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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은 기독교적 진리인가? Is the theory of the earth-age 6,000 years the Christianomical truth?

heojohn 2020. 4. 2. 00:28

 

 

 

. 서론

. [주장 1] 성경은 하나님이 수천 년 전에 문자 그대로 하루가 24시간인 6일 동안에 창조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

. [주장 2] 출애굽기 20:11절은 창세기 1장을 수십억 년의 연대와 조화시키려는 모든 시도 를 차단하고 있.

. [주장 3] 노아의 홍수는 수십억 년의 시간을 쓸어버린다.

. [주장 4] 예수님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a young-earth creationist)셨다.

. [주장 5] 수십억 년의 연대는 죽음과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 이다.

. [주장 6] 수십억 년 이라는 생각은 과학적인 사실들로부터 생겨나지 않았다.

. [주장 7]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은 수십억 년을 입증하고 있지 않다.

. 결론

 

 

I. 서론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age of the earth)6,000년이라는 설을 기독교적 진리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학교에서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고 배운 젊은이들이 이 문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는 사회에서 무지의 종교로 오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은 창세기를 해석하는 기독교적 견해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6일 창조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족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대개 6,000년 전에 우주 만물의 창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견해가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성경- 특히 예언서들의 문자적 해석에 따라 임박한 것으로 믿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초기 신자들의 기대보다 늦어지면서 교부들의 성경 해석에 그리스 철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에 대한 의문을 이해하려면, 그런 이론이나 주장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목적, 그리고 자료의 사실성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의문에 대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설된 미국의 AiG(Answers in Genesis)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테리 몰텐슨(Terry Mortenson)이 대변인(speaker)으로 활동하면서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Seven reasons why we should not accept millions of years)라는 소책자(booklet) 기사를 게재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테리 몰텐슨의 기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이론의 바탕이 되고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소책자의 제목을 검색하면 KACR 웹사이트의 번역문과 그것을 인용한 몇 개의 국내 카페, 또는 블로그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영어로 저자의 이름과 함께 검색하면 AiG 웹사이트에서 원문을 찾아볼 수도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기사 전부- 테리 몰텐슨이 제시하는 7가지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서론부터 시작하여 7가지 이유를 한 번에 하나씩 인용하면서 검토하고 나면, 지구의 나이에 대하여 새로운 기독교적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몰텐슨의 서론]

 

지구의 나이(age of the earth)에 관해서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에 강력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 역사에 의하면 18 세기까지 크리스천들의 보편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시기 대략 4천년 전에 문자 그대로의 6(six literal days) 동안 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노아의 시대에 한 번의 전 지구적 홍수(a global Flood)를 일으켜 이 세계를 파멸시키셨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대략 200년 전에 일부 과학자들이 지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을 개발하였다. 그 이론은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수억 수천만 년 되었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지난 200년 동안 기독교 지도자들은 수억 년의 연대와 성경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시도들을 하였다. 이러한 타협적 이론들에는 날시대 이론(day-age view), 간격이론(gap theory), 지역적 홍수론(local flood view),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등이 포함된다.

많은 수의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점점 더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만이 진정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로 되돌아가고 있으며, 과학적 증거들은 오늘날 과학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진화론적 오래된 지구연대와 맞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지구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그리고 크리스천들을 분열시키는 지엽적인 주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AiG와 여러 창조론 단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크리스천들이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주제(연대 문제)에 관하여 당신이 좀더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있는 뛰어난 글들을 살펴보고, 또한 여기에서 지적한 점들을 철저히 방어하고 있는 관련 글들을 읽어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비판적 검토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적 진리가 아니라, 창세기 해석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서슴없이 예수님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믿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이와 다른 해석을 모두 타협 이론이라고 배척하고 신앙의 형제들에게 예수의 제자로서 어떻게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느냐고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타협적 이론들에는 날시대 이론(day-age view), 간격이론(gap theory), 지역적 홍수론(local flood view),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사회에서 무지의 종교라는 비난을 받고 있고,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동은 기독교에 유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문제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세기 초부터 과학계가 지구의 나이를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이에 따라 창세기 해석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창조기사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문제로 논쟁이 가장 극심했던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에서 최대의 보수적 장로교단인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1998년에 이 문제에 대한 장로교적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과학자와 신학자들로 창조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PCA 창조연구위원회는 2년간의 연구 끝에 2000년에 개최된 28차 총회에 보고서(Report of the Creation Study Committee)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창세기 1장의 ’()4가지의 해석 방법- 달력일(Calendar day) 해석, -시대(day-age) 해석, 구조 가설(Framework Hyphothesis) 해석, 유비일(Analogical day) 해석-이 가능하다고 제안했고 총회는 이를 목사 안수의 기준으로 채택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2001년부터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2003년까지 연구한 결과를 2004년 총회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앞의 PCA4가지 해석 방법에 1가지- 비확정적 길이의 날 견해가 추가되어 있으나 그것의 실제적 내용은 날-시대 해석 방법의 일부 변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은 항의 달력일(Calendar day) 해석을 따르는 것이다. 나머지 3개항들은 모두 지구의 나이를 6,000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PCAOPC가 인정한 창세기 해석 방법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고 해석하거나,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허용된다. 사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날에 관련된 모든 해석을 태초라는 말 하나에 묻어 놓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태초6,000년 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기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태초는 창조주 하나님의 시간에 속하는 카이로스(καιρός)적인 것이므로 인간이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적(적어도 장로교적) 성경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미국 장로교 교단들이 창세기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여 기독교적 입장이 (적어도 장로교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확립된 상태이다. 그것은 지구의 나이가 6,000년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창세기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보수적 장로교단들이 먼저 6,000년보다 더 오랜 지구연대를 수용했다. 미국의 장로교단들이 사회와 과학계에 맞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선교 대상인 일반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학자들이 먼저 이런 입장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젊은 목회자들에 의하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과학계와 일반 사회에서는 지구의 나이에 대해 46억년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일반사회에서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조롱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기독교의 대표적 진리처럼 주장하기 때문이다. 과학계의 주장을 반박의 증거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를 오히려 반시대적인 종교로 만드는 일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태초라는 말에 지구의 나이를 묻어두는 것이 좋다. 지구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않아도 기독교 신앙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왜 고집스럽게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기독교의 대표적 진리처럼 주장하면서 사회의 공적(公敵)이 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몰텐슨의 7가지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 [주장 1] 성경은 하나님이 수천 년 전에 문자 그대로 하루가 24시간인 6일 동안에 창조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 (day)’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yom)’이다. 구약성경에서 욤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의 하루(a literal day)를 의미하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리고 하루를 의미하지 않을 때는 문맥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의 문맥은 창세기의 날들이 문자 그대로의 날이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첫째, 성경에서 최초로 시간으로서 사용된 단어 욤은(창세기 1:4-5) 두 가지 문자적 의미로서, 즉 빛/어두움 주기에서 빛 부분()과 전체 빛/어두움의 주기(첫째 날)로 정의되어 있다. 둘째, 욤은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 모든 곳에서 함께 또는 각각, 그리고 욤이라는 단어와 함께 또는 없이 문맥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항상 문자 그대로의 하루 중에서 문자 그대로의 저녁과 아침을 의미하고 있다. 셋째, 욤은 숫자로 수식되어 있다. ,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 이러한 사용은 구약성경의 모든 곳에서 문자적인 날들을 가리킨다. 넷째, 욤은 창세기 1:14절에서 하늘의 천체들과 관련하여 문자 그대로 정의되고 있다.

이들 창조의 날들은 단지 대략 6,000년 전에 일어났었다는 것은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여기에는 마태복음 1장의 간략하게 쓰여진 족보와는 분명히 다른, 매우 상세한 연대기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와 성경의 다른 연대기적 정보들로부터 분명해진다.

 

-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지구의 나이 6천년설과 창조 6일의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주장이 창세기의 (yom)’의 해석과 아담의 족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창조를 하셨다고 말하고 있을 뿐, 창조의 시기가 6,000년 전이고, ‘24시간이라고 명확하게 기록된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기독교인들은 몰텐슨과 같이 성경 인물들의 족보와 기타 연대기적 정보에 근거하여 지구의 나이, 곧 우주의 창조연대를 6,000년으로 해석하는 젊은 우주론을 주장하고 있다. 젊은 우주론은 정상적인 기독교인들이 그냥 덮어둘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젊은 우주론이 하나의 성경 해석이라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의 근본 진리처럼 주장되면서, 기독교와 사회에 갈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욤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태음력에서 하루를 계산하는 단위이다. 창세기의 욤은 기본적으로 유대인의 하루를 의미한다. 그것은 해가 지는 때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다시 뜬 해가 낮을 보내고 다시 지는 때까지를 기준으로 하여 12시간으로 등분한다. 이에 비해 현대의 태양력은 하늘의 태양이 지구의 수평선에 직각으로 떠 있는 때를 정오로 하고,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시간을 24 등분하여 하루로 계산한다. 하루의 시작점인 0시는 정오로부터 12시간 전, 즉 태양이 지구의 정반대편에 떠있을 때이다. 이에 따라 곳곳마다 시간이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므로 경도(經度) 0도인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세계표준시간(GMT: Greenwich mean time)을 정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영국 국교회의 유명한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는 율리우스 태양력(Julian Calendar)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는 주전 40041023일 일요일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셔 주교의 우주론적 관점은 창조의 첫째 날에 지구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지구 위에 빛이 비췄다고 보고 있다. 그 빛은 태양의 빛이다.

