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연구/기독교 역사 이야기

니체

heojohn 2009. 11. 7. 00:22

프레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 10. 15 ~1900. 8. 25)

 

1 생애

 

니체는 독일의 철학자로서 프로이센 작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그의 집안은 루터의 경건주의를 따랐다. 조부는 루터를 지지했고, 외조부는 시골 목사였다. 아버지는 니체가 6세가 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와 누이 엘리자베스가 있다.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 대표적인 고전학 교수 오토 얀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에게서 배웠다. 그는 낭만파 음악을 좋아 했고, 작곡도 했다. 1865년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1867년 군에서 말을 타다가 가슴을 심하게 다쳐서 장기간의 병가를 받은 기간 동안에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되었고,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와 교제하게 되엇다.

1868년 니체는 리츨의 추천으로 박사 학위도 없이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869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시험과 논문 없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자원입대했다. 바젤에 있을 때, 바그너와 사귀었지만,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결별했다

교수직과 집필 등의 사회활동은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쓰러져서 정신능력을 완전히 잃음으로써 막을 내렸고, 다음 해인 1900년에 죽었다.

 

2 주요 저서

 

1872년: 니체는 오늘날에도 미학사(美學史)의 고전으로 꼽히는 [비극의 탄생]을 첫 번째 저서로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 비극이 “아폴론-디오시소 스 이분법”의 결합에서 나왔으며,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와 낙관주의가 그리스 비극을 죽였다고 했다.

1873~6년: [반시대적 고찰] 1부에서 4부까지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했다. 건강이 점차 나빠져서 1879년 교수직을 사임했다.

1883~85년: 성서 이야기 형식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4부로 나왔는데, 제4부는 자비로 출판했으며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1886년: 철학을 산문 형식으로 쓴 [선악의 피안]

1887년: [도덕 계통학]

1888년: [바그너의 타락], [우상의 황혼], [반(反)그리스도], [니체 대 바그너 ], [이 사람을 보라] 

 

니체는 1879년 교수직을 사임한 이후 중병에 시달렸고,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니체의 정신이 정상적이었던 것은 매독으로 인한 광기가 나타난 1888년까지였다. 이후에 그의 생애와는 반대로 니체의 이름이 히틀러와 연결되는 것은 그의 누이가 당시 대표적인 파시즘 지지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니체의 사후 흩어진 원고를 모아 [권력에의 의지](1901)를 출판했다.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특유한 문체를 사용하여 종교, 도덕,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기존 이론들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니체는 독일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 독재정치 등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그의 사후 그의 누이가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네세운 히틀러의 파시스트(1919)를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과 이름은 그가 반대했던 파시스트들에게 잘못 이용되고 말았다.

 

3 니체의 철학

니체는 키에르케골(1813-1855)이나 맑스(1818-1883)와 마찬가지로 칸트 이후의 철학적 위기에 대처하고자 한 철학자였다. 그는 새로운 ‘이성비판’을 주장하는 대신에 새로운 방식의 인간실존을 부르짖었다. 니체의 철학은 당시 세속적인 계몽주의를 반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서구의 전통적인 철학과 종교 및 도덕 등의 정신적 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계보학적으로 밝히려 했다. 니체는 철학사에서 그의 저서들의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인 [이 사람을 보라-에케 호모]는 빌라도가 유대인 앞에서 예수를 가리켜 한 말이라는 점에서 보아도 그렇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외침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3.1 니체의 인식론: 이성, 논리, 언어 비판

니체는 근대 철학자들이 스스로 진리라고 전제하는 믿음이 엄밀 객관성을 확립하려는 자신의 인식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방법으로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를 꿈꾸던 근대 철학자들의 이성은, 한편으로는 이론 자체의 결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파국 사태인 허무주의로 심판된다. 니체가 지닌 문제의식의 독창성과 날카로움은 바로 근대이성의 파국 사태가 소크라테스의 출발에서부터 근대로 이어져 내려온 서양 철학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밝혀냈다는 점에 있다.

근대이성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두 가지의 주제들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나는 모든 종류의 인식활동 내지 학문의 본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다른 하나는 도덕의 본성에 대한 재검토이다. 그리고 이 두 주제는 인식활동과 도덕의 관계는 무엇이며, 삶에 대한 그것들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종합된다.

니체의 인식론을 보통 원근법이라고 한다. 니체는 문헌학을 공부했다. 문헌학자들은 소위 고전적 경전들-성경, 베다, 일리아드, 우파니샤드 등이 단일한 문헌이 아니라, 많은 문헌들이 편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헌학자로서 니체가 내린 결론은 문헌학에서 원본이 없듯이, 실재와 앎에서도 ‘순수한 존재’라든가 ‘원재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신’도 없고 플라톤의 ‘형상’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혼돈뿐이며, 인간은 여기에 인간의 의지를 투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니체에 따르면,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앎’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론은 거짓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전통-고전문헌, 앎 등-은 거짓이고, 모든 사람은 이런 전통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이 된다. 모든 앎은 발명이며, 모든 발명은 거짓이다.

