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엥겔스의 『반듀링론』읽기-3

heojohn 2020. 3. 10. 21:40

(5) 생명의 기원 및 변화의 원리에 대하여

 

엥겔스는 자연과학이 아직까지 유기물이 계통 없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시인하고,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아직까지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화학적 방법으로 출현하였을 것이라는 것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는 아무리 대담한 자연발생론자라 하더라도 다만 박테리아나 곰팡이 종류나 기타 대단히 원시적인 유기물만이 이 방법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 곤충이나 어류나 조류나 포유동물이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어서 듀링은 생명의 기원문제에 대해서 매우 주목을 끄는 말을 하고 있는데, “유기적인 자연산물의 연관이 계통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면, “혈통관계가 끊어진 곳에서별개의 조상이 출현했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결국 다시 창조자와 이신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듀링을 공박하는 말이 아니라 유물론자로서 이신론자에 속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함에 있어서 엥겔스가 처해 있는 심각한 딜레마를 고백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자연발생론을 주장하는 유물론자들의 이론적 한계를 인정하는 엥겔스의 독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다윈은 결코 유물론적으로 진화론을 설명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엥겔스는 유물론적으로 다윈의 이론을 지지하고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엥겔스는 다윈이 자연도태를 설명하면서 변화의 보존을 표현한 것이지 변화의 원인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직 변화의 원인이 자연도태라는 다윈의 이론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듀링의 글에서 단순한 성()적 구성의 행위만을 이 특성 발생의 근본원리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다윈의 자연도태를 왜곡하는 듀링의 자유 창작물이요 상상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엥겔스는 이 따위 왜곡이나 하는 듀링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듀링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인용해놓고 있다.

 

만일 생식의 내적 도식 중에서 그 어떠한 독립적인 변화의 원리가

발견되었다면 이 사상은 완전히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발생의 원리와 성적 생식의 원리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또 좀 더 높은 입장에서 이른바 자연발생을 재생산(생식)과 절대적

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생산(발생)으로 보는

것이 자연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서 보면 듀링은 유물론적 자연발생설을 신봉할 수밖에 없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변화의 원리가 빠져 있는 이 사상즉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해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아직까지 유전자의 구조와 메커니즘(mechanism)이 발견이 되지 않았던 당시에 듀링은 생식의 내적 도식’(생식의 내적 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듀링이 자연발생과 재생산(생식)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통일적인 하나의 발생원리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서 질문하는 내용을 쓴 것이다. 이렇게 보면 듀링은 생명의 발생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논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시 생식 메커니즘을 잘 모르고 있는 엥겔스가 듀링을 가리켜 이 따위 허풍을 떨 수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잠꼬대운운하면서 헤겔을 비난하고있다고 억지스럽게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엥겔스의 이런 행태는 공산당 선언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하라고 선동한 사람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변화의 원리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이나 다윈의 진화론이나 다 같이 관념론적인 가설이지 입증된 과학은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에서의 생물학적 변화의 원리는 다윈에 앞서 라마르크가 그의 동물 철학에서 제시한 용불용설에 먼저 나타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엥겔스는 다윈이나 또는 다윈을 추종하는 자연과학자들 그 누구도 라마르크의 위대한 공적을 과소평가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는 라마르크 이후 두 가지 과학, 발생학과 고생물학에서 특이한 일치가 발견되었고, “이 일치는 진화론(Die Entwicklungstheorie)에 가장 확고한 기초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엥겔스가 특별한 일치를 발견했다고 말한 것은 당시 독일에서 헤켈이 생물의 배 발생도 및 생물계통수를 발표한 것과 프랑스의 퀴비에가 각 지층에 묻힌 화석을 연구하여 지질연대와 화석연대를 결정하는 방법을 발표한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헤켈과 퀴비에가 발표한 앞의 학설들이 생물학적 진화론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헤켈의 배 발생도와 생물 계통수는 뒤에 과학적으로 오류인 것이 판명되었고, 퀴비에의 화석연구에서는 중간 화석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다. 엥겔스는 이런 사실을 예견했었는지 용의주도하게도 진화론 자체는 아직 연륜이 짧다고 하면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종의 진화과정에 관한 오늘날의 엄격한 다윈의 견해가 많은 수정을 받을 것임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해놓고 있다. 엥겔스의 말은 정확히 오늘날의 다윈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은 이제 다윈의 원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변형된 이론도 사실과는 다른 허구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엥겔스는 다윈의 유기적 종의 진화에 관하여듀링이 가지고 있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듀링은 종의 ...... 가변성은 용인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므로 동종의 자연산물이 어떠한 계통에 의하지 않고 서로 독립하여 병존한다는 것도 가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듀링이 자연발생과 생식발생을 모두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듀링은 생식발생에 의한 계통이 매개하는 종의 변화는 자연에 대해 부차적으로 작용하는데 불과한 것으로 보면서 이 두 가지의 발생원인에서 우연히 동종의 자연산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듀링에게 만물의 특질이 심오하게 서로 다른 이유와 근거는 우주의 제 관계에 의한 생존조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 반면에 다윈이 역설하는 자연도태는 이차적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듀링의 견해에서는 다윈의 진화이론은 제한된 이차적 범위에서만 유효한 것이며, 이것은 형태변화(Metamorphose)와 혼동할 소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듀링에게는 오히려 구성(Komposition)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다윈의 자연도태 이론이 변화의 보존만을 다룬 것이라면, 다윈의 이론은 구성적인 변화를 논의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변화의 원리는 훨씬 뒤에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에 의하여 유전자의 조합에 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엥겔스는 듀링의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지도 못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니벨룽겐의 반지의 작가와 비견될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하자고 비아냥거림과 공박을 동시에 퍼붓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다시 살펴보면, 유물론자 듀링은 다윈의 진화론이 아직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같은 유물론자 엥겔스는 다윈을 옹호하기 위하여 듀링을 왜곡하고 막무가내로 공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엥겔스는 유물론자 듀링을 왜곡하여 맹렬히 반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신론적인 다윈의 잘못된 이론은 맹렬히 옹호하고 있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유물사관에 이미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엥겔스는 공산주의 창시자로서 같은 공산주의자끼리도 경쟁에서 적이 되면 서로가 처절한 공격의 대상이 될 뿐이며, 필요하면 적과도 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나타난 공산주의 역사에서 보면 그의 추종자들이 정치적 권력투쟁에서 이와 같은 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사건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6) 엥겔스의 유기체 이론: 세포와 감각