 

젊은 우주론은 어셔 주교의 우주론을 따르는 것으로 현대인들의 과학적 우주론 지식과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몰텐슨을 비롯한 젊은 우주론자들은 과학계의 오랜 우주론을 전면 부정하면서도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것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의 실상이다. 그러나 창세기 1:14에 의하면 하늘의 광명체들은 제4일에 창조되었다. 이어진 15절에서는 광명체들이 땅을 비추는 것이며, 16절에서는 큰 광명체가 낮을 주관하고 작은 광명체가 밤을 주관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이 해와 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별들은 그 다음에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젊은 우주론이 기독교의 성경적 진리처럼 주장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우주론의 근거가 되는 의 해석과 성경 인물들의 족보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한다.

 

첫째, 몰텐슨과 같이 을 오늘날의 24시간 하루라는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는 문제에 내포된 오류를 살펴보자. 하루는 기본적으로 24시간이 소요되는 지구의 자전과 햇빛이 비추는 시간에 따라서 나타나는 낮과 밤의 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그 말 안에 담긴 실질적인 내용이 날짜별로 너무 다르다. 첫째 날은 빛이 창조되면서 시작되었다. 오랜 우주론에서는 이 빛이 하나님이 우주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빅뱅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젊은 우주론은 창 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구절이 빛의 창조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지구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법에 따르면 이 구절들은 빛이 창조된 첫째 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첫째 욤은 저녁이 없이 낮만으로 하루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빛의 근원인 해와 달과 별과 같은 광명체들은 제4일에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같은 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지만, 셋째 욤까지는 태양과 달이 지고 뜨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일이 실질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욤이다. 그렇다면 제3일까지의 과 제4일 이후의 이 문자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결국 이라는 말이 24시간이라는 하나의 의미만 가졌다고 보는 문자적 해석에 따르면 앞의 3일 동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수식어는 사실과 틀린 말이 된다.

 

그리고 성경에는 24시간 하루보다 긴 시간의 의미를 가졌다고 기록한 곳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고 경고하는 구절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의 성경적 의미를 무시하고 창조 6일을 무조건 24시간 으로 보는 해석은 젊은 우주론자들의 일방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은 창조 6일간의 에 대해서 똑 같은 24시간 하루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굳이 의미를 왜곡하면서까지 억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성경의 애매한 부분을 읽을 때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 더욱 깊이 연구하거나, 아니면 성령의 조명을 기다리는 겸손의 자세이다.

 

둘째, 아담의 족보 등을 연대기적 자료로 사용하여 창조연대를 계산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구약성경에 기록된 아담의 족보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들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의 기록에 대해 문자 그대로”(literal)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는 무오성을 주장한다면,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구절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성경의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리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지 않는가? 성경은 기록된 시기의 언어적 의미에 따라 쓰인 것이다. 현대신학은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에 대해 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지, 유대인들이 율법서를 해석하는 식의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다는 문자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오늘날 서로 간에 차이가 나는 사본들과 번역본들을 가지고서는 어느 누구도 당시의 언어적 의미와 성경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율법 해석법을 따르는 정통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과는 달리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만인제사장권을 교리로 하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은 로마가톨릭 교황의 독단적 성경 해석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의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지, 해석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진리를 찾는 올바른 방법은 추상적인 말 하나의 꼬리를 잡고 헤맬 것이 아니라, 거시적 문맥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서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진리는 있을 수 없다.

 

만약 몰텐슨과 같이 문자 그대로의 성경해석 방법을 따른다면, 6,000년 설 주장의 근거가 되는 족보 자료의 문제에 대해서도 창세기의 것은 옳은 것이고 신약성경의 것은 틀린 것이라는 판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식으로만 해석하면,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이 적지 않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젊은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24시간 6일 창조설과 우주연대 6천년설은 기독교에서 인정되는 하나의 성경 해석 방법이고. 창조론의 하나로도 인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에 대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문자주의적 젊은 우주론은 성경 해석을 모순에 빠지게 만들고, 또한 기독교와 과학계를 비롯한 일반인들과의 사이에 불필요한 분쟁을 초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주의 나이 문제는 기독교에서 교리로 다룰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선교에도 아무런 유익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로 사회적 분쟁까지 야기하는 행동을 스스로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 [주장 2] 출애굽기 20:11절은 창세기 1장을 수십억 년의 연대와 조화시키려는 모든 시도 를 차단하고 있.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욤은 계명의 양쪽 부분에서 같이 사용되었다. 만약 하나님이 오랜 여섯 시대(기간) 동안 창조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 동안 일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불명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3개의 히브리 단어 중 하나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문자적으로 하루를 나타내는 유일한 단어를 선택하셨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했다. (그 단어가 수천만 년의 시간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19세기 초까지 생겨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대 이론이나, 골격가설거부되어야만 한다. 또한 6일 이전에 수십억 년이 있었다는 간격이론이나 다른 시도들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in six days)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의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만드셨고, 첫째 날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비판적 검토]

번역자는 원문에 없는 성경 구절까지 친절하게 인용해놓고 있다. 어쨌든 몰텐슨은 이 항에서 20:11의 구절이 24시간 6일 창조설과 6천년설을 지지한다고 그의 문자적 성경해석법에 따라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창조기사를 몰텐슨의 방식에 따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첫째 날에 하신 일은 흑암에서 빛을 창조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첫째 날 욤에는 낮만 있고, 밤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흑암을 창조했다는 기록이 없고, 흑암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렇다면 태초에 천지 창조는 흑암에서 시작되었거나, 아니면 흑암이 태초의 어느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성경에는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욤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면서도 흑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넘어가버린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어떤 것들은 문자적으로 기록되었음에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또 어떤 것들은 기록되지도 않았음에도 문맥의 흐름을 왜곡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런 해석법이라면, 의문에 의문이 증폭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과연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다는 말인가?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분(5:17)이신데, 하나님께서 6천 년 전에는 날마다 무얼 하셨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은 양들이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했는데, 인간이 양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문자 그대로의 방법에 따라 대답해야 하는가? 성경을 획일적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와 같이 부자연스러운 질문을 초래하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성경은 일반적인 교과서나 백과사전이 아니다.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책은 더욱 아니다. 젊은 우주론은 성경에 분명한 문자적 근거도 없이 6일 창조설과 우주연대 6천년설을 주장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건에 오히려 의문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성경에서 문자로 기록되지 아니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추정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성경 전체를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법에 의존한다면, 성경은 그야말로 동화집보다 우스꽝스러운 책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유비적 해석법은 이런 난점들을 해소하기 위하여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사용된 것이다.

 

몰텐슨은 불명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3개의 히브리 단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히브리어는 어휘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몰텐슨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욤이라는 단어 하나가 낮의 시간, 낮의 특정한 시간, 24시간, 그리고 24시간보다 긴 특정한 시간이라는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4가지 의미로 쓰인 욤은 문맥에 따라서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하는 말이다. 창조연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욤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몰텐슨은 욤이라는 단어가 수천만 년의 시간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19세기 초까지 생겨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 이후에 등장한 오랜 우주론적 성경 해석법은 거부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초부터 등장한 과학계의 오랜 우주론을 비판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인간의 지적 활동과 시대의 발전을 부정하고 문자적 성경 해석에만 매달려 살자는 것과 같은 주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몰텐슨의 주장이 그런 식으로 정당화된다면, 인간은 19세기 이전의 수준에서 지적 활동을 멈추어야 하고, 과학의 발전이 이룩한 현대적 문명사회를 거부해야 한다는 말인가?.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런 방법으로 지동설의 진리와 과학의 발전을 막을 수 있었던가?

 

과학적 오랜 지구론은 뉴턴(Isaac Newton, 1643-1726)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구가 불덩어리에서 시작되어서 식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뉴턴은 지구 크기의 쇳덩어리가 냉각되는 시간을 추정해서 지구의 나이가 약 5만년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지구의 나이는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현재 지구의 나이가 약 46억년이라는 주장은 우라늄-납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하여 운석과 월석, 그리고 지구의 암석 등을 측정한 결과이다. 그동안에 성경 해석법도 발전하면서 지구의 나이에 대한 견해도 여러 가지가 등장했다. 새로운 사실과 방법들이 발견되면 이론과 해석은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검토한 미국의 보수적 교단인 APCOPC에서는 현재 창조연대에 대한 해석법으로 4가지 또는 5가지를 각각 공인하고 있r,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두에서 이미 밝혀 두었다. 여기서는 그것들과 몰텐슨이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들을 비교해서 검토해보기로 한다.

 

몰텐슨은 24시간 달력일(calendar day) 해석을 근거로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설이 유일한 성경적 진리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 보수적 교단과 신학계에서는 6일 창조의 하루가 24시간보다 긴 시간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6,000년보다 오랜 나이의 우주론을 인정하는 유비적 해석, -시대 해석, 골격가설(이것은 틀이론, 구조가설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등을 모두 가능한 성경 해석법으로 공인하고 있다. 다만 간격이론 등에 대해서는 공인하지 않고 있다. 간격이론 등은 창세기 12절과 3절 이하의 사이에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1장의 창조와 2장 에덴동산에서의 창조를 별개로 보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방법의 창조를 인정하는 유신진화론 등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지 아니한 점진적 창조론도 비슷한 이유로 공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보수적 교단과 신학계에서는 공인하는 것들과 거부하는 것들을 구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텐슨과 같은 젊은 우주론자들은 달력일 해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인된 견해들마저 모두 거부하고 있다.

