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유물(무신)론의 발전과 비판

무신론적 논제 3가지에 대한 단상

heojohn 2017. 10. 27. 02:11

-그리고 내가 했던 답변

  

질문1.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답변하라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라는 논문에 나오는 이 말은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유명한 말들 중의 하나이다. 그 원인은 이 말의 과격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르크스의 본의가 어떤 세력에 의해 고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또는 실수로 잘못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고, 이것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이 부분적에 대한 우리말 번역문을 보면 매우 추상적인 표현을 쓰고 있어 언뜻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만을 읽거나 듣고는 잘못 이해하고 넘어갔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본다따라서 이 말에 대해서는 원문의 맥락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중심으로 앞 뒤 원문을 보면, 한글 번역이 원문의 맥락을 놓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이미 베를린 대학생 시절에 어렸을 적의 독일 기독교를 버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종교를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로서 쓴 것이다.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원전을 모두 읽는 것이 좋으나, 이 말을 이해하는데 충분할 정도의 넓은 범위의 원문을 참고로 붙여놓았다. 이 부분은 보다 범위를 넓혀서 뒤에 나오는 것과 같이 약간 의역되어야 뜻이 분명해진다.

 

Religion is, indeed, the self-consciousness and self-esteem of man who has either not yet won through to himself, or has already lost himself again. But man is no abstract being squatting outside the world. Man is the world of manstate, society. This state and this society produce religion, which is an inverted consciousness of the world, because they are an inverted world. Religion is the general theory of this world, its encyclopedic compendium,

its logic in popular form, its spiritual point d'honneur, its enthusiasm, its moral sanction, its solemn complement, and its universal basis of consolation and justification. It is the fantastic realization of the human essence since the human essence has not acquired any true reality. The struggle against religion is, therefore, indirectly the struggle against that world whose spiritual aroma is religion. Religious suffering is, at one and the same time, the expression of real suffering and a protest against real suffering. Religion is the sigh of the oppressed creature, the heart of a heartless world, and the soul of soulless conditions. <It is the opium of the people.> The abolition of religion as the illusory happiness of the people is the demand for their real happiness. To call on them to give up their illusions about their condition is to call on them to give up a condition that requires illusions. The criticism of religion is, therefore, in embryo, the criticism of that vale of tears of which religion is the halo.


종교는 진실로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승리하지 못했거나 이미 자기 자신을 다시 잃어버린 자들의 자의식 또는 자기존중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 바깥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곧 세상이고 국가이고 사회이다. 이런 국가와 사회가, 거꾸로 된 세상인 까닭에 거꾸로 된 세상의 의식인, 종교를 생산한다. 종교는 이 세상의 보편적 이론이며, 백과사전적 필수품이며, 인기 있는 형태의 논리학이며, 명예에 관한 정신적 문제이며, 열광이며, 도덕적 승인이며, 장엄한 보완물이며, 위로와 정당화의 우주적 근거이다. 인간의 본질이 어떤 진정한 실존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는 인간본질의 환상적 실현인 것이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종교가 정신적 향기인 저 세상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누구에게나 그 시대에 있어서, 실제적인 고통의 반영이며 실제적인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피지배 계층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상에서 인정이며, 영혼이 없는 조건에서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들의 환상적인 행복인 종교를 폐기하는 것은 인민들의 실질적인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민들에게 그들의 조건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것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조건을 버리라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따라서 초기에는, 종교가 신성한 후광으로 비치는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종교관을 살펴보면, 종교는 실제적으로는 필요가 없는 추상적인 것이다. 인민들은 불필요하게도 비실제적이고 추상적인 종교가 주는 환상적인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통을 느끼는 자가 아편을 찾는 것처럼. 그는 또 종교를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실제적인 고통과 그에 대한 저항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실제와 환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종교는 그에게 실제적인 조건에서는 불필요한 것(고통, 무정)과 없는 것(영혼)에 대해서, 환상적으로는 필요한 것(한숨, 인정)과 있는 것(영혼)으로 보이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과 환상을 만들어내는 마약이다. 다시 말하자면, 환상적인 행복(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고통을 잠시 잊어버리게 하는 것)을 주는 아편이 마약인 것과 같이 종교도 환상적인 행복을 주는 마약이다.