 

3.1.1 이성비판

모든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대는 인간이 실재에 대한 인식능력인 이성을 가졌다는데 있다. 형이상학자들은 영원불변하는 실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이성을 인간이 지닌 최고의 성질로 이해해왔다. 계보학의 눈을 통해 볼 때, 이성은 항상 진리와 비진리를 판별하는 중심에 위치해 왔다. 그런데 이런 중심성을 자랑하던 이성은 역사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해결할 수 없는 사태(aporia)에 부딪쳐 무기력해지는 양태를 반복해왔다. 이성이 해결하지 못하는 이러한 파국사태를 반성해볼 때, 이성은 자신이 주장하는 영원한 진리의 보증 근거로 해석되기 어렵다. 이성은 인간이라는 특정 동물의 특이체질이며, 삶의 안정적 보존에 기여하는 유용성 때문에 거부하거나 항변할 수 없는 일종의 생물학적 강요다. 이러한 삶의 자기 보호본능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의식의 무능력으로 인해, 사고될 수 있는 것은 허구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타자와 자기 자신을 결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관점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3.1.2 언어비판

니체의 급진적인 유명론에 따르면 언어의 기능은 바로 거짓말에 있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이파리들을 총칭해서 나뭇잎이라고 분류할 때, 실상 그 이파리들이 어느 것도 서로 똑 같지 않다는 차이성을 무시하고 서로 똑 같다는 동일성을 강요하고 억눌러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언어는 개념을 창출한다. 언어의 독특한 힘은 동일성을 지닌 사물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발생시키는 은유의 생생한 효과에 기인한다. 따라서 언어가 “삶의 조건으로서 우리 위에 군림”하는 사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언어와 개념은 실재의 본질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인간에 필요한 특정 성질만을 부각하고, 다른 성질들은 은폐하는 은유화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언어와 개념을 통해 진리에 대한 인식을 꿈꾸던 서양의 언어 중심적(Logos-centrism) 세계관은 진리의 관점이 아니다. 언어는 자기기만의 중요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언어가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언어에 창조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니체는 전통적인 언어관, 즉 시적인 기능에 비해 산문적인 기능이 우선한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이른바 언어의 산문적 기능은 언어가 지닌 시적 본질의 하위기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니체에게 언어는 “은유, 환유, 의인화의 기동 타격대”이다. 은유와 환유를 사슬처럼 엮어서 연결하면, 실재를 시적으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다. 니체는 이것을 조작된 권력 의지의 교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 밖의 다른 철학 용어들-초인, 영원회귀, 신의 죽음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권력의지다“는 그의 주장은 존재의 궁극적 본질을 철학적 통찰력으로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시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니체는 ”그게 오히려 더 낫군“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모든 언어는 거짓이고 오직 해석만이 존재하는 게 옳다면, 모든 해석은 똑같이 타당할 것인가? 니체가 아무리 상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니체에게는 현실의 삶을 긍정하는 거짓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거짓이다. 그 밖의 다른 거짓들은 모두 허무주의적이며 죽음의 편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지는 긍정, 웃음, 춤으로 가득해야 한다. 니체는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는 다른 세계를 동경하며 주어진 세계를 거부하므로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2.3 논리비판

학문적 담론의 권위는 그것이 엄밀한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는데 있다. 형이상학과 과학, 그리고 근대철학들은 동일율과 모순없음(無矛盾)을 진리법칙의 토대로 삼고 고유한 이론체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서양의 이론들이 역사 속에서 뜻밖의 논리적 난제(aporia)에 직면하여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되면서 다양한 변천과정을 거쳐 오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기본단위인 언어에 동일성을 지닌 존재를 상정하는 개념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가 우리에게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세계를 관습적으로 논리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학의 근본원리인 “동일율과 모순율은 모든 경험에 선행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인식이다”는 말은 독단에 불과하다. 논리학은 순수한 “진리에의 의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위조와 “자기 관점의 관철”이라는 어떤 충동에 지배받는 활동이다. 형이상학자들은 추상화와 범주 날조의 기술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표출한다.

 

3.3 권력 의지

 

사실 니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듯이, 그가 사용하는 ‘권력 의지’라는 용어는 언어의 은유와 환유라는 연쇄적 추론의 사물이다. 니체는 인간이 상황에 따라 일관적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권력에의 의지로 보았다. 니체의 주장은 자신의 존립을 위해 어차피 거짓을 행할 바에야 창조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즉 창조적으로 말하고, 창조적으로 앎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쇼펜하우어의 개념을 빌려 ‘권력(힘)에의 의지’를 표현한다고 했다. 권력의지를 표현하는 것은 곧 실재(현실)를 자신의 창조적 힘에 굴복시키는 행위이다. 니체는 또한 권력의지를 ‘자유를 향한 충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의 모든 생물적 본능은 이 자유를 향한 욕구로서 발현된다. 여기서 니체는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도 힘에의 의지로 보았는데, 이는 인간은 진리를 통해 변화무쌍한 자연에 대응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인간의 신체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언어도 모두 권력의지의 발현이라고 본다.