 

창조기사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성경 해석은 유비적 해석법을 적용하여 창조 6일을 안식일까지 묶어서 7일 한 주간 제도의 모형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유대인을 위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십계명 제정과 유대인을 선민으로 만드는 과정,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면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처벌하거나 속죄하는 방법 등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출애굽기 208-11절에서는 제7일 안식일을 포함하는 주간(週間) 제도의 율법은 하나님의 창조 주간을 모형으로 제정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한 유비적 해석 방법은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같지 않다는 겸손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비적 해석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 주간에 대해 각 욤의 길이를 따지지 않지만, 욤이 24시간의 하루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유비적 해석법은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하신 하나님이 제7일에 안식하셨고, 이를 모형으로 인간들도 6일 동안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으니,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일을 처음 시작한 때는 성경에 쓰인 문자 그대로 태초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태초6,000년 전인지, 또는 그보다 수십억년 전인지에 대해 굳이 논쟁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우주의 나이는 교리에 절대적인 요소가 아닌 아디아포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천지 창조와 동시에 시작된 우주 시간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우주의 시간 안에 존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초월적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두 가지 시간을 그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두 가지 시간의 질적 차이를 아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또는 정답을 알 수 없는 태초의 시간을 그 말에 그대로 묻어 두면 되는 것이지,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는 우주의 나이에 대해 괜한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하나의 물리적 현상으로 연구하는 현대과학에 맡겨두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우주론자들이 현대 과학계에 맞서 24시간 6일 창조론과 우주의 나이 6천년설을 기독교의 근본 교리처럼 완고하게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시대착오적이라는 경멸과 적대감만 초래하는 일일 뿐이다.

 

 

. [주장 3] 노아의 홍수는 수십억 년의 시간을 쓸어버린다.

 

창세기 6~9장에서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인 격변적 대홍수라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예를 들면, 홍수는 모든 범죄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상동물과 새들, 그리고 지구의 표면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의도되었다. 이것은 단지 전 세계적인 홍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방주의 목적은 모든 종류의 육상동물들과 새들을 2마리씩 구원하여 홍수 이후에 지구상에서 재번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만약 홍수가 지역적(국소적) 홍수였다면, 방주는 전혀 불필요했다. 홍수가 발생하기 전에 사람, 동물, 새들은 홍수 지역을 벗어나 이주할 수 있었을 것이며, 홍수 이후에 바깥 지역에서 살고 있던 동물들이 이주해 와서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아 홍수의 특징은 비가 40일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침식, 진흙 사태, 허리케인 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urst open)”(7:11)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들은 분명히 150 일 동안 많은 장소에서 지표면이 갈라지는 지각 변동적인 구조적 파괴(tectonic rupturing)가 있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tsunamis) 등이 동반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노아의 홍수는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 모습들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 수천 피트의 퇴적물들이 물에 의해서 퇴적되었고, 후에 이들은 수십억 개의 화석들을 포함하는 암석으로 굳어졌다. 만약 1년여의 홍수가 대부분의 암석지층과 화석들을 만들었다면, 그러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 암석 지층들과 화석들은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검토]

노아의 홍수는 사실 지구의 나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24시간 6일 창조론에 관련된 것도 아니므로 젊은 우주론에 굳이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몰텐슨이 노아의 홍수를 젊은 우주론에서 논의하는 것은 노아의 홍수가 그들이 주장하는 창조연대 1656(BC. 2349)에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연대가 정당화되면 몰텐슨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모든 지층이 노아의 홍수 때에 한꺼번에 형성되었고, 모든 화석 역시 그때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46억년 지구 연대를 바탕으로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서 사용하는 지질연대표(또는 지질주상도)를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지구 연대를 부정하는 주장은 AMS(가속기질량분석기) 등을 이용하는 암석과 화석의 연대측정 기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현재 병원에서 인체 내부를 영상으로 정밀하게 살펴보면서 질병을 진단하는 최신 MRI, 우리가 쓰는 휴대폰이 과거의 TV방송국과 전화국의 기능 전체를 통째로 탑재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쉽게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MRI로 진단을 받거나 매일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도 그런 장비들을 만들어낸 과학기술과 데이터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모순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성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젊은 우주론을 수용할 수 있다 치더라도, 아이들에게 젊은 우주론을 가르치면 그들은 상식 불구자나 과학 저능아가 되기 십상이다.

 

몰텐슨이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urst open)”(7:11)를 설명하는 부분도 왜곡되었다. 지표면이 갈라지는 지각 변동적인 구조적 파괴가 있었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성경에서 깊음은 커다란 호수 등을 채우고 있는 많은 양의 깊은 물을 가리키며, 곳곳에 있는 깊음에 물을 공급하는 은 그 깊음의 지각판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7:11절은 깊음의 샘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지각판이 파열(tectonic rupturing)되어 깊음의 물이 빠른 속도로 불어 오르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깊음의 샘이 터진 곳에서는 국지적으로 물이 솟구친다고 해도 전 지구적으로 보면, 이 물은 수면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샘에서 솟아 나온 물의 양()만큼 다른 물질이 그 샘을 채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수면을 상승시킨 원인은 다음 구절(7:12)에서 하늘에 창문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곧 바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쏟아진 물들이 전 지구를 뒤덮었다가 홍수가 끝난 후에 어디로 빠져 나갔는지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어났던 물이 깊음의 샘으로 다시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고, 하늘의 열린 창문으로 궁창위로 다시 올라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물은 지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증기로 증발하는 물은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구름에 갇혀 있다. 노아의 홍수 기사를 토대로 하는 홍수 지질학은 이런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기사를 유비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 방법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지만, 창세기는 결국 고대 유대인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기독교에서 사실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들을 유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공인된 해석법의 하나이다.

 

둘째는 젊은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노아의 홍수가 지구 역사에서 유일한 격변적 사건으로 정당화되면, 오랜 연대에 의존하는 진화론을 부정할 수 있다. 창세기에는 지질학적 격변에 관한 기사로 노아 홍수에 관한 기사가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몰텐슨과 젊은 우주론은 노아의 홍수를 바탕으로 홍수 지질학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 지식을 가진 현대인들이 홍수 지질학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홍수 지질학은 안식교 창립자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25) 여사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설교를 바탕으로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1870-1963)가 저술한 신지질학에서 처음 주장된 것이다. 이것을 존 위트콤(John C. Whitcomb, 1924- )과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창세기 홍수에서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 부분적으로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은 이 계보에서 주장하는 홍수 지질학을 답습하는 것이다.

 

홍수 지질학은 수천 피트의 퇴적물들을 덮은 거대한 양의 토사(土砂)가 홍수 이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전제한다. 노아의 홍수는 지질학적으로는 매우 짧은 시간인 창조 연대 1656년에 있었다. 홍수 지질학의 가장 큰 문제는 초기 지구에 이 거대한 양의 토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 지질학에 의하면 긴 시간에 걸친 풍화(風化) 작용으로 초기 기반암이 부서져서 흙 입자(粒子)가 되었다. 초기 지구에 충돌했던 것으로 얄려진 달과 소행성들도 기반암을 부수어서 흙 입자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것들이 퇴적하여 퇴적암을 형성하였다. 화성암을 형성한 것은 화산 활동에 의한 지구 내부 마그마(magma의 분출물이다. 퇴적암과 화성암의 일부는 변성암이 되었다. 이것들이 묻혀서 지층을 이루거나, 현재 지표면에 남아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에서부터, 자갈, 모래, 그리고 밀가루처럼 부서져 있는 진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토사들이 존재하고 있음이 이런 사실들을 증명한다. 이런 과정은 짧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제까지 발견된 화석들은 생물들이 이런 암석들과 토사가 겹겹이 쌓인 지층들과 지표면이 형성된 뒤에 생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홍수 지질학에 의하면, 어찌 되었든 지구의 기반암 위에는 오늘날 전 지구적 지질을 형성하는 엄청난 양의 토사가 퇴적되어 있었고, 그것이 노아의 홍수 기간에 전부 물에 떠서 부유하다가, 다시 현재 보이는 지층의 순서대로 퇴적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노아의 홍수를 이렇게 이해하는 홍수 지질학을 현대인들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그대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홍수 지질학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오히려 많은 의문들을 야기하기 때문이다(더 상세한 논의는 지면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노아의 홍수가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 모습들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무리이다. 노아의 홍수에 근거를 두는 홍수 지질학이 학문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 의존하는 젊은 우주론은 과학적으로 설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몰텐슨이 지적한 것처럼 대대적인 침식, 진흙 사태, 허리케인, 그리고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tsunamis) 등도 지질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외에도 지층의 침강 및 융기, 빙하, 운석 충돌, 지각판의 이동, 조산 운동, 인간의 토지개발 등이 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이에 대해서 달리 기록된 것이 없다. 홍수 지질학은 이런 격변들이 전 지구적으로 노아의 홍수 기간인 1년 동안에만 일어난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과학은 지각을 변형시키는 이런 격변들이 지구 곳곳에서 국지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문헌에 기록된 것도 사실과 다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사실을 기록했어도 해석이 사실과 다르다면, 해석이 왜곡된 것이다. 성경에서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경우에 해결하는 방법은, 그런 구잘들을 유비적으로 해석하는 길 뿐이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모든 것들을 노아의 홍수에 쓸어 보내고, 성경에 유일하게 몇 장 기록된 노아의 홍수 기사만이 믄자 그대로 역사적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으면 사실 자체가 없었다거나, 일부 기록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주장은 진실성에 관련된 문제가 제기된다. 홍수 지질학을 바탕으로 하는 젊은 지구론은 증거의 제시와 설명에 있어서 진실하지 않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정통적인 기독교의 방법이 아니다.