 

엥겔스는 반듀링론1부 제8자연철학유기계(결론)”에서 듀링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인 단백질의 형성, 단백질과 세포, 그리고 생명의 출현 등에 관련하여 논의한 것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그의 유기체 이론을 전개한다. 엥겔스는 여기서 종의 기원만을 다룬 생물학 제2차 법칙인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 영역을 벗어나 제1차 법칙인 생명의 기원에 관련한 영역으로 한 발짝 들어간 것이다. 말하자면 엥겔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중에 오파린에 의하여 개척되어야 할 생명의 기원 논의를 한발 앞서 시작한 것이다. 8장은 뒤에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엥겔스는 먼저 듀링의 수학 및 자연과학에 관한 박식을 보잘 것 없는것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듀링이 유기물에 관한 학문(생물학)에서 진화라는 말 대신에 구성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한 것을 보면듀링이 스스로 무식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엥겔스는 듀링이 중력의 작용을 받는 원자라는 말을 쓴 것을 꼬투리 잡아서 맹렬하게 공박한다. 엥겔스는 듀링의 이 말이 원자와 분자 사이의 구별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원자는 중력이나 다른 역학적 또는 물리학적 운동 형태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작용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분자를 구성하는 것이 원자라는 것은 당시에도 과학적 상식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분자가 중력의 작용을 받는 것이라면 그 구성물인 원자가 그 작용을 받지 아니한다고 어찌 말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원자는 화학적 작용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원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상식수준에서 보아도 듀링과 엥겔스 사이에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는 중학생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엥겔스는 유기체는 가장 저급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세포 즉, ...... 단백질 덩어리로 되어 있으며, 이 세포는 그 내부에 세포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모든 세포는 반복되는 세포분열에 의하여 동물의 알 속에 있는 배종이 수정 뒤에 차차 완전한 동물로 발육하는 것이며, 동일한 방식으로 증식하며, 발육하고, 성장해서는 소모된 조직의 교체가 일어난다. 엥겔스는 이렇게 유기체가 형성되는 발육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과정을 구성이라는 말로 쓰자고 제안한 듀링에 대해서 무식을 폭로하고 있다고 또 한 번 공박한다. 그런데 다윈은 진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자연도태에 의한 변이에 대해서 언급했을 뿐, 달리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듀링은 진화의 원인으로서 변이라는 것을 단순히 구성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듀링은 유기체의 형성과정인 발육구성이라는 말을 쓰자고 한 것이 아니라, 다윈의 진화는 단순히 유기체의 구성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논쟁에서 현대인의 과학적 상식에서 보아도 엥겔스가 무식한지 듀링이 무식한지를 금방 알 것이다.