 

3.4 도덕과 초인

 

니체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성을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강자로서 인생의 축복에서 기원되었으며 후자는 약자로서 주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주인의 도덕성은 '선함'과 '악함'의 차이로 요약되며 노예의 도덕성은 '선함'과 '악함'으로 나아간다. 강자의 선은 강한 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강하고 힘이 넘치며 고상한 것이고 '악함'은 나약하고 소심하며 미약한 것이다. 반면 약자의 선은 약한 자의 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약한 처지를 견딜 수 있거나 개량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며 '악함'은 약한 처지의 집단을 불안하게 만드는 강한 의지, 도전, 힘 등이다. 즉, 주인의 도덕성에서의 '선함'과 노예의 도덕성에서의 '악함'은 도덕적 동등성을 지닌다.

니체는 노예의 도덕에 허우적대지 말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 모을 것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이상적인 사람을 '초인(超人)' 이라고 불렀는데, 이 초인이 인류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니체는 자신의 학설을 초인이라는 목표로 구체화시킨다. 초인이란 곧, 권력의지의 승리를 뜻한다.

사회는 나날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문명은 더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권태로워진다. 점점 더 말초적인 쾌락을 원하고 문화는 타락해간다. 니체는 이러한 현상이 허무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수명이 다한 낡은 가치관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허무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초인 중심의 사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다르게 해석하여,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흩어져 있던 그의 원고들을 모아 출판했으며, 광인이 된 니체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3.5 영원회귀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해석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숱한 학자들이 연구하고 책을 써냈다. 그러나 다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니체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충실하고자 했음을 뜻한다는 점이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에 반대하는 견해를 보였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극히 고결하고 생생하며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존재의 이상이 있다면, 그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과 타협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영원 속에서 반복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극단적인 형태까지 밀고 가보자. 그러면 아무런 의미나 목적도 없는 존재 그 자체, 무(無)라는 종말이 끊임없이 필연적으로 되풀이 되는 영원회귀가 나온다.

 

모든 것은 가고 또 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또 다시 꽃 핀다. 존재의 연령은 영원하다. 모든 것은 부서지고 또 새로 결합된다. 존재의 동일한 집은 영원히 재건된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다시 서로 만난다. 존재의 원환(圓環)은 영원히 자신에 충실하게 회전한다. 매 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여기를 돌아 저기라는 곳으로 원(圓)은 굴러간다. 중심은 도처에 있다.

모든 생성을 한 원 안에서의 반복으로 보는 이 사상에서는 현재의 이 순간이 영원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점이 된다. 그러므로 현실의 바탕 위에 현재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든 순간적 삶 자체가 그대로 영원한 삶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말하면서 진정 이렇게 현실을 긍정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4 결론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 단 하나의 대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을 통해 니체가 역사, 정치, 종교, 도덕, 경전 등등의 모든 전통적인 권위의 종식을 의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니체는 기독교가 강한 자인 주인의 도덕을 망치고 순종, 겸손 등 소극적인 것을 미덕으로 하는 약한 자인 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보았다. 또한 몸이 병들고 약한 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는 그의 철학에 있어 적대적이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기독교는 약하고 저열한 것들의 기준에 맞추어 인류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비판했으며, 강한 자의 도덕을 갖춘 초인이 인류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보았다.

진리의 대상 및 가치에 대한 니체의 근본적인 질문은, 중요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했고, 대륙철학인 현상학과 분석철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니체에 대한 방대한 이차적 문헌이 생겨나게 했다. 그의 사상은 현생(現生)을 긍정하는 해석을 포함하며, 플라톤 철학에 대한 뒤집기이다. 니체의 표현은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극과 극을 나타내는 때가 많다. 어떤 철학자들은 니체를 천재적인 철학자로 보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1961년 [니체]를 출간한 이후 새롭게 해석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니체에 대한 오해가 많이 해소되었다. 니체는 히틀러가 내세운 민족주의를 매우 혐오했으며, 이 때문에 모국인 독일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니체는 프로이드나 마르크스 등과 함께 현대 철학을 뒤엎은 철학자로 인정받는다.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과 다른 영역에 아직까지도 실질적으로 남아있다. 특히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그러하다. 이제 확실한 것은 그가 현대 철학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니체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나치도 그랬고, 정신분석학자, 실존주의자들도 그랬다. 현재는 해체주의자라는 집단이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해방자라고 여기기도 하고, 새로운 허무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