 

오랜 우주론은 진화론보다 앞서 나온 것이다. 진화론은 오랜 우주 연대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생물과 물질의 최초 발생과 그것들이특히 생물은 자연선택에 의한 변이의 과정을 거쳐-계속 진화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생물 진화론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물질 진화에 대해서는 물리학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노아 홍수에 수십억 년의 시간을 쓸어 넣는다고 진화론이 반박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연대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녁을 잘못 겨냥한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집을 파괴한다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론의 비판에는 그 이론이 사용하고 있는 이론과 사실, 그리고 논리적 오류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그것을 반박해야 한다.

 

현대 진화론이 무신론의 근거 이론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신론의 근거 이론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현대과학의 토대인 열역학 제1법칙은 우리의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 우주 에너지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표준 우주론에 의하면 빅뱅은 우주 에너지의 일부가 처음으로 우리 우주의 물질로 전환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우주에서 빛은 에너지가 물질로, 또는 물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우주 에너지가 우리 우주의 물질로 전환된 빅뱅 사건은 첫째 날 창조된 빛의 역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빅뱅은 아주 작은 특이점에서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물질적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주 에너지를 우주 물질로 전환하는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과 신학의 통섭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보면, 무신론을 주장하는 현대 진화론을 우리 우주의 창조자가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이론으로 역이용할 수 있게 된다. 진화론을 빅뱅 이전에서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 에너지의 세계에까지 확장하면, 그곳에 살아계신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진화론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지적 생명체가 우주 에너지의 세계에서 영원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되셨고, 우리 우주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진화론의 논리를 확장해버리면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어진다. 과학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창조하신 우주의 법칙을 해명하는 도구이다(필자는 얼마 전에 출판한 과학과 신의 전쟁을 통해 진화론 비판과 신의 존재론을 설명했다).

 

기독교가 진화론 등의 무신론적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에 상응하는 과학적 또는 논리적 방법으로 반박해야지, 홍수 지질학을 내세워서 반박해서는 오히려 비웃음만 사는 일이 된다. 현실적으로 젊은 우주론과 홍수 지질학이 기독교에서는 하나의 신학적 견해로 존재할 수는 있어도, 일반 사회에서는 시효가 지난 과거의 이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는 이미 폐기된 이론을 자꾸 들먹이면서 사회적 분쟁을 초래한다면, 그것이 기독교에 과연 무슨 이익이 될 것인가?

 

 

. [주장 4] 예수님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a young-earth creationist)셨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기적적인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진정한 역사적인 사건들로서 말씀하고 계신다. (예를 들면, 아담의 창조, 노아와 홍수, 소돔에서 롯과 그의 아내, 만나,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 전통(유전) 위에 성경의 권위를 계속적으로 주장하셨다 (마태복음 15:19). 마가복음 10:6절의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But at the beginning of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라는 구절은 예수님이 젊은 지구 창조론자이셨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구절이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가 태초 이후 수십억 년 후가 아니라, 창조 시점부터 있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만약 실제로 우주가 수십억 년 되었다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젊은 지구 창조론자셨다면, 그를 믿고 따른다는 제자들이 어떻게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 [비판적 검토]

이 항에서 몰텐슨의 주장은 예수님에 의지하여 젊은 우주론을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만들려는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이 젊은 지구창조론자임을 나타내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6,000년 전에 24시간 6일 창조를 주장하는 몰텐슨을 비롯한 젊은 우주론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몰텐슨이 인용한 구절은 예수님이 창조 시점부터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구절의 문맥에서 창조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라고 특정할만한 단어가 없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태초에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태초6천 년 전이라고 기록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예수님이 젊은 지구 창조론자라고 강변하고 있다. 마가복음 10:6절의 영어 번역문을 보아도 그렇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구절의 KJV 번역본을 보면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으로 보면 예수님이 강조하는 말씀은 이 구절을 건너 뛰어 제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젊은 지구 창조론자라고 해석할 수 있는 문자는, 몰텐슨이 예를 든 구절들에서는 물론, 성경 전체를 찾아보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몰텐슨은 왜 그토록 성경을 왜곡하면서까지 예수님이 젊은 우주론을 지지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라고 주장하고 있을까? 몰텐슨의 주장을 보면 그는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르는 제자라고 자처하면서 자신이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문자까지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과시하려는 듯하다. 일반인들 앞에서 몰텐슨처럼 주장한다면, 그들은 젊은 우주론을 수용하기는커녕 그런 교리를 주장하고 있는 기독교와 나아가서는 예수님까지 배척할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는 몰텐슨과 같이 왜곡된 문자적 해석과 일방적인 주장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취급하고 경계해야 한다.

 

젊은 우주론자들은 몰텐슨처럼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기 전에 요한복음 8:3-11절에서 예수님의 율법 해석이 유대인의 문자적 해석 방법과 달랐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유대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문자적 율법 해석에 따르지 않으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자적 해석 방법에 따르면, 십계명을 위반한 여자나 십계명을 거부하는 예수님도 마땅히 돌로 쳐 죽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자적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한 예수님을 버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제자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성경해석 방법조차 거부하는 젊은 우주론자들이 예수님을 자기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기만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현대에 이르러 문자적 해석 방법에 의한 젊은 우주론은 성경에서도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젊은 우주론이 오랜 우주론을 물리치기에는 논리와 과학적 증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몰텐슨이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과 홍수 지질학에 대한 오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몰텐슨이 예수님을 자기편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아의 홍수에 관련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는 구절은 마태복음 24장이다. 이 구절은 몰텐슨의 문자적 해석이 위험하고 오류라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몰텐슨처럼 젊은 우주론과 홍수 지질학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곧장 임박한 예수의 재림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의 성경 해석에 의한 젊은 우주론과 홍수 지질학의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련한 예언에서 그동안 저질러진 오류의 실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예수 재림의 근거로 인용되는 대표적 구절들은 역시 마태복음 24장이며, 34절에 예수님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말씀과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 끝에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구절들을 다른 구절들과 연결하여 문자적으로 잘못 해석하면, 성경에 감춰진 예언이 자기에게만 열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에 대하여 거짓 예언자가 되는 이유와 성급하게 거짓 예언을 믿는 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성경 몇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젊은 우주론처럼 믿음의 오류에 빠져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실례를 몇 가지 들자면 영국의 청교도 이민자들이 주도하여 1776년 건국한 미국에서 예수의 재림이 1843년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 침례교의 열렬한 신자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였다. 그는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렇게 예언했으나, 그의 예언은 허무하게도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다시 1844년이 예수 재림의 해라고 예언을 수정했으나, 그것마저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밀러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잘못 해석했던 탓으로 믿음의 오류에 빠져 거짓 예언자로 죽었다. 그러나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 중에서 엘렌 화이트가 새로운 예언자로 등장했다. 그녀를 따르는 신자들이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1863년에 창립했다. 그녀는 환상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하며, 그때는 노아의 홍수보다 더한 재난이 닥칠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설교했다. 안식교는 문자적 해석에 따라 안식일(토요일) 예배를 지키는 그들만이 임박한 예수의 재림을 공중에서 맞이할 것으로 믿고 있으며, 항상 휴거를 준비하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엘렌 화이트의 설교에 따라 안식교 신자들은 젊은 우주론은 물론 홍수 지질학을 교리와 같은 수준으로 믿고 있다.