   유물론자인 그는 계속해서 종교를 비판하고 있다 종교를 세속적인 영혼의 향기로 보는 그는 종교에 대한 투쟁이 그런 환상적인 세상을 향한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환상적인 행복을 만들어내는 종교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인민, 곧 피지배계층민의 실질적인 행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종교를 폐기해야 할 조건을 만들 필요성을 그 뒤에서 말하고 있다. 그에게 종교는 신성한 후광을 배경으로 하는 눈물의 골짜기일 뿐이다. 그곳에서 인민들을 구해내고자 그는 종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같은 논문에서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판 자체는 이 대상과 자기 자신 사이의 화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비판과 이 대상의 사이는 끝장나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더 이상 자기 목적으로서 나타나지 않고, 수단으로서 나타날 뿐이다. 비판의 본질적 파토스는 분노이며 비판의 본질적 작업은 탄핵이다따라서 비판의 대상인 종교는 분노의 대상이며, 목적은 탄핵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아편이다는 말의 진의는 종교를 일시적인 진통효과를 가져오는 마약인 아편에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환상적인 위로를 필요로 하는 피지배계층에게 마약의 효과를 주는 것일 뿐이며,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불필요하거나 해롭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환상적인 행복을 주는 사회에서 실제적인 행복을 주는 사회로 변혁시키기 위하여 계급투쟁과 노동자 혁명을 촉구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이다. 이런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서, 이는 공산당의 기본강령에 포함된 것이었고 공산주의 혁명의 기본노선이었다.

마르크스는 전술한 대로 대학시절에 이미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철저한 공산주의 이론가, 반종교적 유물론주의 철학자가 되었다. 그에게서 종교에 대한 우호적인 면을 발견하려는 기대는 전혀 잘못된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이 말을 잘못 이해하고 마르크스를 옹호하는 논조의 글들을 띄우고 있는데, 마르크스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아야겠다.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의 제자들이 공산주의 혁명과 집권을 통해 인민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유물론 공산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현대 세계에서 무신론 전파의 가장 큰 공로자인 그는 모든 종교인들에게는 최대의 적이며, 특히 기독교에는 사탄적인 인물로서 그의 이론은 철저히 타파되어야 한다.

(나도 전에는 마르크스의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재미있는 은유라고 호의적으로 생각했었음을 고백한다).

 

 

2. 키에르케고르의 진리는 주관적이다라는 말에 의하면, 종교적 교리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키르케고르는 진리를 두 가지, 즉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진리로 나누어 본다. 객관적 진리는 객관적 사유에 의해서 누구나 진리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들을 말한다. 누구나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들에는 수학, 역사적 사실, 증명된 과학이론 등이 있으며, 객관적 사유에 근거와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객관적 진리는 이런 기준을 적용하여 누구나 검증할 수 있으며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존적인 자아, 즉 주관적 사유를 하는 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주관적 사유에는 누구나 공인할 수 있는 진리의 기준이란 것들이 없다. 주관적 사유의 대상들로서는 가치의 문제, 윤리, 도덕, 종교적인 주장들이 있다. 주관적 사유에 의한 의 주장들에는 객관적인 진리가 없으므로, 상대방들이 반대한다 해도 가 이것들이 진리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러나 주관적 사유의 결과인 의 주장은 나의 실존에 아주 중요한 주관적 진리가 된다. 왜냐하면, 나의 실존은 내가 하는 일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결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는 결단의 근거로서 의 주관적 진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주관적 진리는 객관적 진리와는 달리 의 믿음에 의해 선택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다. 이렇게 주관적 진리는 불확실성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는 선택하고 결단하기 위해서 언제나 고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의 주관적 진리인 믿음 자체가 무()근거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실존은 현기증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라고 한 헤겔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인간 실존의 근저에 있는 이성은 무()에 좌절하고, 다시 뭔가 새롭게 되고자 하는 열망(熱望)의 형태를 가지는 이성이다.

