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heojohn 2020. 3. 10. 21:49

(1) 자연변증법등에서 다윈의 진화론 인용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죽은 후 출판한 자연변증법(1883)에서도 다윈을 인용하고 있다. 엥겔스는 특히 [주석과 단편]에서 과학의 역사에 대하여논하면서, 자연과학이 18세기의 기계적 일면성을 극복하고 19세기의 경험주의 과학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음을 지적한다. 엥겔스는 자연과학 발전의 원인으로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을 꼽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 전화해명되지 않은 현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자연의 무수한 모든 작용원인이 이것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물체의 운동이 열의 일당량에 의해 측정이 가능해짐으로써, 자연의 운동은 철학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사실로 통일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기세포의 발견으로 유기체의 생성, 성장, 구조의 비밀이 벗겨졌음을 꼽고 있다. 세 번째는 유기체의 다양성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다윈의 진화이론이 통합적으로 대답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엥겔스는 다윈의 진화이론을 가장 중시한다. 이로 인하여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진화계열이 증명되었으며, 모든 유기체의 현재 상태는 물론 인간정신의 전사까지도 해명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만약 이러한 전사가 없다면 사유하는 인간두뇌의 존재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유물론적 자연관이 지난 세기와 전혀 다른 견고한 다리로 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엥겔스는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관념론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이렇게 힘써 다윈을 옹호하면서 유물사관과 진화론의 결합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를 결정적으로 증언한 것은 1883년 자신의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숨진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행한 엥겔스의 추도사를 통해서였다. 바로 1년 전인 1882년에 죽은 다윈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장엄하게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1명의 조문객들만이 모여서 런던 외곽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한 구석 그의 아내 묘지 곁에 초라하게 묻히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엥겔스는 추도사를 통해 인간 역사에서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마르크스의 업적과 자연 역사에서의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다윈의 업적을 동등한 것으로 비교했다. 이러한 비교는 엥겔스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마르크스와 그의 유물사관이 동등하게 과학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여기에다가 마르크스의 과학적 업적을 하나 더 추가하는데,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관계에서 잉여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엥겔스에 의하여 마르크스는 다윈을 능가하는 과학자가 되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진화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사회주의로 선포되었다.

 

자크 아탈리는 과학적 사회주의 창시자 마르크스의 과학지식에 관련해서 라파르그(Parul Lafargue)마르크스는 고급수학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변증법적 운동을 다시 발견하곤 했으며, “‘과학이란 수학을 사용할 줄 알 때만이 진정으로 발전된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엥겔스는 반듀링론자연변증법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물리학과 화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죽은 다음 해인 1884년에는 다윈의 진화론적 연구 방법을 사회이론에 적용하여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기도 했다. 엥겔스에 의하면 사회도 유물론적으로는 진화하는 생명체이다. 이렇게 하여 유물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결합하여 유물진화론이 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추종자들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결합한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의심할 수 없는 과학적 사회 법칙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유물진화론에 녹아들게 되었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진화론과 같이 과학적 무신론의 범주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새로운 종이 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그것은 과학적 무신론일 뿐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마침내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에 힘입어 러시아와 아시아 대륙에서 큰 불길을 일으켰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은 과학적 무신론에 현실적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학적 무신론은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처형하는 공산주의 바람을 타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