 

젊은 우주론자 가운데 또 한 사람의 사이비 예언자 할 린제이(Hal Lindsey, 1929- )가 있었다. 그는 대유성 지구의 종말, The Late, Great Planet Earth(1970)을 출판하여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한 때(1948)로부터 한 세대(40)가 지나면, 아마겟돈에서 지구 최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 우주론자들 대부분이 이 책을 읽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린제이가 예언한 1988년에 지구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린제이는 물론 그의 예언을 믿었던 자들에 대해서는 믿음의 오류에 빠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젊은 우주론자들은 제임스 어셔 주교를 따라 시대를 3개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아담의 창조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의 초림까지가 2,000,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2,000년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예수 재림의 때는 1996년이 된다. 어셔의 주장을 믿고 있는 젊은 우주론자들은 1996년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그 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는 어셔의 주장을 따르는 세계 젊은 우주론자들의 본부인 ICR이 있다. ICR의 설립자 헨리 모리스는 예수 재림에 대한 린제이와 어셔 주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만, 2006년 죽을 때까지 그런 예언들의 실패를 모른 체하면서 젊은 우주론을 주장했다. ICR은 그의 아들이 물려받아 현재에도 같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젊은 우주론자들은 오직 6,000년 전 24시간 6일 창조를 가르치는 젊은 우주론만이 기독교적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의 오류와 실패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국내에서도 문자적 성경 해석에 의하여 예수의 재림과 종말의 도래와 관련한 해프닝이 한두 번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재림과 종말에 관련해서는 한국교회의 이단사(異端史)에 나타난 과거의 것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지금도 자기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단의 교주들과 이를 그대로 믿는 신자들이 버젓이 기독교인을 표방하면서 열심히 선교까지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교회 안에서 교주가 여성 신자들을 농락했던 일들이 폭로되어 기독교를 망신시키고 있다. 종말론 사건들로는 19921028일 휴거설을 주장하여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를 광신자 또는 미신자 집단으로 몰리게 했던 다미선교회 사건,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과 마야 문헌에 의한 2012년 인류 종말 설 등을 문자적 성경 해석과 연결하여 무분별하게 종말을 설교했던 일부 교회들, 그리고 2017년 나팔절(923)에 요한계시록 12장의 종말 예언이 성취된다는 주장 등이 있었고, 한국 교회들은 그때마다 혼란에 빠졌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잘못 해석했던 탓으로 일어났던 일이었으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에도 그에 관련한 기록들이 인터넷 상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기독교를 미개한 종교라고 비난하는 소재로 인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의 때를 비롯하여 그가 일하시는 때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날과 때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했다(24:36). 그럼에도 몰텐슨과 젊은 우주론자들은 예수님이 24시간 욤과 6,000년 전 창조를 지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만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의 형제들을 사탄이라고까지 비난하는 독단적 경향성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재림과 종말에 관련한 성경 구절들에 대해서는 임의적인 자기 해석에 빠지는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대부분 거짓 예언을 믿었거나, 심지어는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사이비 교회를 설립했거나, 또는 그런 교회에 참여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 일부분에 대해 문자적 해석을 믿고 젊은 우주론을 따랐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생전에 오시리라고 기대했던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천지창조는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재림도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신 때를 기독교인들이 굳이 정확하게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지, 창조와 종말의 정확한 때를 알거나 모름에 따라 믿음의 분량(分量)이 측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아디아포라적인 것들은 과학자들에게 맡겨두어도 된다. 기독교인들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왜곡된 성경 해석과 거짓 예언이 난무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런 미혹에 넘어가지 않는 참된 지식을 갖추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주장 5] 수십억 년의 연대는 죽음과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 이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good)”(#) 말씀을 6번이나 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섯째 날 창조를 끝내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셨다. 사람, 동물, 그리고 새들은 원래 채식성이었다.(1:2930).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식물(plants)은 사람과 동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체(living creatures)’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했고, 전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다. 아담과 하와는 영적으로 즉시 죽었으며, 하나님의 저주 이후에 그들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뱀과 하와는 신체적으로 변형되었으며, 땅은 저주를 받았다. (3:14-19). 이제 전 피조물들은 크리스천들의 마지막 구속을 기다리며,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하며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8:19-25). 마지막 구속의 때에 우리는 타락 이전의 세계로 만유(만물)가 회복되는 것을 볼 것이요(3:21, 1:20), 더 이상 육식 행동이 없을 것이요(11:6-9), 사망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질병이 없을 것이다(21:3-5). 왜냐하면 거기에는 저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22:3).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사망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며, 파괴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어떠한 도덕적 원인이 없음에도 피조물들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질병과 자연재해와 멸종을 사용하시는(또는 막지 못하는),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시는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드는 것이다.

 

-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이 항에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우주만물 창조, 전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죽음을 가져온 아담과 하와의 범죄,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에 기록된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크리스천들의 마지막 구속에 의해 타락 이전으로 회복될 세계를 전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다는 등에 관해 짧게 서술한 다음에 그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몰텐슨의 주장을 보면,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의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곧 그가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의 형제들을 세 가지 이유로 공격하고 있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공격의 이유들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첫째 이유는 사망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며, 파괴하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나타난다. 몰텐슨의 주장이 사실일까? 이제까지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에 관련한 주장들을 성경의 구절들과 비교하고 검토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가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을 명백하게 뒷받침할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를 시작한 때는 태초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인 해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신 우주의 나이를 인간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창조의 때를 명확하게 말하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크리스천이라면 우주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또 굳이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아디아포라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견해이다.

 

식물이 생명체(living creature)가 아니라는 해석과 동물의 채식성을 연결시키는 의도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전에는 사람과 동물의 죽음이 없었고, 채식에 의해 희생되는 식물은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주장은 현대 지질연대표를 부정하고 젊은 우주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겠지만, 기독교에서는 아디아포라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만 신학계는 공인된 성경 해석 방법의 하나에서 나온 젊은 우주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 신학계는 문맥상 또는 공인된 다른 해석 방법에 의하여 젊은 우주론보다 오랜 우주론이 훨씬 설득력 있는 성경적 해석이라는 인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젊은 우주론을 아이들의 동화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몰텐슨이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고 파괴한다는 주장은 현대 신학계의 대세를 거부하는 소수의 견해일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는 성경을 아이들이 읽는 책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원의 조건으로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지지해야 한다는 구절이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더욱 없다. 예수님이 가장 강조하신 것은 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은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서 주장된다. 과학계의 주장은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증거를 토대로 하고 있. 몰텐슨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 1656(BC. 2349)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 때에 모든 화석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조지 프라이스와 헨리 모리스의 홍수 지질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지구과학 또는 지질학에서는 홍수 지질학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아의 홍수는 과거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것이고,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신학계에서도 노아의 홍수는 예수 이후의 구원 사역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몰텐슨의 주장처럼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에 합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구절이 있는가? 성경에는 그렇다고 암시하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의 형제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몰텐슨의 주장은 젊은 우주론을 믿고 안 믿는 것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합당한 것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거짓말로 협박하고 있는 꼴이다.

 

오랜 우주론은 그리스 철학에서 발전한 것이다. 현대 과학계는 최신 가속기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하여 월석과 운석 그리고 지구 암석의 생성 연대를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의 나이를 46억년으로 발표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절대지질연대표에는 각 지층의 암석과 표준화석의 AMS 측정을 바탕으로 연대적 수치를 결정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학적 자료를 부정하려면 그에 관련한 지식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한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몰텐슨을 비롯한 젊은 우주론자들이 과연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과학계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젊은 우주론자들이 그런 지식을 가지지 않고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주장하는 6,000년 설과 홍수 지질학이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현대적 과학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무지의 종교로 매도하고 있는 이유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충분한 과학적 검토 없이 문자적 성경 해석에만 의존하여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몰텐슨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먼저 몰텐슨은 창조일마다 반복되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 저자의 관점에서 쓴 서술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구절들을 몰텐슨처럼 해석하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혼란이 오게 된다. 더욱이 이와 관련하여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자가 되고, 전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저주받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는 기사를 읽으면,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몰텐슨이 의도하는 뜻은 그 반대이겠지만, 어쨌든 하나님을 향하여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을 쓰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는 금기사항이다. 왜냐하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고 난 일반인들이 그런 말로 질문하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의 성경 해석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적 신이해의 절대적 명제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모세오경만을 믿는 정통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몰텐슨이 하나님에게 붙인 무능하다는 수식어는 전능하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무능하다는 말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빨리 범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느냐는 의문과 함께 제기된다. 이와 함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범죄하는 기사를 읽으면, 전지(全知)하다는 말에 질문이 제기된다. 왜 창조를 계획하실 때에 그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한 몰텐슨이 3항에서 말한 것과 같이 노아의 홍수는 모든 범죄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상동물과 새들, 그리고 지구의 표면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지구의 표면과 생물들을 창조한지 불과 1656년 만에 파괴자가 되셨다. 이와 같은 기사들을 젊은 우주론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차라리 만들 지나 말 것을이라는 속어 한 마디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셨는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20:7)는 계명까지 주셨다. 이와 같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그야말로 하나님을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드는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창세기를 무조건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믿는 방법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련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모순의 늪에 빠지게 하는 첩경(捷徑)이다.

 

성경이 유비적 해석 등의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필요성 때문이다. 현대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진정한 창조주로 믿는다면,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문맥에 따라 적절한 해석 방법과 과학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사에 대하여 몰텐슨처럼 자기의 문자적 해석만 옳은 것이고, 다른 해석을 틀렸다고 비판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있다. 구약성경은 약 3,500년 전부터 약 2,500년 전 사이에 고대 히브리인 저자들이 고대 히브리어로 쓴 것이고, 그 내용은 당시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신약성경은 약 2,000년 전에 예수의 언행과 그 제자들의 선교 활동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이다. 성경은 처음에 기록된 이후에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고,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몰텐슨이 젊은 우주론의 핵심 근거로 이용하는 젊은 우주론의 바탕은 24시간 6일 창조 기사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홍수 지질학의 바탕은 노아의 홍수 기사이다. 창세기는 기본적으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창세기를 읽으면, 그는 먼저 현대적 개념으로 창조 기사를 해석하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문자적 해석의 오류에 의해 몰텐슨 식의 젊은 우주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비()히브리인들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론과 고대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된 칭세기를 현대의 과학적 우주론과 과학적 언어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과녁을 겨냥해 화살을 쏘아놓고는 명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럼에도 몰텐슨과 같이 젊은 우주론자들이 창세기에 대해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질병과 자연재해와 멸종을 사용하시는’(또는 막지 못하는),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시는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들었다고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와 오만을 폭로하는 일이 될 뿐이며,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행동에 다름 아니다. 신앙의 형제들을 그렇게 공격하면, 그런 꼴을 보는 자나 당하는 자가 어떻게 교회에 나갈 마음이 남아 있을 것인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젊은 우주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8:6-7절과 그에 평행하는 구절들이다.