 

엥겔스는 생명에 대해 무기계도 역시 자기를 완성하는 운동의 체계이다. 그러나 ...... 물질 순환의 매개와 고유한 배열이 시작되었을 때 비로소 좁고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생명을 말할 수 있다는 듀링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물질 순환의 매개라 함은 신진대사를 뜻하는 것이며, “고유한 배열이란 생명체의 기관의 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듀링을 반박하여, 배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단세포 동물은 무생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며,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식물과 심장이 없거나 또는 다수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동물은 무생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엥겔스의 이런 반박은 현대생물학에서 보면 순전히 억지이다. 그러나 유물론자 세계에서의 법은 터무니없는 억지라도 권위나 세력이 큰 자가 이기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엥겔스의 비판은 계속된다. 듀링은 자연계의 모든 유기체의 근저에는 한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면서, 이 유형은 가장 불완전한 식물의 가장 저급한 활동 속에서도 벌써 그 일반적인 본질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엥겔스는 이러한 듀링의 주장은 완전히 무의미한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유기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유형은 세포라고 하면서, “세포보다 훨씬 저급한최하급 유기체라는 것들을 열거하고 있다. 원생 아메바, 어떠한 분화도 없는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 기타 일련의 적충(Monere)과 수관이 있는 모든 해초류(Siphoneen)가 그것들이다. 엥겔스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듀링이 세포를 모르고 있다고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은 모두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세포학 이론은 당시에도 이미 독일에서 비르효에 의하여 발표되어 있었고 엥겔스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엥겔스는 세포가 아닌 단백질 덩어리를 최하급 유기체에 포함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엥겔스가 저급한 유기체들에 단백질 덩어리를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생명체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그의 말에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엥겔스는 세포보다 훨씬 저급한생물들은 모두 그 본질적인 성분이 단백질이고, 따라서 단백질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살고 죽음으로써 고급 유기물과 연결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엥겔스는 이렇게 세포 이전의 단백질 자체를 생물로 보는 그의 독특한 유물론적 생명관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공산주의자들의 생명관의 교의(敎義)가 되었다. 엥겔스의 관점에서 생명체는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생명은 단백질의 화학작용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과학적 무신론의 가설을 뒤에서 논술하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엥겔스는 감각을 동물계의 특징으로 보는 듀링의 관점을 반박하기 위하여 식물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감각으로의 비약이 완성된 점에 있다는 듀링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듀링에 의하면 이 경계는 이렇게 외면적으로 불확정적인 또는 확정할 수 없는 형태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에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감각의 흔적이 없고 또 감각에 대한 소질도 없다.” 엥겔스는 이러한 듀링의 말 외에도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감각은 특수한 분화로, 동물의 절대적인 특성이라는 말까지 끌어다 놓고 두 사람을 동시에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첫째로는 듀링이 헤겔의 말을 최후의 궁극적 진리라고 인용한 것을 서투른 수작이라고 비꼬고 있다. 둘째로는 동물에게만 감각이 있다는 이 두 사람의 말에 대해 엥겔스는 식충식물을 예로 들어 반박하고 있다. 셋째로 엥겔스는 듀링이 원생동물과 식충류 등은 어떤 신경기관의 흔적이 없다고 한 말과 생리학적으로 감각은 그 어떤 신경기관이 현존하는 것과 결합되어 있다고 한 말을 반박하고 있다. 엥겔스는 감각은 반드시 신경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세히 확증되지 못한 일종의 단백체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을 보면 당시의 생물학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엥겔스는 여기서 듀링이 다윈에게 동물은 식물에서 진화한 것인가?”라고 질문한 것을 두고, “형체를 형성하는 도식화를 매개로 하여 수행되는 신진대사야말로 생명과정의 특징이다라는 것밖에는 말할 줄 모른다고 듀링을 또 다시 핀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