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 비판

유물진화론적 의식과 정신의 의미

heojohn 2020. 3. 11. 14:19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보면, 인간의 생명이란 그저 물질의 변화과정에서 거품처럼 잠깐 생겨났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생명이란 것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일시적 물질현상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면 그들 사이의 동일성을 보지 못하고 비슷한 것들을 보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동일성과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의 진실성이다. 전문가들이 고의 또는 실수로 오류를 저지른다면, 그 결과는 일반 사람들에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인의 실수는 개인의 몫으로 끝나지만, 전문가의 오류는 사소한 것이라도 전체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의적으로 기획된 경우에는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사관이 바로 그런 사례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사람들에게 거짓 이론인 과학적 무신론을 진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인간의 생명과 의식을 물질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과 생명에 대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견해와 일반적인 상식인들의 이해를 비교해보는 것도 과학적 무신론의 검증에 유익할 것이다.

 

엥겔스의 반듀링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조차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로부터 생명체로 진화한 것이라면, 인간은 물질이 조합된 기계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기계적 유물론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리고 1931년 공산당 중앙위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에 어긋나는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하고 반동적인 기계적 유물론자의 혐의를 씌워 트로츠키를 축출했다. 이후부터 공산주의 사회에서 스탈린 이외에는 새로운 철학을 논의할 수 없었다. 오직 스탈린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곧 스탈린의 과학적 무신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만 가능했다.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에 의하면 실재(實在)하는 것은 물질밖에 없다. 의식은 물질로부터 파생되는 2차적 현상(現像)에 불과하다. 따라서 물질은 관념을 만들어내는 의식과 별개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 속에 형성되는 관념은 실재하는 물질에서 파생되는 메아리와 같은 현상이라는 것임을 의미한다. 과학적 무신론은 인간의 의식이 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관념이라는 것은 물질세계가 인간의 사고력으로 정신에 표현된 것일 뿐이다. 과학적 무신론은 이렇게 물질에서 감각, 사고, 의식 등의 모든 정신 현상이 생겨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의 정신이 창조자이신 신에게서 기원한 것이며, 물질도 신의 창조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유물론과 대립하는 관념론을 지지한다. 과학적 무신론은 관념론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사상도 부정한다. 마르크스는 객관적 진리가 인간의 사유에서 유래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사유의 진위, 즉 그 현실성과 힘, 그 차안성을 실천으로 검증해야 한다.” 일반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비과학적 이론이 그동안 인류사회의 일부를 지배하면서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왔는지를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실천으로 검증해서 입증된 진리일까?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몸에서 움직이는 의식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레닌의 반영론으로 되돌아가야한다. 레닌에 의하면 의식은 물질현상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레닌의 주장에 긍정할 수 없으면 의식의 원천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의식의 원천을 검증함에 있어서 굳이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찾아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바로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전혀 부정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출생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의식에 대한 가장 확실한 연구의 길이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부모의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였고, 이것들이 수정을 통해서 모체에서 성장했다.

 

생명체는 태어나서는 죽기까지 생명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은 기계를 작동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결정을 내린다. 의식이 물질현상의 반영이라면 인간의 몸에 의식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인간의 의식은 같은 사물에 대해서는 반응이 같아야 한다. 같은 생활조건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기를 호흡한다면 물질적 조건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에 대한 의식적 반응도 같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식을 섭취해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의식이 물질현상의 반영일 뿐이라는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명백히 입증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렇게 잘못된 레닌의 말 한 마디를 진리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생명의 기원과 의식 또는 정신 현상에 대해서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유물진화론으로는 생명과 의식의 기원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적인 기원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즉 과학적 무신론자는 신적 기원에 주목하지 않고 부정하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답은 변증법적 유물론 비판의 저자 베터(Gustav A. Wetter)의 결론에서 얻을 수 있다.

 

소비에트 철학의 본질적 목표는, 그 본래의 존재이유가 신의

존재의 불필요성을 논증하는 것이며, 더구나 유물변증법의 가장

근본적 법칙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에 의해서 이것을

운동의 근원으로 삼아 1의 운동자”, 창조주 신을 배제하려는

데 있다.

 

이렇게 공산주의 철학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에서 신을 부정하면서 기독교와 종교를 타도하려고 창안해낸 허구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자 했던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양자를 비교하는 하버드대학교 러시아역사학 교수 리처드 파이프(Richard Pipes) 짧은 말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자본주의는 현실에 민감하고 스스로 조절

능력이 있었고 또 경험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모든 위기들을

용케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반면에 공산주의는 엄격한 원리이고,

유사종교로 바뀐 유사과학이며, 정치적으로 경직된 정권 속에 구현

되어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자체의 잘못된 개념들을 밝혀낼

수 없다는 게 증명되었고 결국 허깨비(공산주의가 가져온다고

하는 허구의 이상적 세계)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들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진화론이 스스로 모순적이면서 아무런 증거도 없는 고대 자연발생론의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