 

 

. [주장 6] 수십억 년 이라는 생각은 과학적인 사실들로부터 생겨나지 않았다.

 

이 생각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신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지질학자들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이들은 창조와 홍수 및 지구의 나이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명백하게 반대하는 방법으로 지질학적 관측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반성경적인 철학적, 종교적 가정들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성경과 오래된 연대를 조화시키기 위해서 간격이론, -시대 이론, 지역적 홍수론 등을 사용하여 빠르게 타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질학적 주장들에 대한 이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하여 그들의 타협책을 방어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래된 연대(deep time)’ 개념은 과학적 관측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 가정(naturalistic assumptions)들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이신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지질학자들이 오래된 연대(deep time)를 개발하기 위하여 반성경적 가정들을 사용해서 지질학적 관측들을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몰텐슨에 의하면 오래된 연대 개념은 과학적 관측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 가정들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몰텐슨이 말하는 반성경적 지질학자들은 동일과정설(또는 균일설)을 제기했던 초기 과학자들이다. 18세기 말에 지구의 이론(1785)을 발표한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1726-1797)19세기 초에 허튼의 이론을 계승하여 지질학 원리3(1830-1833)을 출판한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이 그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오래된 연대 개념과 타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질학자들이 개발한 지질학은 반성경적 가정들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점점 새롭게 발전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수집한 자료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자. 그리고 오래된 연대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이며, 그것이 반성경적이 아니라는 사실도 검토해보자.

 

1807년 설립된 런던지질학회가 주류 이론으로 채택한 동일과정설은 당시 기독교의 노아홍수 격변설과 대립한 것이 사실이다. 노아홍수 격변설은 한 번의 대홍수로 전 지구의 지층이 일거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동일과정설은 다수의 지역적 격변이 누적되어 지층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대영제국은 성공회(聖公會)를 국교로 하는 기독교 국가였다. 그러나 대영제국은 식민지 개척과 제1차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지구상에서 해가 지지 않는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사상적으로도 가장 개방적이었다. 이러한 관용적 사회 분위기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 재위 1837-1901) 시대에 이르러서는 학문적 자유가 더욱 발전되었다. 덕분에 독일에서 추방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가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당 선언1848년에 발표할 수 있었고, 신학 공부를 했던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진화론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의 전통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학설이 여러 갈래로 등장하게 되었다.

 

광산학(鑛山學) 등이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전이었던 당시에 지질학은 가장 인기 있고 유망한 학문이었다. 지질학은 각지에 분포한 암석과 지층을 연구함으로써 산업혁명 시기에 필요했던 광물과 에너지 자원의 탐사에도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지질학에서 암석과 지층에 대한 연구는 대개 오래된 것일수록 밑에 놓인다는 지층누중(地層累重)의 원리에 따른다. 그러나 1920년대에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지층과 화석의 절대연령을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초기 지질학에서는 지층과 화석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각 시대의 순서를 정해 놓은 상대 지질 연대표를 만들어 썼다. 이런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절대 지질연대표를 처음 만들었던 지질학자는 지구의 나이를 발표한 영국의 지질학자 아서 홈스(Arthur Holmes, 1890-1965)였다. 그는 1927년에 방사성 우라늄-납 측정법을 지질연대 측정에 이용하여 지구의 나이를 36억년으로 계산했다. 이후에도 연대측정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홈스의 절대지질연대표는 계속 수정되었다. 지질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지질학은 몰텐슨이 주장하듯이 반성경적 가정들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지구 각지의 지층에 대해 실제 탐사와 관찰의 방법을 통해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구의 나이를 45.5억년이라고 처음 주장한 과학자는 1953년에 운석을 우라늄-납 측정법으로 분석했던 클레어 패터슨(Clair C. Patterson, 1922-1995)이었다. 운석은 대개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 안을 떠돌아다니다가 지구로 떨어진다. 운석의 나이를 측정하면 태양계의 나이를 알 수 있고, 따라서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된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운석의 나이를 측정한 결과는 대개 45억년 이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20143월 경남 진주시에 떨어진 운석을 고분해능이차이온질량분석기(SHRIMP)를 이용해서 분석한 결과 45.6억년 된 것으로 판정했다. KBSI는 이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암석은 호주 잭 힐(Jack Hill) 지역의 역암(conglomerate)으로 그것에 섞여 있던 지르콘 (zircon) 결정(結晶)을 분석하여 약 444백만 년 전의 것으로 측정되었다는 사실까지 소개하고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멜러니 바르보니 교수팀은 시카고대, 프린스턴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지질연대학센터와 공동으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달에서 가져온 월석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지에 발표했다. 공동 분석에 사용했던 각 월석들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에 의하면, 달의 나이는 약 45.1억년으로 모두 일치하게 나타났다. 과학계는 달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가 생성되고 약 6000만 년 후에, 지구에 충돌한 화성 크기 소행성의 잔해라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지구의 나이는 45.7억년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몰텐슨이 여기서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지질학자들의 오래된 연대 개념과 타협했다고 비판하는 이론들 중에서 아직 다루지 않았던 것은 지역적 홍수론이다. 몰텐슨은 그의 문자적 성경 해석에 의하여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 지층을 형성한 유일한 대격변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몰텐슨은 그의 주장에 반대되는 지역적 홍수론을 반성경적 가정을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질학에서는 홍수를 지층의 형성 또는 변형의 원인들 중 하나라는 점은 인정한다. 지질학은 현재까지 이루어진 지층의 형성 또는 변형의 주원인을 점진적인 동일과정설에 의하여 설명하면서, 그런 과정에 노아홍수와 같은 지역적 홍수들이 다수 있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지질학에서는 노아의 홍수를 하나의 지역적 홍수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기사와 지질학적 주장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쇄는 성경에 기록된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형성된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현대적 세계관과 지질학적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으신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고대 히브리인들은 노아의 홍수가 어떻게 전 지구를 뒤덮은 사건인 것처럼 이해했을까? 아래의 그림은 창세기 1, 욥기 38, 그리고 잠언 8:24-30 등에 언급된 계시에 의하여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 그림 출처-중국어 주석서]

 

그림에서와 같이 고대 히브리인들이 인식했던 전 지구는 사방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높은 산(天柱)들로 둘러싸인 땅(地山)이었다. 현대적 개념으로는 커다란 분지(盆地) 같은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궁창(穹蒼) 위에도 물(天上的 水)이 있었다. 노아의 홍수 때에 땅을 덮은 물은 하늘의 창문(水門)이 열리면서 쏟아진 것이다. 노아의 홍수 때, 깊음의 샘들이 터지자 심연(深淵)의 물은 지각을 뚫고 땅 위로 솟아나왔다. 이 물들이 분지와 같은 땅에 쌓이고 넘치면서 수면이 15규빗이나 상승하고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7:20), 150일이 지나서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물들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수면이 낮아지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 기사는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서는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이었다고 보았을지라도, 바다를 포함하는 현대적 지구 개념에서는 땅(하나의 분지)에서만 일어난 홍수라고 이해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홍수는 땅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적 지구 개념에서는 노아의 홍수가 지역적 홍수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은 제대로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한 것도 아니고, 현대과학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론이라는 사실은 이제까지 검토했던 바와 같이 명백하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제대로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한다면, 간격이론, -시대 이론, 지역적 홍수론 등을 오랜 연대와 타협한 이론이라고 공격하는 일을 스스로 그만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과학계에서 암석이라는 물리적인 증거들을 측정하여 산출한 46억년의 지구 및 태양계 연대는 젊은 우주론자들의 문자적 성경해석에 따라 바꿔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협이론이라는 말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젊은 우주론에 적용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젊은 우주론은 안식교 창시자 엘렌 화이트 여사가 환상에서 본 노아홍수를 계시라고 해석한 것과 타협한 것이다. 안식교 신자 조지 맥그리디 프라이스가 신지질학에서 그녀의 환상을 이론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헨리 모리스는 창세기 홍수에서 우주와 지구가 겉보기에는 수십억 년이나 오래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6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이 우주와 지구를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창조하셨다면, 말 못할 무슨 사정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이토록 모순이 가득 찬 젊은 우주론을 전파하기 위하여 모리스는 미국에서 ICR을 설립하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그러나 젊은 우주론의 실상은 화석화된 엘렌 화이트의 노아홍수 환상을 믿으라는 억지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제 젊은 우주론은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크리스천들에게서도 배척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현대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몰텐슨처럼 과학을 부정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런 종류의 주장들을 한 마디로 묶으면, 성경은 불변하는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고, 과학은 변하는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사실 이런 말은 과학의 역사와 발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학의 발전을 가리켜 변하는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학은 수많은 과학자가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를 이론으로 설명한 것들이다. 과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에 의해 과거의 이론들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즉시 개정했다. 그러므로 과학은 사물을 점점 더 정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관찰한 결과를 반영하고 수정하면서 발전적으로 변하는것이다. 과학이 현대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발전적으로 변하는힘에 의한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구약성경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과 역사를 기록한 것이고,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과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들은 독자들을 위해서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 히브리인들의 세계관과 사회적 실상을 서술한 구약성경을 읽을 때, 당시에 만들어진 녹음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태도이다. 결국 과학과 성경은 설명의 대상이 다르듯이 해석과 믿음의 방법도 달라야 한다. 그렇다고 사실을 넘어서는 상상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 사실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불변성과 과학의 가변성(可變性) 사이에 깔려 있는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눈박이 크리스천이 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학에서 젊은 우주론은 하나의 성경해석 방법으로 인정된다. 개혁신학은 로마가톨릭 교황의 독점적 성경해석권을 거부하면서 만인제사장론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젊은 우주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자들은 교황처럼 독점적 성경해석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젊은 우주론자들은 최소한 미국과 한국의 보수적 개혁신학 교단들이 이미 복음적 견해로 수용한 4가지 창조 이론-일상적인 하루의 날, -세대 문예적 틀, 유비적 날-은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 비추어보면 젊은 우주론은 그 가운데 하나인 일상적인 하루의 날을 근거로 하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젊은 우주론자들이 배척하는 타협이론들의 거의 대부분을 가능한 견해들로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젊은 우주론만을 진리라고 우기고 있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크리스천 형제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견해들을 무작정 타협이론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예수님 앞에서 성경해석에 대한 특허권 또는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주장했던 유대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젊은 우주론자들이 과거의 이론으로 현대인들의 과학지식을 비난하면서 사회적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과연 무엇을 위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그토록 배타적으로 주장해야 하는가?

