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엥겔스의 『반듀링론』읽기-4

heojohn 2020. 3. 10. 21:44

(7) 엥겔스의 생명관

 

듀링에 대한 비판을 마친 엥겔스는 이어서 자신의 생명관에 관한 진술을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이 부분 역시 유물론자의 생명의 기원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뒤에 오파린이 화학적 진화론을 다룬 생명의 기원에서 여기에 나오는 엥겔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엥겔스는 아직도 듀링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먼저 유기적인 신진대사가 생명의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30년 동안이나 알려진 과학적 상식이라고 전제한다. 엥겔스는 듀링이 이것을 형체를 형성하는 도식화에 의한 신진대사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생명을 생명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똑 같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엥겔스는 신진대사는 생명이 없어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그러한 예로서 유황을 연소시켜 유황산을 제조하는과정과 트라우베((Moritz Traube)의 인공세포에 의한 피막 실험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상식으로 보면, 엥겔스가 이것을 생물의 신진대사와 같은 것으로 보면서 듀링을 비난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쓰는 것이다. 신진대사는 생명체에게만 있는 섭취와 배설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생명이 없는 신진대사라고 본 앞의 예는 화학적 작용일 뿐이고, 뒤의 예는 삼투압 현상을 말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신진대사만으로는 생명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공산주의 유물론에서 가장 유명한 명제 중의 하나인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단백질의 존재양식은 이 물체의 화학적 성분의 부단한 갱신에서 성립하고 있다고 한다. 엥겔스는 이 말을 바꾸어서 이렇게 다시 말한다.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 생명이 단백질과 함께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아직 분해되지 않은 한 개의 단백질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예외없이 생명현상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엥겔스의 생명론은 이렇게 이미 모든 본질적인 생명현상들을 보여주는 단백질 덩어리가장 저급한 생물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나아가서 엥겔스는 이러한 생명현상 중에서 특수한 분화가 일어나려면 이 생명체 중에 다른 화학적 결합이 반드시 출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엥겔스는 단백질의 본질과 생명의 본질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엥겔스에 의하면 살아 있는 단백질은 자체적으로 노쇠한 부분을 분해하고 배설하며, 그동안에 다른 물질을 섭취하고 중화하는 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풍화된 암석, 산화된 금속 등의 생명이 없는 무기물의 괴멸은 단백질의 생존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부단한 대사가 멈추는 순간 단백질은 분해되기 시작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이와 같은 단백질의 존재양식은 어떤 순간에나 그 자체인 동시에 또한 타자인 것에서 성립한다.” 생명으로서의 단백질에는 자발적 과정으로서 섭취와 배설에 의해서 야기되는 신진대사가 있다는 점이 생명 없는 물체와 다른 것이다. 이어서 엥겔스는 신진대사의 자발적 과정은 그 담지자인 단백질에게 내재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며, 이 과정이 없다면 단백질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단백질에는 내재적이고 선천적인신진대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화학이 인공적으로 단백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려면, 이러한 생명현상이 미약하게나마 나타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엥겔스의 결론에 따라서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을 저술하였고, 단백질에서 생명현상을 발견하고자 죽을 때까지 실험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엥겔스가 여기서 하는 말들은 오파린에게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지침으로 인용되었으며, 결국 오파린에게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함께 엥겔스의 생명론이 생명의 기원이라는 화학적 진화론의 근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 밖의 단백질이 신진대사를 한다고 하는 엥겔스의 억지 주장은 계속된다. 엥겔스는 생명을 본질적으로 단백질의 존재양식으로 파악하고 여기서 나타나는 섭취와 배설의 신진대사 및 생명의 기타 모든 단순요소는 단백질 특유의 유연성에서 파생된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수성(Reizbarkeit): 단백과 그 영양물 사이의 교호작용 속에 이미 벌써 들어 있다.

수축성(Kontraktibilität): 대단히 저급한 단계에서도 음식물을 소화시킬 때 벌써 나타난다.

성장의 가능성(Wachstumsmöglichkeit): 가장 저급한 단계에서도 분열에 의한 증식에서 볼 수 있다.

내적인 운동(innere Bewegung): 이것이 없으면 영양물의 소화나 흡수가 불가능하다.

 

엥겔스는 이와 같은 생명에 대한 그의 정의가 아직 불충분한 점을 시인하고, 그 이유로서는 모든 생명현상을 포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단순한 생명현상에만 국한해서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생명의 현상들을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의 생명의 정의도 해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엥겔스의 이러한 생명론으로 인하여 유물론자들이 생명을 얼마나 무가치한 것으로 경시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인류에 얼마나 해악을 끼쳤는지 당시 엥겔스 자신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생물학에서 밝혀진 사실은 단백질이 신진대사 기관에서 효소로서 작용을 하는 것이지 단백질 자체가 생명현상의 기초 활동인 신진대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자신의 DNA 또는 RNA의 지시로 만들어낸다.

엥겔스는 이 장에서 마지막으로 듀링이 지구의 범위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가진 의식학(Bewusstseinslehre)의 단초를 전개하기 전에 쾌락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은 감각기관이라는 특수한 장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세계에도 있다고 말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듀링은 감각적인 쾌락과 고통의 대립은 보편적인 것이므로 전 우주의 어떤 세계에서나 본질상 동일한 감정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가정했다. 또한 듀링은 우리에게는 주관적 세계가 객관적 세계보다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며 이 양 세계의 구조는 통일적 유형에 의해서 생각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이러한 듀링의 주장을 은하계로 서둘러 도망치는 것이라고 야유하면서, “지상의 자연과학에서 다소간 오류를 범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라고 아예 듀링을 자연과학에서 오류를 범한 자로 취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엥겔스의 유물론적 생명관은 그로부터 40여년 뒤에 나타난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을 쓰는 지침이 되었다. 엥겔스는 이렇게 반듀링론을 통하여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의 유물진화론을 거쳐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론으로 건너가는 교량을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