자였던 오파린은 과학적 방법을 가장하여 허구적인 생명의 기원을 저술하였을 뿐이다. 이들이 과학적 무신론을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에 대해서는 과학을 독학했다고 고백한 엥겔스가 대학 교수인 오이겐 듀링(Eugen Duhring, 1833-1921)을 비판하면서 이런 경우에 나는 논적의 잘못되고 왜곡된 주장에 대하여 단순히 올바르고 분명한 사실을 대치시키는 것에 제한하였다는 진술로 이미 저자의 정당성을 대변하였다. 그리고 엥겔스는 이 말까지 덧붙여주었다. “표현상 다소 부정확한 점과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서로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너그러운 용서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