 

 

. [주장 7]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은 수십억 년을 입증하고 있지 않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metric dating)20세기 초까지 개발되지 않았었다. 그때에 전 세계는 수억 년의 연대 개념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창조과학자들은 이 연대측정 방법이 매우 틀린 연대들을 나타내었음을 학술지에 발표한 많은 예들을 인용하여 왔었다. (예를 들면, 몇 백 년 전에 심지어 몇 십 년 전에 분출한 용암류들이 수백만 년의 연대를 나타내는 것과 같은). 최근에 창조과학자들은 그러한 증거들을 더 많이 밝혀내기 위해서 'RATE 프로젝트'라는 실험적, 이론적,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시계들은 같은 시료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결과들을 나타내었고, 진화론자들이 수억 수천만 년 되었다고 주장하는 다이아몬드와 석탄들에서 단지 수천 년에 해당하는 방사성탄소(carbon-14)가 남아 있었으며, 방사성 붕괴율은 과거 한때 엄청나게 가속 붕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수십억 년의 연대가 수천 년으로 축소될 수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것이다.

 

-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이번 항에서 20세기 초에 개발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이 부정확한 것이라는 주장과 최근에 미국 창조연구소(ICR)2005년에 끝낸 8년간의 ‘RATE 프로젝트연구 보고서(ICR Challenges Validity of Radiometric Dating)를 인용하여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에 의한 지구의 나이 46억년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몰텐슨이 주장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의 현황과 창조과학자들의 ‘RATE 프로젝트보고서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사에서는 뉴턴이 최초로 지구의 나이를 약 5만년으로 추정한 이후 연대측정 방법이 발전하면서 점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 절대지질연대표에 나타나는 약 46억년의 지구의 나이와 각 지질 시대의 연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수치인 것은 사실이다. 지질학에서 이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은 주로 두 가지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율을 이용하는 것이다. 첫째 방법은 방사성 우라늄-238의 반감기를 이용하여 무기질인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우라늄-납 연대측정(U-pb dating)법이고, 둘째 방법은 방사성 탄소-14의 붕괴율을 이용하여 유기질인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 연대측정(radiocarbon dating)법이다. 몰텐슨이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은 틀린 것이므로 지질학적 오랜 연대가 입증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지질학적 오랜 연대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몰텐슨의 주장을 검토하려면, 두 가지 연대측정 방법들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우라늄-(U-pb) 연대측정법은 암석 내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방사성 우라늄(U-238) 원소가 붕괴하면서 안정된 납(Pb) 원소로 변하는 성질을 이용한다. 이때 원래의 우라늄 원소는 모원소(parent element)라고 부르고, 새로 생기는 납 원소는 자원소(daughter element)라고 부른다. 모원소인 우라늄의 절반이 붕괴하여 자원소인 납으로 변하는 반감기(半減期)는 약45.5억년이다. 만일 어떤 암석을 측정하여 우라늄-23850% 붕괴하여 생긴 납의 양이 섞여있다면, 그 암석은 약 45.5억년의 연대를 가진 것으로 판정된다. 그러나 납에는 238U, 235U 등의 붕괴로 생긴 206Pb, 207Pb 등과 자연계에 존재하는 204Pb 등의 동위원소가 섞여 있다. 이런 불순물들을 완전하게 걸러내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이 방법에 의한 연대측정이 그만큼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1927년에 이 방법을 이용하여 절대지질연대표를 처음 만들었던 아서 홈스가 지구의 나이를 약36억년이라고 계산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과학계는 1970년대에 방사성동위원소 연대 측정에 AMS(가속기질량분석기)를 도입하였고, 1980년대 이후에는 고분해능이차이온질량분석기(SHRIMP)를 이용하여 암석 등의 연대를 거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지구의 나이가 약46억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최신 과학장비들로 측정한 결과이다.

 

방사성 탄소-14 연대측정법은 몰텐슨과 같은 젊은 우주론자들이 과학계의 연대측정 기술에 불신을 제기하는 단골 메뉴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사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탄소는 질량수 12(양성자6_중성자6)이다. 그러나 탄소에는 질량수 13인 동위원소 C-13(양성자6+중성자7), 질량수 14C-14(양성자6+중성자8)가 더 있다. 대기에 있는 탄소의 구성 비율은 C-1298.9%, C-131.1%, 그리고 C-141/10¹%이다. 이것은 방사능이 없는 C-12, C-13이 총 1()개가 있다면, 방사성이 있는 동위원소인 C-141개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런 구성 비율을 연대측정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기 중에 세 가지 탄소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살아 있는 동물과 식물이 가지고 있는 탄소-14의 비율도 이와 같다고 본다. 그러나 생물체는 죽는 순간부터, C-12C-13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C-14는 일정한 속도로 중성자 1개가 붕괴되면서 양성자 7개와 중성자 7개를 가진 질소-14로 변하기 시작한다. 질소-14는 곧바로 대기로 발산되거나 죽은 생물체가 묻힌 토양으로 흡수된다. 질소-14와 탄소-14는 같은 질량수(양성자수+중성자수=14)를 가지고 있으나, 차이점은 탄소-14는 불안정 원소이고 ,질소-14는 안정 원소라는 점이다. 죽은 생명체에서 빠져나온 질소-14는 땅으로 흡수되었다가 식물에 다시 흡수되거나, 대기 중에 머물다가 다시 C-14로 변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질소-14는 대기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고, 땅에서는 식물에게 가장 필요한 비료이다.

 

질소-14가 다시 C-14가 되는 과정은 대기권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선(宇宙線) 에너지에 의해 핵반응이 일어나면서 양성자 하나가 중성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한 탄소-14는 광합성을 통해 식물에 흡수되었다가 먹이사슬을 통해 또는 호흡을 통해 다시 모든 동물에게 섭취된다. 이런 순환과정에서 탄소-14는 생물체와 대기에서 일정한 비율로 평형(equilibrium)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생물체가 죽고 C-14의 섭취가 정지되면서 질소화가 진행되면, 그 순간부터 평형은 깨어지기 시작한다. 어떤 화석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대기와 화석에 남아있는 C-14의 평형이 깨어진 상태를 측정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C-14을 이용한 연대 계산방법은 대기와 화석에 남아 있는 C-14의 잔존 비율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C-14 연대측정 방법은 미국의 물리화학자 윌라드 리비(Willard F. Libby, 1908-1980)1946년에 논문을 발표하고 1949년에 고고학의 유물 연대측정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C-14의 양을 실험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으로 방사선 계측법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가속기 질량 분석기를 이용한다. 방사선 계측법은 시료 속에 포함된 C-14의 중성자가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전자의 수를 검출기나 계수기와 같은 장비로 측정하여 C-14의 양을 역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탄소-14의 반감기가 5,730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적은 수의 전자만을 관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큰 통계적 오차를 발생시킨다. 이에 비해 가속기 질량 분석법은 매우 적은 양의 시료로도 C-14의 비율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가속기 질량 분석법은 시료속의 탄소 원자를 이온화 시킨 후, 입자 가속기로 가속한다. 가속된 이온을 자기장을 통과 시키면 그 질량에 따라 다른 궤적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C-14 및 다른 탄소 동위원소를 구분할 수 있다.