    키르케고르는 자아, 즉 자신의 실존을 본질적으로 주체적인 것으로 보고, 주체성은 개인이 자신의 주체적 진리에 충실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체적 진리의 하나는 자신의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을 주체적 진리로 깨달아야만, 영원한 심연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실존의 연약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존은 곧 죽음을 통해 이 영원한 심연에 빠질 것이고, 심연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존은 이러한 죽음 앞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진리들을 정화하고 창조하며, 동시에 그것들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떠안는 반성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그러므로 주관적 진리는 실존적 자아의 자유에 기초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사고에서 보면, 신앙의 경우에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신을 믿어도 후회할 것이다. 신을 믿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 믿어도 후회할 것이고, 믿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 신앙은 인간에게 이렇게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실존적 인간에게 중요한 결정이다. 그러나 실존적 인간의 결정은 불확실성에 근거한 인간의 주관적 진리일 뿐이므로, 진리의 확신에 대해 언제나 불안하다. 주관적 진리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은 영원한 심연을 앞에 두고 불안에 떨면서 멈춰서고 만다.

   이러한 인간실존의 불안은 신이 스스로 인간에게 다가와서 믿음을 주는 경우에만 해결된다. 인간이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키르케고르의 영원한 심연을 건너서 신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원한 심연을 건너온 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 영원한 심연을 건널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그가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이 보내는 대리자들뿐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주관적 진리를 주장하는 키르케고르는 영원한 심연 앞에서 불안에 떨지라도, 기독교 신자들은 불안함이 없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과 그들 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피안에 도달하는 구원에 이를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주관적 진리가 아니라, 이미 역사 속에서 선포된 객관적 진리이다.

 

 

3. 니체의신은 죽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기독교에 약간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한 마디는 바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이 말이다. 이 말이 던지는 충격은 가히 원자폭탄에 맞먹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긴가 민가 하던 나의 기독교에 대한 갈등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해방기의 혼란과 6.25의 참화를 거치면서 거의 황폐화된 농촌에서 불교적 배경의 집안 환경에서 자란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기독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최대 현안은 좋은 직장을 어떻게 빨리 얻느냐는 것이었다. 상과를 졸업하고 치열한 취직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은 모두 잊어야 했다. 다행히 취직(처음 직장인 외환은행)에 성공하고 서울에 올라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나에게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독교 계통의 야간대학에서 주경야독하는 동안 주위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간접적인 영향 탓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교회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비교적 여유 있는 급여를 받게 되면서 주말에는 등산이나 여행에 나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게 그런 생활을 합리화시켜준 것이 바로 니체의 이 말이었다.     

   나는 니체의 이 말과 그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 제목만 읽고, 나머지 내용은 나의 상상력으로 엮어내는 천재성(?)을 발휘해서 니체가 치른 신의 장례식에 나도 참여했다. 그리고 가끔씩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문제가 제기되면, 나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니체의 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체의 책을 더 읽은 것도 아니었다. 죽은 신에 대해서 더 알아서 무엇에 쓸 것인가? 그저 이 한 마디로 족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하나의 결론


  그런데 얄궂게도 나는 기독교 신자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없이 교회를 따라 나가기도 했지만, 때로는 핑계를 대고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좀 더 나은 조건을 쫓아 직장을 몇 군데 옮겨 다니고, 나중에는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서 교회는 나와 상당한 거리로 멀어지게 되었다. 더구나 국내 임금상승으로 제조공장을 해외(필리핀)로 옮긴 이후에는 내가 국내 집에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고, 부모님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 세례를 받게 했다. 물론 나는,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가족과 같이 교회에 출석했다. 나는 겉으로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니체의 망령은 나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아내를 따라 교회에 고분고분 나간 것은 가장으로서 오직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사업의 성과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교회와 나의 정신적 거리는 멀었다. 그리고  니체의 망령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그런 생활이 25년 정도 지난 후에 자발적이라기보다 이끌림에 의해 내가 신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내 경험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바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주관적  진리이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와 니체가 내게 공개적으로 던져놓았던 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객관적으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마르크스와 니체가 반론하지 못할만한 답안을 작성해야 했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하고 기독교 신학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젊었을 때 문학청년이었던 내가 그동안 게임 시나리오처럼 써두었던 원고를 정리하여 [흑암전설]이라는 창세기적 팩션을 2007년에 출간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총신대 사회교육원에서 신학사 과정에 등록해서 부전공으로 신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에 내게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갖춘 학문적 코스를 찾아보다가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여기서 신학석사(M.Dv.)를 취득하고 평택대 피어선 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등장한 무신론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여 [과학적 무신론의 비판적 고찰-발생에서부터 한민족 교회로 유입되기까지의 관정을 중심으로]하는 박사논문을 쓰고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이 논문의 앞 부분(과학적 무신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이번에 출판된 [과학과 신의 전쟁] 제2부에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