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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신학의 특성

heojohn 2020. 4. 5. 12:20

 

 

츠빙글리(Ulrich 또는 Huldrych Zwingli 1484-1531)는 독일 종교 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또는 Luder, 1483-1546)와 동시대를 살았던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이다. 그의 신학적 특성을 요약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서:

츠빙글리는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지 않았다. 츠빙글리는 루터와는 달리 이 두 가지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하신 의지의 계시이지, 율법이 정죄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2. 하나님에 관한 교리:

츠빙글리의 신학적 체계는 매우 엄격하고 완고한 유일신 중심적이었다. 이는 그리스도론, 인간론, 또는 구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는 달랐다. 츠빙글리에게 하나님은 만물의 절대적 동인이요, 제일원인이다. 만물 가운데 우연이나 자유의지에 의하여 생기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선악의 근원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과는 달리 완전히 자유로우신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위해 만드신 율법의 구속을 받지 않으신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도록 만들어 놓으심과 동시에 그의 아들을 보내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도록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3: 죄에 대한 견해:

츠빙글리는 아담의 원죄를 아담의 결함이라고 본다. 아담의 죄는 자손에게 유전되어 인간은 병든 상태로 태어난다. 이것은 범죄와는 다르지만, 인간의 자기구속(self-redemption)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교도에게는 해를 미치지 못한다.

 

4. 선택: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구원 이르게 하는 선택은 기독교인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의 시초부터 마지막 날까지 신실한 영혼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 “화육하신 아들에게 경청하라. 그러면 자연적으로 예정은 주어지리라고 말한 루터는 신앙과 의인(義認)의 불가분리성이 밀접하게 관련된 주관적 선택을 채택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믿는 자는 단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쓰여진 방편이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했다.

 

5. 신앙:

루터는 신앙을 회개와 의인에 결부시켰으나, 츠빙글리는 신앙을 선택에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영원 전에 선택된 자들은 신앙 이전에 선택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츠빙글리도 의인 교리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이 교리를 로마 교회의 행위에 의한 공적을 막아내는 예방약 정도로 보았다.

 

6. 기독론: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엄격하게 구분한 칼케돈의 기독론을 따랐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몸과 영혼이 두 인격을 이루지 않는 것처럼, 인성과 신성의 두 성질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을 와해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였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만 편재하시며, 그의 인성은 하나님의 우편에 제한되어 있다. 그의 견해는 루터파로부터 네스토리우스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뒤에 성만찬 논쟁으로 이어졌다. 츠빙글리는 자신의 성서 해석에 대하여 교환설 혹은 알로이오시스(Alloeosis) 개념을 이용하였다. 루터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7. 교회:

츠빙글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보이는 교회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선택된 자들만으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교회를 생각했다. 츠빙글리에게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에게만 알려져 있는 것이며, 선택된 자들은 신앙으로 이 교회의 일원임을 깨달을 수 있다. 루터는 보이는 교회보이지 않는 교회의 예비조직으로 생각했다.

 

8: 예전과 성만찬:

그리스도가 교회에서 행할 예전으로 제정하신 것은 세례와 성만찬이다. 츠빙글리는 예전을 초자연적 내용을 가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예전을 내적으로 성취된 신앙의 외적 상징이며, 은총에 대한 공식적 증거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지 내적 신생의 표시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성만찬도 역시 한 표시오, 상징이다. 성만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그것은 결국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이다. 그래서 루터와 달리 츠빙글리는 어떠한 임재의 교리도 거부하였다.

 

9: 마르부루크 성만찬 회담(1529):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회담에서 성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루터는 성만찬에 대한 이견을 사소한 문제로 간주하자는 츠빙글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신학적 차이점

 

1). 그리스도의 인격:

츠빙글리는 안디옥 학파의 견해를 따라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사이에 평행적 관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알렉산드리아학파를 따라 두 성질 사이의 유기적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2). 말씀에 관해서:

츠빙글리는 제세례파와 같이 내적인말씀을 강조하였는데, 루터는 기록되고 선포된 말씀을 강조하였다.

3). 인간의 자연적(유전적) 타락에 대해서:

츠빙글리는 범죄행위로 나타날 때까지는 진정한 죄가 되지 않고 연약성만 있다고 주장했으나, 루터는 자연적(유전적)인 죄의 상태가 진정으로 인류의 특수한 죄가 된다고 주장했다.

4). 세례 문제에 있어서: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인임을 인정받는 표시이며 교회에 예속되는 입교식이라고 보았으나, 루터는 신생과 사죄와 그리스도의 의를 입게 하는 예전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유아세례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

5). 신앙의인(信仰義認)과 선행에 대해서:

두 사람은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무의식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숭실)