 

두 가지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에 대해서는 자칫 모두 반감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방사성 우라늄-238이 붕괴하면 자원소인 납은 암석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탄소-14는 그것이 머물러 있던 생명체가 죽는 순간부터 점차 질소화되어 사라져버리는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은 C-14의 반감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방사성 C-14 연대측정법과 방사성 우라늄-납 연대측정법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율을 이용하는 것은 같지만, 반감기를 이용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화석의 연대측정은 화석이 묻혀 있던 지층에서 채취한 시료를 이용한다. 먼저 그 지층에서 나온 시료의 연대측정에 의해 그 지층의 지질연대를 결정한 다음에 그것에다 화석 자체의 연대를 더하는 방식으로 하게 된다. 화석에 남아 있는 C-14는 반감기가 5,730년이므로 과거에는 C-14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은 약 6만년 정도의 기간에만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과거에 사용하던 방사선 계측법의 한계 때문에 10번의 반감기가 지나면 잔량이 0.1% 미만으로 떨어져서 측정 시료를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방사선 연대측정에 가속기질량분석기(AMS)가 이용되고, C-14 연대측정에 오차를 보정하는 다양한 기법까지 발전함으로써 더 작은 시료만으로도 측정이 가능해졌다.

 

측정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100%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연대측정 기술의 발전사에 얽힌 유명한 에피소드(episode)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되었던 영국박물관 방사성탄소연대 실험실이 1948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2001년에는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용했던 연대측정 기술보다 훨씬 더 정밀한 AMS를 이용한 연대측정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과학은 오류들을 제거하는 기술들을 개발하면서 측정의 정밀성과 정확도를 점점 발전시키고 있다.

 

과학계가 지구의 나이를 약46억년이라고 발표했던 근거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기법의 발전과 그것을 응용한 최신 장비로 월석, 운석, 그리고 오래된 지구 암석 등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에 의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6,000년 설을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자들의 본부인 미국 창조과학회(ICR)1997년에 ‘RATE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과학계가 주장하는 오랜 연대를 검증하기로 했다. ‘RATE’Radioisotopes and Age of The Earth(방사성 동위원소와 지구의 나이)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RATE’ 프로젝트를 수행한 젊은 우주론자들은 8년의 연구 끝에 2005년 오랜 우주론이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과학계의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에 오류가 있고, 그 결과도 따라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몰텐슨은 이 보고서에 수록된 주장들 중에서 3가지 -방사성동위원소연대측정 시계들이 틀렸고, 수억 수천만 년 되었다는 다이아몬드와 석탄에서 탄소-14가 남아 있었고, 방사성 붕괴율이 과거 한때에는 엄청나게 가속 붕괴되었다-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지구의 나이, The Age of the Earth를 쓴 G. Brent Dalrymple를 비롯한 전문 과학자들로부터 심각한 반박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 보고서는 과거의 연대측정 기술과 자료를 문제 삼아 현대의 발전된 연대측정 기술과 그 결과를 왜곡하고 부정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적인 논쟁은 사실이 확정되면 저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제까지의 검토에서 젊은 우주론의 실상이 거의 모두 밝혀진 마당에 지면의 제한이 있는 이곳에서 ‘RATE 프로젝트를 더 이상 길게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RATE 프로젝트에 관련하여 더 알고 싶다면, 양승훈의 창조연대 논쟁-젊은 지구론, 무엇이 문제인가?6“RATE 프로젝트 비판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 젊은 우주론자들이 과학적 기술과 자료를 부정할 근거가 확실하게 있다면, 기독교의 우산 아래 안주하지 말고, 일반사회의 학술적 연구 활동에 참여하여 오랜 우주론과의 논쟁에서 부디 승리하기 바란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그렇게 나설 용기가 없다면, 기독교를 현대과학에 무지한 집단으로 매도되지 않도록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기독교를 위하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주시기 바란다. 지동설과 천동설의 예에서 보았듯이 과학적 논쟁에서는 승자의 이론만이 살아남는다. 현대 일반사회에서 젊은 우주론은 천동설의 2.0 버전 정도로 취급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 결론

 

앞에서 우리는 몰텐슨의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와 각 항별로 제기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비판적 검토를 마쳤다. 몰텐슨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이 도덕적, 영적 문제들뿐만이 아니라, 역사, 고고학, 과학 등 말씀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이 도덕적, 영적 문제와 역사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기록이 있지만, 고고학, 과학 등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것은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영광이 위험하다는 몰텐슨의 결론을 검토하는 일이다.

 

[몰텐슨의 결론]

이것은 성경이 창조의 진실된 역사를 알려주고 있음을 믿는 이유들 중 몇 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도덕적, 영적 문제들뿐만이 아니라, 역사, 고고학, 과학 등 말씀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final authority)가 되어야만 한다.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인다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특성, 사망에 대한 가르침, 복음의 기초이다. 만약 창세기 앞부분의 장들이 진정한 문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면, 구원과 도덕성에 대한 가르침들을 포함한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신뢰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에게 이 글이 실린 웹 페이지에 있는 많은 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부탁한다. 교회의 건강, 잃어버린 영혼들() 대한 복음 전파의 효과,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위험에 처해 있다.

 

- [비판적 검토]

먼저 몰텐슨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의 범위는 하나님이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세계관을 가르쳐주시고,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키우는 과정의 역사를 기록한 제한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로마 통치 시대에 활동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제자들이 세계를 향하여 그의 말씀을 선교하는 초기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읽는 사람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오늘날 각 교파마다 각기 다른 교리(dogma)를 주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구의 해석이 유일하게 옳은 것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독선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아디아포라적인 것들과 기독교적 진리로서 반드시 일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별하면서 읽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해석에는 기독교의 기본교리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객관적 사고가 요구된다. 어설픈 지식과 주관적 성경해석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모인 집단의 광신적 추종자가 될 뿐이다.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1:28). 기독교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생명의 법칙과 그가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을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생명의 법칙은 올바른 성경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에는 이 두 가지 법칙이 따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경을 통해서는 생명의 법칙을 가르쳐주시고,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는 과학적 연구에 맡겨두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경의 최종적인 권위(final authority)를 과학의 범위에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일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몰텐슨이 성경의 최종적인 권위를 운운하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그것은 젊은 우주론자들이 주장하는 퇴행적 이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유대인 제자들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율법해석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해석해주신 기록들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특히 요 8:3-11, 5:20 이하).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해석의 방법을 논의하는 경우에는 예수님의 해석 방법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몰텐슨은 7가지 이유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예수님이 몸소 사례를 보여주신 성경해석의 방법까지 무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예수님을 젊은 우주론자라고 왜곡하면서, 그들이 가장 충성스러운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칭하고 있다. 자기의 성경해석이 다른 사람들의 해석과 차이가 있다면, 자기의 해석을 강변하지 말고 겸손하게 그 원인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대개 그런 차이는 자기의 해석 방법을 고집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사실을 깊이 연구하지 아니한 경우에 나타난다. 올바른 성경해석은 무엇보다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실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사건은 인간 누구도 알지 못하는 태초에 일어난 일이다. ‘태초는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에 속한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을 성경해석으로 계산하려고 했던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런 자료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과학계의 연구에 맡겨두면 된다.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은 성경해석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하나의 기독교적 견해로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연대를 필요로 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시기에, 젊은 우주론이 이에 맞서 싸운 공로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지구의 나이가 진화론의 반박에 효용 가치가 없어진 것으로 밝혀진 이상, 이를 놓고 크리스천들이 과학계와 맞서 싸울 이유가 없다. 그동안 과학이 발전하면서 진화론의 허구성과 함께 젊은 우주론의 허구성도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기독교의 젊은 우주론이나 모두 겉으로는 과학적 이론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과학 지식으로 그 실상을 살펴보면, 과학적 증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허구의 이론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가 허구의 진화론을 깨뜨리는 방법은 같은 허구의 젊은 우주론으로 공격할 것이 아니라, 더 발전된 과학적 이론으로 반격해야 하는 것이다(이에 관련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을 반박하는 일에 젊은 우주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현대 크리스천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해야 하는 것들은 창조주가 생명의 법칙을 가르쳐주신 성경뿐만이 아니라, 창조주가 만들어놓으신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도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자연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제정하신 물리적 법칙을 연구한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텐슨처럼 생명의 법칙을 가르치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우주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에까지 적용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런 시도는 자칫 성경에 대한 신뢰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 된다. 몰텐슨처럼 예수님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지지하는 젊은 우주론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법이 전통적 성경 해석법의 하나로 인정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해석들을 근거로 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무지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런 것들을 마치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리처럼 주장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를 위하여 올바른 행동이 될 수 없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몰텐슨은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노아홍수가 전 지구적인 것이었다는 설을 바탕으로 젊은 우주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우주론은 올바른 성경해석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이론은 더욱 아니다.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성급하게 주장하는 한 교파 창시자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욱이 젊은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전 지구적 노아홍수 설은 현대과학에 의하여 명백하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크리스천이라면 젊은 우주론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 기독교를 위험에서 구하는 길이라는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Abstract)

This controversial article is provoked by Terry Mortenson who published a booklet Seven Reasons Why We should Not Accept Millions of Years. In the booklet Mortenson denounces scientists who proposed theories of millions years of the earth age, and Christian leaders who attempted to fit the theories into the Bible. The theories includes the day-age view, gap theory, local flood view, framework hypothesis, theistic evolution, progressive creation and so on, excluding the only theory of the earth-age 6,000 years. Reviewing carefully of the evidences of the Bible and scientific theories related with this subject, author criticize every Mortenson’s opinion “Seven Reasons Why We should Not Accept Millions of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